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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커피프린스 1호점>│아쉽지만...그걸로 됐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하 커프)을 떠올리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흐뭇한 마음이 들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으니 못마땅한 것만 떠오른다. 난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남이 잘 되니까 배가 아파서? 어, 그건 아닌데... 그럼 뭐야?

커프에 못마땅한 것 1 : 이건 너무 판타지 아니에요?

커프에는 순정만화와 한국드라마의 온갖 설정들이 몽땅 잘 들어 앉아 있다. 남장여자, 캔디 같은 여자, 돈 많지만 성격 까칠한 남자, 출생의 비밀, 거기에 개성 넘치는 꽃미남들까지. 이런 종합선물세트는 사실 좀 구리지 않나? 그런데 커프는 구리지가 않았단 말야. 왜? 쿨했거든. 설정을 모아 놓으면 구린데 그걸 쿨하게 풀어 가니까 구리지가 않더라는 얘기. 그럼 된 거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전 아니라고 말하겠어요. 왜냐면, 커프는 쿨하기는 한데 그게 쿨한 건지 아니면 쿨한 척 하려고 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나(혹은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 건지 헷갈릴 만큼 너무 천연덕스럽게 심한 판타지였다. 고은찬이 여자인 걸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 어쩌면 그리도 길단 말인가? 소녀장사 출신(?) 윤은혜 덕분에 4회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감정 이입이 안 되었다. 그리고 커프에 나오는 인물들은 왜 그렇게 다들 착한 거야?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착한 사람들 뿐이냐구. 이렇게 악역이 없는 드라마는 또 보다보다 처음이다. 이렇게 세상을 너무 착하게만 보는 시선, 옳지 않아. “뭐,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신다면, 저도 더 소리 높여 떠들어댈 마음은 없어요. 재밌었던 건 사실이니까. 나도 한동안 월요일 화요일 본방 사수하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그 건 옳지 않아.

커프에 못마땅한 것 2 : 왜 머뭇거리는 거죠? 왜 더 나가지는 않는 거냐구요?

물론 커프는 20세기 한국 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감성을 가졌다. 누군가는 그걸 ‘21세기형 드라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도 거기엔 동의. 하지만 너무 얌전했다. 그래서 심심했다. 은찬이가 여자라는 걸 한결이가 아는 그 시점부터 내 관심은 “둘이 언제 잘까?”였다.(나만 그랬나?) 그런데 세상에 16회에 그것도 마지막 씬에서 그것도 창에 불 꺼지는 걸로. 이건 아니지. 멀리 갈 것도 없다. 4년 전에 ‘옥탑방 고양이’에서도 그렇게 쿨하게 잘 수 있었는데 말이다. 쿨하게 시작했으면 쿨하게 가길 바랐는데 좀 실망이다. 그나마 은찬이가 먼저 대시하는 걸로 처리한 건 다행이다. 휴우. 정말 조마조마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킨다고 맹세할까봐서.은찬이와 한결이는 그렇다 치고 은찬이 엄마와 구씨는 또 그게 뭐냐구? 그쪽은 끝까지 너무 우아하게 가시더군. 두 분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특히 은찬이 엄마, 너무 배려하면서 사시는 거 건강에도 해로워요. 홍사장님 말씀처럼 이제 독립해서 사셔야 한다구요.

커프에 못마땅한 것 3 : 은찬이는 꼭 유학을 가야 했나요?

솔직히 난 16회가 제일 못마땅하다. 왜 은찬이가 유학을 가야 했을까? 그냥 한국에서 커프의 종업원으로 살면서 한결이와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 수는 없었냔 말이지. 이 대목에서 내가 배배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아주 살짝 들기도 한다. 은찬이의 유학을 신분상승을 위한 수순 밟기로 보기 때문이다. 재벌 남자(재벌까지는 아닌가?)와 결혼하려면 고졸로는 안 되는 건가? 은찬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구? 에이 그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순진하게 받아들이기에 은찬이의 유학은 구리다. 내가 배배 꼬인 인간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게다.

커프에 못마땅한 것 4 : 여자라서 다행인 건 아쉬워요.

어차피 여장남자 설정인 드라마의 한계일 수 있지만 아쉽다. 남자 은찬을 사랑한 한결이 “니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제 상관 안 해”라는 명대사를 날려 주었으면 된 거 아니냐고는 하지 말라. 그건 너무 서글픈 얘기다. 그렇다고 은찬을 트랜스젠더로 만들어 달라는 과격한 주문을 하는 건 아니다. 기왕에 동성애 코드를 들여 놓았으면 흉내만 내지 말고 좀 더 다뤄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주변에 게이 혹은 레즈비언 커플 하나쯤은 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거다.

하지만 난 커프를 좋아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커프는 다른 드라마 보다 구리지 않았다. 커프는 뜨거운 여름 청량음료 같은 드라마였다. 내가 기억하는 명대사만도 여럿이 있고 무엇보다 이윤정 감독의 연출력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사춘기 시절을 흥분시켰던 ‘올훼스의 창’의 유리우스와 맞먹는 고은찬이란 캐릭터와 무슨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주변 인물들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난 커프를 닥본사 했었다. 아쉽지만 그 걸로 됐다.

(글) 김조광수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