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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커피프린스 1호점>│우리는 무슨 관계가 되고 싶은 것일까?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가회동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곧 방영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스틸 컷을 들여다보며 윤은혜의 꽃미남 간지에 감탄하고 있을 때,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낯선 동네의 지리를 한참 설명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왜 오겠다는 거고, 나는 왜 이걸 설명하고 있을까? 우리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다. 친구라고 하기도 어정쩡하다. 그냥 우리는, 오래된 사이였다. 한때는 뜨거웠고 한때는 차가웠고 이제는 딱 체온에 맞춰진 관계라고나 할까. 갑자기 애인처럼 데리러 오겠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면 되지만, 그래도 그 날은 왠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별 얘기가 없더니,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야 불쑥 본론을 꺼낸다. 해외연수를 가게 됐는데, 그 동안 집에 있는 화분을 돌봐달라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 와서, 물만 주고 가면 돼." 그리고 그는 내 손에, 열쇠 하나를 쥐어주었다. 오래 전에 본 적이 있는 익숙한 열쇠고리다.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어, 나는 묵묵히 그 열쇠를 받아 가지고 왔다.

반짝반짝 너무 예뻤던 은찬이와 한결이

그는 월요일에 떠났고, 자연히 내가 그 집에 가는 날도 월요일이 됐다. 물만 주고 나오기가 뭣해서 텔레비전을 켜면 <커피프린스 1호점>을 하고 있었고, 나는 주인 없는 집에서 주인 없는 베개를 껴안고, 그 드라마를 끝까지 본 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월요일은 <커피프린스 1호점>을 하는 날, 그리고 물을 주러 가는 날. 이 습관 덕분에 그 집의 화초들은 물을 굶지 않았던 셈이다. 아주 오래 뒤에도 이 드라마가 생각난다면, 그건 아마 남의 집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을 봤던 그 독특한 공간적 기억 때문일 거다.

사실 처음엔, 윤은혜가 무작정 좋았다. 예쁜 탤런트가 털털한 척을 하려면 오버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야 할 텐데, 이 사람은 있는 그대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드라마의 내용이고 뭐고, 야 윤은혜 또 나오는구나, 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붙어있게 됐는데, 그러다 깜빡, 드라마 속으로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사실 내 주변엔,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은찬과 최한결의 러브 모드가 따끈따끈해지면서, 아예 아침 인사로 커프 얘기를 나누는 일도 많아졌다. 사실은 나도 이 드라마의 팬이었지만, 왠지 남들처럼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빈집에서 드라마를 본다는 게, 역시 약간은 비밀스럽게 느껴졌던 탓일까. 그게 드라마를 대하는 태도로 옮아간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수다가 절정에 달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고은찬이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최한결이 갈등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숨을 죽이고 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언젠간 말하겠지, 그럼 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내 눈물바람이던 고은찬은 다시 예쁘게 웃기 시작했고, 네가 여자라서 너무 좋다며, 최한결은 그 시원스런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가 훨씬 더 사랑해, 끊어!" 라고 고함치는 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내가 아는 동생들인 것처럼 기특하고 좋아 보였다.

이 드라마와 함께 보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이 연인들은, 그들이 통과했던 그 독특한 기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고은찬이 여자라서 너무 좋기 전에, 남자든 외계인이든 상관없기 전에, 어떻게든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했던 시절, “우리 의형제 맺자” “형 동생 사이에 이 정돈 할 수 있지 않나?” 이러면서, 힘들고 안타깝고 두근거리기도 했던 시절을, 그들은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을까? 내 눈엔 분명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아무리 행복해도 그것은 불안한 행복이었고, 불안은, 언젠가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 테니까.

결국 우리는, 안전해지기 위해 확실한 관계를 맺는 것일까. 애인이 아니라면 의형제라는 이름이라도 붙여서, 이 불안한 감정들을 묶어두고 싶은 것일까. 안전해고 행복해진, 드라마 속의 두 사람, 아니 네 사람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드라마가 종방을 앞둔 지금, 그 집의 화분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열쇠는 주인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고, 내가 그 공간을 차지했던 날들도 다시 과거가 되겠지. 나는 이 드라마와 함께 보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안전하지도 않았던 시절, ‘우리는 무슨 관계가 되고 싶었던 걸까’ 자문했던 시절로 기억하게 될 것만 같다.

(글) 안현민 ( MBC FM4U <이주연의 영화음악> 작가)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