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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에 무슨 일이 |
| 김선주
(2005/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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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한참 불타는 연애를 하던 때 일입니다.
당시 저는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동갑내기인 아내는 전라도 섬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연애를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날마다 봐도 보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저희들은 잘 해야 1주일에 한 번 만날 수 있었고, 바람이 불어 주의보라도 내리는 주말이면 꼼짝없이 2주 동안 얼굴 한 번 못보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남해 바다를 헤엄쳐서라도 가고 싶었지만, 조그만 섬의 여선생님 자취 방에 총각이 들락거리면, 소문이 안 좋게 날까봐 어금니를 앙 물면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이면, 주의보는 어찌 그리도 자주 내리던지요.
툭하면 아내는 육지로 나오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딸만 셋인 아내의 집에 가서 아들 노릇을 하는 것으로 대신 했습니다.
장인어른은 당시 화장품 도매업을 하셨는데, 그것이 박스로 물건을 옮기는 거라 제가 가면
“아이고 어서 오소”
하며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실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시간만 나면 예비 처갓집에 가서 그 무거운 박스들을 쿵쿵 옮기면서 점수를 한없이 따고 있었지요.
솔직히 아내는 교사인데, 저는 이제 복학하고 졸업하고 또 취업을 해야하니 조금 불안한 게 사실이었거든요.
가까이라도 있으면 사정없이 도장을 찍겠지만, 멀리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저는 오로지 처갓집에 사랑과 정열을 바치는 걸로 저의 입지를 다져갔지요.
그러던 어느 겨울!
2주째 주의보가 내려 그녀는 주말을 섬에서 보내고 저는 끓어오르는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데 장인어른께서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겁니다.
“자네. 월요일에 시간 있나? 지선이가 2주째 집에 못 와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이 많은 모양인데, 내가 지선이 집에 한 번 다녀오려고 하는데, 시간 있으면 같이 갈까하고 그러네. ”
겉으로는 “네”하고 말았지만, 저요 속으로 장인어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왔다 갔다 시간이 어쩔지 모르니, 아예 하룻밤을 자고 올 생각이니, 그리 알고 오게나”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장인어른께 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상상만 하던 아내의 자취방을 장인어른과 함께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내는
“아빠. 고생하셨죠.”하며 장인어른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시종 눈빛은 저를 향해 뜨겁게 타 올랐고, 저녁 반찬도 제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해 두었더군요.
원래 자식이란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녁을 흐뭇하게 드신 장인어른께서
“아이고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구나. 자네도 피곤하지? 내일 첫 배로 나가야 하니까 일찌감치 자두게”
하시며 저녁 9시밖에 안됐는데 잠자리에 드시는 겁니다.
아내와 저는 장인어른 눈치 보느라, 그동안 밀린 얘기도 못했는데 솔직히 그 보고 싶던 얼굴도 자세히 못 봤는데 피곤하시다며 불을 끄시니 우리도 꼼짝없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조그만 자취방에 벽쪽에 아내가 눕고, 가운데 장인어른이 누우시고 그리고 문쪽에 제가 누워 잠을 청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잠이 오겠습니까? 잠이 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이지요.
처음에는 저도 잠을 청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 겁니다.
더욱이 10분도 안되어 장인어른이 요란하게 코를 고시며 주무시는데 이 기회를 이대로 버려야하나라는 생각에 환장하겠대요.
그 와중에도 장인어른은 나 깊이 잠들었다고 신호라도 보내듯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지선아”라고 조용히 불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정작 아내는 아무소리가 없고, 그렇게 우렁차게 코를 고시던 장인어른이
“응? 으응? 왜? ” 하시는 겁니다.
저는 순간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0초도 안돼서 다시 ‘드르렁’소리를 내며 주무시는데 이거야 깊이 잠이 드신 건지, 아직 설잠이 드신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 포기하고 자자. 이렇게 얼굴 본 것도 어디냐.’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저요 너무 억울해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녀 쪽으로 가서 속삭였습니다.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물론 그녀도 기다렸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일어나더군요.
그런데 그때 제 말소리를 들으신 건지 장인어른이 또다시 “으으음”하시며 약간 자리 이동을 하시는 겁니다.
저희들은 덕분에 외투도 걸치지 못하고, 엄동설한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연탄가스가 진동하는 부엌을 나와 마당 구석으로 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최소한 뽀뽀라도 한 번하고 가야지. 이대로 가기엔 너무 억울해’
하지만 밖은 달이 훤하게 떠서, 가로등이라도 켜진 것처럼 밝더군요.
‘원래 뽀뽀는 음침하고 컴컴한데서 해야 하는데...’하며 저는 어두운 곳을 찾았지요.
그런 저에게 “어디로 가는거야? 얘기 좀 한다면서” 라고 말은 했지만 아내도 구석진 곳을 찾기 위해 사정없이 두리번거리는 걸 저 봤습니다.
