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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이들이 있어 올해 한국영화는 다행이었다. 산적한 숙제와 새로운 과제 속에 한국영화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문제를 열심히 푼 사람들과 함께 올해도 풍성하게 마감할 수 있었다. 발견과 재발견, 압도감과 긴 여운의 기쁨을 안겨준 올해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모두 9명(팀)이다. FILM2.0의 전통적인 송년특집 PEOPLE OF THE YEAR 선정과 함께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봉준호 | 2006년의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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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봤고, 누구는 보지 않았다. 이것은 모든 영화의 운명. 누구는 좋아했고, 누구는 싫어했다. 이 또한 모든 영화의 운명. 그러나 <괴물>은 통칭 4,500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 1,301만 9,740명이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본 사람, 보지 않은 사람, 좋아한 사람, 싫어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괴물>에게 포위됐다. 이것은 <괴물>만의 운명이었다. 그중에, 꼼짝없이 포위된 사람 중에, 꼼짝없이 포위된 사람 중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 중에, 19년 전 한강에서 괴생물체를 봤다고 주장한 후 그걸 4,500만 명 앞에 영화라는 ‘그림 이야기’로 설득해낸 ‘괴물’ 봉준호 감독이 있다. 그는 <괴물>의 감독이자, ‘괴물’ 감독이 됐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조금도 주저 없이 칠판에 이렇게 썼다. ‘봉준호는 괴물이 아니다’라고. “<괴물>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나, 재미없게 보신 분이나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괴물>은 저의 끝이 아니라 초기작 중 하나일 뿐이니까 앞으로 더 많이 기대해주세요.”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으며, 흥행 양극화와 독과점 논쟁에 불을 지폈으며, 무엇보다 한국 시각효과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에, 훗날 <괴물>이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로 미미하게 언급될 뿐일지라도 2006년의 올해의 인물로 <괴물>의 봉준호 감독을 꼽는 건 너무 뻔하고도 무지 당연하다. 한승희 기자
김태용 | 사랑스러운 일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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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을 한 마디로 압축해달라는 요청에 김태용 감독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썼다. 흔한 신년 인사처럼 들릴 법한 말이지만 7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든 그의 입을 통해서라면 결코 흔치 않은 감회다. 공포영화의 기획 시리즈 중 하나였지만 결코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놀라운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이후, 김태용 감독은 너무 오래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신작 <가족의 탄생>은 그 침묵 덕분에 충분히 숙성된 아름다운 이야기와 말들로 다시 우리를 흔들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 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 여느 가족영화들과 달리 굳이 피로 얽히지 않아도 피보다 진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역사. <가족의 탄생>이 말하는 가족사는 이러하다. 특별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세 가지 이야기를 순환시키는 대안적 구조와 흔들리고 거칠지만 따스한 영상이 새로운 탄생을 구성했다. 흥행의 숫자가 영화의 가치와 치환되는 일이 너무 빈번해진 영화시장, 그러나 흥행의 냉담함과 무관하게 이 작품의 입지는 오롯하다. 감독 자신에게 새로운 시작이 돼준 동시에 한국영화가 지루하게 반복해온 낡은 가족 개념에 새로운 일탈을 던져주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현장에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되새기게 된 김태용 감독은 “정말 빨리 만들 거다”는 말로 차기작 사랑이야기의 구상을 재촉한다. 김영 기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자원관리팀 장광헌, 손기수
2007년에도 한국영화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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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상자료원은 눈부신 발굴의 시간을 보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국영화 <미몽>(1936)을 비롯 <반도의 봄>(1941), <조선해협>(1943) 등 새로이 수집된 일제강점기 영화들은 한국영화사의 숨겨진 1인치를 발견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제강점기 영화가 국내에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영상자료원의 계속되는 활약이 올해를 발판 삼아 그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1962)을 대만에서 발굴, 복원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지런히 중국, 러시아, 홍콩, 일본 등으로 한국영화를 찾으러 다닌 영상자원관리팀의 장광헌, 손기수는 어느덧 영상자료원에서 일한 지 15년 가까이 된다. 그 사이 바뀐 원장만 해도 6명, 그야말로 한국영화 발굴과 복원의 산증인들이다. 이들이 중국전영자료관 등에서 한국영화를 찾아온 에피소드들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그럼에도 장광헌 팀장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 아직 발굴, 수집된 것은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며 “내년에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운을 띄운다. 손기수 연구원도 “내년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1974년 영상자료원이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독립된 공간과 더불어 보존용 필름보관고가 생긴다”며 “미래를 더 주목해달라”고 말한다. 지금의 한국영화를 더욱 살찌우는 힘과 원천이 바로 여기 있다. 주성철 기자
