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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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2005-09-16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제작기

우리 시각의 우리식 자연다큐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말이 많았다. 영국의 BBC나 National Geographic 같은 자연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에서 일찌감치 이 곳 '세렝게티'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대상으로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 판매하여 전 세계에 방영되었거나 지금도 계속해 TV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사 내부에서도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과연 우리가 제작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와 우리가 꼭 만들어야 하느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필자는 그 동안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로서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자연다큐멘터리의 주요 시청자인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우리 시각으로 본 야생동물의 자연 생태를 제작하여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끈질기게 기다린 결과 작년에 좋은 기회가 왔고,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을 실현시켜 나갔다. 2002년 1월, 약 보름 동안 답사를 통해 대충의 현지 상황을 점검하였고, 2002년 2월 27일부터 약 8개월간 3회에 걸쳐 200여 일 간의 촬영 일정을 안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부러움을 안고 미지의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 대장정에 나섰다.

이왕 어렵게 제작하는 바에야 고화질인 HDTV로 제작하기 위해 HDTV용 카메라 2대를 가지고 갔다. 또한 언제 또다시 이곳에 와서 제작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6mm카메라 PD150 2 대를 이용해 제작진들의 작업 뒷모습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부에 있는 세렝게티 자연국립공원은 세계 최대의 자연국립공원이다. 수많은 초식동물들과 이들을 먹이로 하는 육식동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곳은 비교적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곳 '끝없는 초원'이란 뜻을 가진 '세렝게티'에 오면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초원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얼룩말, 누우, 가젤 등 초식동물들이 왜 이렇게 많은 지 놀랬으며 한편으로는 TV에서 숱하게 보았던 사자, 표범, 치타 같은 육식동물이 왜 이렇게 안보이나 해서 이 곳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일단 이곳 초원에만 가면 많은 육식동물들을 만나 마음대로 촬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에서 만난 동물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는 하루 중 20시간을 그늘에서 쉬거나 잔다. 제작진이 이 끝없이 넓은 초원에서 운 좋게 사자를 발견해도, 자거나 쉬고 있는 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사자의 사냥 장면을 포착해도 촬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자는 주로 새벽녘에 사냥을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발견해도 이미 사냥을 끝내고 먹고 있는 장면뿐이었다. 그나마 낮에 사냥하는 장면을 촬영하려면 새끼를 거느린 어미들을 따라다녀야만 하는데 이때는 풀이 높게 자라 있어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에 매우 어려웠다.

프라이드 - 사자는 단독 생활을 하는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 달리 2∼6마리로 구성된 암컷 어미와 그보다 적은 수의 수컷 그리고 이들이 짝짓기를 하여 생겨난 새끼들로 구성되는데 새끼들은 암컷만 대를 이어 어미들과 같이 생활하고 수컷들은 거의 성년이 되는 18개월부터 2년 사이에 무리로부터 쫓겨난다. 이들은 철저히 서열에 따른 나름대로의 규율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프라이드'라고 부른다.

우선 사자의 생태를 담으려면 새끼를 거느린 사자 프라이드를 찾아내 이들을 집중적으로 쫓아 다녀야만 할 것 같아 우선 촬영에 적합한 사자 프라이드를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쯤 찾아다니다가 '나망가'라 불리 우는 할머니 사자와 두 딸 그리고 이들이 낳은 9마리의 새끼들로 구성된 프라이드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이 그룹을 약 2개월에 걸쳐 쫓아다닐 수가 있었다.

그런데 보통 프라이드들은 수컷이 자기의 세력권을 지켜주는데 이 나망가 프라이드의 수컷들은 이 역할을 포기하고 무리들과 별도로 행동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초원에서 그 어미들이 행동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았다. 수컷이 같이 있지 못하므로 다른 프라이드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어 먹이가 별로 없는 곳에서 생활해야 하고 그나마 어렵사리 사냥을 해도 하이에나에게 빼앗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사냥감을 빼앗으러 온 떠돌이 숫사자를 찍으러간 사이 하이에나에게 새끼 한 마리를 잡혀 먹히기도 하였다. 이런 장면은 쉽사리 찍을 수 없는 장면인데 MBC 카메라에 운 좋게 촬영되었다.

