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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6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0 화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M)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재주소년


(E) 잔디밭 걷는


남     햇살만 보면 봄 같다.

        어느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이런 따뜻한 볕은 축복과도 같다.

        얇은 가디건 하나만 걸쳐 입고

        산책을 한다. 아직 마른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머지 않아 저 가지 위로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망울이 터질 것을

        기대해본다. 대지에 온통 생명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만 같다.

        난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며

        그 기운을 느껴보려 한다.

(M) 사계 중 봄


(E) 걷는 소리 계속


남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여     몇번을 말해. 나 유학가.

        전부터 공부하고 싶단 얘기했었잖아. 어디로 갈진... 가봐야 알 것 같애.

        제발 구질구질하게 좀 굴지 마. 니가 어린애니? 나 없으면 왜 못 살아!

        못살겠으면 어디 한번 죽어보든가! 나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

        그럴 거 아니면 이러지 마. (사이) 거짓말이야. 죽는 게 쉽니?

        내가 뭔데, 니가 날 위해 죽니? 죽는 게 뭔지나 알아? 그러니까

        니가 애송이라는거야. 됐어 그만해. 피곤해. 다시는 너랑 통화할 일

        없을거야. 이 전화기도 오늘 해지시킬거니까. 잘 살아라.


(E)뚝 끊고


남     맹렬히 냉정하게 이별선언을 하던 여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그자리에 엎드려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던 길목이라, 계속 가기도 애매하고

        그냥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난 어정쩡하게 그렇게 서 있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여     뭐에요?

남     네?

여     뭔데, 왜 사람 훔쳐보구 있냐구요!

남     아뇨. 난 훔쳐본 거 아닌데?

여     아니면요!

남     난 그냥 산책하던 길이었는데. 그쪽이 거기 있어서.

여     이 병원, 환자에요?

남     ....네.

여     그런데 말짱하네요?

남     아직 누워서 거동도 못할 정돈 아니에요.

여     뭐.... 곧 그렇게 되겠죠.

(M)    Songbird / Eva Cassidy


남     이곳은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본 사람들.

        그래서 더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는 곳이다.

        나도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젊은 사람이라 전이도 더 쉽다고 했다.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내 스스로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 놓고도

        아직도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

        아플 땐 금방이라도 죽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진통제를 맞고 나면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곧 잊게 된다.

        이러다가 병이 낫는 거 아닐까, 그런 희망도 품어본다.

(M)    Cayman Islands / Kings of Convenience


(E) 슬리퍼 신고 복도 걷는 소리


남     며칠 후, 다시 그녀를 만났다.

        복도 끝.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망설이다가 난 그 옆에 앉았다.


여     어..

남     뭐해요?

여     그냥요. (사이) 저번엔 미안했어요. 신경질 펴서.

남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여     여기 언제 오셨어요?

남     보름 정도 됐어요.

여     난 사흘 됐어요.

남     남자친구?

여     ....네?

남     지난번에 전화....

여     아.... 애인이에요.

남     뭐하러 거짓말을 해요. 나중에 다 알게 될 걸...

여     어떻게 알아요. 숨기면 모르는거지.

남     그래도 알려고만 하면....

여     그 사람이 그렇게 한가해요? 처음에만 좀 궁금하고 그렇겠죠.

        결국... 남인걸요. 시간 지나면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점점 잊고 살걸요?

남     그걸 원해요?

여     네. 그걸 원해요.

남     여자들 맘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여     왜요?

남     난 결혼식 한달 앞두고 서로 건강검진표 주고 받자길래

        검사했다가 암인 거 알았거든요.

여     네... 

남     그거 알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가던데 내 애인은?

여     옆에 있어주길 바랬어요?

남     아뇨. 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도망가는 건 좀...

        그 뒷모습을 보는 건.... 뭐랄까.... 서글펐어요.

(M)    뒷모습 / 김동률


(E) 똑똑똑 노크하는 소리


남     깊은 밤중이었다.

        열이 올라서 좀 힘들어하던 중이었는데

        문을 다급하게 두드려대는 소리에 깼다.


남     네.. 누구세요?


(E)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여     주...무셨어요?

남     어? 은서씨... 지금이 몇시야... 새벽 3신데. 어디 아파요?

        그래서 온거에요?

여     아뇨. 아픈 덴 없는데.....

남     그런데요. 왜 그래요 표정이.

여     옆방 아줌마요. 내 옆방에 있던 아줌마가, 방금 죽었어요.

남     .........

여     그저께 처음 왔다고 냉장고에서 사과도 꺼내주고 그랬거든요.

        그 아주머니가, 방금 돌아가셨어요.

        시끄러워서 나와 보니까.....

남     나도 여기 온 지 오래는 안됐지만. 그런 사람 벌써 두명 봤어요.

