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냉탕열탕, 마지막으로 남자의 사랑에 대해 말하다
‘남자는 나이 마흔이 되면 악당이 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독설가로 유명한 이 남자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침드라마의 내용에는 평온했던 가정, 하지만 곧 드러나는 남편의 불륜, 그리고 피해자였던 아내의 홀로 서기
같은 이야기들이 공식처럼 등장한다. 이 칼럼을 통해 다루었던 MBC의 <있을 때 잘해>에서의 하동규(김윤석), 오순애(하희라)가
그렇고, 비록 멜로 코드는 빠져 있지만, 어김 없이 불륜 코드는 존재하는 <하얀거탑>이 그렇다. 공자는 40살을 헛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이라고 표현했지만, 현대인들은(적어도 드라마 속에선) 옛 성인의 가르침 따위엔 콧방귀나 뀌고 있는 셈이다. 남자의 나이
마흔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결혼대신 독신을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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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루라고 말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 |
잠시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을 만났었다. 서른 후반에 결혼해 아직 신혼이라면 신혼일 수
있는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효용성은 뭘까?” 뜬금없는 질문에 난 절반의 농담을 섞어 대답했다. “공짜 섹스와 더 이상 헤매지
않아도 될 안정.” 쓴 웃음을 지으며 신혼의 신랑은 반론을 제기했다. “섹스는 시들해졌고, 모험을 잃어버리면서부터 늙기 시작했어….” 아내가
아이를 갖고 섹스를 피하면서부터 달콤한 신혼은 사라졌고, 혼인서약에 의해 다른 여자를 안을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면서부터 서글퍼지기 시작했다고
그 친구는 고백했다. 글로 옮겨놓고 보니, 나와 친구의 대화는 마치 남자들이 바람을 피기 위해 준비한 일종의 출사표처럼 들려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긴 이런 이야기도 있으니까. ‘여자는 배란기 때 바람을 꿈꾸고, 남자는 숨 쉴 때마다 바람을 꿈꾼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광고의 카피도 떠오르고, 백발의 머리에 할리 데이비스 모터사이클을 타던 노신사가 ‘그저 경험이 많다고
해두지’라고 했던 멋진 멘트도 떠오른다. 하지만, 나이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마흔이란 보편적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남자들에겐
꿈이 사라졌음을 알리는 일종의 자명종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가정이란 뱃사람 신밧드를 바그다드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10년 가까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의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다. ‘꿈이 뭐였지?’
열심히 일하면 이사나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순진한 공상이 깨진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며칠 후 결혼 포기를 스스로에게
선언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꿈을 잃기엔 이른 나이라고 생각했었고, 독신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는 바람을 꿈꾸고 어떤 남자는 고집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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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의 의미가 10억으로 치환될 수
있을까. | |
엄마와 어린 자녀의 모습이 담담히 비춰진다. 그리고 그 배경엔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다.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10억을
받았습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광고의 등장인물을 바꾸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빠와 어린 자녀가 함께 있고,
보험사 여자 직원이 정중히 인사를 한다. 이어지는 내레이션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다지 공감을
얻기도, 더구나 감동을 끌어내기도 힘든 상황일 것이다. 심지어 ‘음, 곧 있으면 저 남자는 아내의 보험금으로 곧 다른 여자를 만나겠지…’라는
상상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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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 | |
앞의 연관 없어 보이는 세 이야기는 나이 마흔의, 그리고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는 남자들의 작은 단면이다. 어떤 남자는 바람을 피우고, 어떤
남자는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독신을 고집하며, 또 어떤 남자는 10억이라는 돈으로 환산되어 보여진다. 안정된 가정이 있으나 다른 여자를 원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그에게 따뜻한 가정이란 사치일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안정된 가정이란 포장 안에서 극히 현실적인 경제력을
상징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마지막 예에서처럼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결말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랑? 어쩌면 나이 듦이란 사랑이란 순수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고독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이 칼럼의 마지막 글을 쓰는 지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얼마간의 시간은 남아 있는 것일까? 자신 없는 물음 끝에 떠 오른 것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 한
구절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2007-02-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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