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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라디오를 싣고....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하고 지속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시각이다. 예를 들어 ‘하늘’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것은 하늘의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영상’이다. 하얀 구름이 드문드문 떠있는 푸른 하늘이나,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찌푸린 하늘, 또는 붉게 물든 황혼일 수도 있다. 어떤 말을 듣건 그 단어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항상 시각적인 영상을 그려낸다.
비슷한
예로 팝 아티스트를 생각해 보자. ‘마돈나’란 이름을 듣는 순간 연상되는 것은
그녀의 히트곡이나 성장배경, 음악적인 감동이 아니다. 곧바로 마돈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또는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 장면일 수도 있다. 시각은 이처럼 다른 모든
감각에 앞서 우리 감수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1의 감각이다.
음악의
개념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TV는 대중음악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바로 이 시각적 우월함 때문에 TV가 음악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힌 것 또한 사실이다. 음악이 지닌 다양한 느낌과 무한한
감동의 세계가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느낌으로 고착화되고 노랫말이 주는 메시지마저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노래보다는 외모가 중시되는가
하면, 패션 리더가 진정한 음악인으로 평가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아직 라디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라디오만큼 음악이 지닌 다양한 느낌을 충실히 전달하는 매체는 없다. 아울러 지난
추억을 새록새록 되살려주는 것 또한 라디오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 하나이다. 때로는
멋진 사운드로 귀를 즐겁게 해 주는가 하면, 때로는 언젠가 들어본 아름다운 멜로디로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음악 중에는 라디오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목에 라디오가
들어간 히트곡만 백여 곡에 달하고, 내용에 라디오가 등장하는 노래는 수천 곡에
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카펜터스Carpenters의
1973년 히트곡 Yesterday Once More 가 아닐까 싶다. 빌보드 2위까지 오른 이 곡은
현재까지도 라디오 신청 빈도수 10위권 안에 머물고 있는 손꼽히는 20세기 팝 클래식이다.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On The Radio 도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다. 당신이 내게 쓴 편지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걸 들었다는 내용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부드럽게 시작해서 경쾌한 디스코 비트로 전환되는 이 특별한 사랑 노래는 후에 컨트리
가수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에 의해 좀 더 애절하게 불려지기도 했다.
이
외에 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까지 인기를 모은 라디오 송으로는 그룹 퀸Queen의 Radio
Ga Ga 와 오토그래프Autograph의 Turn Up The Radio, 그리고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버글스의
곡은 비주얼 시대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노래가 미국 M-TV 개국 방송의 첫 번째 뮤직 비디오로 방영되었다는 점이다. 비주얼
시대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로 가득한 이 노래를 개국 축하곡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1980년 당시 M-TV가 얼마나 자신만만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가하면,
라디오라는 소재로 일종의 음악적 실험을 한 뮤지션들도 있다. 독일의 전자음악 그룹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Radio Activity 나 캐나디언 록 밴드인 러쉬의 The Spirit
Of Radio, 프랑스의 아트 록 그룹 공Gong의 Radio Gnome 연작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작품들 속에는 라디오의 각종 소음이 효과음으로 삽입되는가 하면 초현실적인
노랫말과 우주적인 사운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라디오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각별한 관심이 느껴지는 노래가 있는 반면에, 가끔은 라디오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래들도 있다. 특히, 펑크 록 계열이나 흑인 래퍼들의
경우에 라디오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거대 음악산업의 표상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Guerilla Radio 나 클래쉬Clash의
This Is Radio Clash 는 그런 좋은 예이다. 심지어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곡 중엔 How To Kill A Radio Consultant 란 노래도 있다.
하지만,
최초의 라디오 전파가 공기를 갈랐던 1906년의 어느 날 이후 오퍼튜니티 호가 화성을
탐사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라디오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은 여전히 ‘추억’ ‘향수’
‘친구’ ‘사랑’ ‘낭만’ 등의 따스한 것들이다. ‘추억의 목소리’로 불리는
카렌 카펜터는 히트곡 Yesterday Once More 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라디오를 듣곤 했어요. 노래가 흘러나오면
따라 불렀고, 그 노래들은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지요. 그때는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내가 따라 부르던 노래들은 사랑 노래였어요. 나는 가사를 전부 외우곤 했지요.
그 오래된 노래들은 여전히 내게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라디오의
느낌을 이렇게 잘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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