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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야 뭐하니>의 순정파 졸부 병각은 지금까지 연기해온 캐릭터들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인데 무엇보다 처음 어떻게 이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손현주 : <앞집 여자>를 같이 했던 권석장 감독에게 대본을 받았는데 내가 4월 말에 특집극을 찍다가 다쳐서 후방 십자인대 파열로 목발을 짚고 다니던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설정을 만들어서라도 같이 하자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까 또 못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하고, 주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하면 다 메인이라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8월쯤부터 ‘촬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회복이 빨라졌다. 지금은 지팡이 없이도 걸을 만하다. 이 작품이 내 재활 드라마인 셈이다(웃음).
: 가장 많이 해본 역할이 ‘사위’라는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대가족 안에서의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고, 특히 3, 40대 남자들의 가장 ‘아저씨스러운’ 연기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병각은 부인을 잃고 혼자 사는 인물이고, 좋아하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서툴러서 나이에 비해 소년 같은 면이 있는 캐릭터다.
손현주 : 데뷔한 이래 옷을 제일 잘 입고 나오고 돈을 제일 많이 쓰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불과 몇 달 전에 노숙자 역할 연기하면서 길에 거지 꼴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준희(김은주)한테 “야, 오늘은 한 장만 써라” 그러면서 몇 천만 원짜리 밍크를 척척 사줄 때는 어찌나 웃기던지(웃음). 이렇게 머리에 무스 바르고 꼬아놓은 것도 처음이고, 패션쇼 지휘하는 장면도 내가 언제 또 해보겠나. 그러면서도 병각은 한이 많은 인물이라 얼마 전에는 죽은 아내의 묘에 가서 친구인 용길(권해효)과 두런두런 얘기 주고받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 돈 많은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서 대사를 뱉는 게 웃기기도 하고 참 쓸쓸해 보이기도 하더라.
: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준희와 병희(고현정) 자매가 병각과 희명(조연우)을 데리고
어머니 순남(윤여정) 앞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병각이 너무나 어색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부분이었다. 다른 장면에서 거침없던 병각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 보이더라.
손현주 : 병각이 지금까지 그렇게 센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코 누구 앞에서 말을 더듬는 사람이 아닌데, 순남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나보다 더한 뭔가를 갖고 있다는 걸 느끼니까 말이 흔들리고 눈빛이 흔들리고(웃음). 그렇게 촬영하면서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사실 찍을 당시에 주위에서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으면 막상 방송에서는 재미가 없다. 개그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에서는 느닷없이 뭔가가 던져져서 “풋!” 하고 웃음을 참는 순간, 혹은 미소가 지어지는 정도가 좋다. 그걸 벗어나면 오버가 된다. 그건 아주 미묘한 차이인데 그걸 잘 눌러서 가면 드라마와 자연스럽게 융합해서 갈 수가 있다. 사실은 그게 항상 숙제고 고민이다.
“손현주가 괴로워서 술먹고 운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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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iaibic) : 매번 새로운 캐릭터와 마주할 때마다 같은 고민을 하게 될 텐데 기본적으로 배역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시작하나.
손현주 : 이런 얘기할 땐 미사여구도 써가면서 말하고 싶은데 그냥 대본에 충실하는 방법밖에 없다(웃음).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딱 올 때가 있다. 그러면 계산을 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에 맞게 그 인물로 움직인다. 하지만 애드리브는 거의 치지 않는다. 애드리브는 대본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마디 더해지는 거면 족하지 그게 주가 되면 흐름이 깨진다. 대사 안에 놀 수 있는 장단이 다 있는데 그걸 내 애드리브로 해서 한번 웃겨버리면 그런 웃음은 공허할 수 있다. 그리고 웃음보다 중요한 건 페이소스니까 그걸 지키려고 하는 거다.
: 처음 연기를 시작한 건 중학교 연극반이었다고 들었다. 대학교에서도 연기를 전공하고 졸업
후 극단 미추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19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방송을 시작했다던데.
