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굉일우(八紘一宇)란 무엇인가
‘천황’(天皇)이라는 말은 ‘하늘의 황제’라는 뜻으로, 일본의 건국 신화에서 비롯한 말이다. 일본의
신화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 ‘천손(天孫)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한반도 고대국가 건국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 신화 속의
진무천황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일본의 천황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사랑, 박애가 아니라 전쟁과 살육을 일삼는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었을까?
「천황의 나라 일본」 3부 ‘신을 만든 사람들’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1853년 미국 페리(Matthew Perry) 제독이 이끄는 군함 4척이 우라가(浦賀)만에 나타나 개항과 통상을 강요했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막강 한 힘에 버틸 수 없었고 식민지가 되느냐 개항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인들은 낡은 막부로서는 더 이상 일본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야 했다. 선택된 것은 교토(京都)의 농막에
머물고 있던 제사장 ‘천황’이었다.
일본에 개항을 요구했던 페리 제독 ▶
교토에서 도쿄로 천황을 이주시키고, 이토 히로부미 등은 천황에 품위와 함께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신격화(神格化)작업에 착수한다. 천황의 핏줄은 신화 속의 인물일 뿐인 초대 진무천황(神武天皇)이 기원전 660년 천황의 위에 오른 이후
2,600여 년 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고 한 핏줄로만 이어져 왔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천황의 나라 일본」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 참조).
◀ 프랑스식으로 위엄있게 꾸며
그린 메이지 천황
‘원숭이’ 같아 보이는 메이지(明治) 천황에 위엄을 부여하기 위해 복식도 서양식으로 바꾸고 나폴레옹의 모양을 본 뜬 그림들을 생산,
배포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천황에게 충성하는 것은 같은 것이며, 후자가 전자에 우선한다는 ‘가족주의 천황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완전히 잊혀졌던 천황을 되살리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방법들은 죄다 동원된 것이다. 한
인터뷰이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 99%는 천황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런 신격화 이후 일본인들은 천황은 한번도 일본인들 마음
속에서 지워진 적이 없는 신적 존재로 내면화했다.
자, 다시 한번 애초의 질문을 떠올리자. 그런데 신이 된 천황은 왜
전쟁과 살육의 상징이 되었는가?
그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사상을 빼놓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팔굉일우라는 말은 팔방의 세계, 즉
전 세계가 천황의 집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팔굉의 중심은 천황이 사는 일본이며, 일본 신민은 그 밖의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우월하다. 세계가
혼란스럽지 않으려면 천황과 일본을 정점으로 질서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을 하는 것은 이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며, 다른 나라를 이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은 곧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 팔굉일우라는 괴물은 대동아공영권 구상에도 녹아 있다. 1940년 7월,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은 소위 「기본 국책
요강」을 결정했는데, 그것은 팔굉일우라는 건국정신에 입각하여 “황국을 핵심으로 일본, 중국, 만주를 강고히 결합하는 대동아의 신질서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팔굉일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이나 영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질서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서
아시아를 구할 책무를 일본은 운명으로 타고났으며, 아시아 제국은 일본의 질서 회복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5명의 살아있는 중국인을 생매장하는 장면.
난징 ▶
이런 생각은 일본 군인들에게 ‘전쟁이란 시혜(施惠)’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 끔찍한 난징 대학살의 주역으로 후에 전범으로
사형을 당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는 중일전쟁에 나서며, ‘나는 싸우러 간다기보다 형제를 달래러 간다’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접하면서 우리는 항상 의문을 갖는다. “왜
일본인들은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을까?” 그 대답도 역시 팔굉일우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에 졌기 때문에 당하는 거지, 본래 전쟁 자체는 선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왜 선한가? “질서를 바로잡고 각
국가들에 적합한 위치를 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살육과 약탈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오도된 의무감은 과거의 것만은 아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가 일본이 조선을 구하지 않았으면 러시아에게 먹혔을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 팔굉일우는 피묻은 주먹을 불끈
내보이며 살아있는 것이다.
◀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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