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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2 화 - 십삼월의 사랑
(M) 주제음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 Toy
* 이 사연은 경남 마산의 어느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입니다.
남 7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이제 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런 기대를 해 본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하던 시절.
난 얘기하곤 했으니까.
만약에, 우리의 이야기를 라디오 사연으로 써보낸다면
제목은 십삼월의 사랑이 될 거라고.....
(M) A Love So Beautiful / Michael Bolton
(E) 병원 소음들
남 국군 수도 통합병원에서 의가사 제대를 하고
난 어느 병원의 인공신장실에 누워 있었다.
아직 젊은데.
아무 것도 못하고, 이렇게 맥없이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게
참 한심하고 서러웠다.
내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선 일주일에 두번씩
투석을 받아야 했다. 어쩌면 평생.
좋은 것을 봐도 좋은 줄 몰랐고
맛있는 것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생에 대한 모든 의욕이 사라져 있었다.
그날도 난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네시간의 길고 긴 투석을 견디고 있었다.
여 뭐 들어요?
남 네?
여 음악 들어요?
남 네.
여 무슨 음악? 같이 들어봐도 돼요?
남 대답할 사이도 없이, 여자가 내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
자기 귀에 꽂는다.
여 어. 이 노래 나도 좋아하는 노랜데.
남 간호사에요?
여 네. 신입이에요. 음악 잘 들었어요.
남 나에게 이어폰을 다시 건네주고, 제 갈 길을 갔을 뿐인데.
난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천사가 진짜 있다면,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M)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 있습니까. / 김성호
남 그날 이후로
난 병원 가는 날을 오히려 기다리게 됐다.
갈 때마다 ‘오늘은 데이트 신청을 해 봐야지’라고 마음 먹었다가
말 한마디 못붙여보고 돌아서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던 하루는,
투석을 다 마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 앞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그녀와 마주치게 됐다.
여 어? 안녕하세요.
남 (몰랐다는 듯) 아~ 이제 끝나셨어요?
여 네. 그런데 아직 집에 안 가셨어요? 투석 받은 날은 피곤해서
많이 돌아다니면 안되는데?
남 네. 그게.. 친구집에 컴퓨터가 고장났다 그래서요. 그거 좀 고쳐주러
가려구.
여 아~ 컴퓨터 잘하세요?
남 네? 뭐 좀....
여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다음주에 뵈요.
(E) 가는 소리
남 저기요.
여 네?
남 생각해 보니까 컴퓨터는 나중에 고쳐줘도 될 것 같은데.
여 네?
남 저랑 차 한잔만 하시면 안될까요.
(E) 커피잔만 만지작 만지작
남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한모금 입에 대보지도 못한 채
차갑게 식어갈 때까지. 난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 뭐.... 하실 말씀이라두....
남 요즘 병원 일 힘드시죠.
여 아니에요. 제 일인데요 뭐. 재밌어요. 보람도 있구.
남 네..... 후 안이 좀 덥네요.
여 전 딱 좋은데?
남 아.....네......
여 근데 어디 안좋으신 건 아니죠? 안색이 좀..
남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할 말을 못하고 있어서
답답해서 그러나봐요.
여 말씀하세요. 답답하시면 안되죠. 아까두 말씀드렸지만 투석 받은 날은
컨디션 조절을 잘하셔야 되는데.
남 진짜 말해도 돼요?
여 네. 말씀하세요.
남 진짜죠.
여 네에.
남 저 윤은서 간호사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어쩌죠.
(M) 예뻐요 / 스윗소로우
(E) 걸어가는 소리
여 저 여기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
남 네...
여 먼저 가세요.
남 대답... 안해주셨는데...
여 아...
남 물론 지금 제가 건강도 안좋고... 이런 말 할 처지 아닌 건 잘 아는 데....
여 아니에요. 그래서가 아니라. 저는 간호사잖아요. 그것도 신입이구요.
환자하고 만나다가 들키면, 저 짤려요.
