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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라디오 -라디오는 영원하다. 글 | 함민복 시인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가정형편 조사’라는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티브이 있는 사람 손들어. 자전거 있는 사람. 시계 있는 사람. 책상 있는 사람. 라디오 있는 사람. 가정 형편이 힘들었던 나는 한번도 손들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다 살아 계신 사람 손들어. 끝내 손들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다가 손 한번 들 기회가 왔다 싶어 번쩍 자신 있게 손을 치켜들려는 순간. 손 내리고, 이번엔 너무 많으니까 아버지 돌아가신 사람. 어머니 돌아가신 사람.

초등학교 시절 ‘가정형편 조사’는 끝내 손 한번 들어 보지 못하고 끝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집 벽 한쪽에 매달려 있던 스피커를 생각했다. 그 스피커가 없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라디오 있는 사람 손들라고 할 때 자신 있게 손을 들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스피커가 있었다. 면소재지가 있는 장터에서 출발한 스피커 줄(삐삐선)은 큰길가 미루나무 가로수를 타고 야산의 나무들을 지나 집 앞 대추나무 가지를 통과하며 오리를 달려와 우리 집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사촌 형을 따라 면소재지에 갔다. 사촌형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 장터 사거리에서 금광촌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세 집쯤 지나쳤을까. 사촌형이 걸음을 멈추었다. 유리문 안쪽에서 파랗고 붉은 불빛들이 반짝였다.

“저기서 스피커 방송을 보내는 거야. 이 집이 방송국이야.”

방송이란 말도 모르는 나는 그저 그 작은 꼬마전등 불빛이 마냥 신기해 유리창 너머를 넋을 놓고 들여다보았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동네에 살아 석유 등잔불을 켜다가 바느질하려고 어머니가 촛불만 켜도 너무 환해 잠이 오지 않던 내게 그 작은 색불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양철지붕 방송국을 보고 돌아오는 내내도 작은 전등 불빛들이 눈앞에서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길을 지웠다.

삼십 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리맡에 녹두알 만한 불빛을 켠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는 대중매체 중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신문이 하루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신문을 보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지 않으며 생활한 지도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니 자연 라디오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라디오는 내게 쓸쓸한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1985년 단기사병을 받고 있던 내가 밤 근무를 위해 출근하던 길에 버스에서 들은 소식도 그중 하나다. 여덟 명이 사망한 고환 탄광촌 광부 매몰 사건. 큰집 사촌형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들렸고 나는 도시락이 든 가방을 든 채 우두망찰해 서 있었다. 그러나 라디오는 기쁨에 찬 나의 손을 들어 주기도 했다. 지방방송이 각 중학교 수석 졸업자 명단 발표를 통해 근동에 사는 친척들 앞에 어려서 그렇게 들고 싶어도 들지 못했던 나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유선 방송국. 라디오 하나로 전파를 수신하고 거기서 수신 한 전파를 간단한 발신기를 이용해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으로 배달하던, 본체 하나에 스피커 수십 개가 주렁주렁 달린 기계. 지금으로 말하면 유선방송국 같은 스피커라디오가 내가 만난 최초의 라디오였다.

지금은 그 스피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방송 내용이 무엇이었던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노래가 흘러 나왔고 무슨 연속극을 듣는다고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간단한 일거리를 챙겨와 방송을 들으며 수다를 떨던 기억. 또 스피커가 없는 집에서 벼 타작 같은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큰일 잡아 놓은 날의 일기예보를 물으러 왔던 기억정도가 흐릿할 뿐이다.

그런데 스피커라디오의 외형만은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쌀되 만한 크기의 나무상자, 좌우로 비틀어 끄고 켤 수 있는 밤톨만한 스위치(방송을 끄고 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항상 스위치는 켜 있었고 방송을 보내는 곳에서 끄고 켰을 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스피커 천. 스피커라디오의 외형에 대한 기억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는 이유는 스피커방송이 중단되고도 그 자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랫동안 남아 있던 스피커 때문일 것이다. 왜 어른들은 그때 방송도 나오지 않는 스피커를 그대로 걸어 두었던 것일까. 매일 소리가 흘러나오던 한쪽 벽면이 허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시 방송이 재개된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일까.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나오고 스피커라디오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물러났다. 외갓집 큰누이가 밭에 풀을 뽑으면서 라디오를 들고 다녔고 과수원을 하는 이모부는 원두막에서 라디오를 베고 잠을 잤다.

그쯤 스피커라디오는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뜯어보고 싶었던 스피커라디오를 분해해 볼 기회가 왔던 것이다. 분해결과는 허망했다. 스피커 통속은 거의 비워있었다. 자석과 작은 부품 몇 개가 전부였다. 스피커라디오 부속품에 거지반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말굽자석을 놀이기구로 얻은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석은 소리내던 추억을 다 못 잊었는지 쇠만 만나면 쩍쩍 소리를 냈다. 붙여 볼 쇠붙이가 그리 많지 않아 쇠붙이를 찾자 이곳저곳을 헤맸던 까마득한 옛 시절.

‘함 시인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고향을 떠나 도시로 전학 가는데 동네 친구들이 선물을 건네주는 거 있지. 그게 뭔지 알아. 스피커에서 뜯은 말굽자석.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꽤 상징적인 선물이지. 고향, 고향 친구, 내가 멀리 떠나왔어도 나를 당기는 힘이 그때 선물로 받은 스피커 말굽자석에서 나온 건 아닌지.’

스피커 말굽자석을 가지고 놀던 추억은 동년배들이 같았던지 나와 출신 도가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