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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4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36화 - 서로 다른 추억


남     오늘 음악에세이는 청취자 문병선님의 사연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입니다.


(M) 주제음 -  쩜쩜쩜 / 더 넛츠


(E) 매미 소리


남     (조금 멀리서) 얘들아. 이따 8시에 마을회관에서

        오빠들이 영어 가르쳐 줄 거거든? 다들 와~ 알았지?


여     어느 여름 방학.

        우리 마을에는 대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왔다.

        여고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도시에서 온 잘생긴 대학생 오빠들을 보며

        조금은 들떠 있었고.

        난, 유난히 시원스럽게 잘 웃는 한 사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남     야.. 

여     네? 저요?

남     안녕하세요? 이런 것도 안해?

        우리 그래도 며칠 얼굴 본 사이잖아.

여     안녕하세요...

남     어디 가?

여     그냥... 산책...

남     산책? 이 더운 데? 그래서 너 얼굴이 새까맣구나?


여     순간 얼마나 창피했는지.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남     (저 멀리 뒤에서) 야.. 은서야.. 윤은서..


여     그에게 내 얼굴이 까맣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는 창피함과.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

        함께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M) 내 마음의 풍금 / 한동준 & 장필순


(E) 개울 흐르는 소리


여     마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었다.

        버드나무가 낭창낭창한 가지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곳.

        그 아래로 맑고 차가운 실개울이 흐르는 곳.

        거기 앉아서 다리를 동동 걷고

        발을 담그고 있으면. 머릿속까지 함께 맑고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남     은서야. 

여     (깜짝) 아 깜짝이야...

남     뭐 죄졌냐. 왜 이렇게 놀래.

여     왜 오셨어요?

남     왜 오긴. 우리 저기서 다같이 지금 풀베고 있잖아.


여     그가 가리키는 곳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논두렁이었다. 그의 말대로 거기엔 그의 동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남     저기서 보니까 너가 보이더라구. 안그래도 어제 내 말 때문에..

        속상했었나 싶어서 신경쓰였고.. 괜찮아?

여     (기어들어가는) 괜..찮아요. 저 원래 까매요.

남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난 건강해 보이고 귀여워서 그런 건데.

여     그래도 전.. 하얗고 싶거든요.

남     하얀 게 뭐가 좋아.. 그냥 비리비리.. 매력이 없잖아.

여     ..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남     당연하지~ 너 나중에 대학 가면 인기 진짜 많을걸?

        원래 너 같은 스타일을 남자들이 좋아해.

여     치...

남     진짜야. 고2? 고3?

여     고3요.

남     내년에 꼭 우리 대학 와라. 오빠가 잘해줄게.


여     그는 별 생각 없이 내뱉었을 이 한마디에..

        나는 희망 대학을 바꾸고 말았다.

(M) 나도 여자랍니다 - 장나라


(E) 캠퍼스 소음


여     다음해 봄.

        나는 그 오빠가 다니던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그 사람이 다닌다던

        공과대학 앞을 서성여 봤지만.

        그곳은 너무 넓었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이름 석자만 가지고 그 오빠를 찾기는 무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이 미팅을 하자고 했다.

        화학공학과 2학년들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과..

        설마...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만약에, 그 자리에 나갔는데..

        정말 그 사람이 나온다면..

        이거야 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M)  운명 / Why 


여     아직도 까만 내 얼굴에 정성껏 분칠을 하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다듬었다.

        전날 밤 긴장한 탓인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이 좀 부어 있길래. 얼음맛사지까지 했다.

        그렇게 나간 자리.


(E) 까페 소음


여     일부러 한 5분쯤 늦게 도착했다.

        약속장소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버렸다.

        저기..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라는 것을.


남     어..? 마지막 분이 도착하셨네? 안녕하세요.


여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M) 혼자만의 사랑 - 거미


남     대학 들어와 이런 미팅 자리는 여러번 가졌지만

        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오늘도 나오려고 해서 나온 건 아니다.

        친구 녀석들이 간호학과 신입생들과 미팅을 하려는데

        사람 수가 모자란다면서 하도 난리를 쳐서..

        나중에 술 한잔 얻어먹기로 약속받고 나온 자리였다.

        아직 고등학생같기만 한 신입생들과 이런저런

        쓸데 없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마지막 한명이 도착했다.

        어디서 본 듯도 한 그녀는

        이상하게 계속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걸 느낄 정도였다.


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화공과..

여     난 처음 보는 거 아닌데?

남     네?

여     내 얼굴이 너무 하얘졌나? 그래서 못알아보시나?

남     .........어? 너....

여     안녕하세요. 

(M)   Je T'aime / 헤이


(E) 걷는 소리


남     (웃으며) 아까 사람들 표정 봤어? 다들 벙쪄서..

