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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0 화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M)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재주소년
(E) 잔디밭 걷는
남 햇살만 보면 봄 같다.
어느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이런 따뜻한 볕은 축복과도 같다.
얇은 가디건 하나만 걸쳐 입고
산책을 한다. 아직 마른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머지 않아 저 가지 위로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망울이 터질 것을
기대해본다. 대지에 온통 생명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만 같다.
난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며
그 기운을 느껴보려 한다.
(M) 사계 중 봄
(E) 걷는 소리 계속
남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여 몇번을 말해. 나 유학가.
전부터 공부하고 싶단 얘기했었잖아. 어디로 갈진... 가봐야 알 것 같애.
제발 구질구질하게 좀 굴지 마. 니가 어린애니? 나 없으면 왜 못 살아!
못살겠으면 어디 한번 죽어보든가! 나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
그럴 거 아니면 이러지 마. (사이) 거짓말이야. 죽는 게 쉽니?
내가 뭔데, 니가 날 위해 죽니? 죽는 게 뭔지나 알아? 그러니까
니가 애송이라는거야. 됐어 그만해. 피곤해. 다시는 너랑 통화할 일
없을거야. 이 전화기도 오늘 해지시킬거니까. 잘 살아라.
(E)뚝 끊고
남 맹렬히 냉정하게 이별선언을 하던 여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그자리에 엎드려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던 길목이라, 계속 가기도 애매하고
그냥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난 어정쩡하게 그렇게 서 있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여 뭐에요?
남 네?
여 뭔데, 왜 사람 훔쳐보구 있냐구요!
남 아뇨. 난 훔쳐본 거 아닌데?
여 아니면요!
남 난 그냥 산책하던 길이었는데. 그쪽이 거기 있어서.
여 이 병원, 환자에요?
남 ....네.
여 그런데 말짱하네요?
남 아직 누워서 거동도 못할 정돈 아니에요.
여 뭐.... 곧 그렇게 되겠죠.
(M) Songbird / Eva Cassidy
남 이곳은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본 사람들.
그래서 더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는 곳이다.
나도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젊은 사람이라 전이도 더 쉽다고 했다.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내 스스로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 놓고도
아직도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
아플 땐 금방이라도 죽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진통제를 맞고 나면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곧 잊게 된다.
이러다가 병이 낫는 거 아닐까, 그런 희망도 품어본다.
(M) Cayman Islands / Kings of Convenience
(E) 슬리퍼 신고 복도 걷는 소리
남 며칠 후, 다시 그녀를 만났다.
복도 끝.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망설이다가 난 그 옆에 앉았다.
여 어..
남 뭐해요?
여 그냥요. (사이) 저번엔 미안했어요. 신경질 펴서.
남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여 여기 언제 오셨어요?
남 보름 정도 됐어요.
여 난 사흘 됐어요.
남 남자친구?
여 ....네?
남 지난번에 전화....
여 아.... 애인이에요.
남 뭐하러 거짓말을 해요. 나중에 다 알게 될 걸...
여 어떻게 알아요. 숨기면 모르는거지.
남 그래도 알려고만 하면....
여 그 사람이 그렇게 한가해요? 처음에만 좀 궁금하고 그렇겠죠.
결국... 남인걸요. 시간 지나면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점점 잊고 살걸요?
남 그걸 원해요?
여 네. 그걸 원해요.
남 여자들 맘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여 왜요?
남 난 결혼식 한달 앞두고 서로 건강검진표 주고 받자길래
검사했다가 암인 거 알았거든요.
여 네...
남 그거 알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가던데 내 애인은?
여 옆에 있어주길 바랬어요?
남 아뇨. 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도망가는 건 좀...
그 뒷모습을 보는 건.... 뭐랄까.... 서글펐어요.
(M) 뒷모습 / 김동률
(E) 똑똑똑 노크하는 소리
남 깊은 밤중이었다.
열이 올라서 좀 힘들어하던 중이었는데
문을 다급하게 두드려대는 소리에 깼다.
남 네.. 누구세요?
(E)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여 주...무셨어요?
남 어? 은서씨... 지금이 몇시야... 새벽 3신데. 어디 아파요?
그래서 온거에요?
여 아뇨. 아픈 덴 없는데.....
남 그런데요. 왜 그래요 표정이.
여 옆방 아줌마요. 내 옆방에 있던 아줌마가, 방금 죽었어요.
남 .........
여 그저께 처음 왔다고 냉장고에서 사과도 꺼내주고 그랬거든요.
그 아주머니가, 방금 돌아가셨어요.
시끄러워서 나와 보니까.....
남 나도 여기 온 지 오래는 안됐지만. 그런 사람 벌써 두명 봤어요.
여 .......!
