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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호점>│‘커피프린스 테이스트’의 탄생

윤은혜가 출연한 MBC <궁>, KBS <포도밭 그 사나이>, 그리고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은 공통점이 있다. 세 작품은 가난한 여자가 주인공이고, 특정 공간이 중심이 되며, 거기서 남녀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커피프린스 1호점>은 윤은혜의 전작들과 다르다. <궁>의 채경은 황태자비가 되는 대신 궁의 ‘법도’에 따라야 했고, <포도밭 그 사나이>의 지현은 포도밭을 물려받는 대신 사치스러운 여성에서 검소한 농촌처녀로 변했다. 하지만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은찬(윤은혜)은 카페 커피프린스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가짜이긴 하지만 은찬은 한결(공유)과 동성애 관계였고, 애교만점의 하림(김동욱)과 일본인 선기(김재욱), 힘은 세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민엽(이언)등 보통 한국 남자와는 다른 남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궁과 포도밭은 여성에게 원하는 것을 주는 대신 그들이 그곳의 룰에 적응하고 변화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커피프린스는 은찬에게 무엇을 해주지도, 은찬을 바꾸지도 않는다. 은찬은 한결과 결혼해도 한결의 재력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고민도 사랑도, 예쁜 부분만 남겨놓은 <커피프린스 1호점>

이것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 발견한 여성의 또 다른 욕망이다.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성의 사랑이 등장하지만, <커피프린스 1호점>은 그것을 통해 여성의 현실의 고민을 해결하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대신, 현실에서 벗어나 그들이 하고 싶고, 보고 싶은 모든 것을 실행하는 판타지의 공간을 만들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현실의 고민들을 잠시 유보하거나, 그것들이 가진 무게를 제거한다. 한결과 하림은 부모가 원하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기는 커피프린스 아니면 갈 곳 없는 이방인이다. 홍사장(김창완)은 사회에서 도태된 중년이고, 민엽은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다. 또 은찬의 가난은 고통스럽게 묘사되기 보다 인형에 눈 붙이기나 밤 까기처럼 귀엽게 묘사될 수 있는 정도로 묘사되고, 할머니의 병은 필요한 순간에만 발병한다. 현실에 대한 고민은 미뤄지고, 비극의 무게는 제거된다. 그래서 <커피프린스 1호점>은 동성애와 외국인, 동거 등을 거리낌 없이 다룰 수 있다. 마치 커피프린스의 인테리어처럼 현실의 예쁘고 깨끗한 부분만 남겨놓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이 낯선 존재들은 거부감보다 동경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현실의 고민이란 커피프린스의 인테리어처럼 깔끔하고, 쾌적하며, 화사하다. 그것은 지금 카페에서 현실의 고민을 잠시 잊으려 하는 지금의 어떤 여성들의 정서와 공명한다. 커피프린스의 직원들 중 가장 여성스러운 남자 하림이 남녀의 육체관계에 대해 가장 있는 대로 말하는 것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관계를 ‘그거’라고 돌려 말하는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하림의 성적 발언들은 마초의 성희롱이 아니라 여성들이 웃고 떠들면서 들을 수 있는 수다이다. 그들은 현실을 계속 현실에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더럽고 무거운 현실의 세계에 편입되는 것은 꺼려지고, 잠시나마 현실을 유보하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풀어내길 바란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채 연애만 할 수 있었던 그 때

 
한결이 술을 마시지 않고,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은 어른의 무거운 세계에 다가서고 싶지 않은 그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스물아홉’이 된 그는 곧 일과 사랑과 결혼과 아이가 있는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는 장난감을 만지며 그 세계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연애는 이중적인 속성을 가진다. 취업과 결혼, 그리고 육아의 문제를 유보해둔 그들은 누구와도 연애할 수 있다. A군도 좋고 가군도 좋다. 하지만 연애가 깊어질수록 관계는 진전되고, 지켜야할 의무도 생긴다. 은찬과 한결의 가짜 동성애는 동성애에 대한 여성의 호기심을 부담 없이 채워주는 욕망의 대상이지만, 그들에게 연애가 주는 현실의 무게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실의 부담감을 이겨내고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가. 예스라고 말하는 순간, 부담 없는 자유연애의 세계는 끝난다.

한결과 은찬, 유주(채정안)와 한성(이선균)이 각각 연인이 되는 것은 그들이 지는 현실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은찬이 커피프린스에 선만으로 이뤄진 만화를 그리는 반면 유주가 다채로운 색으로 그림을 그리듯, 두 커플의 연애는 다르다. 은찬과 한결은 처음으로 깊이 있는 사랑을 하지만, 유주와 한성은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 은찬과 한결이 사랑을 하느냐마느냐로 고민하는 사이 유주와 한성은 과연 결혼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나이 들수록 순수하게 사랑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결혼은 더욱 어렵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까. 그것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은찬의 직업인 바리스타의 세계를 거의 묘사하지 않을 정도로 직업적인 디테일이 떨어지고,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난무하면서도 청춘 드라마, 혹은 성장 드라마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유지한 원동력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유보한 채 어른과 아이 어느 세계에도 발을 들이지 않고 연애만 할 수 있었던 그 때를 한 없이 아름답게 그린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면 대부분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예쁘게, 부담감 없이, 그리고 낯선 존재들에 대한 동경

그들에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고통들은 아이 같은 어른들이 ‘성장하기 전’에 겪는 성장통이기도 하다. 유주와 한성은 은찬과 한결에 대해 “신선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기는 싫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현재를 인정하고, 한결은 은찬과 사랑을 시작하면서 “터치받기 싫어서 좋았던” 장난감 디자인 대신 “남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할머니의 사업을 함께 한다. 그래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현실의 세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신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현실들에 대한 욕망과 그것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신기할 정도로 충돌 없이 공존하는 <커피프린스 1호점>은 바로 지금 한국 여성들의 어떤 욕망, 혹은 그 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건 꽃미남이나 동성애, 혹은 미식문화 같은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함께 즐기는 여성들의 어떤 성향이다. 깨끗하게, 예쁘게, 부담감 없이, 그리고 낯선 존재들에 대한 동경.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던 한결의 말처럼, <커피프린스 1호점>은 은새처럼 다가올 그 때를 동경하는 여고생과 은찬처럼 지금 그 시간을 지내고 있는 여성, 그리고 더 이상 ‘여자’로 인정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은찬의 어머니(박원숙)까지 공통된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떤 여성들을 아우를 수 있는 ‘니즈’를 짚어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예뻤으며, 부담 없었던 그 순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커피프린스 1호점>이 제시하는 일관된 어떤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트렌디 드라마의 새 트렌드를 정의하는 동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하나의 일관된 감수성으로 표현하지 못한 어떤 여성들의 취향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그것은 ‘커피프린스 테이스트’의 탄생일지도 모른다. 직장은 있지만 미래는 아직 불투명해 보이고, 늦춰지는 결혼 적령기 속에서 자유연애를 만끽하고 싶지만 결혼과 육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지금 이 시대의 여성들이 마음껏 자신의 감춰두었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어떤 이상향. 그 곳의 첫 번째 커피를 <커피프린스 1호점>이 만들었다.

(글) 강명석 ( 기획위원)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