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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2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78  화 -  졸업


(M) 주제음
  Graduaion Tears / 진추하


(E) 여학생들 떠드는 소리들


남     졸업식이 있는 날.

        난 아직 교무실에 앉아 있다.

        1년이 벌써 지나버렸다는 게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졸업 후. 처음으로 발령받은 학교.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 시험을 봐 합격했는데

        나만 지방으로 내려와야 돼서

        왠지 모를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가득했었다.

        처음으로 출근을 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일까, 무슨 인사를 할까,

        이렇게 설레는 대신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갈수 있을까.

        사립학교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 특채가 있으면

        어떻게든 시험을 봐야지. 뭐 이런 생각들 뿐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이뻐 보일 리가 없었다.

        학교는 왜 이렇게 작은지.

        왜 이렇게 낡았는지.

        애들 수는 또 왜 이렇게 작은지.

        교장선생님은 무슨 이장 어른 같고.

        동료 선생님들도 수더분하기만 한 것이.. 내 눈엔 촌스러워 보이기만했다.

(M)    Scarborough Fair / Simon & Garfunkel


(E)드르륵 문 열고 들어간다


남     3학년 교실에 들어섰다.

        첫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요새 애들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 얘길 듣는 대신에. 문제집을 풀거나. 쪽집개 학원 강사들이

        만들어준 교재를 본다고 하던데.

        여기 애들은 사람이  무색해할만큼

        뚫어지게.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     차렷. 경례.


남     열댓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두 성심성의껏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나도 까딱. 인사를 하고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무뚝뚝하게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 들은 얘기가 있었다.

        이 동네 아이들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대학에 갈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도 얼마 안된다고 했다.

        그런 얘길 들어서였을까.

        수업을 하는 내 태도도, 건성건성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E) 복도 걸어가는데 누군가 뛰어오고


여     선생님!

남     어.. 나?

여     네.

남     왜.

여     아까 수업 내용요. 다 배운건데요.

남     넌 아는 걸지도 모르지만. 다른 친구들 중엔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아냐. 너, 3학년 1반 반장 맞지.

여     네.

남     학생이 교사 수업내용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거 나 싫어해.

        건방져 보이거든?

여     죄송해요. 그런데요. 오늘 수업 내용. 어제랑 다를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남     뭐?

여     토씨 하나 안 다르구, 똑같았다구요. 어제랑.

(M)    I Will Remember You / Sarah Mclachlan


남     반도 몇개 안되는데. 이반에 가나 저반에 가나 똑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헷갈렸나보다.

        좀 창피스럽기도 했지만. 뭐 어떠랴 싶기도 했다.

        다 그런 거 아닌가.

        내 속엔, 이 작은 마을과, 이 낡은 학교와

        이 순하기만한 학생들을 어느 정도 우습게 보는

        비틀어진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E) 걸어가는. 아이들 소음


여     안녕하세요 선생님.

남     어? (불편) 어.

여     과수원집에서 하숙하시죠.

남     어.

여     거기 좀 있으면 꽃 피고 그러거든요. 진짜 좋아요.

남     어.

여     어, 밖에 모르세요?

남     어?

여     선생님은 여기가 마음에 안 드시죠.

남     어. (했다가) 어?

여     눈에 다 보여요. 우리 아무리 촌기지배들이라고 해두요,

        눈치는 빤하거든요. 서울에서 멋진 총각 선생님 오셨다구

        설?던 애들두요, 선생님이 우릴 별로로 생각하나부다.. 해서

        많이들 실망했다구요.

남     누가.. 별로고 말고.. 그런 게 어딨어.

        선생님하고 학생 사이에.

여     선생님하고 학생 사이지만. 학생은 선생님 존경하구.

        선생님은 학생을 아끼구. 그럴 수 있잖아요.

        선생님이라고 해서, 외워온 수업 내용을 앵무새처럼 외우기만 하구.

        우린 받아쓰기만 하구. 그런 관곈 아니지 않아요?

남     너... 지금 뭐하는거야? 그런 얘기 하려고 나 따라왔어?

여     ......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우리 학교 졸업생들. 대학도 못가고. 어느어느 회사 경리로 취직이나 하고. 공장에 가고.

        아르바이트나 하다가 그런그런 사람들 만나 시집가고. 그런다고 하니까.

        얘들 공부 가르쳐도 그만. 아니라도 그만.

        그런 생각이신 거 아니에요?

남     이 녀석이 정말...

여     사실이에요. 맞아요. 가끔 뉴스 보면 전 기막혀요.

        서울 무슨 8학군이 어떻구. 학원가가 어떻구. 강남이 어떻구 강북이 어떻구. 입시지옥이 어떻구.

남     ...

여     저희랑은 너무 먼 얘기라서요.

        그쪽 애들은 힘들어 죽겠다구, 죽을 맛이라구, 막 그러는데요.