남 ....네에....
(E) 택시 오는
여 택시 왔네요. 저 갈께요, 죄송해요.
(E)택시 타고 가는
남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으면서도,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나니
기분이 씁쓸했다. 그냥, 내 이상형인 그녀와 차 한잔 마실 시간을
공유한것으로 만족해야지. 계속 얼굴 볼텐데 불편하게 해주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M)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 성시경
남 그리고 몇주일 동안,
난 병원에서 그녀를 만나도 가볍게 목례만 하며 지나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 저기요,
남 네? 저요?
여 네.
(E)하더니 가까이 오고
여 (작고 빠르게) 시내에 베토벤이라구, 음악다방 새로 생겼는데. 가 보 셨어요?
남 네?
여 아니, 안가보셨으면, 가보실래요? 이따 저.. 끝나고.
남 .....
여 오늘은 투석 하셔서 좀 피곤하시겠다. 그죠. 다음에 갈까요?
남 아뇨. 오늘 가요.
여 (마음 놓이는) 가실 수 있겠어요?
남 네. 오늘. 가요. 저 지금. 컨디션 최고 좋거든요?
(M) 그녀를 잡아요 / 카니발
(E) BG로 음악 나오고 -
여 음악 좋죠.
남 네.
여 저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요. 음악 듣고 있으면 내가 딴 세상 사람이
된 것 같고. 다른 생각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좋아요.
남 잊고 싶은 게 있어요?
여 뭐,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집 걱정, 부모님 걱정, 앞으로 내 미래나
다들 하는 그런 걱정들이요.
남 저도 은서씨 덕분에 여기 오니까, 이런저런 걱정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다음 주에 또 투석받으러 가야되지, 식이요법을 잘하고 있나
뭐 이런 거 다 잊을 수도 있고.
여 그래요. 다 잊구요. 그냥 음악만 들어요.
남 정말 다른 세계가 있어서, 현실을 피해 그녀와 둘이 그곳으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순간만은 난 건강했고 행복했다.
(M) 당신과 만난 이 날 / 우성민
남 믿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난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됐다.
찻집에도 가고, 유원지에도 가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병원에서 만나면, 두 사람만 아는 눈짓을 주고 받았고
크리스마스와 서로의 생일도 함께 했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하며 즐기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칼륨이 몸에 쌓여갔고.
몸은 계속해서 피곤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네 시간 동안 투석을 받으면서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나 보니 은서가
내 옆에서 울고 있었다.
여 정신 들어?
남 어? 왜 그래?
여 못 깨어났잖아.
남 내가? 그랬어?
여 무슨 일 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남 미안...
여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옆에서 컨디션 조절도 못해주고.
맨날 놀러가자고만 해서.
남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 괜찮아.
여 혹시 가족중에.... 신장이식해주실 분 안계셔?
남 어?
여 수술 받기 전엔 평생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데....
남 안 그래도, 형이 신장이식 해주겠다고.. 나서긴 했었어.
여 조직이 안맞아?
남 70% 정도는 맞대.
여 그런데 왜. 뭐가 문젠데.
남 근데 형의 신장도 건강한 편이 아니라서, 나한테 떼주고 나면
10년이나 20년 후엔 형도 나처럼 신부전증에 걸릴 확률이 있대.
여 그거야.... 건강관리 잘해주면 되지 않을까?
남 우리 형도 자기가 운동 열심히 해서 살도 빼고 혈압 관리도
잘하겠다고 하는데. 난 못믿겠어. 그냥 내가 고생하면 되지
왜 괜히 멀쩡한 형까지... 그렇겐 못하겠어.
여 ......그래두....
남 미안해. 건강하지도 못한 주제에, 널 좋아해서.
여 그런 소리 말랬잖아. 나 속상하게 계속 이럴래?
남 우는 그녀 얼굴을 보니, 수술 정말 받고 싶었다.
좀 뻔뻔하게 일단 신장을 받고, 그 다음을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안될 일이었다.
