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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은
누구'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소재 우리절 주지스님. 60~70년대 조계종 종정이었던
고암 스님에게 출가해 용성선사의 어록집을 펴내고, 한자로 된 불교의
주요 경전들을 혼자 힘으로 번역한 <일원곡> 13권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는 ‘마음을 비우게 자네가 부처야(1994)’, ‘관음경 이야기(1998)’,
‘우리말 법요집(2005)’ 등이 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해발 1900m
지점, 수상한
목조건물 하나 우뚝 서다.’
킬리만자로
해발 1900m지점. 마랑구 게이트. 이곳은 얼마 전부터 목조건물 공사로
한창 분주했다. 부산함이 지나간 자리에 우뚝 선 목조건물 하나.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건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건물의
정체는 바로 ‘보리가람슐레(학교)’ 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스님이 법당으로 쓰는 임시 목조건물.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조용한 날이 없다. 목탁은 장난감이 되고, 학교 안은 뛰어노는
아이들과 싸우는 아이들로 순식간 아수라장이 돼버린다. 늦은 오후,
즐거운 축구시합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 서야 법당이
되는 그 곳. 밤에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고독하게 울려 퍼지는 곳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온 이유. 한국 불교의 작은 씨앗을 심으러.’
탄자니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종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다. 스님이 홀로 낯선 이곳까지
온 이유는 한국불교를 알리고, 불교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종교가
포교를 통해서 깊어지려하기보다 넓어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포교를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스님은 “안 하면
모르니까요.” 라는 간단명료한 답을 주었다. 여러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 건강해지듯,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이곳에 불교라는
반찬, 양념을 더 곁들이고 싶다고 스님은 말한다.
‘주지스님,
어설픈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한국에서는 30년
동안 종교인으로서의 삶만 살아왔던 스님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새로운
생활에 접어든다. 종교인으로서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 스님의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스님의 사회생활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기만
하다. 가가호호 방문하고, 동네 아이들의 이발사가 되는가 하면,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스님은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
마을주민들과 어우러져 부른 화합의 노래가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울려
퍼지고 스님은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학교 공사 일을 전적으로 맡았던 현지인이 마을 주민들의 인건비를 떼먹는
사건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스님은 사회생활의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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