        저는 부럽더라구요.

남     지금이 무슨 7,80년대도 아니고. 자기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야.

여     이거 보세요. 선생님은 아직도 남의 얘기 하듯 그러시잖아요.

남     뭐?

여     환경이 너무 다른데, 너무 불공평한데,

        왜 우리에게 기적을 일궈내라고 하세요?

남     ....

여     네. 기적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에요. 어쩌다. 정말 한명이겠죠. 그래서, 선생님도 우릴

        무시하시는 거잖아요.

(M)    내 마음의 풍경 / 장필순 & 한동준


남     그 아이의 말이 맞았다.

        과수원에 꽃망울들이 맺혀 가면서, 그 주변엔 사람을 붕 뜨게 만드는

        좋은 향기로 만연했다.

        한달이란 시간이 가면서,

        난 이곳의 고요와 여백과 단조로움에 조금씩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외고사를 보았고.

        결과가 나왔다. 난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3학년 1반 반장. 윤은서.

        그 아이의 영어 성적은, 전국 상위 3% 안에 들어 있었다.

        옆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은서는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전국 상위를 다툴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다고 했다.

        욕심도 많고. 정말 여기에만 있기엔 아까운 아이라는 말도 덧붙었다.

        

(E) 복도 소음


남     그날 오후. 복도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남     3학년 1반 윤은서.

여     (좀 멀리서) 네?


(E) 가까이 오는


여     네.

남     성적 봤다. 잘했다.

여     감사합니다. 

남     넌 대학 가고 싶은 마음 있어?

여     가고 싶은 마음이야. 있죠. 당연히.

남     그래. 만약에 간다면. 뭐 전공하고 싶은데? 혹시 영문학? 

여     만약에라두 갈 수만 있다면......

남     ......?

여     영문학은 못해요. 뭐 하고는 싶지만. 돈 잘 벌 수 있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속있는 전공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안경공학과나 치기공과나...  취직 잘된다던데.

남     그런 일이 하고 싶어?

여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 생각 못해봤어요.

        지금은. 아직 남은 1년은.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 보고.

        그 다음은. 졸업한 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M)    나비의 비행 / 양파


남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은서의 진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담임은 나른한 표정으로, 그 집 부모가 대학 진학을 반대하기 때문에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얘기했다.

        이 정도 성적이라면, 얼마든지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그집은 형편이 안좋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은서를 취직시키고 싶어한다고.

        고등학교 졸업시키는 것만으로도

        크게 인심쓴 거라고 했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왜, 재능있고 꿈많은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을까.

        왜, 포기하고 말아버릴까.

        괜히 분통이 터지고 억울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이 이런데. 그 아이 마음은 어떨까.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 성의없는 수업을 듣고난 후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그 아이 마음을 알 것 같았다.

(M)    Angel Eyes / Sting


(E)똑똑 노크 소리


남     들어오세요.


(E) 드르륵 문 열린다


여     선생님.

남     어, 들어와 봐. 앉아.

여     웬일로. 절..

남     몰랐지. 나 3학년 상담교사야.

여     아..네. 그런데. 왜 절... 제가 뭐 잘못했어요?

남     그럴 일 없다는 거. 본인이 더 잘 알면서.

여     ..... 그런데요?

남     내가 니 담임은 아니지만.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 그래.

        혹시. 부모님하고 얘긴 좀 해봤니? 니 장래에 대해서.

여     .... 몇번 해본 적 있어요.

남     그런데?

여     저희집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요 선생님.

        언니 둘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집갔구요. 그집도 형편 고만고만 하구요.

        오빠가 군대 가 있어서, 일손도 부족하구요.

        그나마 저희 땅도 아니라서. (하다가 멈칫) 제가 이런 얘기까지

        드리는 거 웃겨요 선생님.

남     하나도 안웃겨. 계속해봐.

여     그냥 그래서 힘들다구요.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들다,

        수준을 넘어서는 힘들다거든요. 저는 그래서, 학교에 와 있는 시간만 이라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거.

        인생의 휴가다, 생각해요.

남     인생의.. 휴가?

여     네. 제 생각에. 앞으로 이렇게 좋은 시간은 없을 거 같아서요.

        제 인생에.


남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울컥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만 있는 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순간적인 감정에 치받혀.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남     얌마. 없긴 왜 없어. 있게 만들어줄께, 내가!

여     ....? 네?

남     만들어준다고. 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준다구, 이 선생님이!!!

(M)   그런사람 또 없습니다 / 이승철


------------------------1부 끝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남     초여름. 난 입시를 대비해 영어 특별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내 스스로, 생각해 준비해 하게된 일이었다.

        물론 영어 특별반의 반장은 은서였다.

        그외 몇몇 아이들도 참석했다.

