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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71 화 - 서른살의 크리스마스
(M) 주제음 Last Christmas / 신승훈
* 크리스마스 특집 음악에세이는 청취자 김영경 님의 실제 사연을
각색한 것입니다.
여 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었던 난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였고
여기저기서 야단도 많이 맞았다.
(E) 라디오에서 나오는 캐롤
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날
난 팀장으로부터 된통 혼이 나고
내 자리에 앉아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E) 책상 노크하는 소리
남 윤은서씨.
여 (얼른 눈물 닦는 듯한) 네
여 올해 우리 지점 뿐 아니라 강남구 전체에서
자동차 판매량 1위로 판매왕의 자리에 오른
남자다. 좀 뺀지르르하게 잘생긴 얼굴에
느물거리면서 얼마나 변죽이 좋던지...
특히 여자 고객들이 이 남자에게 걸려들면
백프로.. 차를 사지 않고는 못배긴다.
그만큼 수완도 좋고. 능력도 좋다.
(E) 종이 받아드는
여 여기 있는 것만 전송해 드리면 돼요?
남 내가 써놓은 문구대루요. 절대로 전체 문자라는 느낌 나지 않게.
한명한명 다 이름 써서 보내야 돼요.
여 다른 분들은 그냥 전체 문자로 보내시는데.
남 에이 안돼요. 한명 한명 다 다르게 보내야 돼요.
여 ..... 알겠어요. 거기 두고 가세요.
(E)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남 오타 나면 안돼요.
여 .... 알았다구요. (혼자 읽는 듯) 이선아 고객님. 추운 겨울철 차량
운행은 잘하고 계시는지요. 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시던
예쁜 미소도 여전하시구요....? (읽다가) 뭐야.... 진짜 완전 선수잖 아..?
(M) Womanizer / Britney Spears
(E) 자판 두드리는 소리 계속 나고
(E) 걸어오는
남 다 됐어요?
여 아뇨, 아직요.
남 아직도 안됐어요?
여 육백개도 넘는데. 이걸 다 하나하나 보내라 그러니까 그렇죠.
이런 일은 직접 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남 퇴근시간도 넘었는데. 미안해서 어떡하나.
여 미안한 줄 아시면 직접 하시지..
남 저녁 먹어야죠.
여 .... 끝내고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남 그럼 너무 늦잖아요. 그러지 말고. 나도 거의 끝나가니까
같이 나가서 먹어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여 괜찮아요.
남 미안해서 그래요 내가. 이런 일 시킨 것도 그렇고.
또 윤은서씨 들어오고 나서 바쁘다고 밥 한번 같이 못먹었잖아요.
여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남 뭐 좋아해요?
여 초밥.. 좋아하기는 하는데. 괜찮은데...
(M) 사랑은 맛있다 / 휘성
(E) 회전초밥 돌아가는 소리
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소리에요.
남 뭐가요?
여 이 소리. 회전초밥.. 돌아가는 소리.
(E) 접시 하나 집는 듯
남 싱싱한 농어 왔습니다. 먹어요.
여 빨간색 접시가 제일 비싼 거 같은데. 이거 이케 막먹어도 돼요?
남 나 이번에 판매왕 돼서 상금 얼마 받는 지 알아요?
여 잘 먹을께요.
남 그런데 우리 은서씨 나이가... 내년이면 몇 살이죠?
여 내년이면 스물.. 셋.. 돼요.
남 야... 진짜 어리네.
여 어리긴요. 제 친구 중엔 벌써 시집간 애들도 있는데.
남 그래요? 벌써?
여 취직하기도 힘들고. 취직해서 일하기는 더 힘드니까요.
남 은서씨도 힘들어요?
여 안 힘들어 보이세요? 죽을 맛이에요.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확 꼬드겨서 결혼해 집에 들어앉고 싶은 심정이라구요.
남 남자친구 없어요?
여 ...네.
남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때는 뭐해요?
여 그냥 뭐... 친구들 만나요.
남 솔로 친구들?
여 아무래도... 그렇겠죠?
남 그러지 말고, 나랑 놀래요?
여 ..... 김대리님. 여자친구 많으시잖아요.