손현주 : 처음 한 5, 6년 동안은 아예 방송국 안에서 살았다. 탤런트실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FD나 조연출 형들한테 술도 많이 얻어먹고. 그러면서 “형, 나 한 번만 써주라” “형, 나 썼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 아직 형 드라마에는 안 나왔어” 하고(웃음). 그러다 보면 단막극 같은 데 배역이 나왔을 때 앞에 있는 놈한테 주니까, 그렇게 캐스팅되면 그 사람들한테 실망감을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 그래서 <드라마 게임>의 대사 한마디 있는 단역으로 시작했다가 1992년 김운경 작가의 월화 드라마 <형>에서 말썽쟁이 머슴 역을 맡았다. 사실 그 역할도 단역이라 금방 빠질 수 있었는데 다행히 계속 가다가 극중에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배역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빠져야 했다. 그때는 “나 더 할 수 있는데, 좀만 더 붙여주지” 하는 생각에 술 먹고 몇 번 울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손현주가 <형>에서 빠지게 되니까 괴로워서 술 먹고 운다더라” 하는 소문이 났다. 그걸 들은 김운경 작가가 “아유, 이 촌놈의 새끼, 뭘 그런 걸 갖고 울어?” 그러면서 다시 넣어 준 덕분에 끝까지 가게 됐다(웃음).
: 1996년 <첫사랑>으로 이름이 알려질 때까지 수년 동안 그렇게 배역이
없어지거나 단역만 맡게 되는 상황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갈등은 없었나.
손 : 극단에서는 마당놀이 한 번 하면 1인 10역을 맡는 것도 당연했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배역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한 신만 나가서 연기하더라도 ‘내 꺼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미니시리즈에 캐스팅이 돼서 야외 촬영을 하루 하고 다음날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새벽에 전화가 왔더라. “오늘 안 나와도 된다. 배역이 바뀌었다”면서 “나왔던 야외비는 주겠다”고 하는 거다. 그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바람은 불어도>의 김반장 역할도 처음에 이영희 PD가 “사흘 나올 수도 있고 1주일 나올 수도 있고, 그 이상 나오는 건 니가 하기 나름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빠지기는 싫어서 내 나름대로 캐릭터를 잡아갔더니 운 좋게 끝까지 써주셨고. 돌이켜보면 그런 은인들 덕분에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황진이> CP가 “좀 살살 해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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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스런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실제 성격은 연기할 때보다 훨씬 진중한 것 같다.
손현주 : 내가 원래 판을 벌여 잘 떠들거나 말을 잘 하는 인물은 못 된다. 그리고 오래 전에 토크쇼에 나갔다가 말을 실수해서 굉장히 난처해진 적이 있어서 토크쇼나 오락 프로그램에는 아예 안 나가기로 한 지 10년이 넘었다. 요즘에도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건 열심히 보면서 재미있으면 박수도 쳐주고 하지만 나한테는 어렵더라. 나는 연기자가 대단히 특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부인과 아들딸 데리고 사는 직장인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토크쇼 같은 데 나와서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라는 걸 보여주면 아이가 없는 가족이나 이혼한 부부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져주고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줄 수 있나 하는 고민이 있다. 그래서 비록 허접한 집이지만 TV에 공개를 할 수가 없는 건데, 그러니까 아직도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웃음).
: <장밋빛 인생> 당시에는 시청률도 잘 나왔고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그 때도
“지금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 경쟁 드라마에서 이런 기사를 보면 신경 쓰이지 않겠냐”며 걱정했다고 들었다.
손현주 : 사실 시청률이라는 건 별 게 아닌데 많은 사람들은 그 잣대로 모든 걸 평가하고, 아주 잘 만든 작품에 대해서도 시청률이 낮으면 매도하곤 한다. 시청률 3,40%가 넘어가는 쪽에서는 룰루랄라하겠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기가 꺾이는 게 걱정될 때가 있다. 경쟁 드라마의 스탭들, 배우들, 작가들도 다 내 친구고 동료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황진이>의 이성주 CP와 굉장히 친해서 얼마 전에도 성주 형이 우스개소리로 “야, 좀 살살 해라.”그러더라. 그럼 난 “우리 살살 하고 있어. 형네 것도 좋잖아. 같이 가지 뭐.” 이렇게 얘기를 하고. 그런 게 좋다.