(M) C'mon Through / Lasse Lindh
(E)뛰어오는 소리
여 무슨 일이야? 급한 일이라는 게 뭔데? 어디 아파?
남 아니야. 멀쩡해.
여 그러네? 멀쩡하네? 그런데 왜?
남 나 수술 받을 수 있을 것 같애.
여 뭐? 형 신장 받기로 했어?
남 아니. 멀리 사는 우리 누나가 와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나랑 100% 일치한대. 쌍둥이도 그렇게 맞긴 힘들대.
여 정말이야?
남 누나가 신장 주겠대.
여 너무 잘됐어. 잘됐어!!
남 고마워.
여 내가 뭘 한 게 있다구 고마워. 난 진짜 봉덕씨 아플 때
발 동동 구른 거 밖에 한 게 없는데.
남 그래도 고마워. 내 옆에 있어준 거.
나한테 힘내라고 말해준 거. 그거 다. 너무 고마워.
여 수술 잘 받아야 돼? 내 생각하면서. 금방 회복해야 돼?
남 오늘 저녁에 짐 꾸려서 서울로 갈거야.
가서 한동안은 전화 못할거니까, 그런 줄 알구.
여 응.
남 건강해져서, 좀 더 당당해져서, 니 앞에 설께.
조금만 더 기다려줘.
여 응!
(M) 아껴둔 우리 사랑을 위해 / 이주원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남 긴긴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아랫배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형광등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정신이 들고, 가족들과 잠깐 대화를 나눈 후
난 전화를 찾아 들었다.
그녀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E) 통화음
여 여보세요.
남 나야.
여 어! 수술 잘 끝났어?
남 어. 방금 일어났어. 아무렇지도 않아.
여 거짓말. 아무렇지 않을 리가 있어? 대수술을 했는데?
남 아니야. 진짜 괜찮아. 수술 끝나자마자 막 돌아다니고. 완전 쌩쌩
날 것 같애.
여 진짜?
남 진짜라니까?
(E) 문 열리는 소리
여 거봐. 누워 있으면서.
남 은서야......
(E)걸어 들어오는 소리
여 괜찮아?
남 언제 왔어.
여 수술 하기 전부터 와 있었어.
남 뭐?
여 나 그동안 오프 다 반납해서 나흘 휴가 얻었어.
남 정말?
여 응. 나 잘했지.
남 고마워. 얼굴 보니까, 눈물나게 좋네.
여 일어나지 마. 많이 아팠지.
남 너 보니까 하나도 안아프다. 진짜로.
여 순 뻥쟁이. 잘 견뎌줘서.. 고마워.
(M) Thank you / Dido
남 소파 불편해서 어떡하냐. 그래도 오늘밤엔 거기서 그냥 자야할 것
같은데.
여 그냥 니 침대에서 같이 자지 뭐.
남 뭐??? 어후 야. 안돼. 그건.. 아직... 우리는...
그리고 나.. 아직 회복도... 어후 안돼 야.
여 무슨 생각하는거야 지금! 그냥 소파 불편하니까. 거기서 잔다구.
침대도 널찍하니 좋네 뭐.
남 피곤했는지, 그녀는 침대에 눕고 얼마 안돼
쌔근거리며 잠들어 버렸다.
하지만 난 그날밤 한숨도 자질 못했다.
너무 떨리고. 너무 좋아서.
그리고.
혹시라도 침대에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새벽이 올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야 했다.
(M) 깊은 밤을 날아서 / 조성모
남 수술이 끝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진
오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수술 회복 기념 여행을 가기로 했다.
행선지는 소매물도였다.
(E) 여객선에서 내리는
여 진짜 작네?
남 작네 정말.
여 그래도 좋다.
남 어. 좋다.
여 민박집부터 구해야지. 바가지 안쓰게 잘 골라야 되는데.
남 우리 민박집 구해놓고, 낚시하러 가자.