남 원래 그런 곳이잖아요. 여기가....
여 나.. 갈래요.
남 네?
여 나갈래요. 짐싸서 나갈래요. 못살아요. 무서워서 못살아요.
이런 덴 줄 알았으면 못왔어요. 안왔어.
사람 죽어나가는 거 보면서. 나도 곧 저렇게 될 거 상상하면서
어떻게 여기 더 있어요! 난 싫어. 나갈래!!!!
남 은서씨. 왜 이래요. 괜찮아요? 은서씨!
남 그녀는 곧 혼절해 버렸다.
의사들이 달려왔고. 나도 그날밤엔 한숨도 자지 못했다,
(M) 잘자/ 푸른새벽
(E)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는
남 괜찮아요?
여 ....미안해요, 밤에 놀랬죠.
남 나도 그랬어요. 처음에 들어와서, 나도 무섭고 두렵고 놀라고
고독하고 그랬어요.
여 차 마실래요?
남 네.
(E)달그락거리는 소리
여 엄마가 안다녀본 산이 없어요. 좋다는 거 다 캐다가
즙도 만들어주고 차도 만들어주고 약도 만들어주고....
이것두요. 지리산에서 캔 약초로 다려준 차에요.
남 네. 잘 마실께요.
여 이거 먹고 암 고친 사람 여럿 있다구,
빼놓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먹으라구, 입이 닳게 얘기하세요.
남 보면, 가족들이 그런 데에 더 매달리더라구요.
아닐 거 알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이겠죠.
여 봄이 오려나봐요.
남 네...
여 나 올봄을 못넘길거라던데.
남 ......
여 봄 좋아하는데. 안왔으면 좋겠어요.
(M) 봄날은 간다 / 김윤아
남 그 안에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텔레비젼도 보고, 신문도 보고, 인터넷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또래였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둘이 얘기하고, 웃을 때만
아직 살아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E) 걷는 소리
여 어젯밤에 나 죽는 줄 알았었어요.
남 그랬어요?
여 몰랐구나, 자느라구.
남 밤에 나도 좀 힘들어서 진통제에 수면제까지 좀 놔달라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아침엔 좀 피곤하네. 일어나는데 힘들더라구요.
여 난 어젯밤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막 몸부림쳤는데
정신차려보니까 시트가 피에 젖었더라구요. 피를 토했다나봐요.
남 ......
여 그게 한단계 올라섰다는 신호라 그랬는데.
남 피를 토하는게요?
여 네. 그런데 이상하게 또 담담하네요.
남 ...... 얼굴은 아직 말짱해요.
여 거짓말.
남 아니에요. 진짜 말짱해요.
여 원래는 더 이쁘거든요. 지금은 속상해서 거울도 보기 싫어요 뭐.
남 진짜요? 뭐 얼마나 이뻤길래?
여 나 원래 하던 일이 뭔지 알아요?
남 뭔데요?
여 인터넷 쇼핑몰요. 꽤 유명했었어요.
남 옷 같은 거 파는 데?
여 (신난) 네~ 우리 쇼핑몰에서 파는 옷들은 다 제가 피팅모델 했거든
요. 제가 옷빨이 좀 되니까, 사람들이 제가 입은 거 보구
불티나게 샀었죠.
남 우와, 사장님이셨네?
여 그러니까요. 돈도 많이 벌었고. 참.... 좋았는데 그땐.
(M) Dust in The Wind / Lani Misalucha
(E) 식판 달그락거리는 소리
남 밥 이렇게 같이 먹는 거 알면 뭐라 그럴텐데?
여 걱정마요. 김간호사 언니는 내가 꽉잡고 있으니까.
남 그래요?
여 그리구, 혼자 먹느니 이렇게 같이 먹는 게 좋지 뭐. 심심하지도 않구.
남 그렇긴 해요.
여 봉덕씬 밖에서 무슨 일 했었어요?
남 일요?
여 네에. 직업.
남 난 외환딜러요.
여 우와.... 폼난다.
남 네. 나도 한때는 폼 났었어요.
여 뇌에 종양이 생긴 게.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남 (씁쓸) 그런가...
여 외환딜러에, 결혼할 여자에, 그 모든 걸 갖고 있었던 때가
그립지 않아요?
남 글쎄요. 여기서 지내다 보니까, 모르겠어요.
밖에서의 내가 진짠지, 여기서의 내가 진짠지.
여 지금이 꿈인지, 그때가 꿈인지.
남 맞아요.
여 정말 몰랐어요. 내 인생의 마지막이 여기일지.
남 그래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여 뭐가요?
남 마지막에, 은서씨 같은 친구를 만난 거.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2부가 계속됩니다.
(E) 새소리
남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는 것.