여     놀라셨죠.

남     놀랐지.

여     나두요.

남     모르고 나온거야?

여     그럼 어떻게 알고 나와요. 그냥.. 속으로.. 혹시나.. 그러긴 했죠.

남     정말 나 때문에 이 대학에 온거야?

여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사실이에요.

남     야.... 이거 기분이 묘하네?

여     그래도 난 알아봐줄까 했는데...

남     어떻게 알아봐.

여     너무 예뻐져서요?

남     (농담) 야.. 너 이상해졌다. 안 그랬잖아.

여     나 원래 그랬어요. 그땐 좀 낯가리느라 안 그런 척 한거지.

남     지금은 낯안가리고?

여     우리 이제 아는 사이잖아요. 그땐 잘 모르는 사이였고.

남     그런가?

여     우리 이렇게 가끔... 만나서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죠...

남     어... 그렇기는 한데... (말끝 흐리고)

여     아아.. 여자친구 있구나?

남     ...........

여     (실망 하지만 내색 않고) 난 또.. 여자친구 있으면 어때요.

        셋이 같이.. 만나도 되고. 아니 뭐 그런 것도 부담스러우면

        안만나셔도 돼요. 사실 뭐.. 아깐 농담이었어요.

        설마 제가 그때 잠깐 만난 오빠 때문에 여길 왔겠어요?

남     너 디게 수다스럽다.

여     네? 아.. 네..

남     그런 거 아니고. 나 군대 가거든. 다음 달에.

(M) 입영열차 안에서 / 김민우


남     다 왔다. 기숙사. 들어가.

여     네..

남     공부 열심히하고. 밥도 잘 챙겨먹고 지내.

        나중에 휴가 나오면 전화 할게.


(E)걷는 소리


여     (뒤에서) 오빠.

남     어?

여     나는 괜찮은데...

남     어? 뭐가?

여     아뇨.. 그게요. 뭐.. 오빠 군대 가셔두요. 가기 전에 한달 있잖아요.

        그때 같이.. 밥도.. 뭐.. 먹을 수 있고.. 가끔.. 영화 같은 것도

        볼 수도 있고.. 또 군대 가면.. 제가 편지도 쓸 수 있고..

        오빠가 전화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또... 휴가 나오면

        그때 보기도 하고... 제..제대 하면.. 그때.. 더 친하게..

남     (피식) 너 나 좋아하지.

여     (펄쩍) 예?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시골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돼.. 거 뭐시냐.. 외롭기도 하고. 아니 외롭다기 보다는..

        그게 그러니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남     얘 진짜 말 많네.

        그러니까 요는, 니가 나 좋아하니까. 우리 사귀자.

        군대 가도 기다릴테니까 사귀자. 그거 아니냐구.

여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남     그거야. 아니야.

여     .....

남     응? 그거야. 아니야.

여     그거에요.

(M) white love story - 애즈원


여     꿈같은 일이었다.

        아니.. 꿈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일이었다.

        내가 그 사람과 단둘이 차를 마시고 얘기를 하고

        팔짱을 끼고 걷기도 한다.

        기숙사에 돌아오면, 그 사람이 전화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는 문자가 온다.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남     처음엔 솔직히.. 사랑이 아니었다.

        까맣던 꼬마가 제법 숙녀티가 나서 내 앞에 나타난 게

        재미있었고. 

        그 꼬마가 나를 좋아해주는 게 신기했고.

        군대 가기 전까지 한달.

        그냥 즐거운 추억이나 하나 만들어서 가자. 싶었다.

        그 꼬마가 지금은 기다리겠다고 큰소리지만.

        설마. 싶었다.

        말도 안된다. 싶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아이가 날 기다려 주지 않으면 왠지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았다.

(M) 알아주길 - 윤건

        

-------------------------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2부가 계속됩니다.



(E) 전화벨


여     (덥썩 받는) 여보세요? 오빠?

남     나 아니면 어쩌려구 그렇게 받아.

여     강원도 번호 찍혔잖아. 오빠밖에 더 있어?

남     뭐하고 있었어.

여     나 요리책 보고 있었어. 다음주 면회갈 때. 잡채 해 가지구 갈게.

남     됐어. 

여     왜?

남     나가면 우리집 와서 해 줘.

여     오빠 휴가 나와?

남     포상휴가.

여     (뛸 듯 좋아하며) 진짜야? 지난번에도 포상휴가 나왔잖아.

        어떻게 또 받았어?

남     나 솔직히.. 요새 내가 이렇게 야비한 놈이었나 싶다.

여     왜?

남     후임이 세운 공도 다 내 공으로 돌리고.

        간부님들한테 있는 아부 없는 아부 다 떨고.

        나 원래 이런 놈 아니었는데.

