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대부분 '제2의' 누구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유인 즉, 마치 아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유리는 달랐다.
"제2의 하리수요? 듣기 좋아요. 하리수씨가 있었기에 제가 좀 더 거부감없이
활동할 수 있는거 아닐까요. 그는 일종의 선구자예요. 온갖 편견과 싸워 이겨냈잖아요.
물론 하리수씨는 제가 좋아하는 언니죠. 10년전부터 알던 사이예요. "
오는 9일 MBC 주말드라마 '떨리는 가슴'(극본 정형수,연출 고동선)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모델출신 트랜스젠더 박유리. 그녀는 '제2의 하리수'란 타이틀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대신 또 다른 트랜스젠더 후배는 '제2의 박유리'로 불려 졌으면 좋겠어요.
하리수씨가 제게 길을 열어준 것처럼, 저 또한 다른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그만큼 열심히 할거예요. 하리수씨가 만들어 놓은 길, 제가 쓸고 닦아야죠. 아직
우리사회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요. 모두의 이해를 바라는 건아니지만,
그래도…. "
순간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지난간 고통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까. 지난 7일 광화문에서
만난 박유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치원.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엄마 아빠 놀이를 할때면 언제나 내가 엄마 역할을 맡았다. 그러던 어느날 파마를
한 여자애가 나타났다. 한데 이 남자친구 그때부터 그 여자애랑만 놀더라. 물론 엄마
역할도 그 여자애가 하고. 하긴 어린눈에도 파마머리 꼬마애가 진짜 여자로 보였겠지.
아무튼 너무 화가났다.
며칠동안 분해서 잠도 못잤다. 아마 질투였나 보다. 그래, 그때부터 난 여자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줄을 서는 데 여자줄에 섰다.한데 선생님이 다시 남자줄에
다시 세우더라. 내 자리는 여기(남자줄)가 아닌데. 속으로 생각했다. 하루는 명절날
이었다. 친척 여동생 한복이 그렇게 예뻐 보이더라. 난 남자 한복이 싫었다. 치마에
저고리 입혀 달라고 얼마나 울고 불고 그랬는지. 초등학교 시절 가장 큰 즐거움은
일요일 11시였다. 내가 9시 예배를 보고 부모님은 11시 예배를 봤다. 11시부터 1시까지.
그 2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엄마 치마 입고, 엄마 화장품 몰래 바르고.
◆중고등학교. 초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레이스 달린 양말을 신고 다녔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려면 그래선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조용히
티 안나게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쁘장한 외모에 여성스런 성격 때문인지 친구들이
날 되게 좋아했다. 정말 인기가 좋았다. 중학교 시절 내내 반장을 했으니깐.
물론 본성이 어디갈까. 체육시간에 옷 갈아 입을때 몰래 구석에 숨어서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볼일 볼때도 꼭 좌변기에 앉아서 봤다. 그게 더 편했으니깐. 싸움? 지금껏
태어나서 주먹 한번 휘두른 적 없다.
◆대학시절. 원래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다.
할아버지는 아주 엄한 교감 선생님이었고. 집안에 교육자가 많다. 수술은 어렸을
때 부터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참았다. 그냥 이렇게 숨기고 살면 되지 않을까
혼자서 감정을 삭히고 또 삭혔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 대학교 1학년때 였나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생각했다.
인생 정말 짧구나. 이렇게 짧은 인생, 단 한번이라도 행복하게 나를 위해 살다
죽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진짜 여자가 되기로.
◆수술. 수술비는 대략 2천만원 정도 필요했다.
아버지께 손을 벌릴 수 없는 입장. 일단 무작정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미용학원을
다녔고 밤에는 이태원 업소에서 일했다. 그렇게 밤낮 일하며 돈을 모았고 99년 1월
일본에서 수술을 했다. 여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두번째 수술은 태국에서 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에게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번째 수술이 나를 위한 수술이었다면 두번째 수술은 남자친구를 위한 수술이었다.
이건 여담인데, 그때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두번째 수술할 당시
남자 친구가 곁에 있었는데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더라.
◆여자. 누구 말처럼 여자라서 참 행복하다.
얼마전 중학교 동창회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정말 예뻐해 주더라. 다들 하는 말이
걸작이다. 수술할 줄 알았다나. 지금의 내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다더라.
어울린다고.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정말 좋다. 그리고 남자를 사랑할 수
있어서 좋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하던 후배가 있었다.
미술반 후배였는데, 수술한 다음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같이 노래방을 갔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키스를 해오는 거 아닌가. 달콤했다.
◆결혼. 2번이나 프로포즈를 받았다.
정말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말이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자 역시 그랬다. 가까운 일본에서 살아도 되고, 아니면 먼 미국에서 살아도 되고.
아이 문제를 걱정했더니 남자가 입양을 하잖다.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좋자고 그 사람 부모님에게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난 혼자 살거다.
사랑의 아픔을 견딘 후에 난 독신주의자가 됐다.
◆시선. 왜곡된 시선은 여전히 날 힘들게 한다. 난 지금껏 단 한번도 남자였던
적이 없었다. 아니 남자로 사는게 더 힘들었다. 난 처음부터 여자였다. 어릴적 내
머리속에 그려진 모습은 언제나 여자였는데, 세상은 남자로 살기를 강요했다.
난 정신에 맞춰 육체를 바꿨을 뿐이다. 육체에 맞춰 정신을 바꾸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박유리는 현재 모델로 활동중이다. 173cm나 되는 쭉뻗은 키. 35-24-35로 이어지는
완벽한 곡선. 덕분에 박유리는 패션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모델이다. 하지만 아직
그를 보는 시선은 평범하진 않다. 처음에는 대부분 여자로 대해주다 결국은 색안경을
쓰고 만다.
박유리의 바람은 되게 소박하다. 그냥 여성으로 봐 달라는 것. 여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사람의
정신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우린애초에 남자의 몸에 여자의 정신을 갖고
태어났어요. 지금은 그 정신을 따라 몸을 바꾼 것 뿐이고요. 절대 정신이상자가 아니예요"
인생의 모든 굴곡을 넘어서 당당한 여자로 다시 태어난 박유리. 그에게 격려의
메세지를 남기는 것은 어떨까. 그녀만의 작은 집은 이곳(www.cyworld.com/myloveyuri)
이다.
[2005.4.8 (금) 스포츠서울 임근호 기자]
2005-04-08(1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