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소위 '잘 나가 가던' 사람이었다. 일본의 귀족학교인 학습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전통대로
천황으로부터 시계를 상으로 받았다. 이후 동경대를 나오고 ,나름대로 잘생긴 얼굴로, 또 일가를 이룬 필력과 문체, 미의식으로 당대를 풍미한
히어로였다.그는 문필가였고, 배우였고, 사상가였다.
그러나 전후 부흥기의 일본이 가속도를 내기 시작할 무렵 그는 절망했다. 이게 뭔가, 그는 순정한 그의 민족이 구제불능의 방향으로
타락해간다고 생각했다. 서구추종 일색으로 보였던 일본사회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칠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 전공투로 대표되던 좌파와의 사상투쟁은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곧 '빨갱이 세상'이 될 것 같았고, 그의 나라를 지켜줄
우파는 지리멸렬했다.
그는 직접 행동키로 했다. 1969년 명문 와세다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일종의 '민병대'인 '방패회'를 만들어 스스로 대장이 되었다. 직접
바꾸고야 말겠다, 이 썩은 나라를. 미시마는 결연했다. 그의 명성이 작동한 것일까. 그들은 공공연하게 훈련을 하고 퍼레이드를 했다. 우파의
상징인 군부(자위대)를 끌어 들여 나라를 송두리 채 개조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쿠데타를 향한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마침내 전설로 남아
있고자 일대 사건을 결행했다.
70년 11월 25일. 자위대 난간에 올라선 그는 '천황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절규하고 스스로 배를 갈랐다. 그의 추종자는 목을
쳐주었다. 그는 죽어서 우파의 우상으로 영원히 사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특유의 낭만적 천재성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올해 미시마 유키오 사후 35주년을 기리며 전시회가 열리고, 책이 나오고, 영화가 준비되고 있다. 오늘 취재 중 그의 참혹한 사체사진을
보았다. 슬라이드 필름 속에 마치 고깃덩이처럼, 몸과 떨어진 머리, 복부로부터 튀어 나온 창자, 그리고 선홍색 피는 당연히 반사적으로 전율을
불러 일으켰고, 바로 동시에 불가사의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순간, 스치듯 생각이 지나갔다. 그는 저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죽음에 종교성을 저렇게
부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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