여     .......!

남     원래 그런 곳이잖아요. 여기가....

여     나.. 갈래요.

남     네?

여     나갈래요. 짐싸서 나갈래요. 못살아요. 무서워서 못살아요.

        이런 덴 줄 알았으면 못왔어요. 안왔어.

        사람 죽어나가는 거 보면서. 나도 곧 저렇게 될 거 상상하면서

        어떻게 여기 더 있어요! 난 싫어. 나갈래!!!!

남     은서씨. 왜 이래요. 괜찮아요? 은서씨!


남     그녀는 곧 혼절해 버렸다.

        의사들이 달려왔고. 나도 그날밤엔 한숨도 자지 못했다,

(M)    잘자/ 푸른새벽


(E)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는


남     괜찮아요?

여     ....미안해요, 밤에 놀랬죠.

남     나도 그랬어요. 처음에 들어와서, 나도 무섭고 두렵고 놀라고

        고독하고 그랬어요.

여     차 마실래요?

남     네.


(E)달그락거리는 소리


여     엄마가 안다녀본 산이 없어요. 좋다는 거 다 캐다가

        즙도 만들어주고 차도 만들어주고 약도 만들어주고....

        이것두요. 지리산에서 캔 약초로 다려준 차에요.

남     네. 잘 마실께요.

여     이거 먹고 암 고친 사람 여럿 있다구,

        빼놓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먹으라구, 입이 닳게 얘기하세요.

남     보면, 가족들이 그런 데에 더 매달리더라구요.

        아닐 거 알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이겠죠.

여     봄이 오려나봐요.

남     네...

여     나 올봄을 못넘길거라던데.

남     ......

여     봄 좋아하는데. 안왔으면 좋겠어요.

(M) 봄날은 간다 / 김윤아


남     그 안에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텔레비젼도 보고, 신문도 보고, 인터넷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또래였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둘이 얘기하고, 웃을 때만

        아직 살아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E) 걷는 소리


여     어젯밤에 나 죽는 줄 알았었어요.

남     그랬어요?

여     몰랐구나, 자느라구.

남     밤에 나도 좀 힘들어서 진통제에 수면제까지 좀 놔달라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아침엔 좀 피곤하네. 일어나는데 힘들더라구요.

여     난 어젯밤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막 몸부림쳤는데

        정신차려보니까 시트가 피에 젖었더라구요. 피를 토했다나봐요.

남     ......

여     그게 한단계 올라섰다는 신호라 그랬는데.

남     피를 토하는게요?

여     네. 그런데 이상하게 또 담담하네요.

남     ...... 얼굴은 아직 말짱해요.

여     거짓말.

남     아니에요. 진짜 말짱해요.

여     원래는 더 이쁘거든요. 지금은 속상해서 거울도 보기 싫어요 뭐.

남     진짜요? 뭐 얼마나 이뻤길래?

여     나 원래 하던 일이 뭔지 알아요?

남     뭔데요?

여     인터넷 쇼핑몰요. 꽤 유명했었어요.

남     옷 같은 거 파는 데?

여     (신난) 네~ 우리 쇼핑몰에서 파는 옷들은 다 제가 피팅모델 했거든        

        요. 제가 옷빨이 좀 되니까, 사람들이 제가 입은 거 보구

        불티나게 샀었죠.

남     우와, 사장님이셨네?

여     그러니까요. 돈도 많이 벌었고. 참.... 좋았는데 그땐.

(M) Dust in The Wind / Lani Misalucha


(E) 식판 달그락거리는 소리


남     밥 이렇게 같이 먹는 거 알면 뭐라 그럴텐데?

여     걱정마요. 김간호사 언니는 내가 꽉잡고 있으니까.

남     그래요?

여     그리구, 혼자 먹느니 이렇게 같이 먹는 게 좋지 뭐. 심심하지도 않구.

남     그렇긴 해요.

여     봉덕씬 밖에서 무슨 일 했었어요?

남     일요?

여     네에. 직업.

남     난 외환딜러요.

여     우와.... 폼난다.

남     네. 나도 한때는 폼 났었어요.

여     뇌에 종양이 생긴 게.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남     (씁쓸) 그런가...

여     외환딜러에, 결혼할 여자에, 그 모든 걸 갖고 있었던 때가

        그립지 않아요?

남     글쎄요. 여기서 지내다 보니까, 모르겠어요.

        밖에서의 내가 진짠지, 여기서의 내가 진짠지.

여     지금이 꿈인지, 그때가 꿈인지.

남     맞아요.

여     정말 몰랐어요. 내 인생의 마지막이 여기일지.

남     그래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여     뭐가요?

남     마지막에, 은서씨 같은 친구를 만난 거.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2부가 계속됩니다.


(E) 새소리


남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는 것.