남 나 여자친구 없어요. 억울하네.
여 왜요. 다들 그러던데. 여자친구 무지 많으시다고.
남 여자친구는 한명만 있어야지. 많다는건 없다는 거나 똑같은 얘기에요.
풍요 속의 빈곤. 몰라요?
(M) 풍요 속의 빈곤 / 김부용
여 .... 솔직히 꿈이냐 생시냐 싶었다.
여러 가지 조건도 좋고. 멋진 이 남자. 우리 지점 여직원들도
모두 호감을 갖고 있는 이 남자가. 나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순간. 남들이 이 남자를 두고. 바람둥이라는 둥. 여자 갈아치우길
밥먹듯이 한다는 둥. 했던 얘기들은 모두 잊혀졌다.
지금까지 그래왔더라도, 나를 향한 이 감정만은 진심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12월 24일이 왔다.
평소보다 화장도 더 신경쓰고. 옷도 제일 예쁜 걸로 골라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왔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이 사람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나한테 한 얘길 까먹었나.
술먹고 한 얘기도 아닌데. 아니면, 농담으로 던진 말을 나 혼자
착각한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 때쯤.
(E) 걸어오는 소리
남 은서씨.
여 (깜짝) 네??
남 나 여섯시에 끝나거든요? 야간 스키 예약해 뒀는데. 같이 타러 가요.
여 (당황) 네??
(E)주변에서 오오..... 하는 소리들
남 오늘 우리 크리스마스 이브 같이 보내기로 했잖아요.
(E)주변에서 더 크게 우와... 하고.
남 그때 그러겠다고 했죠? 그거 나랑 사귀겠다는 뜻 아니에요?
(M)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 / 동방신기
(E) 스키장에서 쏴악 내려오는 소리
여 엄마야!!!!
남 괜찮아요?
여 나 스키도 못타는데... 제일 상급자 코스에서 내려오면 어쩌라는 거에 요. 나보구 죽으라는 거에요.
남 이렇게까지 몸치인 줄은 몰랐지. 나랑 스키 같이 탄 여자들 중에서
제일 못타는데요?
여 네?
남 (웃고) 잡고 일어나요. 사람들한테 방해돼요.
여 아이구.... 나 스키 못타요. 그냥 걸어가요.
남 중심 잡는 게 그렇게 힘드나? 아니 스키 이렇게 못타면 딴 데
가자 그러지.
여 예약해 놨다면서요.
남 예약이야 취소하면 되는거고.
여 그런데요. 왜 그러셨어요? 아까...
남 아까 뭐?
여 회사 사람들 앞에서...
남 사귀자고 한 거?
여 네....
남 사귀고 싶으니까.
여 ...진짜루요?
남 나는 거짓말은 안해요.
여 ..... 왜 저랑 사귀고 싶은데요?
남 착해 보여서. 착한 여자랑 사귀고 싶었어요.
여 .....나 별로 안 착한데..?
남 그거야 사귀면서 천천히 알아보면 되고. 팔 꽉잡아요.
(M) 스키장에서 / 터보
여 그날부터 하루하루가 어쩌면 꿈같은 나날이었다.
위험한 남자니까 조심하라는 여직원들의 충고는 모두
날 질투하는 소리로만 들렸고.
같이 출근을 하고. 쉬는 시간엔 옥상에 올라가 커피를 마시고.
점심도 같이 먹고. 퇴근도 같이 하는 시간들은
정말 행복했다.
하루에 한 개씩 다른 맛의 사탕을 먹는 아이처럼
나는 매일이 기대되고. 즐거웠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남 와... 암튼 오늘 그 고객은 진짜.. 진상이었다.
여 그러게. 차란 차는 다 타보고. 거기다 계약서 바로 꾸밀 것처럼
그 요란을 떨더니. 막판에 다시 오겠다 그러고 가 버리면 어떡해?
옆에서 보는 나까지 화나더라.
남 원래 여자들이 변덕이 죽끓듯 하잖아.
여 여자를 그렇게 잘 알아?
남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여 치. 그렇게 잘 아는 여자들 다 어따 두고 날 사귀신대?
남 그러게? 나도 그게 이상하거든?