김승우 | 안 썼던 근육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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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우는 <해변의 여인>에서 그 자신이 연기한 영화감독 김중래처럼 이미지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해변의 여인>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날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똑같았으나 이제 서야 사람들이 재발견해준 것"이라고 하지만 '재발견'이라는 말이 싫지는 않다.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의 눙치듯 뚱한 연기도 가관이었으나 무엇보다 김승우가 말을 건네는 영화였다. "20년 연기를 하다보니 선배가 돼 현장에서 마음껏 풀어지지 못하는" 그에게 이 영화는 "감독에게 완전히 나를 맡기고 벌거벗을 수 있는" 구원과 같은 작품이었다. 그는 홍상수 감독에게 장난을 치고 불평을 터뜨리고 때론 응석도 부렸다. 홍상수는 촬영 날 아침에서야 쪽대본을 쥐어주는 별난 연출 스타일도 잠시 물린 채 선선히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 '시간'과 '관용'을 선물 받은 김승우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던 '사악한 이미지들'을 일소한다. 그는 여기서 여느 남자배우들이 연기한 '홍상수적 인물'를 살짝 넘어서는 그만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해변의 여인>의 김승우에게는 "내가 가진 느낌에 배우의 것이 더해져 새로운 것이 나온" 것이라고 홍상수가 말했던 그런 경지가 엿보인다. 스스로를 재발견하지 않았으나, 만인이 모르고 있던 숨은 이미지를 재발견하게 해 준 배우. <해변의 여인> 식으로 말하자면 김승우는 "안 썼던 근육을 썼을 뿐"이다. 그 기이한 근육의 움직임에 많은 이들은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장병원 기자
HFR 디지털 컬러리스트 | 반짝반짝 빛나는 때깔의 창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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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남극일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을 촬영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한국영화는 이제 앵글이나 구도가 아니라 점점 색의 싸움이 돼간다"고 말했다. 창조적인 카메라 워킹이 영화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였던 과거에 비해 영화에서 색의 질과 운용이 점점 중요성을 가진다는 반증이다. 후반작업의 중요성이 가일층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DI(Digital Intermediate)로 불리는 디지털 색보정은 이미지의 혁명을 가져온 기술적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디지털 현상소인 헐리우드 필름 레코더(HFR)는 2006년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였다. HFR 이용기 상무는 "DI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대작 영화와 경합할 수 있는 경쟁력을 만들어낸 요소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음란서생> <괴물> <가족의 탄생> <타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이 HFR 디지털 컬러리스트들의 손을 거쳐 갔다. 35mm부터 슈퍼16mm, HD 등 포맷도 다양해 DI에 대한 활용 가능한 노하우들을 축적한 것도 올해의 수확이다.
HFR 옥임식 실장은 "DI는 감독과 촬영감독의 창조적 표현에 봉사하는 서비스업"이라고 말한다. 필름 표면의 티끌을 지우는 작업부터 색을 만들고 선명도를 높이는 등 이미지를 주조하는 중요한 작업들이 DI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영감에 봉사하는 그들의 창조적 능력은 다른 분야에서도 발휘된다. 오랫동안 준비한 고전영화의 복원작업이 그중 하나다. HFR 디지털 컬러리스트들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복원은 사멸한 영화의 혼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귀중한 창조작업이다. 장병원 기자
안성기 | 국민배우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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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는 올해 배우로서 50번째 해를 보냈다. 그리고 영화계의 각종 현안들에 앞장서며 국민배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묵공>과 <한반도>를 촬영하며 맞은 시작은 평범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결정된 1월 26일 안성기는 분노했고 행동했다. 피켓을 들고 스크린쿼터 저지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후 상반기를 그는 투쟁을 하며 보냈다. “올해 가장 안타까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크린쿼터 축소"라고 그는 회고한다. 하반기엔 <라디오스타>로 관객들을 찾았다. 인생과 시간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그의 연기에 관객들은 눈물로 답했고, 그 역시 감동받았다. “<라디오스타>에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특히 시사회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봤을 때 그 순간이 가장 감격스러웠다." 이후 안성기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동시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촬영했고 지금은 내년 1월 개봉할 영화 <묵공>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참이다. 안성기는 "50이란 숫자가 후배들에게 보다 긴 호흡으로 일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내가 언제까지 연기를 할지 나도 궁금하다"며 칠판에 물음표를 그렸다. 그에겐 "데뷔 이래 가장 바쁜 해"였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진정한 '국민배우'가 재발견된 행복한 2006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송주연 기자 ㅣ사진 김재현
