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 글짱 in 라디오 > 프로그램 91.9
 
  조회:
DJ 콘서트

 

라디오는 영원할지어다

 

1년에 한번, 엽서더미와 CD가 널려있는 라디오부스를 떠나 DJ가 주인공이 되는 날. 지난 11월 24일은 바로 DJ들의 잔칫날이었다. 추위가 맹렬한 기세를 떨치기 전 숨죽인 고요처럼, 여느 겨울날씨보다 따뜻했던 수요일 오후 7시경, 어린이대공원엔 어린이는 없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걸어가는 FM4U 맹렬 청취자들의 행렬만이 어둔 길목을 밝혔다. 각 프로그램마다 청취자의 연령도 다양하고 그들이 나누는 사연 또한 각양각색. 그러나 돔홀에 모인 천여 명의 관객들은 FM4U란 깃발 아래 모두다 가족이자, 연인이며 친구였다.

1부의 진행을 맡은 배철수와 정선희는 공동 진행의 의미를 되살려, 커플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섰다. 재치 만발의 정선희, “여기 모이신 분들 한 사만 팔십 이분정도 되나요?”라며 너스레를 떨자, 객석은 열혈 청취자들답게 한 목소리로 큰 함성을 질러 그에 답했다. 

첫 무대는 김C. ‘영혼이 어린왕자처럼 순수한(정선희의 표현)’ 김C는 자신이 함께 하는 그룹 ‘뜨거운 감자’와 함께 그루브한 템포의 ‘아이러니’를 들려주었다. 언제나 멍한 얼굴로 세상과 결별한 별처럼 초연하기 그지없던 김C, 그러나 그는 역시 가수였다. 체크무늬 자켓과 모자를 쓰고 어깨를 움츠리며 리듬을 이끌고 가는 그의 모습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서로 닮은꼴처럼 비슷한 배철수씨와 김C는 호칭에 대한 얘기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김C형, C형, C오빠 등으로 불리는 김C와 철수선배, 철수선생님, 촤알스(요근래 그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버터맛이 느껴지는 영어이름으로), 초등학생 청취자에게 철수할아버지라 불리기까지 한 배철수는 그래도 여전히 기분 좋은 너털웃음으로 청취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프로그램마다 색깔이 다르고, DJ들의 성격 따라 나름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라디오의 특성상, DJ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프로그램은 더욱 DJ의 취향이 녹아있게 마련. 

'김C 스타일’은 음악이 생활화되어 있는 청취자들과 심하게 자유로운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옆집 뒷집 아줌마, 동네 처녀들이 모인 찜질방 분위기의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이 있는가 하면, 똑똑 떨어지는 배철수씨의 말투처럼 다양한 펍의 정보들과 즐기고 놀 수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그러하다. 

두번째 무대는 FM4U의 막내인 김상혁이 나와 보아의 게스트출연을 소개해 한바탕 객석이 술렁. 그러나 다음 등장한 가수는 빨간 가디건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조정린이 보아의 춤을 완벽하게 모사해 객석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귀여운 배추인형 같은 조정린은 김상혁과 ‘친한친구’의 양대 산맥이 된 지 7개월째. ‘저희들의 산만함을 즐겨주시는 청취자들’ 덕에 순조로운 진행을 이어가곤 있으나 가끔 사연을 이해 못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할 때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이들의 산만함은 오히려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들어내 듣는 이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는 정선희의 덕담에 상혁과 정린 ‘저희가 어디까지 나아질지 지켜봐주세요’라는 말로 무대를 떠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린 비. 다음 무대를 장식한 비의 노래 ‘It’s Rainig’과 파워댄스는 객석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객석 뒤에 앉아 있던 여고생 몇몇은 아예 무대 바로 앞으로 나와 비와 두 MC의 대화에, 맞는 답변을 척척해낼 만큼 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주었다. 비의 목소리가 라디오에 어울린다며 DJ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배철수씨의 물음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겸손하게 물러서던 비는 결국, ‘정오의 희망곡’ 오프닝 멘트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말았는데, ‘오~우 안녕하세요. 정오의 희망지기 뷔~ 인사드려요.’라며 만능엔터테이너답게 닭살 멘트를 들려주었다. 그의 두 번째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객석은 온통 비의 본명 ‘정지훈’을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고, 첫 번째 게스트의 뜨거운 무대가 막을 내렸다. 

다음 무대는 가죽바지와 꽃무늬 셔츠를 입고 나온 김성주, 김완태 아나운서의 무대. 다른 DJ들과 달리 아나운서라는 무언가 격식을 갖춘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달리, 아나운서계의 김브라더스는 검은 선글라스에 램(?)이 장착된 무선 전자기타를 치는 척하며, ‘환상속의 그대’ 댄스 메들리를 멋들어지게 노래해주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성주 아나운서의 회오리춤과 김완태 아나운서의 굼벵이춤은, 거의 선수에 가까워 관객들의 환호성은 그칠 줄 몰랐다. 시그널 음악이 2부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우아한 검은 드레스의 이소라와 빨간 니트에 갈색 코트를 입은 멋진 신사 윤종신이 나오자 객석은, 다시 이소라와 윤종신의 이름을 복창하며 이들을 맞았다.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와 ‘이소라의 음악도시’는 각각 ‘두데’와 ‘음도’라는 축약어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객석에서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두데에서 풀어 논 분들’, ‘사랑하는 음도 시민들’하며 팬들의 사랑을 겨루기도 했다. 두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사랑이야기. 몇 년씩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 꿍꿍 앓고만 있는, 청취자들이 상담을 해올 때마다 명쾌한 답을 내주는 윤종신과 달리, 음도의 이소라는 ‘그 여자 그 남자’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주옥같은 문체와 가슴 절절한 사연들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고 프로그램을 자랑했다. 음악도시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하는 성시경과 박효신은 감미로운 음색의 발라드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차분히 녹여주었다. 


마지막 무대의 장식은 대마왕의 출연. 늦은 밤 ‘고스트네이션’을 진행하는 신해철은 이틀간 프로그램의 생방을 펑크낼 정도로 심하게 아픈 상태. 그러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DJ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있는 기운을 다 모아, 넥스트와 함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노래에 앞서 신대마왕은 이런 명언도 남겼다. ‘인간의 상상력이 있는 한 라디오는 무한하다. 수신기 앞에 앉은 단 한 사람을 위해 DJ는 노래를 틀고 이야기를 건넨다.’


지금 여러분 옆에 라디오를 곁에 두고 싱긋이 웃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