여 낚시?
남 어. 배타고 바다 나가서, 줄낚시하자.
여 해봤어?
남 안해봤는데, 오늘 해보려구.
(E)바다 파도 소리
남 생각보다 파도가 있었고. 배가 좀 출렁였지만
우리는 무섭기보다 즐거웠다. 포인트에 이르자
배를 운전하시던 할아버지가 미끼를 달고 줄낚시를 하셨고.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서 줄을 바다에 드리웠다.
여 진짜 잡힐까? 눈먼 고기 아니면 우리 애인 낚시줄에 걸릴 리가 없는데?
남 에이 진짜 자꾸 힘뺄거야?
여 (웃는데)
남 어? 신호가 온다.
여 진짜?
남 왔어 왔어. 할아버지 왔어요. 어. 이거 큰데?
여 어.. 땡겨땡겨. 와 진짜다. 저게 뭐야?
남 감성돔.
여 완전 예술이야. 우와~~~
(M) Gee / 소녀시대
(E)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여 매운탕 진짜 맛있겠다. 근데 뭐해?
(E) 칼로 쓱싹쓱싹
남 (좀 멀리서) 회떠.
(E) 슬리퍼 끌고 오는
여 진짜?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남 고럼~
여 우와. 진짜 프로 같애.
남 배웠어. 너랑 소매물도 오기로 한 날부터. 우리집 옆에 횟집 가서
공짜로 알바해주면서.
여 정말? 나한테 회떠줄라구?
남 너 생선회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잖아.
내 손으로 직접 회떠서 먹여줘 보고 싶어서. 가방 안에 봐.
초고추장이랑 간장이랑 다 가져왔어.
여 웬일이야 정말.... 딴 여자들은 다이아 이런 거에 감동 받는다던데
난 생선회가 백배 더 좋다. 더 감동적이야.
남 다행이다. 다이아 더 좋아하면 클날 뻔 했는데.
여 생선회랑 매운탕 먹으면 죽음이겠다. 기다려. 밥 뜸 다 들었나
보고 올께.
(E) 부엌쪽으로 가면
남 이렇게 평생 살수 있었으면.
그녀와 둘이서. 밥 해 먹고. 같이 장 보고.
산책하고. 여행가고. 그러면서. 평생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M) 아로하 / 쿨
남 여행 다녀와 얼마 뒤.
그녀는 다른 지방의 병원으로 옮겨가게 됐다.
처음.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난 조금씩 불안했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여 가지 말라 그러면 안갈께.
남 아니야. 그쪽이 조건도 훨씬 좋다며. 그리구, 엄마랑 같이 살수도
있구.
여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부쩍 외로워하셔서.
남 그래. 잘됐어. 우리 만나는 거야, 내가 자주 가면 되잖아.
주말마다 갈께.
여 응.
남 그녀가 없는 동안. 그녀를 위해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좋은 직장도 잡고. 공부도 더 많이 하고.
더 괜찮은 남자가 돼서. 그녀가 어머니에게 당당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만난지 4년.
그렇게 떨어져 있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될 거라
믿고 싶었다.
(M)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 / 신해철
(E)레스토랑 소음
남 은서야.
(E)오는
여 (반갑게) 차 많이 밀렸지.
남 아니? 괜찮았어.
여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어머니가 나 미워하시는 거 아냐?
아들 고생시킨다구?
남 아니야. 용돈까지 챙겨주시던데 뭐. 너 맛있는 거 사주라구.
여 ....정말?
남 뭐 먹을래. 젤 맛있는 거 먹어.
여 아니야. 내가 사줄께. 먹고 싶은 거 시켜.
남 그럼 저녁 먹고. 이따 야식 사줘라 니가.
여 야식?
남 왜? .... 들어가 봐야 돼?
여 오늘 야간 근무야.
남 바꿨다 그러지 않았어?
여 갑자기 그렇게 됐네? 선배 언니가 급한 일이 있다 그래서.