여 뭐야~~
남 근데 옆구리에 낀 거 그건 뭐야?
여 아... 이거?
(E)부시럭대며 꺼내고
여 스웨턴데. 내가 손으로 짠거야.
남 나 주게?
여 아니?
남 그럼 뭔데.
여 아버지 가져다 드리라구.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남 나 말고 우리 아버지?
여 응. 아버지가 저번에 내 손 잡고 오빠 사람 만들어 줘서 고맙다구..
꼭 붙들고 결혼하라 그러셨잖아. 그거 고마워서.
남 ...... 결혼은 무슨...
여 ...응?
남 아니. 너도 아직 어리고 한데. 결혼은 뭐.
여 ...난 괜찮아. 난 결혼 일찍 하고 싶어.
남 야 내려가자. 팀장이 우리 맨날 옥상으로 샌다고 싫어하더라.
여 .... 오빤 결혼하기 싫어?
남 나도 아직 서른도 안됐잖아. 지금 딱 좋은데. 왜 너저분하게 결혼을
생각해.
여 결혼이 너저분해?
남 뭐 꼭 그렇다기 보다는. 암튼. 난 그건 아직 생각하기 싫어.
여 ...... 그치만 나는...
남 어 추워. 나 먼저 내려간다.
(E) 걸어가는 소리
여 뒤돌아 내려가는 그 사람의 등이
차가운 얼음장처럼 보였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M) You're so Cold / Mariah Carey
(E) 탁탁탁 들어오는 소리
여 오전에 여직원들끼리 휴게실에서 떠드는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 사람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오래간다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고.
역시 윤은서는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바보처럼 결혼할 줄 알고 기다리는 윤은서가 불쌍하고 가엽다고
그녀들은 낄낄대고 있었다.
난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가. 그 사람의 자리 앞에 섰다.
남 (전화 통화하는 중인 듯) 네 고객님. 차량 인도까지 1주일 정도 시간
있으시니까요. 그전에 제가 연락 다시 드리겠습니다. 네.
(전화 끊고) 왜.
여 잠깐 얘기 좀 해.
남 나 지금 바뻐. 이따가.
여 여자 생겼어?
남 ....뭐?
여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대한 호기심이 어린 눈빛들로.
여 거짓말 못했다 그랬지. 여자 생겼냐고.
남 ....(한참 있다가) 어. 그래. 만나는 사람 있어.
여 ....뭐?
남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
여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다시 전화를 받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지만. 나의 세상은 거기서 멈춰 버린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날이었다.
(M) 총맞은 것처럼 - 백지영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여 난 지금 서른살이다.
그럴 듯한 무역회사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고.
솔로다.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했던 연애에서
몹시 뜨거운 맛을 본 이후.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하고 있다.
어떤 남자를 만나도, 저 남자 역시 내 뒷통수를 칠 거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나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그 뒤에 어떤 의뭉스런 속셈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한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난 끝없이. 그 남자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7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M) 사랑이 지나가면 / 이은미
(E)캐롤 흘러나오는
여 올해는 불황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시즌인데도 그런 기분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얼마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하셨기 때문에
내 기분은 엉망이었다.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출퇴근하는 날들이었으므로
나의 서른, 겨울은 말할 수 없이 우울했다.
그런데.
(E)전화오고
여 여보세요? 어 선배. 왜 또...
나 안돼. 엄마 편찮으시다니까? 민정이 해줘. 지난번에
남자 만나고 싶다고 난리던데. 암튼 난 안돼.
외롭긴 뭐가 외로워. 바빠서 외로울 틈도 없어. 진짜야.
(사이) 왜 꼭 내가 그 소개팅을 해야 하는데?
뭘 살려줘. (사이 있다가) 딱 삼십분만 앉아 있다가 나와도 돼?
진짜야. 나중에 너무했다는 둥 그런 소리 하지마.
알았어 그럼.
(E)전화 끊고
여 제일 한심해 보였던 사람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개팅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러게 생겼다.
(M) 크리스마스 이브 / 김현철 & 임상아
(E) 레스토랑 들어가는
(E) 전화오고
여 여보세요
남 윤은서씨?
여 네. 아.. 혹시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이세요?