피플(dooli66) : 후배 소지섭이 “손현주 선배같은 생활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고 김원희를 비롯해 여러 후배들이 연기에 대해 본받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향을 받았거나 본받고 싶은 선배는 누구인가.
손현주 : 나이 차가 좀 있는 선배들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요즘에도 전화를 주고받거나 만나서 대포 한잔 하곤 하는데, 주현 선배나 한진희 선배, 김인문, 오지명 선배같은 분들과 술을 많이 먹는다. 그러면서 그 분들이 살아오신 삶의 깊이같은 걸 어렴풋하게 배우기도 하고.
피플(bmdslove) : 팬까페 이름도 ‘뚝배기 손현주’고 본인의 외모에 대해 “무쟈게
된장같은 느낌”이라고 평했다. 사람들이 ‘배우’라는 존재를 우러러 볼 때에는 남다른 외모같은 걸 기대하거나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데 혹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낀 적이 있는지.
손현주 : 특별히 외모 콤플렉스를 느낀 적은 없는데 머리통이 좀 작았으면 좋겠다. (웃음) 요즘 배우들은 머리통이 다 작지 않나. 천정명이 내 머리의 3분의 1밖에 안되니까, 내 머리도 큰 건 아닌데 사람들이 뚱뚱하게 보더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연기하면 마음이 편한 주현 선배같은 분들이다. (웃음)
: 사람들은 다양한 작품에서 손현주의 연기를 기억하는데 이를테면 영화 <킬러들의
수다>에서 조폭 두목 탁문배로 출연했던 당시 술집에서 검사인 정진영과 킬러인 신현준을 앞에 두고 분통을 터뜨리던 장면은 조연이었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기하면서 스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장면이 있다면.
손현주 : <장밋빛 인생>이다. 바람을 피우고 집에 돌아왔을 때 사라져버린 아내가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슴이 미어지고 타들어가는 그 심정. 그리고 엔딩 씬에서 1년쯤 뒤 아이들을 데리고 납골당에 갔다가 뒤를 돌아보는 한 컷 같은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연기는 죽을 때까지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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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밋빛 인생> 이후 '조강지처를 버렸던 남자' 반성문의 이미지 때문에 예약되었던 CF가 취소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아쉽지는 않았나. (웃음)
손현주 : 어쩌겠나. 누군가 남이 하고 있겠지. (웃음) 내 몫이 아니었던 걸 내가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사고가 나는 법이다. 순응해서 살아가야지 욕심을 부리면 꼭 탈이 난다. 욕심을 부리면 꼭 뭔가 꾀하고 쫓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디 가서 서 있는지도 모르게 되고. 그래서 젊은 후배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위로 올라가는 것까지는 매니지먼트사에서 알려주거나 남이 가르쳐주는데 정점을 쳤을 때는 내려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까 늘 꾸준하게 ‘나는 똑같은 연기자로 평행선을 긋고 있다’고 생각해야 되는데 올라가는 건 배웠다가 내려오는 건 모르니까 매니지먼트사가 손을 떼거나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이 패닉에 빠지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감당을 못하니까 망가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늘 똑같이 연기자로 평행선을 그으며 쭉 가는 거지, 연기자에게 정점이 어디 있고 올라가고 내려오는 게 어디 있나.
: <장밋빛 인생>이 끝난 뒤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올랐고,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후원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팬까페에는 특히 선거일마다 ‘투표를 하라’는 글을
자주 남기던데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손현주 :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동참해야 할 일이니까. 사실 마음이 중요한 거지 어렵고 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건 아픈 사람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캠프를 가거나 지원금을 낼 때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남을 돕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하는 거지.
: 연기자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손현주 : 까불지 마라(웃음). 초심을 잃지 말고, 모든 걸 단기간에 끝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가면 되는 거다. 죽을 때 자기 연기가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죽는 사람은 없지 않나. 연기에 완성이 어디 있나. 가다 보면 좋은 게 있을 수도 있고 나쁜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의 승부인데 그걸 단기간에 뭔가 얻겠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 앞으로는 어떻게 살면서,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가.
손현주 : 지금처럼만 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웃음).
(글) 최지은 guilty@cine21.com
(사진) 백가현 bbaik99@cine21.com
(영상취재) 이지미 jimilee@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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