결국 새끼를 하이에나에게 빼앗긴 나망가 할머니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곳은 세계적인 멸종위기 동물인 검은 코뿔소가 서식하는 곳으로서 촬영 팀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라 더 이상 추적 할 수가 없었다.

3개월 후에 이들을 어렵게 다시 만났을 때는 안젤로라 불리는 새끼 한 마리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새끼 8마리는 영양실조로 또는 질병에 걸려 죽은 후였다. 이렇듯 백수의 제왕이라도 생존경쟁이 치열한 초원에서 그 생을 영위하려면 나름대로의 위험과 애환도 있는 것이다.

초원의 은둔자로 불리는 표범은 고양이과 맹수 중에서도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표범은 보통 한마리가 독립생활을 영위하고, 나무 위에서나 바위사이에 숨어서 생활하면서 외부로의 노출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범의 생태를 촬영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세렝게티 초원에는 야생동물을 구경하러 오는 사파리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들은 하루 동안에 아프리카 빅5(사자, 코끼리, 버팔로, 코뿔소, 표범)를 보여주게 되면 관광객들로부터 100불씩 팁을 받는다.(이 나라에서 100불이면 아주 큰돈이다. 그들의 한달 월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번이 표범 때문에 이 꿈은 좌절되고 만다. 그만큼 발견하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어쩌다 표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그 근처는 관광 사파리 차로 가득 메운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이 접근할 수 없는 나무 위에서 쉬고 있기라도 하면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사파리 차들은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또한 관광객이나 촬영 팀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만약 규정을 어기게 되면 가이드는 벌금을 내야하고 이런 위반을 3회 이상 하게 되면 6개월간 국립공원 출입금지를 당하게 된다.

이것은 긴 풀 속에 숨어있는 맹독성 뱀으로부터 사람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는 규제이기도 하다. 이 규칙은 철저히 지켜지며 이 덕분에 세렝게티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이 나름대로의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순간 시속 112Km를 자랑하는 치타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다. 필자는 이 녀석이 가젤을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속도만 빨라서가 아니라 한번 자신이 노린 먹이 감을 결정하면 한 눈 팔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하여 결국 잡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초원의 승부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게다가 치타 어미가 그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기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우선 먹이 감을 사냥하면 잽싸게 안전한 곳으로 물고 이동한다. 그런 다음 새끼가 먹기 좋게 먹이감에 혀로 침을 발라 준 다음 다소곳이 물러나 있으면 새끼들이 다가와 먹이를 먹는다. 이때 어미는 사자나 하이에나가 접근해 오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윽고 새끼들이 먹이를 다 먹으면 그때서야 먹이에 입을 대는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치타의 수는 사자와 하이에나의 개체 수에 따라 변화한다. 왜냐하면 치타가 먹이 사냥에 성공한 후에도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많이 뺐길 뿐만 아니라 새끼가 태어나도 이들에게 죽임을 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세렝게티 초원에는 하이에나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치타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세렝게티 국립공원 관계자들도 매우 우려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게다가 치타는 육식동물들 가운데에서도 이동 거리가 가장 긴 동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치타를 촬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적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얻어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에서 가장 촬영하기 어려웠던 소재 중 하나는 누우의 대이동 과정 중 그루메티 강에 물을 먹기 위해 강가에 접근하는 누우를 악어가 공격하여 사냥하는 장면과 대이동의 마지막 관문인 케냐의 마라 강을 건너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긴 강 유역에 누우들이 물을 먹기 위해 접근하는 포인트는 매우 많았는데 수차례에 걸친 사전 답사 끝에 촬영이 용이한 포인트를 여섯 군데로 좁힐 수 있었고, 촬영 팀이 위장막을 치고 잠복하고 있어도 좀처럼 접근하려 하지 않는 누우들을 보름동안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악어의 누우 사냥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또한 누우가 케냐의 마라 강을 건널 때쯤이면 이들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강 건너편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는 누우들이 좀처럼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아 누우들이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느라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더군다나 작년에는 엘니뇨 현상이 기승을 부린 해였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되고, 거의 같은 날씨가 계속되는 현지 사정이 올해에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역에 따라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 비가 오거나, 기온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등 기후 변화가 제작진을 괴롭혔다. 매년 거의 같은 패턴으로 이동을 하는 누우들도 이러한 이상기후로 인해 이동 시기가 변화하였다. 그래서 그 이동시기를 알아내느라 제작진은 전 촉각을 곤두 세워야만 했다. 그리하여 누우가 이동할 즈음에는 숙소로부터 무려 120Km나 떨어진 그루메티 강으로 2시간에 걸쳐 달려가 누우가 언제쯤 강가에 도착하는가를 매일 체크 해야만 했다.

