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성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저기 저 분, 많이 뵌 것
같은데, 누구시죠?” 각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배우 김진규와 김보애의 아들’로 기억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17년 동안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장수 학생’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고대
불사조라고 하면 다 알아요” 김성준(37·본명 김진근)은 항상 말하고 다녔다.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그리고 벌써
17년이나 됐다고. 연기 생활을 하면서 한 학기에 한두 과목씩 들으며 학교를 다닌 것이 휴학 기간을 합쳐 벌써 17년째다. “17년을 다니든
30년을 다니든 그건 화젯거리가 될 수는 있어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정말 중요한 것은 아버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작은 마음이죠.” 그의
아버지는 영화배우 김진규씨다.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벙어리 삼룡이’ ‘사랑
손님과 어머니’ 등 5백여 편의 수작에 출연하며 대종상과 청룡영화제를 휩쓸었다. 김성준은 아버지의 조언으로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들이 ‘배우
말고 다른 일’을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따랐다. “‘인사 관리’처럼 사람을 다루는 과목은 재미가 있는데, 숫자를 다루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연극을 하면서 ‘연극에 미치자’고 생각했죠. 첫 학기에는 거의 ‘A’만 받았어요. 물론 그 다음부터 ‘A’는
찾아보기 힘들었죠. ‘D’ 받으면 다행이고. 하하.” 연극에 빠지고 나서는 학업에 소홀해졌다. 제대로 미쳐보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뉴욕
연기학교 ‘리 스트라스버그 시어터 인스티튜트’에서 연극을 배웠다. 졸업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가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지난 1998년
작고한 아버지의 낡은 서류가방 안에 들어 있던 고려대학교 입학 통지서였다.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 그걸 아버지께 드렸어요. 그때 제 사진도
기억나요. 공부해보겠다고 머리 빡빡 깎고, 번호도 기억나네요. 그러고 나서 아버님을 자주 못 뵙고, 대학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꼈죠.
그런데 그 통지서를 평생 간직해오신 거예요. ‘이것이 아버지의 큰 기쁨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졸업장은 드릴게요’라고 약속했어요. 작은
약속이죠. 사실 창피해요(웃음).” 김성준은 참 많이 웃었다. 양볼에 주름이 질 정도로 크고 호탕하게. 순식간에 벽을 허물었다. 그의 얼굴은
발음하는 어휘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했다. 선해 보이는 눈빛은 갑자기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금세 결연해지기도 했다.
“쓸데없는 공명심은 버리고 몰두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김성준은 고지식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연기에
대해서만은 분명히 외골수 기질이 있다. 지난 2006년 말 ‘MBCTV 연기대상’에서 단막극 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던 MBC 창사특집 단막극
‘직지’에 출연하기 전 그는 삭발을 하고 절에 들어가 생활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카시아’ 촬영 전에는 한 달 반 동안 산부인과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진료실과 수술실에서 보냈다. 70대 노인으로 분한 영화 ‘두 사람이다’를 위해서는 매일 전철을 타고 파고다공원에 나가 노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을 관찰하고 시간을 보내며 걸음걸이를 흉내 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지만 나중에는 친구가 됐다.
“그때가
가장 좋아요. 연기와 상관없는 돈이나 좋은 차, 뭐 이런 생각 안 하고 연기 생각만 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인물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죠. 그러면, 좋거든요(웃음). 배우는 몸이 수단이고, 생각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는
“공명심이 섞이면 맑은 에너지로 연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나 노인, 스님도 마찬가지다. 생각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다. 경험을
통해 자신을 ‘깨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크다. 진지한 자세는, 아버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배우’로 사셨다는 것을 알아요. 아버지보다 잘될까 못 될까가 아니라, 그 의미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조언을 구했죠.
