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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7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51화 - 내가 사랑하는 세탁소


(M) 주제음 :  화분 / 알렉스


(E) 운동장 달려가는 소리들


남     (멀리 대고 소리치는) 얌마! 거기 서 있지 말고 움직이란 말야!

        기철아! 센터를 봐야지 뭐하고 있어!!! 거기서 슛을 날려!


(E) 달려가는 소리들 크게 나고


남     누가 들으면, 국가대표팀 축구 감독이나 되는 줄 알겠지만.

        여기는 초등학교 운동장.

        나는 이 초등학교의 축구팀 감독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체육 선생님 정도다.

        하지만 나에겐 자긍심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제2의 박지성, 홍명보로 만들겠다는

        꿈도 있고 말이다.

        애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힘이 난다.

        국가대표팀 감독, 하나도 안 부럽다.

(M) 꿈을 향해 -김종국


남     사실, 학교측으로부터 간식비 한번 지원이 없었다.

        애들 운동 끝나고 떡볶이니 음료수니 사먹이는 것도 내 돈.

        더러워진 유니폼을 세탁하는 것도 내 돈이다.

        요즘 세탁비도 많이 올라

        이것도 만만치가 않다.


(E) 버스 지나가는 소리


남     마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커다랗게 “파격세일”이라고 써붙인

        세탁소가 하나 보인다.


(E) 버스 멈추고 내리는 소리


남     난 다음 정거장에서 급히 내렸다.

        한푼이라도 절약해야 하는 이 때

        너무도 반가운 문구였기 때문이다.


(E)드르륵 문 열고 들어가는 소리

(E) 치이익 다림질 소리


남     들어가니, 웬 여자 하나가 다림질을 하고 있다가

        날 흘낏 본다. 손님이 왔는데 인사 한마디 없이 말이다.


남     ....세탁물 좀 맡기러 왔는데요.

여     뭔데요.

남     이거... 유니폼이요.

여     거기 두고 가세요.

남     .... 언제 찾으러 와요?

여     아무 때나 오세요.


남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 가격이 싸면 뭘하나.

        서비스가 이 모양인데.


여     왜요?

남     아뇨. 더운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남     .......라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봤지만.

        여자는 뭐 저런 게 다 있나..하는 눈빛으로 날 다시 보더니

        자기 일을 계속한다.

        참 나.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하며 돌아서 가려는데.


여     (혼잣말처럼) 옷 진짜..드럽네.

(M) 여름 이야기 - 디제이디오씨


남     다음날. 세탁물을 찾으러 가면서, 난 결심을 굳혔다.

        몇천원 더 주고 우리 동네 친절한 아저씨한테 가는 게

        백번 낫다고. 두고두고 그 여자의 불친절이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E) 드르륵 문 여는


남     저, 세탁물 찾으러 왔는데요.

여     잠깐요. 


(E)비닐 부스럭거리고


여     여?어요. 


남     그녀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하지만 난 5분 전까지 굳게 했던 결심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민 유니폼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유니폼보다 하얗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여     왜요. 마음에 안드는 거 있어요?

남     네? 아..아뇨. 그게 아니라..

여     네?

남     아.. 죄송해요. 그런 건 아니구요. 혹시 유니폼에 무슨.. 향수 같은 거

        뿌리셨어요?

여     운동복에 무슨 향수를 뿌려요. 내 몸에 뿌릴 것도 없구만.

남     그....그렇죠? 그런데 어디서... 무슨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이상하네..

(M)보랏빛 향기 - 강수지


남     이렇게 많이 깎아주셔도 돼요?

여     걱정되면 더 주시든가요.

남     하하... 뭐 남으니까 장사하시겠죠. 안남기고 하는 장사 있겠어요?

        하하.. 

여     잠깐 비켜주실래요? 거기 옷 좀 꺼내야 돼서.


남     사람이, 좀 친한척 해보려고 웃고 있으면.

        따라 웃어주기도 하고 그러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이 여자는, 달랐다. 무슨 외계인 같았다.

        뚱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자기 할 일만 했다.


여     왜요. 뭐 더 맡길 거 있어요?

