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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의 미학… / 글 | 정선희

참으로 숨차게 변해가고있는 문화속에 우리들 각자의 취향 또한 가열차게 바뀌어가고 있다.

바뀌어가는 취향에 예를 다하듯 이를 위한 수많은 정보들이 생성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정보들이 우릴 간섭하고, 다량의 정보들로 인해 더욱더 늘어난 메뉴얼들이 선택을 다양화시키고있다.

음식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상상의 한계를 비웃듯 끝없이 다채로운 맛들이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없던 발칙한(?)조리법들과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버무려진 생뚱맞은 맛들이 이루어질 수 없던 금역을 깨고 새로운 맛과 분위기로, 식도락의 새 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꽃잎을 넣어만든 비빔밥, 허브밥, 녹차아이스크림, 딸기를 넣어만든 김... (이 딸기김은 며칠전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인데.. 아직까지도 도대체 생산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어울리지 못할꺼라 생각했던 맛들이 하나둘 그 성역을 깨고 향기롭게 우리 입속을 공략하고 있는 요즈음.... 미련스러우리만큼 우직하게 외길(?)을 걷고있는 우리의 토종 음식 '청국장'을 뜬금없이 예찬하고 싶어진다.

그 어떤 향기와도 타협하지 않는, 아니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그자체의 구림!만으로 버텨온 세월이 얼마던가...

노오랗고 탱글탱글한 메주콩을 삶아 어찌저찌하여(?) 따뜻한 방에 오랜시간 묵히고 묵혀 사방에 그 살벌한 내음이 촘촘히 퍼져나갈 때(어릴적엔 시골 친척집에 가면 늘 이 냄새가 났기에 그 집은 썩어서 곧 무너지겠구나, 라고 깜찍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땐 청국장의 마력을 절감할 수 없었다.

코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그 구림! 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그것은 당당히 제 맛을 펼치기 시작한다.  곰박스러운 뚝배기그릇에, 한겨울에 담가놓고 차라리 잊고 살았던 쩡한 맛의 시어꼬부라진 김치를 찢어! 물에 풀어 살짝 달구다가...청국장 한뭉치를 턱하니 질펀하게 풀어헤쳐넣고 인심이라도 쓰듯 실팍한 두부와 무식하게(?)크게자른 대파를 사뿐히 얹어 놓고 깊게 끓이기 시작하면 냄새가 진동하는, 바로 그때부터 혀는 시큰거릴 정도의 허기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진다.

작은 뚝배기가 미어질 정도로 부글부글 끓어대는 청국장을 상위에 모셔놓고, 세수도 할 수 있을 만한 커다란 대접에 고춧가루로 설렁설렁 버무린 매콤한 무채에.. 냉장고 뒷켠에 있던 남은 반찬들을 대충 쓸어넣고, 참기름과 고추장 약간에 뜨거운 밥한공길 털어놓고 그때까지 그르렁대며 끓고 있는 청국장을 두어 국자 퍼담고 비빈다. 한 숟가락 수북히 담아 입에 넣으면...얘기는 끝난다.

현란한 맛들에 중독되어 사는 요즘, 청국장의 그 진하고 투박한 맛을 그저 혀의 한켠에 기억해놓기만 했다가도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맛을 그리워하고 찾아가게 된다.  그렇게 볼때...청국장은 마치 우리내 할머니들과 같다.

어머니보다 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을 퍼부어주시던 영원한 내 편!! 어떠한 금기사항도 나의 응석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게하는 절대권력자... 굽은 등으로 세월을 타면서..눈돌아가게 바쁜세상을 사는 자식들의 무관심에도, 노한 기색없이 조용히 따뜻한 한켠 비어놓으며 자식들을 기다리셨던 할머니의 모습과 청국장을 동시에 떠올리는 게 무리는 아닌 듯싶다.

혹자는 그 견딜 수 없이 강렬한 구림..이 싫다한다. 심지어 코까지 막아대며 손을 내젓기까지 한다.

이상하게 다른 음식에 대해서는 좋아하든, 싫어하든, 타인의 취향을 무조건 인정하는 나이지만 청국장에 대해서만큼은 배척하는 미각에 왠지 심술이 난다. 왠지 자존심도 상한다.

이 무슨 되도않는 근성인가싶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청국장을 예찬하기로 한 순간 나 역시 청국장의 고집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냄새나지 않는 청국장도 싫다. 그건 타협같다, 그래서 그건 청국장이 아닌 거다. 그건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안구린장이나 꽃된장..뭐 그런 걸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협 또한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치즈 하나로 나라 이름이 어필되고 와인 하나로 축제를 여는 여느 나라들의 그 문화처럼... 우리는 음식 하나로 시끌벅적 오바하고 치장하고 떠들어대는 민족성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중을 살아갈 우리 자식들이 이 맛을 낯설어하고 밀어내게 해서는 안되겠기에..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다가서보려는 애닯은 의도가 포함되어있는 노력이기때문에.. 마냥 내 고집만 세울 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시도조차도 하지않고 김치를 못먹고 된장을 벌레보듯하는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작태를 보이고 있는 한심한 부모들을 바라보노라면 뿌리도 없이 주관도 없이 부표처럼 떠돌고 있는 우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서글프다.

퓨전도 좋고. 다양한 맛창출도 바람직하지만 그래도 빛바랜 벽지를 등 뒤로하고 앉아서 땀흘리면서 먹을 수있는 ?청국장?과 같은 우리 음식이.. 그래도 하나쯤은 고집스럽게 지키고있는 자존심이었음 좋겠다.

눈돌아가게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험한세상일 응석부릴 수 있는.... 여유였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