        난 매일 교재를 연구하고, 서울 입시학원에 있는 친구들과

        선배들의 조언을 얻어서 문제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풀어갔다.

        내 모습을 보더니, 국어 선생님도 원하는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쳐 보겠다며 나섰다.

        농번기에도, 방학에도, 우린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나갔다.

        열성이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은서는 늘 단연 돋보였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아내는 그 아이.

        그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가르치는 보람이란, 이런 것이구나.

        은서의 점수가 오를 때마다, 그 아이가 발전할 때마다

        나도 함께 성장해 가는 것 같았다.

(M)    꿈/ 브라운아이드 소울


남     그러던 어느날.

        방과 후 수업이 끝났는데. 은서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E) 물잔에 물 따르는


남     어, 앉어. 서있지 말구.

여     네.

남     왜? 뭐 물어볼 거 있어?

여     아뇨. 그게 아니구요. 저 어쩌면 다음주부터 이 수업 못하게 될 지도

        몰라요.

남     ...! 왜.

여     엄마가 싫어하세요.

남     그러니까 왜.

여     대학도 안갈건데. 왜 헛바람 들게 그런 걸 하냐구.

남     헛바람은.. 너 어머니한테 말씀드려봤어?

        요샌 공부만 잘하면 여기저기 장학금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많아.

여     하숙비는요.

남     .....

여     책 사보는 건요.

남     ....

여     밥은 어떻게 먹어요.

남     ......

여     하다 못해 버스라도 타고 다녀야할텐데. 옷은 입고 다녀야 할텐데.

        그건 다 어디서 나요.

남     ........

여     학교를, 학비만으로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대학을 다니는 4년은. 그렇게 쉽게,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 잘 알아요. 서울이 어떤 덴데요.

남     은서야.

여     엄만, 괜히 타향 가서 고생하다가 몸망가지고 맘망가진다구요.

        그냥, 착실하게 읍내든 어디 취직해서 한 일년 일하다가

        언니들처럼 시집갔음 좋겠대요.

남     그래서.너는?

여     .....

남     너도 그러고싶어?

여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M)    하늘색 꿈 /박지윤


남     얼마 후, 일요일.


(E) 자동차 와서 서는, 나오는 소리


남     난 과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은서네 집에 직접 찾아갔다.

        

(E) 삐꺽 사립문 열리고 나오는 소리


여     어? 선생님.

남     너 어디 가던 참이야?

여     일하러요. 일요일엔.. 집안일 돕느라. 그런데 여긴 웬일이세요?

        설마. 저 보러 오셨어요?

남     임마. 내가 널 보러 왜 와.

여     그럼요.

남     엄마.. 계셔?

여     왜요. 저희 엄만..

남     드릴 말씀이 있어.

여     안돼요 선생님. 저희 엄마.. 예의 같은 거 모르시는 분이에요.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지는 잘 아는데요.

        괜히 선생님만 상처 받으세요. 그냥 그만 두세요.

남     임마. 내가 나이가 몇인데 상처를 받아.

        무슨 말씀 나올지 다 예상답안 마련해서 왔으니까

        걱정마.

여     선생님....

남     설득하겠다고 온 거 아니야. 그냥. 내 얘길 하러 온거야.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     그래두...

남     나나. 너희 어머니나, 우리 둘다. 니 미래에 관심이 많아.

        그리고, 니가 잘됐으면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니,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큰 싸움은 안날거다. 어머니 좀 만나게 해줄래?

(M)    C'est La Vie / Emerson Lake & Palmer


남     내 얘기를 한참 들으시던 은서의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그러더니, 딸 하나 없는 셈 치겠단다.

        그게 무슨 말씀이냐 했더니.

        자식 하나를 일손 하나로 치고 살았는데,

        그 일손 하나 없는 셈 치고

        당신이 더 부서져라 일하면 되겠다고 했다.

        뒷바라지는 못해주겠지만.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집안에 보탬이 되어주길 바라지도 않겠다고.

        여태 한번도 이런 얘기 해준 선생님은

        안계셨다고. 

        우리 아이가 그렇게 잘나고 이쁜 아인 줄 몰랐다고.

        펑펑 우셨다.

        사실은. 나도 좀 울었다.

(M)    Hear Me / Michael Bolton


(E)걷는 소리


여     엄마랑.. 무슨 얘기 하셨는데요.

남     뭐 별 얘기 안했다니까?

여     근데 엄마가 어떻게 저렇게. 싹 .... 달라지세요.

        나보구 다음주부터 특별수업 빠지지 말고 열심히 하라, 그러시잖아요.

남     나는 그냥. 니가 공부는 꽤 하니까. 시켜보셔라, 그랬지.

        애가 얼굴이 안되니 시집 쪽보단

        그나마 잘하는 공부 쪽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 하면서.

여     네에?