남     아뇨.

여     그럼 가시죠 왜..

남     진짜 궁금해서 여쭤보는건데요. 혹시.. 안녕히 가세요...라든가

        어서오세요... 이런 말. 할 줄 몰라요?

여     네?

남     아니... 웃으면서 그런 말 몇마디 더 하면. 이 가게 장사 훨씬

        잘될 것 같은데.

여     안녕히 가세요.

남     (황당) 네?

여     안녕히 가시라구요. 저 바쁘니까 말 그만 시키구요.

(M) 안녕 - 박혜경


남     태어나 이런 왕무시는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 보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약간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그래서.


(E) 문 드드륵 여는


남     며칠 후. 세탁물이 생겼을 때도

        난 다시 그 세탁소를 찾았다.


(E) 문 드르륵


남     다음에도. 


(E) 문 드르륵


남     또 그 다음에도. 난 그곳에 갔다.

        여전히 그녀는 무뚝뚝했고. 필요한 말 이외엔 하지 않았지만.

        세탁비는 쌌고. 옷은 늘 깨끗한데다가 향기까지 났다.


(E) 비닐 부스럭 소리


여     여?어요. 

남     늘.. 뭔가에 기분 나빠 있는 사람 같아요.

여     그쪽은요. 늘 남의 일에 간섭 못해서 안달난 사람 같아요.

남     어!!! 탄다!!

여     (확 돌변하며) 악.. 어떡해. 이거 어떡해....

남     아 조심하세요.

(E) 뭔가 쿠당탕 떨어지고

여     엄마....

(M)   엄마야 / 신승훈


(E) 문 드르륵 열리고


남     빨리 오세요. 병원 가자니까요?

여     그냥 약국 가서 약 바르면 돼요. 무슨 병원씩이나.

남     아 오시라구요. 얼른요. 택시!


(E) 택시 도착하고 문 여닫는, 출발하는 소리 


여     아야....

남     아니. 혼자 냉정한 척은 다하더니. 다리미를 다 떨어뜨려요?

        스쳐서 망정이지 클날 뻔 했잖아요.

여     옷이 다 타서 큰일이지.. 뭐 이 정도 다친걸로...

남     옷이야 물어주면 되지만. 사람 다친 거... 이게 진짜 큰일인 거에요.

        내가 운동하는 사람이라서 진짜 잘 아는데요. 사람 몸 관리

        이거 진짜 중요한 거거든요.

여     아...

남     어디 봐봐요. 아이구. 이거 꽤 가겠네.

여     (괜히 쑥스럽고) 왜 이래요.

남     뭘 왜 이래요. 지금 누가 그쪽 손 이뻐서 만져요?

여     그러니까.. 됐다구요....


남     순간. 웃음이 나올 뻔 했다. 그 무뚝뚝하고 뚱하기만 하던 여자가

        부끄러워 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여     뭐..뭘 그렇게 빤히 보고 그래요. 짜..짜증나게..


남     나이는 서른 둘셋쯤 됐을까.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머리는 좀 부스스하고. 눈은 동그랗고 큰 편이다.

        안 꾸며서 그렇지, 예쁜 얼굴이다.

        그런데. 손은 참.. 거칠다. 거칠고 크고 투박하다.

        여기저기 데인 자국도 많고. 상처도 많다.

        그러면서도 참 착해 보이는 손이다.

(M)   She / Elvis Costello


(E) 거리 소음


남     거봐요. 그래도 이렇게 응급 치료 받고 나니까 한결 낫잖아요.

여     ...

남     고맙다.. 뭐 이런 말도 안해요? 내가 치료비도 대신 내줬구만.

여     세탁소 가서 줄께요. 급해서 지갑을 안가져와 그렇지.. 뭐..

남     친구 없죠.

여     뭐요?

남     애인도 없죠. 남자랑 연애 같은 거 해 본적도 없을 것 같은데? 맞죠.

여     웃겨 진짜!

남     어? 발끈하는 거 보니까 진짠가보네? 그 나이에 연애 한번도 안해봤        어요? 사람이 성격이 그러니까 그렇지. 누가 찔릴까 무서워

        옆에 오기나 하겠어요?