여     그럼 어때~ 휴가만 나오면 되지~

남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담주 금요일에 나가니까. 기다리고 있어.

여     알았어 오빠. 너무 좋다...

(M) 좋아좋아 / 서영은


여     나에게 2년 조금 넘는 세월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군 생활 외의 즐거움은

        나와 얘기하고, 나를 만나는 것 외에는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좋기도 했다.

        그 사람이 제대하고. 우리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남     이거 나라에서 표창장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냐?

        요즘.. 군대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자가 어딨어~

여     요샌 군화 거꾸로 신는 남자도 많다던데~

        그런 거 보면 우리 오빠가 나 말고 딴 여자들한텐

        인기 없나봐.

남     야.. 너 무슨 소리.

        니가 신경 쓸까봐 얘기 안해서 그렇지..

        우리 동아리 후배들한테도 편지가 얼마나 많이 왔는데~

여     진짜?

남     진짜지 그럼. 내가 혹시 흔들릴까봐 답장을 안해줘서 그렇지.

여     오오.. 그래? 그럼 이제 학교 가면 다시 만나시겠네~

남     너나 잘하세요. 나는 한눈 같은 거 안파는 캐릭터거든?

여     그쪽이나 잘하세요. 나도 마찬가지네요.

(M) 그렇게 너를 사랑해 - 자탄풍


여     얼마 후.

        나는 졸업해서 대학 병원의 간호사로 취직을 했고.

        그 사람도 고시원에 들어가 취직 준비에 열중했다.

        그런대로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의 선 보라는 성화가

        심해지시는 거 외에는. 모든 게 좋았다.


남     또?

여     어. 이번엔 아예 남자 사진까지 들고 상경하셨더라구.

        읍내 무슨 사진관집 둘째 아들이라나.. 못살아 내가.

남     한번 보지 왜.

여     뭐? 

남     (쿨하게) 괜찮아. 괜히 한번 봐라.. 성화 듣는 거 보다

        만나고 나서,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러는 게 낫잖아.

        안든다는데, 억지로 시집 보내겠어?

여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빠! 기분 살짝 나쁠라 그러네?

        엄청 멋진 사람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남     나보다 멋지겠냐?

여     혹시 알아? 정우성 같은 남자 나오면..

남     정우성 같은 남자가 약먹었냐. 너랑 선보러 나오게.

여     오빠!!!

(M) 오빠 - 왁스


여     나는 괜찮았다.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한번에 철컥 취직이 되리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 없었다.

        결혼 전에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용돈 같은 것도 주지 말라고.. 충고 했지만.

        나는 그런 말들에 코웃음을 쳤다.

        모두가 우리 사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 거라고

        난 그렇게 자신만만했다.


(E) 냉장고 문 여는


여     어우.. 과일 다 썩었네. 진작 좀 먹으라니까.

남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과일 깎아먹는 거 못하고

        생선 구워먹는 거 못한대.

여     주워 들은 소리는 많아요. 나 간호사야 오빠.

        이런 식으로 건강 관리 못하면 내가 가만 안 있어.

남     어젯밤에 나이트 근무했던 거 아냐?

여     어 맞아.

남     그런데 이렇게 와도 괜찮아? 피곤하잖아.

여     오빠 얼굴 보면 피곤이 싹 풀려.

        우리 저녁 때 간만에 영화 보는 거 어때?

남     어? .... 글쎄..

여     왜? 선약 있어?

남     어 그럴 것 같은데.

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것 같은데는 뭐야?

남     미안. 선약이 있어.

여     그럴 수도 있지 뭐. 괜찮아. 주말에 보자.

남     주말에도.... 약속 있어.

여     (농담) 뭐야~ 수상한데? 나 말고 딴 여자 생긴 거 아냐?

남     .....참나.... 그런 거 아냐.

여     뭐야..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진짜 아냐?

남     실없는 농담할 거면 얼른 가. 나 공부해야 돼.

여     알았어. 갈께. 반찬 잘 챙겨먹구.

(E) 나가는


여     이상했다.


(E)복도를 걷는


여     고시원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눈시울이 시큰해지면서.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그렇게 되뇌이며 고시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따가웠다.

(M) 술과 순정 / J    


(E) 전화 신호음 가다가

남     여보세요.

여     어. 오빠.

남     응.. 

여     어디야? 전화 왜 이렇게 안돼?

남     어. 나 친구들 좀 만나러 나왔어.

여     뭐? 오늘 나 만나기로 했잖아.

남     오늘이었나?

여     오빠..!

남     미안. 애들이 술 한잔 하자고 연락 왔는데

        그냥 술생각 나서 보자 그랬어. 너랑 약속 있는 거 깜박했다.

여     깜박해? 어떻게 깜박해?

남     깜박할 수도 있지. 내가 어떻게 맨날 니 생각만 하고 사냐?