남 아.. 은서씨.. 보이네요.
여 네? 제 얼굴 아세요?
여 ... 라고 말하며 두리번거리던 나는 그대로 굳었다.
창가 쪽에 앉은 남자는. 7년 전 그 남자였다.
곧바로 등을 돌린 난,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E)걸어가는. 거리 소음
남 은서씨. .... 은서야.
여 네? 왜요?
남 오랜만이다.
여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주세요. 오늘 소개팅. 진규 선배한테
그쪽이 부탁한건가요?
남 어. 세상이 좁은건지. 얘기하다 보니까 진규가 니 대학 선배더라구.
여 그래서요? 그때 나 갖고 논 걸론 부족해서. 또 생각이 나던가요?
그래서 만나게 해달라고 그랬어요?
남 갖고 놀기는 누가...
여 나는 지구가 쪼개져서. 우리 둘만 살아남았다 그래도
당신 만나고 싶은 생각 전혀 없거든요? 다 돼도 당신만 안되거든요?
얼굴도 보기 싫거든요? 그러니까 좀 사라져 줄래요?
남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살면서... 정말 절실하게...
깨달..
여 됐구요. 그런 깨달음을 얻었으면. 다음에 만날 여자한테나 잘해주세 요. 지금 어디 와서 수작이에요 수작이? 나 그때 당신이 알았던
어리바리 바보같이 순진했던 윤은서 아니에요. 당신이 만나자면
만나고. 헤어지자면 헤어졌던. 멍청이 윤은서 아니라구요.
나 지금 나이 서른이에요.
남 은서야. 나 니가 지금 혼자라 그래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반가웠는지
몰라. 나한테 정말.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기회를 줄래?
내가 그때 얼마나 어렸는지. 얼마나 생각이 없었는지
변명이라도 하게..
여 놔. 사람은 안변해.
(M) 마주치지 말자 / 장혜진
(E) 전화벨 소리
여 그 이후, 그 사람은 끈질기게 전화를 해댔지만
난 한번도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E) 노크 소리
여 (조용한 소리) 누구세요?
(E) 들어오는
여 (놀라서 조용한 소리로) 여긴 왜.. 병원까진 왜 온거야.
남 어머니 편찮으시다면서.진규가 그러던데...
여 엄마 주무셔. 나가. 나가라구.
남 은서야.
여 아우 증말. 이리 와. 나와 얼른.
(E) 복도 화나서 걷는
여 여기까지 찾아오면 어쩌라는거야? 난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
다한 걸로 아는데?
남 은서야. 딱 십분만. 내 얘기 들어주면 안될까? 정말 딱 십분만.
여 십초도 듣기 싫어. 가. 다시는 찾아오지 마.
남 우리 아버지 스웨터는 왜 짜준거야.
여 ...뭐?
남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기억하지.
여 .......그래서!
남 너랑 헤어지고. 나 우리아버지한테 얻어맞기까지 했었다.
속없는 놈이라구.
여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7년 전 일이야.
남 그때 나도 겨우 스물 여덟이었어. 내가 최고 잘난 줄 알았고.
잘나가는 줄 알았고. 니가 좋으면서도. 결혼 얘기 같은 거
너무 막연해서 좀 무섭고. 두렵고. 그랬던 나이야.
여 그래서? 이제 나이 좀 먹고 결혼해야 할 것 같으니까
같이 놀던 애들 지겨워졌어? 결혼은 착한 여자랑 해야 할 것
같디?
남 .....
여 그런데 어쩌나? 나 착한 여자 아니거든? 그땐 내가 바보같아서
니가 나 착해서 좋다니까. 착한 여자 행세 한 거 뿐이야.
남 그런 거 아니고. 너를 못잊겠어. 잊을 수가 없어.
하루도 생각 안나는 날이 없고. 세월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해. 아무도 못만나겠어. 만나도 너랑만 비교가 돼.
내 발등을 찧고 싶게 후회 많이 했어. 정말 후회 많이 했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여 (차갑게) 그래서. 시간 되돌릴 수 있어?
남 ........
여 나도 그땐 그랬어. 다 되돌리고 싶었어. 그런데 안되더라.