(E)창문 열면 바람 소리
남 창문을 열고 맑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E) 세수하는 소리
남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의 마지막에 서 봐야 알 수 있다.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인지.
(E) 똑똑
남 네.
(E) 들어온다
여 커피 왔습니다.
남 이런 거 막 마셔도 돼요? 속도 안좋으면서.
여 건강하면 조심하겠죠. 아니잖아요.
(밝게) 내가 커피 한잔 줄인다구, 내가 내년 봄까지 살 수 있어요?
그것도 아닌데 뭐! 아우 나도 이판사판이야.
남 (웃고) 커피향 좋다.
여 마셔요. 이거 내 친구가 다니러 오면서 주고 간 거에요.
남 친구 왔다갔어요?
여 (좀쓸쓸) 제일 친한 친구요. 그 친구한테 쇼핑몰 넘겼거든요.
남 아....
여 결혼한대요. 내 친구.
남 그래요?
여 네.
남 혹시 남자친구 소식은 들었어요?
여 안물어봤어요. 잘 살겠죠 뭐.
남 궁금하지 않아요?
여 궁금하죠. 그런데 안궁금해하기로 했어요.
남 후회하면 어쩔려구 그래요.
여 봉덕씨 여자친구도 그랬다면서요. 아픈 거 알고 바로 도망갔다구.
남 그거야 그 여자가 그랬던거고. 은서씨 남자친구는 안그럴 수도 있잖아요.
여 안 그러면 뭘 얼마나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긴데.
남 ..... 은서씨. 음악 들을래요?
여 음악 들을 수 있어요?
남 라디오.
여 오.... 라디오.
남 혼자 있을 땐 라디오 많이 들어요.
(E)툭 켠다.
(M) Almaz / Randy Crawford
(BG로 이어지며)
여 커피도 있고, 음악도 있고. 좋네요. 까페에 온 것 같아요.
남 만약에요 은서씨, 기적의 약이 발명이 돼서, 우리가 한 10년 쯤
더 살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요?
여 ............와...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네요. 좋아서.
음.... 10년이 더 주어진다면. 일단, 이 빌어먹을 병원을 뛰쳐나가서.
내가 가진 옷들 중에서 제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이트클럽에 갈 거에요.
남 나이트클럽요?
여 네~ 제가 춤 추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거기서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춤을 추구요. 신사동에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매운 아귀찜 하는
데가 있거든요? 거기 가서 또 실컷 먹고. 제가 또 낚지볶음 매운 거
그것도 좋아하거든요. 조개탕에 그것도 먹고 싶고. 또....
남 몇날몇일 먹기만 해요?
여 맞다. 십년이랬지. 후.... 너무 긴 시간인 것 같으니까 정신이 없어서.
음..... 먼저 엄마랑 여행을 하고 싶어요.
남 엄마랑요?
여 네. 단 둘이..
돈 많이 벌고 그럴 때도 친구들이랑 유럽도 가고 일본도 갔으면서
우리 엄마랑 둘이서 여행가 본적은 없거든요. 이번에 아프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제일 안타깝더라구요. 울 엄마 아버지랑 사별하 시고 나 키우시면서 고생 진짜 많이 했는데....
남 .......
여 엄마랑 유럽도 가고 일본도 가고. 다 갈 거에요. 사진도 많이 많이
찍구요.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얘기도 하구요. 엄마랑 맛있는 것도
많이 먹구요. (울먹)
남 ................... 괜찮아요?
여 괜찮아요. 음.. 또 뭐하고 싶냐면. 힘든 사람들 좀 도와주고 싶어요.
내가 아파보니까 알겠어요.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거. 내가 가진 거, 많이 나눠주면서 살고 싶어요.
남 착하네.
여 아프니까 철들었죠 뭐.
남 나한테 20년이 있다면. 은서씨한테 10년 나눠줄텐데.
여 나한테두요. 20년이 있다면. 봉덕씨한테 반 뚝 잘라서
나눠주고 싶어요.
남 우리한텐, 시간이 너무 없네요.
(M) 소나무 / 바비킴
남 얼마 후는 내 생일이었다.
그날 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생일을 기념하고 싶었다.
난 그녀를 찾아갔다.
(E) 똑똑 몇번 두드려도 안나오고.
남 몇번이나 문을 두드려도 안나와 막 문을 열어보려는 찰나였다.
(E)문 열리고
여 봉덕씨.
남 컨디션 어때요.
여 괜찮아요, 왜요?
남 친구한테 차 좀 갖다달랬어요.
그거 타고 드라이브 안 갈래요?
여 .......
남 컨디션 별로에요?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요.
여 아뇨. 갈래요.
남 정말요?
여 고마워요.
남 네?
여 나... 자살하려고 했었어요...
