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테인먼트 ㅣ 이명구·임근호기자] 탤런트 하희라(37). 그녀는 '엔지'(ng) 안내기로 유명한 배우다.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 촬영 첫날. 하희라의 분량은 총 130씬중 103씬이었다. 거의 모노 드라마에 가까운 어머어마한 대사량. 그래도 하희라는 그 흔한
'엔지' 한번 없이 103씬을 완벽히 소화했다.
"대사를 틀리는 게 되려 이상하죠. 촬영 2주일 전부터 대본을 끼고 살았는걸요."
때문일까. 방송가에서는 하희라를 완벽주의자라 부른다. 수많은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통해 수없는 대사를 내뱉았지만 하희라 사전에 '실수'란
단어는 없었다. 비단 연기 뿐 아니다. 학창시절 연기와 공부를, 결혼 후 살림과 공부를 동시에 병행했지만 그래도 하희라는 똑소리나게 해냈다.
"완벽주의자요? 천만에요. 스스로 부족한 걸 알기에 남들보다 2~3배 더 노력한 겁니다."
'앨범토크' 4번째 주인공은 하희라다. 하희라는 앨범 속에 담긴 30여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삶과 일에 대한 추억을 되새겼다. 사진 속에는
기쁨이 담겨있고 슬픔이 배여있었다. 특히 하희라는 결혼 후 3차례나 유산된 아픈 사연을 털어놓다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시작. 스타들의 데뷔과정을 살펴보면 비슷한 경우가 종종있다. 대표적인 예가 '친구따라 강남갔다' 유형. 예를
들어 친구와 함께 오디션 현장을 찾았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자신은 붙은 경우다. 하희라 역시 마찬가지. 친구의 권유로 교내 합창단 시험을 보러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하희라만 붙었다. 이것이 바로 하희라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요일이었죠. '딩동댕 TV 유치원' 녹화를 구경갔어요. 그때 우연히 PD 선생님 눈에 띄어서 KBS 합창단이 됐죠.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그러다 얼마후 드라마 '토지'에 출연하게 됐죠. 노래부르는 동네 꼬마가 필요한데 제가 당시 머리가 길었거든요. 댕기머리 소녀역을
하기에 딱이었죠. 그렇게 제 연기 인생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시작됐어요."
▶ 데뷔작. 하희라의 드라마 데뷔작은 1982년 KBS 청소년 문학관 '내 이름은 마야'다. 당시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장서희가 극중 하희라의 친구로 나왔다. 하희라는 이후 드라마에서 '누구 누구'의 딸 역할을 맡으며 아역배우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다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드라마 '고교생 일기' 기억하세요? 84년도 최고 인기드라마였죠.
최재성, 강수연, 손창민, 이청, 조용원, 윤유선, 채시라 씨 등이 '고교생 일기'를 통해 이름을 날렸죠. 고2때는 대하드라마 '노다지'를
찍었어요. 원래 계획은 4회 출연이었죠. 한데 반응이 좋아 결국 '40대'까지 갔어요. 물론 많이 어색했죠. 고2가 마흔살을 연기한다? 결국
더이상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원작과 다르게 제가 자살하는 걸로 끝났어요."
▶ 대학. 요즘 연예인들은 대부분 연극영화과를 지망한다. 하지만 예전만 해도 달랐다. 일례로 하희라는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출신이다. 물론 그 어렵다는 교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단 한번도 연기수업을 따로 받은 적 없다던 하희라. 그녀는 왜 연극영화과 대신
교육학과를 지원했을까.
"연기는 평생할거라 생각했어요. 때문에 대학 4년만큼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죠. 물론 공부하랴 연기하랴 힘들었어요. 사극촬영할 때는
트레머리만 내린 채 한복을 입고 달려가 시험을 보기도 했어요. 성적요? 장학금 받을 정도로 나왔어요. 지금도 학교때 친구들 만나면 '너 정말
열심히 했다'고 인정해줘요."