이것도 안되는거야. 잘 가.
(M) 잘가 / 춘자
여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 사람의 출현은. 내 마음을 풀어주는 계기가 됐었다.
첫사랑에게 버림 받았다는 상처가 컸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후회를 했다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남 어 왔어?
여 여기 왜 또 왔어. 안 나가?
남 내가 어머님한테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해드리고.
팔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얼마나 잘해드렸는데.
너 어머니가 나 디게 좋아하셔. 그쵸 어머니.
여 엄마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난 그를 끌고 나왔다.
여 진짜 이럴래?
남 어디 갔다가 이렇게 늦었어.
여 나 남자 만나.
남 ...뭐?
여 고마워. 오빠가 나타나서 후회한다느니 얘길 해주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 내 잘못으로 버림 받았던 게 아니었구나..하고.
이제 남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연애도 할 수 있을 것 같구.
그래서 부지런히 만나고 다니는거야.
남 ........크리스마스 이브엔.. 뭐할건데?
여 당연히 남자 만나지.
(M)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 Olivia Olson
(E)크리스마스 캐롤
여 호언장담한대로 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를 만났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밥도 먹고. 와인도 마셨다.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그래. 이런 남자들 중 한명과 내년쯤엔 결혼도 해야지...
생각했다.
두고 봐라. 내가 널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라고 생각했다가. 멈칫 놀랐다.
난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 10시가 넘어. 나와 데이트한 남자는
날 병원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또 연락하자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후
병실 복도를 걸었다.
바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병원 안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E) 걸어오는 소리
(E) 문 열고
여 그리고. 병실 문을 조용히 열었을 때.
(E) 아주 작게 또각..또각... 소리
여 왜 그랬을까.
그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잠들어 계셨고.
그 사람이 잠든 엄마의 손톱과 발톱을 정성스럽게
깎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조카 녀석조차도 할머니한테 냄새가 난다며
손이 더럽다며. 잡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그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엄마의 손톱 발톱을 정리해
드린 후. 열심히 팔 다리를 주무르는 것이었다.
엄마는 시원하신지, 잠든 중에도 평안한 표정이었다.
여 ....(조용) 뭐해.
남 아 깜짝이야. 언제 왔어. 소리도 없이.
여 뭐하냐구.
남 그냥..
여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데서. 뭐하는 거냐구.
남 밖에 추워?
여 딴 소리 말구.
남 내가 뭐 할 말이 있냐. 난 니 마음 풀릴 때까지.
아니 풀리더라도. 계속. 너한테 잘하고 싶고. 어머니한테도
잘하고 싶고. 그냥 그렇다.
여 거짓말.
남 ......진짜야.
여 밥은....
남 생각해 보니까 밥을 안먹었네. 나.. 밥 좀 사주면 안되냐?
여 나와.
남 ..........밥.. 사주게?
여 그래.. 나와... 밥.. 사줄게.
(M) 아마도 그건 / 박혜경
(E) 걸어나오는 소리
남 눈 안온다더니... 좀 오네?
여 응. 그러네..
남 은서야.
여 왜.
남 고맙다.
여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어떻게 눈치챈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누그러져버린 마음.
용서 안하기로 이 악물었지만. 이미 모두 용서해 버린
바보같은 마음.
병원 앞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면서
그 사람은 자기 호주머니에 내 손을 넣어주었고.
그렇게. 우린 한참 서 있었다.
(M) White Christmas / All Artists
(M) 이어지며 -
여 그리고 5개월 후.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 그 남자는?
남 여보. 왜 이렇게 늦었어. 나 아까 아까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 청소 다 해놨네?
남 어.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해놨어.
여 잘했어. 아 맞다. 있잖아 여보.
나 라디오에 사연 보냈어.
남 무슨 사연?
(*점점 멀어지는 느낌*)
여 사랑 이야기 보내라 그래서. 우리 결혼하기까지 히스토리를 올렸지.
남 뭐? 그럼 완전 나 나쁜놈 되는거야?
여 당근이지.
남 안되는데...
여 선물 준대.
남 그래? 선물이 뭔데?
(M)주제음 - Last Christmas / Wham
2008-12-2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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