이송희일 | 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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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화는 짧은 영화고, 긴 영화는 긴 영화다. 독립영화는 독립영화고,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다. 동성애영화는 동성애영화고, 이성애영화는 그냥 영화다. 이토록 완고한 자기 반복의 명제는 참인 듯 보이지만, 참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위선의 명제를 거짓이라고 실증할 영화가, 감독이, 그리고 관객이 그동안은 불행히도 드물었다. 이송희일의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는 바로 그걸 해냈다. 2001년 발표한 <굿 로맨스>로 주목 받은 후, 사실은 게이 감독으로 더 주목 받은 후, 이송희일은 마침내 장편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로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뒀다. 그리고 <왕의 남자> 못지않은 열정적인 팬과 <브로크백 마운틴> 못지않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후회하지 않아>는 어느 해보다 영화 다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던 시기에, 어느 해보다 동성애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극적으로 도모된 시기에, 어느 해보다 독립영화 진영의 한계와 가능성이 극명했던 시기에 다른 종류의 희망과 용기를 제시했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영화적으로는 부족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애영화는 꽃미남, 꽃미녀 천지인데, <후회하지 않아>가 꽃미남이 나와서 잘됐다고 하는 건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가 아닌가”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송희일 감독은 다음 출전 때도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릴 것 같다. 한승희 기자 | 사진 한상무
이병우 | 2천만이 기억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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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는 <왕의 남자>, 하반기엔 <괴물>. 두 천만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 사이 선보였던 음악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안겼다. 영화음악감독 이병우는 올해 참으로 분주했다. 가장 많은 작업편수와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수치가 문제는 아니었다. 서양악기를 사극에 입힌 <왕의 남자>, 음악으로 영화의 문을 열고 닫았던 <호로비츠를 위하여>, 괴수 블록버스터에 ‘뽕짝’ 리듬을 얹어냈던 <괴물> 등 늘 창조적인 작업 속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도전과 개척을 자청해왔던 까닭이다. “가장 좋아하는 사랑의 형태”라며 칠판에 써내려간 ‘무모한 사랑’이라는 구절이, 온화한 그의 표정 아래 흐르는 호전성과 음악을 향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2006년의 빠른 속도를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는 “올해는 영화로 바빴지만 사실 바쁘게 살지 않은 때가 없었다”고 돌이킨다. 영화음악가로 쌓아온 10년보다 긴 시간을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살아오면서, 음악 속에서 이병우는 늘 바빴고 그 덕분에 즐거웠다. 올 한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건 뒤늦은 축복이다. 내년 초입까지 예정된 영화만 벌써 4편, 바야흐로 2007년은 영화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더 큰 축복이 내려질 해다. 김영 기자
김윤석 |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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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놀라운 배우의 발견은 그 어떤 몸짱도 얼짱도 아니었다. 여러 편의 단역 출연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던 한 30대 후반의 배우였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가드 올리고!’를 연발하던 오동구(류덕환)의 폭력적 아버지, <타짜>에서 지옥에서나 마주칠 법한 전설의 타짜 아귀를 연기한 김윤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마 <초록물고기>와 <넘버3>로 갑작스레 등장한 송강호의 파괴력이 그 정도였을까?(실제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연극무대를 함께했던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하다) 이미 그전에 TV 드라마 <있을때 잘해>로 전국 아줌마들의 애정 어린 원성을 샀던 그가 드디어 충무로에도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김윤석이 놀라운 것은 정말 서로 다른 모습을 그 극한까지 보여줬다는 것이다. <있을때 잘해>의 공개적으로 바람피우는 못된 유부남
하동규, 그리고 <천하장사 마돈나>와 <타짜>가 이루는 삼각형은 뒤늦게 발견한 만큼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검은
선글라스의 지나친 광택보다 더 비열하고, 얼굴에 칼자국까지 선명한 아귀는 사실 <타짜>에서 나온 분량이 불과 7컷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소녀 같은 소년 동구 역시 아버지와 싸우는 것이 그
자체로 세상과 싸우는 것이다. 김윤석은 아직 미지의 배우다. 그래서 2007년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 욕심이 너무나 반갑다.
주성철 기자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