▶ 교생실습. 대학 4학년 졸업반. 하희라는 여전히 바빴다. 당시 하희라가 출연한 드라마는 '까치 며느리'.
안정훈과 함께 부부로 나왔다. 물론 드라마 때문에 학교생활을 소홀히 했다면 하희라가 아니다. 그녀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사범대 졸업의
필수코스인 '교생실습'을 나갔다.
"교생실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스로 성숙해진 계기가 됐죠. 사실 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어머니에게 기대는 철부지 어린애였어요. 하지만
교생실습은 달랐죠. 제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꼈어요. 물론 겁이 났죠. 도망가고도 싶었어요. 그래도 이건 제가
해야할 일이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교생실습이 끝난 뒤 한층 어른스러워진 저를 발견할 수 있었죠."
▶ 악바리. 원래 하희라는 '악바리' 배우로 유명하다. 중간에 포기가 없다. 무슨 일이든 완벽히 해낸다. 비단
교생실습 뿐 아니다. 연기면 연기, 공부면 공부, 무엇이든 열심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그랬다. 밤을 새서 공부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시험기간에는 잠 안오는 약을 먹어가며 5일을 꼬박 샌 적도 있단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그때는 공부든 방송이든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답이라고 여겼죠. 그래서 시험기간에는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부모님 몰래 먹어가며 5일 밤도 샜어요. 특히 암기과목은 대본
외우듯 그냥 모조리 외웠어요. 성적표 나오는 날 친구들이 자기 성적표 보다 제 성적표를 먼저 보는데. 연기한다고 공부 못한다는 소린 듣기
싫었어요."
▶ 탈모. 대부분 하희라 하면 하이틴 영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라프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독 사극이
많다. 어려서 찍은 '토지'를 비롯해 '노다지', '먼동', '하늘아 하늘아', '찬란한 여명' 등 어림잡아 30여편이다. '전설의 고향'에
출연한 것 까지 합하면 40편이 넘는다. 그래도 하희라는 불평 불만 없이 최선을 다했다.
"결혼하고 '먼동'을 찍을 때였죠. 바다에 빠지는 장면인데. 물에 빠지면 뜨는 겁니다. 그때 제가 임신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10초만 견디라는 거예요. 하다 하다 안돼 돌을 품에 안고 빠졌죠. '하늘아 하늘아' 할 때는 혜경궁 홍씨로 나왔는데. 3kg짜리 트레머리가
너무 무거워 동전크기 만큼 머리가 빠진 적도 있어요. 오죽했으면 '찬란한 여명'을 찍은 다음 긴 머리를 싹둑 잘랐겠어요. 다시는 사극
안한다고요."
▶유산. 하희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결혼 후 '먼동' 촬영때 임신이 됐는다 피로에 피로가 겹쳐 유산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하희라는 이어 2차례 더 임신의 기쁨을 맛봤으나, 2차례 더 유산의 아픔도 겪었다. 그래서 결혼 6년 뒤 첫째 민서와
둘째 윤서를 가졌을 때는 아예 일을 하지 않았다.
"세번째 유산된 게 97년 '정 때문에' 때예요. 원래 전 겹치기 출연은 안하는데. 아는 분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죠. 드라마
중간에 또 다시 임신을 했고. 조심한다고 했지만 결국 과도한 스케줄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어요. 유산이 됐죠. 아무도 모르게 연출자에게만 유산
사실을 알렸고, 양해를 구해 2~3일씩 촬영을 뺐어요.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왜 아기를 안갖냐고 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 임신. 하희라는 일일극 '정때문에' 촬영을 끝내고 완전 휴식에 들어갔다. 쏟아지는 출연제의도 정중히 거절했다.
더이상 일에 욕심을 부리다간 또다시 유산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1999년 첫째아이 민서를 가졌다.
