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신년기획 「리더십」 시리즈 제작 후기입니다. 방송협회에서 발행하는 「방송문화」(2006년 2월호)에는 '리더십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제가 원래 붙인 제목은 '리더십? 머를 마이 멕에이지'였습니다.
편집자가 좀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모양이군요. 또 「방송문화」는 원고의
양이 많아서인지 약간 삭제하기도 하고 수정도 했군요.
아래의 글은 오리지널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마지막에 '리더십'을 너무 단순화시켜버렸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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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신년기획 「리더십」 제작 후기 리더십? 머를 마이
멕에이지
MBC 시사교양국 김환균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사회
‘리더십’ 시리즈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9월부터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왜 지도자가 지도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이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리더십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정치 지도자들, 사회의 원로급 인사들의 권위는 또 늘 부정하고
무시해 왔다.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도 ‘부정’과 ‘무시’의
싸늘한 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을 했겠는가?
그 말에 대한 대꾸는 더 싸늘한 것이었다. 그게 대통령이 할 말이냐면서 그 말 자체가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순탄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가 ‘권위’라면 무조건 위험한
것, 옳지 못한 것이라고 우리를 세뇌해 왔는지 모른다. 정당하고 또 바람직한 권위가
분명 있을 터이고 그런 권위야말로 한 사회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힘일 텐데도 말이다.
논의 끝에 우리는 4편 정도의 시리즈를 제작해 2006년 벽두에 방송하기로
했다. 왜 2006년인가? 올해에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자체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대로 우리의 대표를 뽑을 것이다.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취지는 호사가의 취미에서가 아니라,
또 위인전의 감동을 전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참고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아주 실용적인 것이었다.
리더십 -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맨 처음 부딪친 벽은 도대체 ‘리더십’이라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리더십 하면 우리는 보통 강력한 카리스마를 떠올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카리스마 자체가 리더십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지도자의
자질’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리더십에 관한 전문 서적도 많이 나와 있지만 너무
이론적이거나 사변적이었다. 우리는 ‘리더십’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부터
고민해야 했다.
우리가 합의에 도달한 리더십의 정의는 ‘한 사회나 조직을 계획에
따라 변화시키는 힘’이었다. 관성의 법칙은 물체가 운동할 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법칙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관습에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관습의 변화에 불편해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맨 처음 그 저항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해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 구성원들을 동원하고 지지를 이끌어내 변화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리더십은 항상 도덕적,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6백만 유태인의 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은
아돌프 히틀러가 보여준 강력한 카리스마는 리더십인가, 아닌가?
우리는 많은 논의 끝에 리더십에는 윤리의 문제가 핵심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일지라도 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협잡이나 술수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듯한 대의와 명분으로
포장된다. 덩샤오핑의 경우, 4인방의 재판을 TV로 생중계하며 중국 인민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문화대혁명의 과오는 4인방에게 씌워졌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이었지만, 분명 정적의 제거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다. ‘덩샤오핑의 지혜’로
평가받는 ‘7할이 공이고 3할이 과’라는 마오에 대한 평가도 사실 여전히 막강한
마오 지지자들을 달래기 위한 꾀이기도 했다.
네 명의 리더들
우리는 네 명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리더십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죽(竹)의 장막’을 열어 제치고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부도옹 덩샤오핑,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호아저씨’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는 호치민, 위기의 GE를 세계 제일의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경영의 달인 잭 웰치.
그리고 미국 대통령은 존 케네디를 중심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로널드 레이건을
다루었다.
어느 취재에나 난관과 장애는 있다. 그러나 이번 리더십 시리즈의
어려움은 기획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은 잘 도와주다가
취재에 돌입하려는 순간에 중국 내 취재를 허가할 수 없으며 중국 내의 어느 언론사도
협조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국가 영도자에 대해 외국 언론이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영도자에 대한 비판을 우려했기 때문인 듯 했다. 베트남도 처음엔
중국과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잭 웰치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GE에서는 전 회장이었던 잭에 대한 취재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은 가고 초조해졌다. 과연 이 시리즈를 계속해야 하는가? 11월
중순, 더 이상 판단을 미뤄서는 안 되었다. 네 명의 PD가 모여 논의했다. 최악의
경우 자료화면과 인터뷰만으로라도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라 흥미있는 자료화면은 충분했고,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베트남은 우여곡절 끝에 취재를 허가했지만, 중국은 끝내
취재를 거부했다. 덩샤오핑을 맡은 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취재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정치적으로 더 보수화된 중국을 떠나 망명한 거물급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스턴에 살고 있는 첸이즈는 덩샤오핑의 초기 개혁개방정책을 담당한 실무자였다.
윈스턴 양은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구상을 처음으로 들었던 사람이었다. 일찌감치
덩샤오핑의 독재자적 성격을 간파해 비판하다가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웨이징셩,
천안문 사태를 주도했던 왕준타오도 중요한 취재원이었다.
미국 취재는 궁여지책이었지만, 오히려 자칫 찬양 일변도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에 객관성을 부여해 주었다. 중국에서라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덩샤오핑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중국에 주재했던 제임스 릴리는
중국 권부의 움직임을 상세히 전해 주었다.
리더십? 잘 먹이는 거
덩샤오핑이 2편으로 제작되어 총 5편의 리더십 시리즈가 1월 1일부터
방송되었다. 방송을 본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고 기업들에서는 교육용으로 쓰겠다고
했다. 시리즈에서 다룬 리더십을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잭 웰치의
경영방식이 많은 기업들에 자극을 주었지만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리더십은 그 나라와 사회, 조직의 상황과
당시의 현실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4명의 지도자들은 각각 다른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래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의 특성,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런 다음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과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 대의와 명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리더십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 답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단순명쾌하게 제시되었다. 동막골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영도력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인은 이렇게 답한다.
“영도력의 비결? 글쎄… 머를 마이 멕에이지, 머”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에 동양의 지혜가 발견한 것이기도 하다. 요(堯)임금
시절, 백성들이 태평성세를 즐기며 임금이 누군지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의
고사가 그것이다.
지도자는 잘 먹이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야 하지만,
그의 임무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수되는 것인지 모른다.
2006/02/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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