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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지랄 샘의 삶의 이력에 대해 알아보자.
아마도 1998년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나라에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는 이유로 온통 벌집 쑤
셔놓은 듯 그야말로 난리가 아닌 시절이었다. 도대체 외환보유고가 무엇인고, 무슨 소중한
보물단지라도 되는지 비었다고 국난이니, 치욕이니 하면서 울상을 짓는가.
외환보유고, 즉 달러를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돈은 10원, 100원 할 때처럼 원이다. 원화
라는 얘기다. 원화는 우리 동네만 벗어나면 맥을 못쓴다. 람보나 터미네이터처럼 힘이 센 나
라 미국. 오직 미국 돈인 달러만이 다른 동네에서도 목에 기부스한 것처럼 힘주고 다닌다.
그렇게 소중한 달러가 비었으니, 달러의 나라 미국에 가서 쪽 팔림을 무릅쓰고 슬슬 기면서
애걸복걸할 수밖에.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신조어가 나타났다. 구조조정이란 것인데, 쉽게 말해 '책상
을 빼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애새끼들 학원비 벌랴, 집 장만하랴, 가끔 외식도 하
고, 놀이공원도 가고, 남의 집 새끼들한테 안 꿀리려면 명품에 핸드폰까지, 그것도 디지털
카메라폰이 달린 것으로 사줘야 하는데, 우리의 아빠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수퍼맨이
되어 계속 돈을 벌어와야 하는데, 그런 우리의 아빠들이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책상을 뺏
기고, 거리로 쫓겨났다.
구조조정은 사천왕의 진검처럼 해가 갈수록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45세면 당연히
'사오정'이 되어 책상을 빼야 하고, 56세까지 버티고 있으면 '오륙도'라고 해서 도적놈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38선'이라는 말까지 생겨나 38세에도 책상을 비워주어야 한다.
각설하고, 우리의 이지랄 샘은 1998년 책상을 빼는 것만이 최선인 시대를 만나 책상을 빼앗
겼다. 이전까지 충무로 인쇄바닥에서 인쇄밥을 먹고 살았는데, 자신의 밥줄이었던 인쇄바닥
에서 쫓겨난 것이다.
비록 밥그릇을 빼앗겼어도 식충이처럼 좁은 방구석에서 빈들빈들 놀 수만은 없었다. 마누라
랑 애새끼가 배고프다고 빽빽 울어대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학원
강사로 잔뼈가 굵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곳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학습과 온라인 학습을 병행하는 곳이다. 온라인 학습을
이곳에서는 EGR이라고 부른다. Educational Growth Revolution. 교육의 성장 혁명이라, 해
석만 놓고 봐서는 그럴 듯해 보인다. 어떤 일이든 이처럼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 교육
과정은 컴퓨터 학습으로 집중력, 변별력, 수용력, 파악력, 이해력을 기르게 한 다음 인터넷
상에 올려진 국어, 영어, 수학 등 학교 교과과정의 문제들을 제한된 시간내에 풀도록 학습시
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럴 듯한 교육과정에도 불구하고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EGR을
'이지랄'로 부르고, EGR 강사를 '이지랄 샘'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이지랄 샘은 EGR
학습실이 네 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4반을 맡고 있다고 해서 '지랄포'라
고 불린다.
아이들은 오직 인터넷 상에 '에듀바이탈'이라고 만들어 놓은 학습 프로그램에서 친구들에
게 엽기 쪽지를 보내거나 아바타 몰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의 이지랄 샘은 이곳에서 벌써 3년을 일하고, 올해로 4번째의 새해를 맞이했다. 처음에
는 힘든 점도 참 많았다. 처음으로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니 그들의 문화가 낯설게 다가왔다.
어른과 아이, 강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의 골을 메운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이다. 특히 언어의 장벽을 넘는다는 게 무척 힘들었다.
초창기 때의 일이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샘 이거 삐꾸됐어요."
"뭐라고?"
"컴퓨터 애자됐다고요."
애자란 무엇인가. 바로 장애자의 준말. 그것을 아이들이 자세히 설명해 줘서 그 뜻을 이해한
이지랄 샘은 처음엔 몹시 당황했다. 나중에는 되게 불쾌해졌다.
"이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이지랄 샘은 그 아이를 불러 따끔하게 야단을 쳤다.
"그건 나쁜 말이야. 장애우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어.
누가 너보고 애자라고 놀리면 좋겠어?"
"네…"
"뭐라고! 이 녀석이…"
어쩐지 아이는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역시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웬
참견이냐는 표정이었다. 이후에도 아이들 사이에서 애자란 표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끝마
다 애자가 따라 다녔다. 이지랄 샘이 어릴 적 쓰던 이새끼, 저새끼라는 표현이 애자새끼로
변해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쓰는 애자라는 표현에는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악의가 담겨있지
않다. 그냥 그들만의 언어 습관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이런 걱정만큼 어리석은 걱정도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참 문제가 많아.'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해보라. 정말이지 당신들은 어린 시절에 은어나 욕설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게만 살았는가.
이후 이지랄 샘은 아이들과 함께 애자란 표현을 같이 사용했다. 잘못을 하거나, 시험 점수가
나쁠 때 "이 녀석 애자 아니야" 하고 말하면 아이들은 재밌다고 뒤로 자빠진다. 어른과
아이, 강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언어 습관의 체화 역시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또 한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첫 수업을 하던 날, 이지랄 샘은
아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당연히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공부 안 하는 나라로 보내주세요."
"왜 모르는 문제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공부한 것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역시 우리의 아이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새해 소망을 빌어도 공부밖에 할 말이 없으니 말이
다. 이지랄 샘도 새해 소망을 빌었다. 새해에는 아이들이 아는 문제만 나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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