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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3화 글 | 조정선

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글 | 조정선 MBC-FM 4U PD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방송사는 전화 등살에 자주 업무가 마비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화가 거의 걸려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장난전화가 없어진 탓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국민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았던 때문인지, 아니면 괜한 심술로 스트레스를 풀려 했는지는 몰라도 청취자를 위한 생방송 코너에는 실제 참여자보다는 장난전화가 더 많이 걸려와 제작진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전화를 걸고 수화기를 든 채 끊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화자 암세포 증식형’에서부터, ‘거기 방송국 맞아요?’ 물은 뒤, ‘그렇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방송국 맞대’ 하고는 끊어버리는 ‘단순 호기심 충족형’ 그리고,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메롱~’으로 일관하는 ‘유아형’ 등이 장난전화의 대표적인 3가지 유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간단한 장치로 발신자가 추적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는 그런 전화가 오지 않을 뿐더러, 만일 왔다고 해도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정신 질환자’의 ‘정상적인(?) 전화’이다. 또 한 가지는 방송된 내용의 시정을 요구하는 전화나 항의전화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유난히 학구열이 높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진행자가 못 생긴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무식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게 당연하리라. 그래서 직접 바로 잡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의 소유자인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했다거나, ‘벌받다’ 할 것을 ‘죄받다’라고 한다든지, ‘다르다’를 ‘틀리다’로 ‘오른손’을 ‘바른손’으로 방송하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진행자가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도 듣는 이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침해받았다고 하면, 특히 전화 후유증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무리 큰 말실수를 해도 사무실은 평소와 거의 다름없이 띄엄띄엄 벨이 울린다. 그 대신에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는 마비가 될 정도의 메일로 도배 질이 되며, 뉴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 포털 사이트로 일파만파 번지고, 당사자는 어느 사이에 조용히 매장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장난전화나 항의전화가 난무했던 시절이 그래도 순수했다는 생각이 들며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오늘은 청취자의 항의성 전화와도 연관이 있던 진행자의 설화
(舌禍) 에피소드를 좀 들어볼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MBC 라디오의 낮 시간대 진행자 S모씨는 입이 거칠고 직설적인 것으로 유명했다. 필자가 연출했던 ‘100분 쇼’라는 프로그램이 생방송 중이던 어느 날, 한 가수 매니저에게서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 즉은 마포 대로에 있던 모 빌딩 옥상에서 한 사람이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어서, 운전자들이 그것을 보느라고 일대 교통이 마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망설였다. 전국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이라서 지방에 있는 청취자에게는 서울 거리의 교통정체가 뉴스거리가 될 수도 없을 터. 하지만 워낙 막힌다고 하니 긴급 소식으로 사건 개요가 적힌 쪽지를 부스 안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든 S모씨는 시키지도 않은 애드리브를 날린다. “아니, 자살을 하려면 차들 안 다니는 한적한 한강다리를 골라 떨어질 것이지, 왜 사람 많이 다니는 거리의 빌딩 옥상에 올라가 소동을 벌이는 거예요” 그의 무시무시한 표현을 듣고, 괜한 제보를 소개 했구나 후회를 하는 순간, 생방송 스튜디오는 분노한 청취자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보다 오래 전에 적장을 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거룩한 분노의 진주 기생 ‘논개’를 언급할 때 ‘기생이면 술이나 따르면 되지’ 해서 점심 식사 후 나른해 하는 제작부서 직원들을 극도의 전화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심야의 라디오 공개방송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예의가 워낙 바르니까 심한 싸움 같은 것은 안 하죠?” 그는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저기서 수박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니 까요” 머리를 수박으로 표현한 게 오싹하도록 사실적이다. 


가수 ‘신효범’이 역시 내가 연출을 맡던 ‘이문세의
2시의 데이트’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학창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람을 섭외해서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구성이었기 때문에 마침 여고시절 동창이었다는 개그맨 L씨를 전화로 연결하였다. 소풍 가서 오락 반장 했던 추억담이며, 좋아했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터졌다. DJ ‘이문세’가 이런 말을 꺼냈던 것이다 “신효범씨도 L씨처럼 결혼해서 떡 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 잘 살아 야죠” 이게 무슨 말인가? L씨는 당시 이혼한 지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이가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에 소개했던 호랑나비 ‘김흥국’의 에피소드는 독자로부터 재미있었다는 평이 많았다
.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일은, 당사자인 ‘김흥국’의 반응이었다. 그 역시나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즐거워했고, 다음 호에 미처 소개 안 된 실수담을 추가해 달라는 청탁까지 잊지 않았다. 그 하나. 그가 생방송 중에 스포츠 티를 입고 온 젊은이에게 시비를 걸었단다. “아니, 젊은이는 좋은 우리말도 많은데, 꼭 그렇게 대문짝만한 영어로 쓴 옷을 입고 다녀야겠어요? 그리고 ‘우클라’가 뭔 말이요?” ‘우클라’는 영어로 UCLA, 다름 아닌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LA 캠퍼스’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 방송사 복도에서 20대 청년이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단다. “저, 조PD라고 합니다” 동물적인 감각의 소유자 우리의 ‘김흥국’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PD로구나’ 생각하고 재빨리 홍보에 들어간다. “으아! 조PD, 10대 가수 ‘김흥국’ 아직 안 죽었어요. 노래 좀 자주 틀어줘요” 이 말을 들은 ‘조PD’는 어쩔 줄 모른다. “네? 그게~저, ‘인순이’씨의 노래 있잖아요. 그 ~~ 조PD인데요” 이에 질세라 맞받아치는 ‘김흥국’. “아니, ‘인순이’ 노래만 틀지 말고 내 노래도 좀 틀어달라고, 같은 가순데...” 마지막 보너스로 하나 더. 축구에 관심이 많은 ‘김흥국’은 라디오 생방송 중에도, 중계 중인 TV 모니터에 흠뻑 빠져있다. 그 날은 남편을 먼저 보낸 한 중년 여성의 슬픈 사연이 전화를 타고 흐르는데,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그가 한마디 던진다. “남편하고 헤어지셨다 구요. 성격 차이셨나 보죠?”


‘김흥국’ 그는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