아버지 친구분들, 화가님들, 영화 제작하는 분들, 많이 찾아다녔어요.” 그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지만 어려웠다. “배우는 화려하고 흔들리기 쉬운 직업이다. 흔들리는 순간 너는 내리막을 걷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배우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을 거다. 좋은 차, 좋은 집은 ‘미친놈’처럼 살다 보면 오는 거다. 연기는 즐거운 것이다. 멋지게 한번 미칠 수 있지
않겠니. 젖어봐라.” 사람을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다. ‘조건’을 생각하고 하는 사랑은 심심하다. 계산이 앞서면, 열정을 쏟을 수 없다. 김성준은
배역과 사랑에 빠진다. ‘인물’ 외에 드는 다른 생각은 비우려고 노력한다. 진지하게 미치고 싶은 마음은, 그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40석 규모의
소극장 ‘펀 스페이스 시어터(Fun Space Theater)’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돈 벌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가 가장
즐겁게 미칠 수 있는 곳이 연극 무대인 것 같아요. 제 극장을 상업적으로 ‘돌리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극장이 극장 같지
않아서(웃음), 두 번째는 그걸로 돈을 벌려고 마음먹는 순간, 미치겠어요. 그런 기약 없이 연습할 때의 에너지가 좋죠.” 그는 각종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에도 한 영화학도에게 전화가 왔다. 영화 “두 사람이다”를 잘 봤다며 자기 영화에 출연을 부탁했다.
“‘그래, 학생이니까 개런티는 한 7백에서 천 정도만 생각해’ 그랬죠, 농담으로. 하하. 그럼 놀라죠. 전 돈 안 받아요. 학생들 작품 꾸준히
해요. ‘자장면 한 그릇만 사라, 꼭 사야 된다’ 그러고 하는 거죠. 그 친구들이 언젠가는 대(大) 감독이 될지도 모르는데요(웃음). 돈이
개입이 안 되니까, 정말 재밌는 작업이 이루어져요.” 얼마 전에는 독립영화관도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어도 걸 곳이 없는 독립영화 감독들을 위한
공간이다. 공간을 내주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영화도 맘껏 틀고,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 다 초대하고. “그러고 대관료 5만원만 내라고
해요. 그냥 하고 싶지만, 5만원은 받아야 그래도 극장 같잖아요. 하하.” 그도 가족까지 굶겨가면서 예술에 심취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장래의
가족들이 윤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처음 배우가 되고자 했을 때의 순수한 마음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진정으로 ‘연기자’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냥 웃기는 광대, 아무 생각 없는’ “제가 연기를 하는 이상, 가족 이야기는 늘 따라다니겠죠. 좋은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세 살 때부터,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우’인 부모님을 보고
살았죠. 제가 그분들의 길을 다시 갈 때는 장인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왕가위 감독이 그에게 해준 조언이 있다. 그는 “한국의 도자기가 왜 유명한지 아느냐”고 물었다. “‘장인정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도공이 도자기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더 이상 쏟아 부을 것이 없을 때 작품에 ‘혼’이 빠져드는 거라고. 그리고
‘너도 그런 배우가 돼라, 관객을 잡아서 물속으로 끄집어 내리고, 죽을락 말락 할 때 놓아주는 물귀신 같은 배우가 돼라’고 했죠.” 김성준은
시대와 역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미없으면 외면당하는 세상이고, 진중하게 ‘진짜’를 좆는 사람은 항상 힘들어지니까. 사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급변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속물근성이 이득이 된다고 해도, 저를 보면서 ‘아 그게 다가 아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아, 이거 너무 장황한가? 하하.” 그는 말을 이어가다 멈칫하고, “그냥 웃기는 광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배우가 근엄한 말을 하면 뭐 하겠어요. 순간 즐기려고 보는 거니까. 그저 배우로서, 즐겁게 보고. 울고 웃고. 한 판
놀자는 거죠(웃음).” 김성준은 오는 10월 1일부터 MBC-TV 일일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에 출현한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진지하고, 괴팍한
인물은 아니다. “가볍고, 오버하고, 야망을 이루기 위한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웃긴 놈”이다. “제 안에도 그런 ‘놈’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미쳐보는 거죠. 제가 미쳐서 날뛰는 모습을,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가 머리에 불붙이고 발가벗고 뛰어가면 다 쳐다보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미치고 있으니까요. 그냥 부담 없이 즐겨주시면 좋죠.” 김성준은 진지하지만 불편한 사람은 아니다. 배우로서의 긴장감을 풀지
않는 그의 자세는 인터뷰를 ‘연극 한 편’으로 만들었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김성준은 내내 미쳐 있을 테니까.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Space C
2007-10-10
(16: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