남     어머니도 동의하시더라구. 당신 딸이지만, 외모로 승부를 보긴 좀

        힘들 것 같다 그러시면서?

여     선생니임!!

남     너 이제 엄마 핑계도 못대!

여     ........

남     이젠 핑계 그만 대. 미래의 너에게도, 그렇게 핑계만 댈래?

        내가 이모냥 이꼴이 된 건. 과거의 나에게 어려움이 많아서였어.

        이렇게??

여     아뇨. 그러기 싫어요 선생님.

남     그럼 다시 물어보자.

        너 뭘 전공하고 싶냐. 그 전공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여     저, 영어 공부하고 싶어요 선생님.

        그래서. 외국 책을 번역하거나, 동시통역사 같은 거. 하고 싶어요.

남     그래. 그게 니 미래다.

여     .....(벅차오르는) 네.

남     미래의 니가, 지금 이 순간 너 자신에게 고마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라.

여     네 선생님!

(M)    거위의 꿈 / 인순이


남     가을이 왔다.

        난 아이들에게 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가르치는 한편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 대학 입시 정보를 알아내기에 힘썼다.

        또 한편으론, 은서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느라

        동분서주했다. 


(E) 책 넘기는 소리


남     은서야. 모의고사 7회분 있지? 그거 잘 풀어봐.

        그게 난이도는 좀 높지만, 예상적중문제들이 많이 있어서.....

여     (하품) 선생님. 저 커피 딱 한잔만 마시고 하면 안돼요?

남     자식이... 그래. 그러자.


(E) 커피 빼는 소리


여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남     뭐가.

여     왜 저를 이렇게 도와주세요?

남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내가 니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여     처음에 선생님 오셨을 때. 웬 서울 날라리가 와서 저렇게 뚱하게

        서 있나. 그랬는데.

남     그랬나... 그랬지 내가.

여     선생님도 많이 변하셨어요.

남     그러게. 

(M)    선생님 사랑해요 / 한스밴드


남     은서가 시험을 보고. 대학에 원서를 집어넣고.

        그리고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난 내가 대학입시를 치루는 것보다 더 긴장을 했던 것 같다.

        교무실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 합격자 명단을 살피다가

        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은서가. 합격했다. 당당히. 과 수석으로.


(E) 탁탁 뛰어오며 드르륵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선생님!!

남     (애써 침착) 그래. 은서야.

여     저 됐어요. 저.. 과 수석했어요. 1년 동안 장학금 받을 수 있어요.

남     뭐 그게 흥분할 일이라고. 그럴 줄 몰랐어?

여     선생님... (하더니 울고)

남     하하.. 녀석... 울 일도 많다.

여     (울고)

남     웃어야지 울면 어떡해. 좋은 일인데. 응? 웃어야지.


남     ....라고 말하면서도

        내 눈가도 벌개져 오고 있었다. 난 자꾸만 눈을 깜박여야했다.


여     (진심을 담아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M)    To Sir With Love / Lulu


(BG) '졸업' 노래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


남     졸업식이 한창이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가....

        그 자리에서, 1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녀석들과

        이별할 수가 없었다.

        그 녀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난 그냥 자리에 앉아 졸업앨범을 들여다 보며

        한 녀석 한 녀석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서의 얼굴 앞에선, 조금 더 눈길이 머물렀다.


(E)다가오는 소리


여     제 얼굴이 그렇게 이뻐요?

남     어? 너.. 이녀석. 졸업식 참석 안하고 왜 왔어.

여     선생님 여기 계실 것 같아서.

남     ..... 졸업 축하한다.

여     네.

남     너 그 학원강사 자리. 알바라고 대강대강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그 정도면 하숙비에 용돈은 충분할거니까.

        또 요새 뒤숭숭하니까. 밤에 혼자 돌아다니고 그러지 말고 임마.

여     선생님. 내년에 후배들한테도 우리한테 해주셨듯이 그렇게

        잘해주실 거에요?

남     당연하지. 더 잘해줘야지.

여     싫은데.

남     허.. 녀석. 별... 걸 다 질투하네.

여     저한테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일생에 한분이실테니까.

        선생님한테도 저같은 제잔 일생에 한분이셨으면 좋겠어요.

남     (눈물나지만 참으며) 허허..참..

여     잊지 못할 거에요 절대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남     녀석은 내 앞에서 허리를 숙인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고개를 돌린 채. 한참을 울어야 했다.

(M)    졸업/ 김동률


(E) 걸어가는 소리


여     꼭 1년만이다.

        졸업 후. 1년만. 몇번 전화만 드리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난 후배들의 졸업식에 맞춰, 이곳에 왔다.

        선생님은 오늘도 혼자 교무실에서

        졸업앨범을 보고 계실까.

        어디선가, 과수원의 꽃내음이 나는 것만 같다.

(M) 주제음

 





2009-02-1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