(E)창문 열면 바람 소리


남     창문을 열고 맑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E) 세수하는 소리


남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의 마지막에 서 봐야 알 수 있다.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인지.


(E) 똑똑


남     네.


(E) 들어온다


여     커피 왔습니다.

남     이런 거 막 마셔도 돼요? 속도 안좋으면서.

여     건강하면 조심하겠죠. 아니잖아요.

        (밝게) 내가 커피 한잔 줄인다구, 내가 내년 봄까지 살 수 있어요?

        그것도 아닌데 뭐! 아우 나도 이판사판이야.

남     (웃고) 커피향 좋다.

여     마셔요. 이거 내 친구가 다니러 오면서 주고 간 거에요.

남     친구 왔다갔어요?

여     (좀쓸쓸) 제일 친한 친구요. 그 친구한테 쇼핑몰 넘겼거든요.

남     아....

여     결혼한대요. 내 친구.

남     그래요?

여     네. 

남     혹시 남자친구 소식은 들었어요?

여     안물어봤어요. 잘 살겠죠 뭐.

남     궁금하지 않아요?

여     궁금하죠. 그런데 안궁금해하기로 했어요.

남     후회하면 어쩔려구 그래요.

여     봉덕씨 여자친구도 그랬다면서요. 아픈 거 알고 바로 도망갔다구.

남     그거야 그 여자가 그랬던거고. 은서씨 남자친구는 안그럴 수도 있잖아요.

여     안 그러면 뭘 얼마나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긴데.

남     ..... 은서씨. 음악 들을래요?

여     음악 들을 수 있어요?

남     라디오.

여     오.... 라디오.

남     혼자 있을 땐 라디오 많이 들어요.


(E)툭 켠다.


(M) Almaz / Randy Crawford


(BG로 이어지며)


여     커피도 있고, 음악도 있고. 좋네요. 까페에 온 것 같아요.

남     만약에요 은서씨, 기적의 약이 발명이 돼서, 우리가 한 10년 쯤

        더 살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요?

여     ............와...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네요. 좋아서.  

        음.... 10년이 더 주어진다면. 일단, 이 빌어먹을 병원을 뛰쳐나가서.

        내가 가진 옷들 중에서 제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이트클럽에 갈 거에요.

남     나이트클럽요?

여     네~ 제가 춤 추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거기서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춤을 추구요. 신사동에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매운 아귀찜 하는

        데가 있거든요? 거기 가서 또 실컷 먹고. 제가 또 낚지볶음 매운 거

        그것도 좋아하거든요. 조개탕에 그것도 먹고 싶고. 또....

남     몇날몇일 먹기만 해요?

여     맞다. 십년이랬지. 후.... 너무 긴 시간인 것 같으니까 정신이 없어서.

        음..... 먼저 엄마랑 여행을 하고 싶어요.

남     엄마랑요?

여     네. 단 둘이..

        돈 많이 벌고 그럴 때도 친구들이랑 유럽도 가고 일본도 갔으면서

        우리 엄마랑 둘이서 여행가 본적은 없거든요. 이번에 아프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제일 안타깝더라구요. 울 엄마 아버지랑 사별하        시고 나 키우시면서 고생 진짜 많이 했는데....

남     .......

여     엄마랑 유럽도 가고 일본도 가고. 다 갈 거에요. 사진도 많이 많이

        찍구요.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얘기도 하구요. 엄마랑 맛있는 것도

        많이 먹구요.  (울먹)

남     ................... 괜찮아요?

여     괜찮아요. 음.. 또 뭐하고 싶냐면. 힘든 사람들 좀 도와주고 싶어요.

        내가 아파보니까 알겠어요.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거. 내가 가진 거, 많이 나눠주면서 살고 싶어요.

남     착하네.

여     아프니까 철들었죠 뭐.

남     나한테 20년이 있다면. 은서씨한테 10년 나눠줄텐데.

여     나한테두요. 20년이 있다면. 봉덕씨한테 반 뚝 잘라서

        나눠주고 싶어요.

남     우리한텐, 시간이 너무 없네요.

(M)    소나무 / 바비킴


남     얼마 후는 내 생일이었다.

        그날 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생일을 기념하고 싶었다.

        난 그녀를 찾아갔다.


(E) 똑똑 몇번 두드려도 안나오고.


남     몇번이나 문을 두드려도 안나와 막 문을 열어보려는 찰나였다.


(E)문 열리고


여     봉덕씨.

남     컨디션 어때요.

여     괜찮아요, 왜요?

남     친구한테 차 좀 갖다달랬어요.

        그거 타고 드라이브 안 갈래요?

여     .......

남     컨디션 별로에요?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요.

여     아뇨. 갈래요.

남     정말요?

여     고마워요.

남     네?

여     나... 자살하려고 했었어요...

남     뭐에요?