남 뭐에요?
여 몰라요. 왜 그랬는지. 얼마전부터 수면제 모으고 있었어요.
그걸 먹으면 언제 죽나 해서 무서워하는 건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그거 먹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남 은서씨 정말....
여 미안해요.
남 나가요. 나랑 나가서 가까운 데라도 갔다 와요.
(M) Knocking On Heaven's Door / Selig
(E) 차 가는 소리
여 괜찮아요?
남 네..
여 봉덕씨 안색도 안좋은데.
남 어디 갈까요? 강남? 나이트클럽?
여 이꼴로 나이트클럽을 어떻게 가요? 문 앞에서 수질검사하면
딱 걸리기 쉽죠.
남 그런가? (웃고)
(E) 빵빵 경적 소리
여 옛날엔 사람 많고, 차 밀리는 데 딱 싫었는데.
남 옛날?
여 그러고 보니까 작년이네. 1년만에 참...
남 마음껏 즐겨요. 매연. 불빛. 건물. 사람들. 소음.
여 ......이 순간 날 가장 위로해주는 사실은....
사람은 언젠간 한번은 죽는다는 거네요.
남 그럼요. 그 순간이 우리에게 조금 더 빨리 온 것 뿐이에요.
여 억울하지 않아요 봉덕씬?
남 억울하다기보단, 좀 미안해요.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여 우리... 이거 어때요?
남 네?
(M) 삶은 여행 / 이상은
(E)동영상 촬영 시작하는 소리
여 자... 됐어요. 얘기해요.
남 (큼큼... ) 어색한데.
여 해봐요. 얼른.
남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저 봉덕이에요.
여 ....
남 .... 어머니가 제일 이뻐하시던.. 막내 아들 봉덕이요.
저만 보면 우시던 어머니 얼굴 보기 싫어서 화내고 병원에도 못오게 해서 죄송해요. 속상해서 그랬어요.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큰 불효라는데..
먼저 가서 정말 죄송해요.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요.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했고. 많은 걸 배우고 가서 행복해요.
함께 했던 시간이 짧아서 아쉬운 거 빼곤
저는 좋아요. 다 좋아요. 그러니까, 저 가고 나면 그만 우세요.
밥도 잘 챙겨 잡숫구요.
그렇게 건강하게 이 세상 사시다가,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합니다.
(M) 사랑했으므로 / 조관우
남 이번엔 은서씨에요. 찍습니다.
(E)촬영 소리
여 엄마. 나야. 은서.
엄마의 하나뿐인 딸 은서. 엄마가 공주처럼 고이고이 키워준 딸 은서.
엄마는 파출부하고 청소부하느라 손등이 거북이처럼 가라져도
나한텐 비싼 핸드크림 사줬었잖아.
엄마 덕에 난 어려운 것도 모르고 불행한 것도 모르고
잘 컸어. 엄마가 좋으면서도 또 짜증스러워서, 많이 화내고
신경질 냈던 거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나 죽고 나면
꼭 결혼해. 엄마 많이 아껴주는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꼭.
그리구, 민수씨. 이거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고마웠어. 마지막까지 거짓말 해서 미안하구.
우리 사랑했던 날들. 그 기억들은 잊지 않고 가져갈께. 고마워.
남 .....얘기 다 했어요?
여 그리구 봉덕씨.
남 .........
여 정말 고마워요. 마지막이라고,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봉덕씨를 만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이런 저런 속엣 얘기도 하고 동질감도 느끼면서
정말 큰 위로 받았어요. 봉덕씨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여기 없을 거에요.
마지막을, 함께 해 줘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M) Noh Cah / Janinto
(E)바람소리
여 왜 서울 살면서 남산엘 안와봤을까. 이렇게 좋은데.
남 보석 같네요. 한집 한집에 켜진 불들이.
여 나도 저기 어디 살았을텐데. 저 불빛속 어디.
남 .....
여 괜찮아요. 우리 이제, 저 위에... 저기 위에.....
하늘 어디에서 반짝반짝 빛나면 되니까.
남 누가 먼저 올라가든, 거기서도 친구 되어주기.
여 .....(울컥) 네.
남 그래서 둘이 같이, 반짝반짝 빛나기.
여 네. 그래요 우리.
남 그녀가, 내 손을 잡는다.
따뜻하다. 우리 손은 아직 따뜻하다.
여 우리, 춤출래요?
남 음악도 없는데?
여 음악 소리 안들려요?
남 네?음악소리?
여 (콧노래로 왈츠 흥얼거리면)
(BG)왈츠
남 정말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근사한, 왈츠였다. 내가 손을 내민다.
그녀가 손을 잡는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춘다.
하늘의 불빛과, 땅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M) 주제음
2009-02-27(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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