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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깔’ 고운 사극이 재미도 좋더라
퓨전사극의 강점은 아름답고 세련된 색감…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소품도 볼거리

퓨전사극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로 ‘때깔 고운 미술’을 빼놓을 수 없다. 고혹적이면서도 현대적 감성이 빛나는 아름다움이 세트, 의상, 음식, 그리고 자잘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새근새근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종전 사극에서 보여준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을 훌쩍 뛰어넘는, 말 그대로 ‘명품예술’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세련된 공간감과 색감으로 재해석해 드라마와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가장 먼저 사극 미술에서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2003년 개봉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지는 고혹적인 한복 의상의 수려한 색감, 18세기를 대변하는 세밀한 갖가지 소품에 넋을 잃었다. 미학적 감성이 뛰어난 이재용 감독과 디자이너 정구호씨의 섬세한 터치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필두로 사극은 미학적으로 훌쩍 성숙해졌다. ‘혈의 누’ ‘형사’ ‘왕의 남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맛깔스런 궁중음식도 눈길

외주제작사 에이트픽스가 제작하고 있는 MBC TV 드라마 ‘궁’은 미술면에서 종전 TV 사극보다는 영화들의 고급스러움을 빼닮았다. ‘궁’ 시청자게시판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과 의상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의가 잇따를 정도다.

‘궁’의 미술은 ‘혈의 누’ ‘츈향뎐’ 등의 미술을 맡았던 민언옥 미술감독을 중심으로 촬영, 조명, 의상, 분장, 세트, 소품에 이르기까지 전 스태프가 합심해 탄생시켰다. 우리나라 전통 의상에 현대적 디자인이 가미된 새로운 스타일의 퓨전한복 드레스는 의상디자이너 배영진씨가 완성했고 맛깔스러운 궁중음식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고영옥씨 솜씨다. ‘유령’ ‘내추럴시티’ 등을 연출한 민병천 감독은 이 드라마의 비주얼 이펙트 슈퍼바이저(시각효과 책임자)로 참여했다.

‘궁’의 촬영세트는 경기도 오산에 마련됐다. 정통사극이 아니라는 이유로 창덕궁, 경복궁 등에서 촬영을 거부한 탓이다.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과 기발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궁 내·외부를 재창조했다. 궁 내부 제작에 소요된 예산만 15억원. 궁궐 앞뜰은 경주 안압지, 뒤뜰은 전주 경기전 등에서 촬영했다.

‘음란서생’ 미술부분에 20억 투입

‘음란서생’의 미술은 철저한 고증에 의해 창조됐다. 김대우 감독이 조근현 미술감독에게 주문한 것도 ‘최대한의 고증’이었다. 빼어난 영상미를 인정받은 영화 ‘장화 홍련’ ‘형사’의 미술감독이기도 한 조근현 감독은 “요즘 사극미술의 트렌드는 한마디로 ‘고증을 심도 깊게 해보니, ‘조선왕조 500년’류의 고증은 잘못됐더라’는 것”이라며 “근래 나온 사학 및 미학과 교수들의 논문이나 연구를 살펴보면 조선의 미술은 지금 눈높이에 맞추려면 오히려 억눌러야 할 정도의 과감한 색감과 디자인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종전 TV에서 방영돼 전 국민이 보고 즐기던 조선의 모습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헐벗고 굶주린 상태의 것으로 염색하지 못한 복식과 꾸미지 못한 인테리어 일색이라는 것이다. 조근현 감독은 “’형사’의 특정 색감이나 디자인은 퓨전 그 자체였지만 ‘음란서생’의 미술은 조선시대 옷감의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현대적인 해석을 약간 가미했을 뿐 세트나 의상, 소품 대부분 고증에 의해 완성했다”고 말했다.

‘음란서생’의 미술에는 전체 제작비의 40%, 약 2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다. 극중 시전거리 세트는 서울종합촬영소에 세워졌는데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낮과 음란소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은밀히 찾아드는 밤이 전혀 다른 느낌을 주도록 상점마다 양철로 덧문을 만들어 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또 윤서(한석규)와 정빈(김민정)의 위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선화사엔 수천 개의 연등을 설치했고 주인공들이 음란소설을 통해 겪게 되는 내면의 급격한 변화는 밝음과 어둠을 극명하게 대조해 표현했다. 극중 윤서와 광헌(이범수)의 최고의 역작 ‘흑곡비사’가 은밀히 제작, 배급되는 장소인 유기전에는 시가 1억 원어치의 유기가 공수됐다.

‘음란서생’에 등장하는 고품격 의상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혈의 누’ ‘형사’ 등의 의상을 맡았던 정경희씨가 200여 벌에 달하는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정빈(김민정)의 과감한 색감이 돋보이는 화려한 의상. 정빈은 검정색 당의, 붉은색 원삼, 엷은 분홍빛 의상 등으로 갈아입으며 상황과 심리를 변주한다.

[뉴스메이커 박주연 기자]

 






2006-02-28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