"연극 '넌센스'에 출연해달라는 러브콜이 끊이질 않았어요. 임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안된다고 거절했죠. 그래도 계속 해달라는
겁니다. 마음이 약한지라 더이상 거절하긴 그렇고. 그래서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무조건 올스톱 하겠다고 말했죠. 결국 조건이 받아들여져
연극무대에 올랐어요. 반응이 좋았죠. 지방 앵콜 공연을 돌았는데. 지방 공연 2군데를 남겨놓고 임신이 된거예요. 그래서 모든 걸
'스톱'(stop). 연출자와의 약속대로 민서를 갖자 마자 꼼짝 않고 집에만 있었어요. 또 다시 유산될 까봐 문 밖도 나가지 않았죠."
▶ 잉꼬부부. 하희라와 최수종. 소문난 잉꼬부부다. 오죽했으면 그들이 TV에 출연한 날이면 부부싸움이 잦아진다는
농담아닌 농담도 있다. 어떻게 만났을까. 하희라에 따르면 최수종과의 첫만남은 고3때. '젊음의 행진' 엠씨(MC)를 맡으면서였다. 이후 둘은
영화 '풀잎사랑', 너에게로 또다시',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등에 동반 출연했고,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다.
"일이 데이트였어요. 일주일 내내 봤으니까요. 라디오 DJ 하면서 매일 만나죠. 쇼프로 MC 하면서 또 만나죠. 영화 촬영장에서도 보죠.
고3때부터 거의 매일 본 것 같아요. 그렇게 자연스레 사랑이 싹튼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면서 어른스런 감정이 생겼고, 그 감정이 사랑으로 변해
지금까지 이어진거죠. 최수종씨요? 글쎄, 자기 말로는 '처음 본 순간 이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데요. (하하)"
▶ 이벤트. 최수종의 아내 사랑은 지독하다. 결혼한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느 신혼보다 뜨겁다. 하루에도
문자 메세지를 여러통 보내고, 일주일에 짧은 편지를 여러글 쓴다. 어디 그 뿐인가. 해마다 기념일이라는 기념일은 빼놓지 않고 챙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이벤트의 황제'. 하지만 하희라는 최수종의 이벤트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고 털어 놓는다.
"사실 제가 결혼 프로포즈를 못받았어요. 드라마 '억새바람'을 촬영한다고 외국에 2달간 나가있을 때였죠. 마침 그때 신문에 '열애설'
기사가 터진거예요. 최수종씨가 전화왔더군요. '우리 사귄다는 기사 나왔어. 서울오면 결혼발표 해야 할 것 같아'. 그게 프로포즈였어요. 전 그냥
'네'라고 답했죠. 근데 그게 미안했나봐요. 제대로 된 프로포즈 한번 못했다는거. 그래서 매년 결혼 기념일 마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날 기자는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하희라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것. 기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하지만 하희라는 괜찮다는
말을 연신했다. 순간 옆에 있던 매니저가 거들었다. "원래 하희라씨가 잘 기다리세요. 촬영장에서도 그래요. 1~2시간 미리 나가 대본 연습을
하세요. 남을 기다리는 건 괜찮아도 남을 기다리게 하는 건 질색인 분이죠."
하희라는 그 이유를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비유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빨리 올라간 사람과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간 사람의 차이라고
말이다. "아역 탤런트로 데뷔하면서 참 많은 걸 지켜봤어요. 그래서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잘 알죠. 제가 1~2시간 지각하면 다른
사람들은 2~3시간 기다려야 해요. 그들이 무슨 잘못 있어요. 지각한 건 저잖아요. 제가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모두가 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거죠."
하희라 앨범토크 2번째 이야기, '드라마와 CF에 얽힌 에피소드'편은 10월 2째주에 계속될 예정이다.
<사진=스포츠서울DB. 설명=어린이 합창단 시절부터 중학생이 될 때
까지(2번째 사진), 대학시절 모습. 동국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하희라는 4학년때 교생실습을 나갔다.(3번째 사진),'먼동'과 '하늘아
하늘아', '찬란한 여명' 등 수많은 사극에 출연한 하희라.(4번째 사진), 최수종과의 만남, 약혼, 결혼까지 (5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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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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