여     (화가 나서 떨리는) 치료비는 내일 세탁소로 받으러 오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우리 세탁소 오지 마세요. 아셨어요?

(E)탁탁탁 가 버리고


남     좀 친해져 보고 싶어서 건넨 농담이었는데.

        무언가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이였을까.

        그녀가 화를 내고 가 버리자.

        어렸을 때 좋아하던 여자애 고무줄 끊다가 울려버렸던 것처럼

        마음이 좀 이상했다.

(M) 인형의 기사 - 신해철


(E) 드르륵 문 열고

(E) 치이익 다림질 하는 소리


남     그렇게 먼저 가 버리면 어떡해요. 민망하게.


(E) 지갑에서 돈 꺼내 탁 내놓고


여     여기 치료비 있어요.

남     안 더워요?

여     안녕히 가세요.

남     그래도 이젠 인사 잘하시네.

여     그쪽이 말한 거처럼 나 덥거든요? 더우니까. 더 이상 말시키지 마시        구요. 가주실래요?

남     일 언제 다 끝나요? 오늘은 손도 그런데. 일 그만 하고..

        맥주나 한잔 하죠. 내가 이 돈으로 살께요.

여     아까 내가 태워먹은 원피스. 그거 물어주려면 다림질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알아요?

남     ...네?

여     삼백장 해야 돼요. 알았으면.. 가주세요.


남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고. 팔목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

        뜨겁게 올라오는 수증기 속에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다.

        내가 깨끗하게 빨아진 유니폼을 받을 때마다 느꼈던

        바로 그 향기였다.

(M) 좋은 사람 - 토이


--------------------1부 끝 -------------------


*잠시 뒤 2부가 시작됩니다.


(E) 아이들 달리는 소리


남     야... 얌마. 니들 좀 더 열심히 안 달려? 유니폼 봐라. 그거

        그렇게 깨끗해서... 응? 운동을 얼마나 안했으면 유니폼이 그렇게

        깨끗해?! 


남     .....라고 괜히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속으론 빨리 애들 유니폼이 땀과 흙으로 얼룩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볼 수 있으니까.


(E) 드르륵 문 열고


여     오지 말라 그랬을텐데요?

남     야.. 손님 이렇게 푸대접 하는 세탁소는 대한민국에 여기밖에 없을

        겁니다.

(E) 몇걸음

여     비켜요. 걸치적거리니까.

남     약은.. 잘 챙겨 발라요?

여     .....그래요.

남     한 십분만 시간 돼요?

여     ...?

(E) 비닐봉지 부스럭

남     아이스크림 사왔는데.

(M) 아이스크림 - 엠씨몽


(E) 오토바이도 지나가고. 작은 골목길 분위기의 소음들


남     난 이런 데가 좋더라구요.

        가게 앞에.. 평상이나 의자 같은 거 있는 데. 가끔 여기 앉아서 아이        스크림도 먹고. 과일같은 것도 먹고. 그럼 좋잖아요.

여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지금도 그쪽이 하두 우겨서 할 수 없이

        나와 있는건데.

남     하루 종일 그 덥고 좁은 데서. 지겹지도 않아요?

여     밥벌이가 다 그렇잖아요. 지겨운 거.

남     난 안 그런데? 난 내 밥벌이... 재밌는데?

여     ..... 

남     왜 그렇게 봐요?

여     아뇨...

남     왜요. 내가 너무 잘생겼어요?

여     참.. 신기하네요.

남     뭐가요?

여     처음 봐요. 이렇게 대책 없이 긍정적인 사람.

남     왜 대책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있고. 이루고 싶은 게 있고.

        그래서 열심히 달려가는데. 그거보다 더 좋은 대책이 어딨어요?

여     인생을 쉽게 살아왔나보죠.

남     인생이 쉬우면. 이루고 싶은 게 생기겠어요?

        반드시, 기필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는 건요. 그만큼 힘들게

        살아왔다는 거에요.