여     왜 그래 요새?

남     은서야. 나 지난번에 시험 본 거 안됐다고 연락왔더라. 아까전에.

여     ....아.. 그랬어? 미안..

남     (화나서) 미안? 왜 니가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여     아니... 기분 안좋아서 친구들 만나러 가는 건데...

        몰아붙여서 미안하다구.

남     그만하자. 

여     오빠 술 마시고 기분 좋게 풀어. 금방 좋은 소식 있...

(E)뚝 끊어버리는

(E)뚜뚜두..... 

(M)  혼자만의 사랑 / 거미


여     이유 모를 그의 짜증과 변덕.

        그 모든 게 다 취업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한때 지나가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디고 있을 무렵.

        그에게 연락이 왔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했다.

(E) 터미널 소음


여     오빠. 갑자기.. 어딜 간다구?

남     어.. 광주.

여     왜...

남     고시원 밥도 시원찮고. 광주 집에 내려가서 집밥 먹으면서 공부하려        구.

여     내가 못챙겨줘서 그렇지 오빠.

남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요즘 서울이 좀 싫어서.

여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럼... 광주 가서 공부 열심히하고.

        건강 잘 챙기고...

남     그래..

여     전화는 하루에 한번씩 하는거야?

남     그래.. 

여     그리구 오빠.

남     나 차시간 늦었다. 간다.


(E) 가는


여     다른 사람이 생겼을까. 아니면. 나에게 마음이 식은걸까.

        그럴 수 있다. 6년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서로 좀 떨어져 있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남     그녀는 모르고 있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버스를 타는지.

        그녀가 부모님의 강요로 선을 보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중 몇몇 남자들은 집요하게 그녀에게 구애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 있었다. 좋은 직장을 구해서, 그녀의 시골집에 함께

        내려가.. 우리 결혼하겠다고.. 허락을 얻을 자신.

        하지만. 오십번째 이력서가 탈락하고 나자.

        아무런 자신도 없어졌다. 고시원 앞 초등학교에 가서

        운동장을 스무바퀴 쯤 돌고 나니..

        결심이 섰다.

        이대로 그녀를 놓아주어야겠다는.

(M) 너의 뒤에서 - 박진영


(E)전화벨 소리

남     집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그녀는 매일 전화를 했고.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난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점점 지쳐갔는지.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마침내 어느날부터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미친놈처럼 집안에 들어앉아 공부를 하던 어느날.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고.

        난 그 길로 사우나에 가서 씻고 난 후

        바로 서울행 버스를 탔다.


(E) 걸어오는 소리


남     그녀의 집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많이 변한 모습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조금 마른 듯한 그녀는

        어떤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는 어깨가 넓었고. 잘 웃는 남자였다.

        어쩌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몰래 훔쳐보는 사람이 됐는지...

        왜 그때는 그렇게 용기가 없었던건지...

        아무리 후회를 해봐도..

        모든 게 늦어 있었다.

(M) 미련 - 김건모



여     올 가을. 결혼하기로 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다. 친구들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흡족해하신다.

        나도 그 사람이 좋다.

        하지만.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은 늘 불안하고. 묵직했다.

        그 이유가 뭔지. 나는 안다.


(E) 전화하는.


여     1년만인 것 같다. 그에게 다시 전화하는 일.

        내 전화를 안받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번호가 바뀌었을지 모른다.

        여러 가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     여보세요.

여     ..... 오빠. 나야.

남     (담담) 어. 오랜만이다.

여     응.... 잘 지냈어?

남     그렇지 뭐.

여     오빠. 나.. 결혼해.

남     ......그래?

여     어. 그냥 한번쯤.. 소식은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남     어... 

여     잘 지내.

남     그래...

여     ............그런데 오빠.

남     ........

여     (울음 치받고) 그때 왜 그랬어? ... 나한테 왜 그랬어?

        내가 싫어졌는지. 다른 사람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상황이

        힘들었던건지. 이유는 알고 싶었어. 그래도 우리가 같이 해온 세월이

        있는데. 그냥 친구랑 소식을 끊더라도 이유는 알려주는 거잖아.

        우리는 그냥 친구도 아니었고. 너무너무..... 사랑했던 사이였는데......

        오빠 나한테 왜 그랬어?

남     .................


여     내가 많이 울면서 이유를 묻고 또 물었지만.

        그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잘 살아라...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을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도. 난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남     아마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울면서 나에게 이유를 묻는 동안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취직을 했다고. 실은 그때 내 마음은 이랬던 거라고.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다 말해볼까....

        그러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울음을 들키기 싫어서. 잘 살라고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회할 거다.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서로 다른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M) 주제음 - 쩜쩜쩜 / 더 넛츠





2008-04-23(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