이런 여건 하에서 HD 카메라 2대로 나누어 촬영할 수 있었던 점은 매우 적절했다. 촬영1팀은 우선 세렝게티 초원 곳곳을 누비며, 누우의 대이동, 그리고 치타와 표범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촬영 2팀은 나망가 프라이드라고 불리는 세렝게티에서도 독특한 생태를 보여주는 사자 집단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촬영하였다. 이렇게 2팀이 주제를 나누어 촬영함으로써 자칫 혼란스럽게 진행될 수 있는 촬영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었으며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메이킹 프로그램까지 포함하여 3부작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촬영을 하는데 또 다른 애로사항 가운데 하나는 바람이었다. 이곳은 높은 일교차로 인해 강한 바람이 수시로 부는데, 차안에서만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것이 큰 문제였다. HD 제작물이라는 특성, 고배율 망원렌즈의 사용 등으로 인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그래서 차의 구조물을 이용하여 별도로 만든 트라이포트 대용 카메라 지지대가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현지에서 만난 BBC 촬영 팀의 차량을 보고 우리 나름대로 응용하여 차량을 개조하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바람에 의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200여일에 걸친 촬영을 마치니 40분짜리 테이프 300개에 달했다. 그러니 1:1 편집을 하는데도 만만치가 않았다. 1:1 편집을 마친 후에도 HD 고화질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반 SD급 자연다큐멘터리에 비해 훨씬 치밀한 후반작업이 필요했다.

HD 카메라는 빛의 반응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1:1 편집을 끝낸 후 MBC HD 종합편집실의 특수색상 보정장비를 통해 민감한 차이를 보이는 화질을 한 커트 한 커트 색상을 보정하여 모든 커트의 색상을 최대한 자연색에 가깝게 재생시켰다.

HD 고화질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고화질뿐만 아니라, 고음질을 재생시키는데도 매우 뛰어나다. MBC에서 새롭게 마련한 특수입체 음향실에서 음향효과를 스테레오화 하는 최첨단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 작업은 또한 향후 DVD 출시를 위해 5.1 사운드로 재생시키기 위한 기본 작업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각 영상, 음향을 담당한 엔지니어들의 각고의 노력이 본 프로그램의 화질과 음향을 돋보이게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MBC 창사특집 자연다큐멘터리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를 제작하면서 많은 고난과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본 프로그램 방영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보내주신 커다란 격려와 성원이었다. 사실 필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러 떠나는 날부터 돌아와 방영이 되는 날까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과연 본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등으로. 끝으로 본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PD로서 바람이 있다면, 이러한 MBC의 시도가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자연다큐멘터리가 소재를 세계로 확대시키는데 일조 했으면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한국의 방송 인력으로도 충분히 세계적 수준의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