어떡하지.....
남 괜찮아. 일이 먼저지. 저녁 먹고 내가 병원에 바래다 줄께.
여 아니야 그렇게 빨리 안가봐도 돼.
저녁 먹고. 차 마시고. 그럴 시간은 돼.
남 그래. 그러면 됐지 뭐.
여 있잖아. 앞으로 매주는 안와도 될 것 같아.
남 어?
여 자기두 너무 피곤하구. 또...
남 그래. 그럴께. 그냥 한달에 한두번 정도면 되지 뭐. 그렇지?
여 .....미안.
남 (애써 유쾌하게) 넌 왜 자꾸 뭐가 미안하다 그래. 착해빠져가지구.
우리 뭐 먹지? 여기요!
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넘겼지만
언젠가부터 난 느끼고 있었다.
우리에게 이별이 멀지 않았다는 걸.
(M)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E) 걷는 소리
남 은서야.
여 응?
남 우리.. 헤어질까?
여 (흠칫) 어?
남 나는 니가 날 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니 옆에서 지켜줄 수 있어.
그렇지만. 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그냥 갈 수도 있다.
여 .....
남 울지 마. 못난아. 울면 더 못생겨 보여.
여 우리 엄마한테.... 자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몇번 얘기는 했는데. 너무 반대가 심하셔서..... 엄마는 아빠 그렇게
일찍 가시구... 힘들게 사셔서....
남 그만해도 돼. 다 알아. 다 보이는데 뭐.
내가 니 엄마라도 그랬을 거야. 너처럼 고운 딸을...
여 미안해.... 계속 이렇게 자기 붙들고 있는 거. 자기한테도 못할 짓인 거 알아.
그래서 나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말을 못하겠어서....
남 그래서, 내가 헤어지자고 말하잖아.
여 ....
남 잘 살아. 행복하게.
(E) 몇걸음 떼는데
여 자기야.
남 .....
여 나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알고 있었지.
남 (아무렇지 않게) 그럼... 그렇게 표나게 바람 피는데. 누가 몰라.
바보야. 바람 그거 아무나 피는 거 아냐. 너처럼 순진한 애는 못펴.
여 ....미안해..... 정말.....
남 그녀에게 한번 웃어주고. 돌아서서 걷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그래도.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걸어온 건.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M) 슬프도록 아름다운 / K2
(E) 결혼식장 소음
남 육개월 뒤. 그녀에게 결혼식을 올린다는 문자를 받았고.
난 나도 모르게, 이곳에 와 있었다.
그냥, 궁금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얼마나 예쁠까.
아주 멀리서만. 보고 가고 싶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서 웃고 있는 그녀를 아주 잠깐 바라보고
돌아서 가던 길에, 그녀의 친구를 만나버렸다.
그녀의 친구는, 혹시라도 날 만나면 꼭 데리고 와달라고
했다면서, 나를 끌고 신부대기실로 갔다.
여 왔어...?
남 어. 그냥 가려고 했는데 명숙씨가....
여 잘왔어. 내가 부탁했어. 만나면 꼭 데리고 와달라고.
남 ... 결혼 축하한다. 너 진짜 이쁘다.
내가 본 신부 중에 최고다.
여 ....
남 울지 마. 화장 다 지워져.
여 나 있잖아. 만약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꼭 당신이랑
결혼할께. 내가 용기도 없고. 바보같아서. 정말 미안해.
남 신부 입장한다. 들어가.
여 잘 가..
남 그녀의 마지막 눈빛을 본 지.
7년이 지났다.
좋은 아내. 다정한 엄마로 잘 살고 있겠지.
하지만 난 아직도 마지막 그녀의 이야기와 눈빛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에게 그녀와의 시간은 인생이 준 덤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 십삼월처럼.
이제 이 생엔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오롯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그 시간. 그런 존재.
그녀를 처음 만났던 초봄의 햇살이. 싱그럽다.
(M)주제음
2009-03-12(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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