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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목자, 김수환 추기경

기획 : 조능희, 김현기, 김종우, 정회욱 작가 : 윤희영
방송시간 :
2009년 2월 22일(일) 밤 10시 35분
기획의도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지도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하는 큰 어른이었다. 7-80년대 민주화 열망의 한가운데에서 힘없고 가난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가난한 시골 소년이 추기경이 되어 격동의 시대를 감싸 안고 살기까지 인간 김수환의 삶을 조명해 본다.

주요내용


1. 본당 신부 시절의 김수환
 

“좋은 신부님이 오셨다고 보러 갔는데  인물도 없고 얼굴은 시커멓고... 우리가 ‘뭐, 저런 사람 뭐 좋다 그러나’ 하고 생각했어요. “
                                                                     - 안동 본당신부 시절 신자 -


 

“별명은 인자한 콧님. 이야기 할 때 웃으면서 코가 먼저 벌렁벌렁 거려요.”
                                                    
-김천 본당(부설 여고 교장 겸직)시절 제자-
 




김수환 추기경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는 2년여의 본당신부시절. 그의 별명은 소금쟁이 혹은 콧님이었다. 얼굴이 시커먼 소금장수 같다고 해서 혹은 코가 벌름거린다고 붙은 별명이다. 미남은 아니었지만 친구 같은 신부님이었다. 차가운 온돌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 꽃을 피우고 귀신이야기로 학생들을 놀라게도 하고... ‘학생들과 장난치며 노는 교장선생님이 어디 있냐’ 고 수녀님에게 혼나면서 학생들과 가깝게 지냈다. 가난한 신자와 학생에게 몰래 돈을 나누어 주었던 따뜻했던 신부님. 그 시절이 53년 성직 생활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정기적으로 제자들과 만나며 최근까지도 끈끈한 부녀간의 정을 나누어왔다. 제자와 신자들이 증언하는 초보신부 시절의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을 만나본다.

 

2. 민주화 운동과 김수환 추기경.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남긴 인물... 김수환 추기경의 행동에는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조광 고려대 교수-


 

김수환 추기경은 1969년 47세로 나이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되었다. 가난한 시골소년이 신학교를 다니고 시골성당의 신부를 거쳐 추기경이 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본다. 독일 유학 시절에 그가 공부한 것과 가톨릭 신보사의 사장이라는 언론인으로써의 삶이 추기경의 역할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오랜 세월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써의 역할은 추기경이라는 직함이 자동적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추기경의 끊임없는 내적 고뇌와 성찰,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던진 가톨릭교회의 쇄신 정신을 잘 아는 젊은 추기경을 맞이한 것은 우리 시대의 행운이었다.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전체가 하느님의 백성이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 편에 서야한다는 믿음을 온 몸으로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 추기경을 바꾸어 보려는 정치권력의 공작과 탄압, 교회 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선 김수환 추기경의 신념과 불면증에 시달렸던 인간적인 고뇌를 살펴본다.

 

3. 억압받는 사람들의 피난처

 

“고향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가 위로해주는, 딸을 위로해주는 그런 심정으로 그냥 눈물이 나서 울었어요”                                               -방직공장 노조위원장-




 

‘잘 잤느냐 춥지 않았느냐 아픈 사람은 없느냐 밥은 제대로 먹었느냐’ 추기경님이 부둥켜안고 힘내라고 위로해주는 이런 모습들.                             -성계동 철거민-



 

“추기경님이 꼭 살려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죠. 매달릴 수밖에 없으니까. 해내실 수 있을 분이라고 생각 했어요”                               -정치사형수의 아내-

 

 

 

7-80년대 해고노동자, 철거민, 정치사형수처럼 이 사회의 극한에 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피난처 명동 성당과 김수환 추기경.

그들에게 명동성당은 피난처이자 안락한 집이었고 김수환 추기경은 안겨 울 수 있는 아버지이자 기댈 수 있는 십자가였다. 추기경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안아주고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같이 울면서 그들을 보듬어 안아 주었다. 울음으로 토해내는 당시의 절박했던 증언들... 그들이 본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4.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언제나 나에게서 큰 주제는 인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어떤 사회 전체가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김수환 추기경 -

 


 

김수환 추기경의 삶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정치인이나 높은 사람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왔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갔다. 추기경이 되고 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애정, 즉 인권과 노동자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관심의 출발은 인간이었다.

특히 소외 계층에 대해서는 직접 함께하지 못함에 대해 미안해하며 그들을 위해 늘 기도했다.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십자가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였다.





2009/02/19(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