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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커피프린스 1호점>│해변의 고은찬

어두운 바닷가.

소년, 이라고 거짓말 치는 소녀는 등을 돌린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어른, 처럼 보이는 아이는 그 소녀의 등 뒤에 나란히 누워있다.

손바닥 두께도 안 될 거리를 사이에 두고 ‘어른’은 절대 소망해서는 안 될 금지의 ‘소년’을 탐한다. 와락 끌어안고 체온을 나눠 버리면 좋으련만 의심 많은 입술은 끊임없이 망설이고, 죄의식으로 가득 찬 손은 끝내 소년의 속살에 닺지 못한다. 결국 이를 꽉 깨물고 “넌 이제 아웃이야” 라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안심한다. 그래 난 어른이니까. 잘했어 최한결. 어른이라면 사회의 룰에 따라 살아야 해.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휴전은 금방 깨지고 만다. 결국 어른은 아이였고, 소년은 소녀였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은 애당초 그런 이상적인 성숙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으므로.

이제는 몸으로 부딪혀야 할 시간, 전쟁 같은 사랑의 시작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눈부신 미장센으로 담아낸 ‘17부작 <뽀뽀뽀>’다. 정말 유치하고 눈꼴시럽지만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인도하는 ‘왕자 커피숍’의 세계에는 어른이 없다. 그리고 당연히 성인의 연애도 없다. 애들처럼 좋아하고 애들처럼 질투하고 애들처럼 ‘쪽쪽’대고 애들처럼 힘차게 껴안는다. 처음엔 어른처럼 보이던 유주와 한성의 사랑 역시 동전오락기 앞에서 화해를 시도하고 유치한 숨바꼭질 끝에 진심에 당도한다. 민엽의 일편단심도, 선기의 안타까운 로맨스도 어른들이 보기에는 ‘애들이나 할 짓’이다. 자칭 ‘선수’인 하림도 알고 보면 바보소년처럼 여우의 덫에 걸리고, 얼핏 ‘뽀미 언니’ 같은 홍사장도, 한결의 아버지도 옛 여자의 기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철딱서니 없는, 나이든 소년들이다.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왜 나의 연애는 늘 제자리일까. 왜 계속 고등학생이나 할 법한 살가운 연애패턴을 고집하고, 대학생들이나 나눌법한 거친 에너지를 기대하는 걸까. 그 고민은 어쩌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 연애의 풍경 또한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나이쯤 되면 표현을 줄이는 것이 세련된 것이고, 이 나이쯤 되면 집착하지 않고, 이 나이쯤 되면 각자의 삶 속으로 너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 하지만 지나간 연애들을 돌이켜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더 사랑하면 아이가 되고, 내가 덜 사랑하면 어른인 척 변명을 했다.

아이들은 무지하다. 그래서 잔인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너그럽고 인자한 어른의 연애가 아니라 사악하고 이기적인 아이들의 연애담이다. 등장인물들은 성장대신 퇴행을 감행함으로서 기존 드라마나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장에 대한 강박과 가치추구적 삶으로부터 가볍게 탈출한다. 물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아이들의 직설적이라 속 시원한 (혹은 닭살스러운) 유아적인 사랑법은 엄밀히 말하면 퇴행이 아니라 선택적인 체류에 가깝다. “그게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 딴 생각을 못하겠으니까” 선기의 입을 빈 이 대사처럼.

미성숙 연애세포 소유자에게 선사한 가장 큰 위로

결국 <커피프린스 1호점>은 유치한 연애를 권하는 드라마다. 사랑이 사람을 애처럼 만드는 퇴행 없이는 그 본질에 닿지 못한다는 것을 기분 좋게 인정한다. 그리고 연애라는 이 구제불능의 상태 혹은 놀이가 가진 진짜 재미를 펼쳐낸다. 동시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우리는 쿨하게 서로를 이해 한다는 ‘어른들의 사랑’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 ‘성숙’이라는 말로 포장된 비겁하고 허약한 사랑의 실체를 까발린다.

사실, 그와 함께라면 그녀와 함께라면 깜깜한 고래 뱃속이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두우면 촛불을 켜고, 혹 고래가 토해낸다면 다시 놀이터로 나가 놀면 그만이다. 단지 니가 내 옆에 있고 내가 있다면. 까짓 거,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거다. 내일, 그건 잘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말고 오늘 열심히 사랑하자는 거다. 그렇게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고은찬처럼 밥을 많이 먹자는 거다. 그것이 <커피프린스 1호점>이 여전히 미성숙한 연애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 같은 인간들에게 선사한 가장 큰 위로이자 선물이었다. ‘입구의 돌’을 닫아버린 ‘해변의 카프카’처럼, 성숙한 어른의 사랑으로 가는 그 길에 놓인 돌을 나는 또 닫아버리고 돌아선다. 돌은 닫힌 것이 아니라 내가 닫은 거다.

(글) 백은하 una@t-fac.com ( <매거진t> 편집장)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