여     몰라요. 왜 그랬는지. 얼마전부터 수면제 모으고 있었어요.

        그걸 먹으면 언제 죽나 해서 무서워하는 건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그거 먹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남     은서씨 정말....

여     미안해요.

남     나가요. 나랑 나가서 가까운 데라도 갔다 와요.

(M)    Knocking On Heaven's Door / Selig


(E) 차 가는 소리


여     괜찮아요?

남     네..

여     봉덕씨 안색도 안좋은데.

남     어디 갈까요? 강남? 나이트클럽?

여     이꼴로 나이트클럽을 어떻게 가요? 문 앞에서 수질검사하면

        딱 걸리기 쉽죠.

남     그런가? (웃고)


(E) 빵빵 경적 소리


여     옛날엔 사람 많고, 차 밀리는 데 딱 싫었는데.

남     옛날?

여     그러고 보니까 작년이네. 1년만에 참...

남     마음껏 즐겨요. 매연. 불빛. 건물. 사람들. 소음.

여     ......이 순간 날 가장 위로해주는 사실은....

        사람은 언젠간 한번은 죽는다는 거네요.

남     그럼요. 그 순간이 우리에게 조금 더 빨리 온 것 뿐이에요.

여     억울하지 않아요 봉덕씬?

남     억울하다기보단, 좀 미안해요.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여     우리... 이거 어때요?

남     네?

(M)    삶은 여행 / 이상은


(E)동영상 촬영 시작하는 소리


여     자... 됐어요. 얘기해요.

남     (큼큼... ) 어색한데.

여     해봐요. 얼른.

남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저 봉덕이에요.

여     ....

남     .... 어머니가 제일 이뻐하시던.. 막내 아들 봉덕이요.

        저만 보면 우시던 어머니 얼굴 보기 싫어서 화내고 병원에도 못오게         해서 죄송해요. 속상해서 그랬어요.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큰 불효라는데..

        먼저 가서 정말 죄송해요.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요.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했고. 많은 걸 배우고 가서 행복해요.

        함께 했던 시간이 짧아서 아쉬운 거 빼곤

        저는 좋아요. 다 좋아요. 그러니까, 저 가고 나면 그만 우세요.

        밥도 잘 챙겨 잡숫구요.

        그렇게 건강하게 이 세상 사시다가,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합니다.

(M)    사랑했으므로 / 조관우


남     이번엔 은서씨에요. 찍습니다.

(E)촬영 소리


여     엄마. 나야. 은서.

        엄마의 하나뿐인 딸 은서. 엄마가 공주처럼 고이고이 키워준 딸 은서.

        엄마는 파출부하고 청소부하느라 손등이 거북이처럼 가라져도

        나한텐 비싼 핸드크림 사줬었잖아.

        엄마 덕에 난 어려운 것도 모르고 불행한 것도 모르고

        잘 컸어. 엄마가 좋으면서도 또 짜증스러워서, 많이 화내고

        신경질 냈던 거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나 죽고 나면

        꼭 결혼해. 엄마 많이 아껴주는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꼭.

        그리구, 민수씨. 이거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고마웠어. 마지막까지 거짓말 해서 미안하구.

        우리 사랑했던 날들. 그 기억들은 잊지 않고 가져갈께. 고마워.


남     .....얘기 다 했어요?


여     그리구 봉덕씨.

남     .........

여     정말 고마워요. 마지막이라고,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봉덕씨를 만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이런 저런 속엣 얘기도 하고 동질감도 느끼면서

        정말 큰 위로 받았어요. 봉덕씨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여기 없을 거에요.

        마지막을, 함께 해 줘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M)    Noh Cah / Janinto


(E)바람소리


여     왜 서울 살면서 남산엘 안와봤을까. 이렇게 좋은데.

남     보석 같네요. 한집 한집에 켜진 불들이.

여     나도 저기 어디 살았을텐데. 저 불빛속 어디.

남     ..... 

여     괜찮아요. 우리 이제, 저 위에... 저기 위에.....

        하늘 어디에서 반짝반짝 빛나면 되니까.

남     누가 먼저 올라가든, 거기서도 친구 되어주기.

여     .....(울컥) 네.

남     그래서 둘이 같이, 반짝반짝 빛나기.

여     네. 그래요 우리.


남     그녀가, 내 손을 잡는다.

        따뜻하다. 우리 손은 아직 따뜻하다.

        

여     우리, 춤출래요?

남     음악도 없는데?

여     음악 소리 안들려요?

남     네?음악소리? 

여     (콧노래로 왈츠 흥얼거리면)


(BG)왈츠 


남     정말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근사한, 왈츠였다. 내가 손을 내민다.

        그녀가 손을 잡는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춘다.

        하늘의 불빛과, 땅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M) 주제음







2009-02-27(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