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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충성과 반역
기 획 : 김환균 연
출 : 이근행 작 가 : 노경희 조연출 : 이지은
1. 프로그램명 : 제4부 <충성과 반역>
2. 방송일시 : 8월 14일 (일) 밤 11시 30분(55분)
3. 기획의도
한때는 ‘살아있는 신’이었던 일본의 천황.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이후 스스로 평범한 ‘인간’임을 자처했다. 그리고 ‘일본국과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새롭게 정의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듯 보인다. 그러나 소위 일본의 ‘상징천황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면 일본사회의 심층에 흐르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1969년 히로히토의 신년참하 (신년 초 천황에게 수만 명의 일본인이
몰려가 하례를 하는 것) 현장에서 히로히토 천황에게 파친코 탄환을
쏜 오쿠자키 겐조 사건. 1970년 “천황의 국가를 위해 자위대가
존재해야한다”며 충격적 할복자살을 결행한 천재 작가 미시마 유키오
사건. 1974년 전쟁이 끝난 후 근 30년 만에 임무 해제 명령을
받고 필리핀의 루방섬에서 극적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오 사건.
희극 아니면 비극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
사례는 상징 천황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천황에게 충성하는 자는 영웅으로
만들고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반역자로 몰아 응징해 버리는 사회적
메카니즘이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당사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취재진은 때론 거부당하기도 하고, 때론 조심스런 수락 속에서 그들을
만난다.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의 이면에서
‘천황’은 일본사회를 어느 한쪽으로 마구 몰아가는 ‘비이성의 원형질’과도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일본인들은 여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4. 이 프로그램이 밝히는 새로운 사실
- 일본 유일(唯一)의 천황을 테러한 오쿠자키 겐조 - 천재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충격적 할복 - 29년 만에 밀림에서 돌아온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오 - 히로히토와 종전조서의 숨겨진 진실 - 아키히토 천황의 사이판 방문 이면에서 벌어진 일
5. 주요 내용
- 일본 유일(唯一)의 천황을 테러한 오쿠자키 겐조
1969년 1월 2일 히로히토 천황의 신년참하 (신년 초 일본 국민들이
황거에 찾아가 천황에게 하례를 하는 것) 현장에서 새총으로 천황을
향해 파친코 탄환을 쏜 남자가 체포되었다. 그의 이름은 오쿠자키
겐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기니에 참전했던 그는 인육까지 먹을 정도의
극한 상황에서 결사항전 명령에 내몰리는 생지옥을 경험한다. 그리고
종전 후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천황을 향해 파친코
탄환을 쏜 것이다. 이후 그는 천황을 저격한 혐의로 1년 9개월을 복역한다.
그러나 취재진이 만난 그는 테러리스트의 모습이 아닌 천황의
전쟁이 낳은 비극적 인물이었으며, 천황에게 반역한 자로서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었다.
- 천재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충격적 할복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그의
작품은 미와 지성이 통합된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러던 그가
1970년 11월 25일 자위대 동부지역 사령부에 방패회의 4인과 함께 난입했다.
그는 발코니에서 1000여명의 자위대원들을 앞에 놓고 일본과 천황을
위한 궐기를 요구하며 천황제와 무사도에의 회귀를 외치며 할복자살했다.
미시마 유키오와 자위대, 그리고 당시 방위청 장관 나카소네 마쓰히로.
이들 사이의 커넥션을 통해 오늘날 일본 사회의 네오 내셔널리즘을 읽는다.
- 29년 만에 밀림에서 돌아온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오
1974년 3월, 일본 열도는 영웅을 만들었다. 그 주인공은 일본의 패전
후 29년 동안 혼자만의 전쟁을 계속해온 육군 소위 오노다 히로오. 오노다는
일본의 패전을 알면서도 필리핀 루방 섬에서 숨어 지냈으며 1970년부터
대대적인 ‘오노다 구출작전’이 시작된 지 4년 후 날이 선 군도를 든
채 철저한 군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은신
생활의 이유를 29년간 저지른 도둑질, 원주민 살해 등에 대한 처벌의
두려움, 명령 없이는 행동할 수 없다는 군인정신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정작 오노다 본인은 그 이유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으며 전쟁
당시 상관이었던 ‘다니구치’의 명령 해제서를 귀환의 조건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유를 막론하고 오노다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천황의 충실한 ‘마지막 황군’으로 일본인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 히로히토와 종전조서의 숨겨진 진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문이 라디오를
통해 일본과 당시 일본의 식민지 전역에 방송되었다. 그러나 천황의
‘옥음(玉音)방송’이라고 부르는 항복 선언문의 공식 명칭은 ‘패전조서’가
아닌 ‘종전조서’이며, 그 어디에도 ‘항복’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오히려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종전이라는
성단을 내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나아가 원폭 등을 거론하며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은 이
‘종전조서’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제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즉 천황은 전쟁을 시작한 전쟁 범죄자가 아닌 전쟁을 종결시킨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신의 목소리’로 들렸다는 천황의
옥음방송.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들어본다.
- 아키히토 천황의 사이판 방문 이면에서 벌어진 일
태평양 전쟁 후 최초로 해외 위령 방문에 나선 아키히토 천황이 선택한
지역은 사이판 섬이었다. 사이판 섬은 2차 대전 당시 옥쇄로 유명한
곳으로 군과 민간인을 포함해 약 5만 5천여 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그 옥쇄 명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천황과 군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령 방문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감사 일색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의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 현장을 국내 미디어로서는 단독으로 취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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