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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꽁트. 1화 글 | 윤주혜

사랑에도 통역이 필요한가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몇 달 전의 일이다.  밤 12시, 수취인 불명의  문자가 내 폰에 처음으로 뜬 그 날부터 모든 게 다신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나야~ 너무 늦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 너처럼 멈춤 신호에 정확하게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나봐. 우리 … 왜 이렇게 된 거지??

그 후로 보름에 한번 꼴로 문자가 왔다. 발신 번호가 수신 거부되어 있어, 잘못 온 문자를 되돌려 줄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한두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 지영우는 백수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K대 경제학과를 1학년 다니다 휴학한 지 2년 된 골수 백수다. 벌써 1년째 냄새나는 고시생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꼭 고시를 보기 위해 이 고린내 나는 고시원 바닥에 우렁이 마냥 붙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딱히 갈 곳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_-;;;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해도 나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잘.난.놈이었다. 잘 나가는 은행 지점장이었던 아버지에, 자상하고 요리 잘 하는 어머니, 사랑스러운 여동생까지, 정말 한 마디로 완벽한 가족이었다. 이 완벽함은 마치 너무 밝은 곳에 서 있을 때처럼 눈부셔, 그 밝음의 한 뼘 아래 가늠하지 못할 그늘이, 무서우리만치 커다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조증에 걸린 사람들 마냥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던 우리 집. 사람들이 살면서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란 것이 용서되지 않는, 아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꼴갑떠는 가족이었다.

추락은, 5월의 햇살이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던 어느 날 시작되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들. 지점장인 아버지가 수십억의 은행돈을 몰래 빼돌려 모 국회의원의 돈줄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불법 뇌물 수수건이 밝혀지면서 아버지의 불법 공금횡령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우아한 자존심을 생의 목표로 삼던, 여리디 여린 우리 어머니는 얼굴을 들고 살 수 없다고 여동생을 데리고 외가가 있는 미국으로 가버렸다.

누가 하느님께서 감당할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했던가, 괴로워할 틈도 없이 몰아치던 폭풍이 그치고, 벗어날 수 없는 어둠 속에 몸과 마음이 갇혀 있던, 지난 1년이었다. 정신과 육체의 공동(空洞). 공부는 삶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가 남겨주고 간 돈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생활이었다.

난 하루 종일 코딱지만한 방에 틀어박혀 코딱지를 후비며 라디오만 듣고 살았다. TV는 싫었다. 나만의 공간에 무차별적으로 침범한 강도처럼, 화면 속 인물들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재잘재잘, 하하 호호 재잘거리기만 했다. 그러나 라디오는…무언가 달랐다. 불을 모두 끈 채, 창문으로 스며드는 불빛 속에 앉아 조용히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면, 오직 디제이의 목소리만이 내 귀를 간질이고, 슬픈 곡조의 노래 소리는 내 심장을 녹였다.

하여튼 내 삶의 초라함과 남루함이 나태와 권태와 뒤섞여,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비굴한 위안이나 하던 내게, 수취인 불명의 문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날짜를 계산해 문자를 기다리게 되고, 점심때라도 일어나 세수하고 끼니를 챙겨먹게 되었다. 변화의 이유는 설레임이었다. 내 인생이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띵동띵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냥 왠지 모를 끌림이랄까… 이 사람의, 아니 이 여자의 간절함이 나를 자꾸 끌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간절한 그리움이 내게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즐겨듣던 라디오 잊지 않았지? 내일 밤 10시야.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꼭 들어야 해!?

즐겨듣던 라디오…밤 10시라구? 헌데 이 여자는 남친이 문자를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도 확인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쨌든 다음 날 밤, 난 열심히 내 라디오를 괴롭히고 있었다.

DJ : 깊은 밤이네요.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밝은 것 같네요. ?인생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도록 시원하게 뚫린 대로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기도 하는 미로와도 같은 것이 인생이다?라고 AJ.크로닌이 말했죠.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십니까?…

지금은 밤 10시 15분. 계속 라디오 채널을 돌리며, 그녀의 사연을 찾고 있다. 중학교 시절, 라디오 심야방송은 모두 꿰고 있던 나였지만, 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행태인가. 각 방송의 FM, AM의 음악소리와 목소리가 뒤엉킨 불협화음 속에서 그녀의 사연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허나 보물은 숨겨져 있기에 더욱 애타게 찾고 싶은 것. 한참을 씩씩대며,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빠른 테크닉을 보이던 끝에, 한 여자 디제이의 몇 마디가 내 귀에 와 걸렸다.

DJ : 아~ 오늘도 보내셨군요, ?그놈바라기?님! ㅋ 이 분 아이디 참 웃긴 것 같아요. 제가 말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오네요. 그놈바라기 ㅋ 아, 죄송합니다. 사연을 읽어 드릴게요. 며칠 전 이 분이 보내신 사연, 여러분 중에도 기억하실 분 계실 거예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언니를 위해 사연을 보내셨던 분이죠.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시다, 언니의 일기 속에 있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하셨다죠. 편지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아~~ 드디어 오늘 편지 공개됩니다. 모두 귀 기울이세요!!..

?1년만이구나. 널 못 보고 바로 비행기를 탔어. 어쩌면 널 보기가 두려웠을 거야. 너 나한테 화났니? 아님 내가 더럽게 느껴진 거니?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 사실 많이 힘들었어. 너랑 내가 서로 마음을 확인한 날 기억나? 그때 참 좋았었는데…

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지. 그리고 나를 많이 좋아한다고도 했어. 나를 만나면 공부가 더 잘된다고 말했을 때 나 정말 좋았다! 니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 그런데 말야 난 왜 너의 공부까지 질투를 했을까? 하고 싶은 것도, 내가 무얼 잘하는지도 몰랐던 그때, 모든 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나에 비해 넌 언제나 확실했어. 그렇게 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니가 멀게만 느껴졌던 거야. 열일곱. 난 너무 어렸어. 그 오빠, 정말이지 날 많이 아껴줬던 사람이었어. 항상 나에게 친절했고 나를 귀여워해주었지.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 머릿속이 너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지배당했던 게.. 그때 내가 제때에 브레이크만 걸었더라면… 내가 바보였나? 너한테 말하면 이해해줄 거라 믿은 게…넌 그 일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했지? 그리고 넌 바로 학원을 끊었어… 강가에 가면 강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강이 왜 아래로 흐르지 않고, 거슬러 올라 눈물이 되는지를 알 수 있을까. 아프고 슬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지. 그러나 사랑이 주는 행복의 대가로 이별은 너무 가혹한 시련이야. 그 길 기억나니? 학교 옆 시청 공원에 있던 라일락 오솔길. 라일락 향기에 취해 나누었던 첫 키스의 기억만은 잊지 않겠지. 비 오는 날 함께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만이 우리의 첫사랑을 기억할 거야.

나의 첫사랑 영우.,안녕…

헉! 영우!! 그러면.. 그러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동명이인일거야. 아니야 >ㅁ<안돼~

DJ : 아… 참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언니분이 상처를 많이 받으셨겠어요. 영우라는 분이 오늘 이 방송을 들을 수 있다면, 하늘에 있는 재인언니도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그놈바라기님이 쓰셨네요. 첫사랑은 평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독감이라죠. 하지만 이 독감만은 오늘, 피하고 싶지 않네요.  자! 신청하신 곡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브로 페업니다.

-_-;;...... 재..인..이. 니가 죽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