드디어 딱 두 사람이 앉기에 적당한 구석지를 발견하여 저희 둘이 막 자리를 잡는 순간,
“왈. 왈 으르릉 왈 왈” 하면서 우리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집채만한 개 한마리가 저희를 향해 집이 떠나가라고 짖는 겁니다.
아니 이것은 또 무슨 황당시츄에션입니까?
“야. 저리 안가? ” 저 실은 큰 개 무지하니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개를 ?았습니다. 그러자 제 뒤의 그녀
“누렁아. 나야”
순간 집채만한 누렁이가 아내의 목소리를 확인한 순간 순한 양이 되어 갑자기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대요. 그 누렁이는 바로 아내가 섬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면서 굉장히 정을 주고 있는 주인집 진돗개였습니다.
“누렁아. 저리 가. 어서!”
그녀의 약간 단호한 말투에 누렁이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더군요.
저는 드디어 작업에 돌입하기 위해 목소리를 한없이 깔았습니다.
솔직히 12월의 밤은 너무도 추웠기 때문에 빨리 뽀뽀만 하고 들어가야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선아. 이리 와봐. 응?”하며 아내를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으르릉. 으릉~”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누렁이가 완전히 전투적인 자세로 저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는 겁니다.
“누렁아. 나 이 누나랑 엄청 친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야”
진돗개 정도 되면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법 한대도, 누렁이는 제가 다시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자, 바로
“으르렁. 응~”하더군요.
결국 아내까지 나서서
“누렁아. 괜찮아. 착한 아저씨야. 그냥 가”라고 말을 해도 뭔가 아내에게 위험이 닥쳤다고 생각했는지 절대로 아내 주변을 떠나지 않으면서 제가 손만 대면 “으르릉~”하는데, 어떻게 얼굴을 붙이냐고요.
하지만 이렇게 고생해서 2주만에 아내를 만났는데, 여기서 한갓 누렁이 때문에 포기할 순 없지요.
저는 누렁이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조금 커졌지만, 모른 채하고 아내의 입술을 향해 드디어 제 입술을 막 대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누렁이가 다시 “컹! 컹!... 으르릉 컹! 컹!” 하면서 동네가 떠나가게 짖어대더군요.
그때 큰 방집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아니. 오밤중에 왜 짓고 그래쌓냐? 누렁아~ 누가 못된 짓이라도 한다냐. 어쩐다냐! 조용히 못하냐!”
아내와 저는 너무나 화들짝 놀라서 바로 떨어졌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저희들은 마치 큰방 할머니께 못된 장면이라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군요.
결국 저희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추위에 밀려 다시 방으로 들어가야했지요.
뽀뽀에 대한 미련이 없어진 순간, 사정없이 추위가 밀려오대요
‘아이고. 어서 방에 들어가 이불 속에 눕고 싶구나. 아이고 추워라’
그런데 여닫이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방문은 안 열리고 안 쪽에서 다시 그 공포의
“으으음”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왜?” 추위에 목소리까지 떨려나오는 그녀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아버님이 방문 바로 밑에서 주무시나봐. 우리 방에 들어가기는 틀렸다.”
그 절망적인 순간에 제 눈에 비치는 것은 끝까지 저희들을 따라와서 뭔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저를 보는 누렁이와, 입술까지 파래진 그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제가 잠옷 대신 입고 있던, 츄리닝을 벗어서 “이것 입고 있어. 춥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반팔로 있을려고 그래?”
“하!하!하! 염려마. 내가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남자잖아. 하!하!하!” 저는 저의 골체미를 한없이 자랑해야 했습니다.
“조용히 해. 아빠 깨시겠어”
그리고 저는 연탄가스 때문에 부엌문까지 활짝 열어 놓고, 반팔로 새벽 2시까지 버텨야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서 일어나게. 첫배 타야지... ”
하시는 장인어른의 목소리에 잠이 깼지만, 제 몸은 어제 저녁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젯밤 방안이 뜨뜻하던데, 자네는 갑자기 무슨 감기에 그렇게 심하게 걸렸나?”하셨지만 저는 화장지를 뽑아 흐르는 콧물을 닦을 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침 준비만 하고 있더군요
서둘러 아침을 먹고 마당에 나서자, 어젯밤의 누렁이가 다시 저를 보더니, ‘으르릉’하면서 짖을려고 하는데 저 머리카락이 다 서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잘생긴 얼굴은 아니어도, 남들이 인상좋다고 하는데, 개의 세계에서는 저 같은 외모를 별로 선호하지 않나봅니다. 그래서 저요. 그 뒤로 절대로 개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딸이 10살이 넘어서고 있으니, 10년 후엔 듬직한 진돗개 한 마리 사 놔야겠습니다.
혹시 예비사위 녀석이 예쁜 제 딸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면, 초저녁 잠이 많은 저보다는 누렁이가 훨씬 믿음직스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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