여     (시니컬) 힘들게요? 뭐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먹을 게 없어서 굶어 봤어요? 세상천지에 기댈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울어봤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도 하기 전에

        지쳐 쓰러져 잠들어 봤어요? (후훗 웃고) 꿈? 그런 게 어딨어...

(M)   그대에게 바래요 /  솔비 & 김종욱


(E) 자전거 타고 와서 멈추는


남     그날밤. 11시가 넘은 시간.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을 하던 도중, 그녀의 세탁소 앞에 멈췄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간간이 땀을 닦아가면서. 어깨를 두드려가면서.

        12시가 넘어서야 모든 일은 끝났다.


(E) 드르륵 문 열고 나오는


남     이제 끝났네요?

여     엄마야.. 뭐에요.

남     집이 어디에요?

여     지금 뭐하는 거에요?

남     데려다 주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버스도 끊겼잖아요.

여     이 동네에요. 버스탈 필요 없어요.

남     그렇구나.... 그래도 좀 뒤에 타주면 안돼요? 기다린 사람 성의가

        있는데.

여     그쪽이... 날..... 왜 기다려요.

남     보고 싶으니까.

여     .....

남     봐요. 기다리니까, 만나잖아요. 그래서 기다렸죠.

(M) 두 사람 - 성시경


(E) 자전거 가는 소리

남     좀 꼭 잡지..

여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가기나 하세요.

남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뒤에서 허리 꼭 잡고...

        뭐 그런.....

여     앞으론 이러지 마요.

남     왜요?

여     누가 나 기다리는 거 싫어요.

남     왜 싫어요?

여     .....

남     왜 싫은데요.

여     또 기다리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거 싫어요.

남     .... 또 기다릴건데요?

여     ......

남     미친놈이라고 욕 먹겠지만요. 나 그쪽이 좋아요.

        참 이상한 여잔건 알겠는데. 그래도.. 좋네요.

여     ..........

남     근데요. 저번부터 궁금하던 게 있었는데. 무슨 향수 써요?

여     내가 향수같은 거 쓸 사람 같아 보여요?

남     아 물론.. 안 그래 보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쪽이랑 있으면

        무슨 향기 같은 게 나거든요? 이상해 참....

        아카시아 향기 같기도 하구요. 라일락 향기 같기도 하고.....

        아니 무슨.... 소나무 숲에서 나는 그런 향 같기도 하고....

여     땀냄새겠죠.

남     세상에 그렇게 좋은 땀냄새가 어딨어? 좀 꽉 잡아봐요.

(E) 자전거 빨리 달리는

(M) 사랑한다면 - 나무자전거


(E) 풀벌레 우는 소리

남     밤 되니까.. 그래도 시원하네요. 집이 여기에요?

여     여기 세들어 살아요.

남     그렇구나. 집 아담하니 좋네요. 갈께요.

여     (좀 어렵게) 잘 가요.

남     (반갑고) 방금 뭐라 그랬어요?

여     내가 뭐랬다구요. 가라구요.

(E) 대문 열고 들어가 버리고


남     그녀의 작은 방에 불이 켜질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천년 같았다.

        내일 학교 끝나고 세탁소에 들르면, 오후 다섯시.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열일곱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초조했다.

        내가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다.

(M) 누구보다 널 사랑해 - 비쥬


(E) 드르륵 문 열고


남     안녕하세요.

여     .....네.

남     오늘은 뭐 맡기 거 있어서 온 건 아니구요.

여     .....(어색) 왜요.

남     뭐 배달 같은 건 안해요?

여     ....해요. 

남     그거 좀 해줄라구요. 자전거 가져왔어요.

여     됐어요. 이따가 문 잠그고 갔다오면 돼요.

남     에이 뭐하러 그래요. 세탁의 생명은 빠른 배달인 거 몰라요?

        내가 얼른 갔다 올께요. 어딨어요?

여     아니 뭐... 여기 있기는 한데.... 괜찮은데...

남     갔다 올께요.


(E) 자전거 타고 가는


남     바람을 가르며 배달물을 들고 가는 마음은

        우리 나라 축구가 4강에 올라갔을 때의 감정과 비할 만 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M) 사랑해 - 마이티하우스


(E) 캔콜라 따주는


여     .... 먹어요.

