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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맛에 관한 보고서 / 글 | 정선희

매서운 바람이 행인들의 바쁜 발끝에 짓궂게 휘감기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사람들의 발걸음

도 그 추위를 떨쳐내려는 듯 더욱 단호해진다. 뾰족하게 세운  깃 사이로 시린 코를 파묻고

는 바람을 상대로 마치 진군(?)하는 듯한 행군에서 여유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 모습이 왠지, 몹시 재미없게 느껴질 때 문득 길가 한 귀퉁이에서 여유롭게 피어오르는 

어묵 국물의 온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해질 무렵 냉기를 뿜어대는 도심 한복판에서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넘실거리는 그  허연 손짓에 한번이라도 매혹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제대로 물먹은(?) 사람이건, 바람맞아 씩씩대던 남자이건, 점수 안나와 부르터 있는 학생이건…. 또는 서로 좋아 죽겠어서 엉켜 지나가던 연인이건 간에…. 사정을 불문하고 허기진 몸,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고 혹은 나처럼 본능에 이끌려 한번쯤은 길가 어묵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보았을 것 이다. 

두툼한 미제 담요 마냥 투실투실한 어묵들이 탐스럽게 주름잡혀 꽂혀있고, 부글부글 입질하며 뜨거운 김을 뿜어대는 국물 위로 오래 우려냈으나 각이 뚜렷한 주먹만한 삶은 무는 결코 경망스럽지 않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 묵은 자태야말로 국물의 맛에 믿음을 실어주는 실질적인 브랜드인 것이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따끈한 국물이 담긴 종이컵을 감싼 채 조심스

레 한 모금….

그렇게 넘긴 어묵 국물에 입천장이 펄럭이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도 그 달가운 열

기가 얼어있던 식도를 훑으며 속절없이 내려갈 때의 그 뻐근한 해방감을 생각한다면 입천장 

몇 번 휘날리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렇게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고 나면 세상 용서하지 못할 게 없을 듯 싶다. 그러나 따

슨 국물에 열린 게 어디 마음뿐이랴. 온기에 자극 받은  허기진 위장이 이때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급한 손놀림으로 어묵 꼬치를 덥석 베어 문다. 혀에 느껴지는 그 풍성한 느낌이 간헐적으로 

들이키는 뜨거운 국물과 더불어질 때…. 그 순간만큼은 누가 한 대 심하게 때려도 고맙다고 

할 것 같다. 

그렇게 시린 몸을 달래려고 시작되었던 행위가 시간이 지날수록 포만을 위해 흡입하는 행위

로 전락(?)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초반에는 애교 있게 한두 개 널브러져 있던 빈 꼬치들이 급기야 공사판 건축자재 마냥 쌓이

기 시작하고 허리띠를 삼켜버린 복부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시작되건만 이미 통제력을 상실

한 내게는 부질없는 반란으로 치부된다.  더 나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선으로 옆 

동네 계시는 떡볶이를 응시한다. 떡볶이에 어디 떡만 계시던가…. 양 혀끝이 아릴 정도로 시

뻘건 늪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엎드려있는 탱탱한 삶은  계란 덩어리들,  늘씬한 자태로 

입수만 기다리는 바삭바삭한 군만두들에 허술한 미니 김밥까지…. 

이것저것 없으면 섭하지 싶어 죄다 건져 올려놓으니 다국적군이  따로 없다. 걸쭉한 떡볶이 국물에 삶은 계란을 으깨어 떡과 함께 한 입 물어 오물거리는 동시에 군만두 배를 갈라  뻘건 칠을 한 뒤 바로 이어 입안 가득 넣고 행여 당면 한 올이라도 입 밖으로 미어져 나올 새라 입을 앙다물고는 야무지게 씹는다. 계란 노른자로 인해 더욱 걸쭉해진 국물과 그 와중에도 아삭하는 느낌이 순간 순간 느껴지는 군만두와의 향연이 입 속에서 한바탕 벌어지고 있을 무렵 시야에 포착되는 주변인들의 뜨악한 표정이 절제를 강하게 종용한다. 순간,  정신이 들며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찰나 왼쪽 눈 한켠으로 탱탱하니 터질 듯한 순대가 교태를 부리며 엉켜있는 게 들어온다. 요망한 것들…. 그러나 이미 간과 허파를 옵션으로 한 쫄깃한 순대 한 접시가 내 앞으로 놓이고 있다. 그때부터 오직 순대만 본다. 어느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그저 묵묵히 쉬지 않고 그 탄력 있는 감촉만을 음미해야 한다. 다소 뻑

뻑한 간을 소금에 찍어 마지막으로 툭 털어놓고는 뜨거운 어묵 국물로 마무리. 깔끔하다! 

어지럽게 벌려놓은 판을 마치 남짓인 양 외면하고는 황망히 계산을 끝내고 돌아 나오는 발

걸음엔 그래도 좀 전과 다른 여유가 실려있다. 제 아무리  강한 바람이라도 혹은 무릎 꺾일 

만한 태클이라도 엄하게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아주 기분 좋게 실려있다. 눈 돌아가

게 부대끼는 일이 많은 세상…. 가끔 메마른 걸음 늦추고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 불량한

(?) 맛에 중독되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