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13일, 이기영등 북쪽의
문인들은 서울에 내려와 전국문학자대회 개최를 결정한 다음 다시 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 이별은 우리 민족 고난사
그 자체로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조국의 광복과 함께 민족문학인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총회를 연지 실로 6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남북의 문인들은
반쪽의 노래만을 불러온 채 분단과 냉전이 데올로기의 숨막히는 벽을
넘어보고자 했다.
박봉우, 신동엽, 고은,
김지하, 황석영 등이 불러온 문학의 노래는 통일에 대한 민중의 절규를
대신한 것이며 우리의 상처는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북의
‘조선작가동맹’에게 ‘남북 작가 회담’개최를 전격적으로 제안하며
판문점으로 향하다 26명의 문인들이 전원 당국에 연행된 발길은 드디어
2005년 7월 20일 평양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엄숙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60년만에 큰 첫걸음을 뗀 것이다.
남쪽 문인 대표단 98명을 태우기 위한
북쪽의 고려항공이 인천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동안 ‘민족문학작가회의’염무웅
이사장은 하나된 조국을 꿈꾸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뒤로 ‘금강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 바라보자’라고 씌인 현수막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를 태운 고려항공 비행기는 한시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고 소설가 황석영은 공항에서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60년을 기다려온 남북 ‘민족작가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성과는 남북
문인이 ‘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고 이에따라 ‘통일문학상’제정과
‘통일문학’지를 발간하기로 합의하고 공식발표한 점이다.
비록 첫만남이고 남북 문인이 통일을
향해 함께 걷는 첫 발일지라도 우리 민족의 염원이며 분단을 극복해야하는
시대적 책무를 부여받은 우리로서는 실로 감격적인 걸음마였다.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 최대 과제가 광복이었다면 분단시대인 우리민족 최대 과제는
통일인 것이다.
MBC는 방송사로서는 단독으로 이 대회를
취재 제작하기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합의하였고 본사 통일방송협력단의
주관아래 5명의 특별 취재제작단 (이도윤, 정용준, 손재일, 고재규,
송미현)을 구성하였으며 이 뜻깊은 ‘민족작가대회’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이번 대회의 극적인 절정은 통일문학의
새벽을 여는 백두산 천지의 해맞이 대회였다. 우리 민족의 열망을 하늘도 알고 있다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백두산은 가슴을 열어보였으며 우리는 천지에 쓴
통일의 시를 감동적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민족의 해는 이렇게 떠오른다,
김남주의 시처럼 ‘조국은 하나다’라고. 이 프로그램은 문학 동행취재기로써
분단문학의 극복을 위한 문학인들의 줄기찬 노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