남     야.. 일하니까 그래도 마실 거 주네? 잘 마실께요.
여     .... 배.. 안 고파요?

남     고프죠. 엄청 고프죠.

여     저 앞에.. 삼겹살집 있는데.... 먹으러... 갈래요?

남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 하는 거에요?

여     진짜 웃기는 아저씨네. 관둬요. 공짜로 부려먹은 거 미안해서

        사주려고 그런건데.

남     내가 사줄께요. 가요.

여     됐다니까요.


(E)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


남     많이 먹어요.

여     ...네.

남     소주도 한잔.

(E) 소주 따라주는

여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남     또 그런다.

여     암튼.... 고마워요.

(BG) 우리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 김광민


여     내가... 사람을 못 믿어요. 안 믿어요.

        너무 많이 속고. 많이 치여봐서요.

        내가 날 지키지 않으면. 세상이 날 공격해 온다는 걸 아니까요.

        그냥 숨어서. 상처 안받고 살고만 싶은 거에요.

남     누가 공격을 해요. 그런 생각부터 버려요.

여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난 그렇게 삼십년 넘게

        ....혼자... 살아온 사람이니까요.

남     .... 

여     태어남이 축복받지 못한다는 건요. 평생 극복이 안되는 문제에요.

        나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거든요. 그것도 사람 잘 안다니는     

        계단에.

남     .....!

여     그건.. 내가 죽어도 상관 없다는 뜻이었겠죠.

남     저...

여     그런 표정 안했으면 좋겠는데..? (한숨) 그런 표정.. 너무 많이 봐왔어        요. 불우이웃돕기 모금함 앞에 선 사람 같은 표정. 동전 몇 개쯤

        던져줄 마음 있다... 그런 인자한 표정.

남     난 그런 거 아니에요.

여     ......

남     내가 지금 불우이웃돕기 모금함 앞에 서 있는 것 같다면요.

        나는 그 모금함 우리집 안방에 가져다 놓고.

        평생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여     ....!

남     그래요. 지금 당신이 가여워요. 그 차가운 계단에서 울고 있었을

        당신 생각을 하니까. 미치겠어요. 열받아요. 화나요. 안타까워요.

여     .....

남     그게 어떤 아이여서가 아니라요. 당신이어서 그래요.

        당신 과거라서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당신 과거라서요.

여     ....... 그만해요. 먼저 갈께요.

남     아직도 계단에서 그렇게 울고만 있을 거에요?

        이제... 일어서서 걸을 수 있잖아요. 거기서 벗어나요.

여     ......

남     내가 도와줄께요.

(M) You raise me up / westlife


(E)걸어가는 소리


여     아이들 유니폼 보면... 참 귀여워요.

남     뭐가요?

여     김동우라는 애는 주로 가슴 쪽이 더러워지구요.

남     걔가.... 공을 가슴으로 잘 받거든요.

여     이승준이라는 애는 엉덩이 쪽이 더럽구요.

남     승준이가 골키펀데 공을 막을 때 손으로 안 막고

        엉덩이로 막아요.

여     네?

남     그게 더 확률이 높아서 냅두기는 하는데.

        또 그녀석이 자주 자빠져서 주저앉기도 하구요.

여     (웃는)

남     어? 웃네요? 웃을 줄도 아네요?

여     ....

남     웃으니까 진짜 좋은데.

여     나는요. 사람 마음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줄줄도 몰라요.

남     그런 거 주고받는 게 무슨.... 돈 빌려주고 갚는 것처럼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나는.... 그냥 그쪽이.... 그렇게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애들 유니폼 들고 달려가면. 그 세탁소에 그렇게.

여     .......

남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하게 좋은 사람이니까.

여     (잔잔히 웃고)


남     그녀의 손을 잡는다. 투박하고. 거칠은 그 손이.

        내게 가만히 속삭인다. 고맙다고.

        힘들었던 과거. 깨끗하게 세탁해서 보송보송하게 말려놓을테니.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고.

(M) 주제음 :  화분 / 알렉스

 



        




        




        

        













2008-07-30(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