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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7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35화 - 나의 축가를 부탁합니다.


(M) 주제음 (느낌 / 버튼)


(E) 빵빵..하는 경적음


남     커다란 수입차 매장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과연, 이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무리 요즘 힘들고

        돈에 후달려도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도 되는 것인가.

        한때는 몹시 잘나가는 가수였으며.

        연말 신인상까지 수상했던

        내가 아닌가.

        그런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영업을 뛰어야 한단 말인가.

        정말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M) 난 남자다 / 김장훈


(E) 문 열고 들어가는


여     어서오세요.....오... (하다가 작게) 어머..

남     여기. 오만수 지점장님이 어디 계신가요?

여     아... 지점장님 잠깐 외근 나가셨는데요.

남     두시로 약속했는데.

여     금방 들어오신다고 하셨어요.


(E) 의자 빼주며


여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리실래요?

남     예.. 감사합니다..

여     저.. 뭐... 차같은 거라도...?

남     아.. 커피 있으면.... 좀....

여     네.. 잠깐만요.


(E) 커피 쪼르르 따르고


여     안 그래도 커피 생각나서, 방금 만들었거든요.

        원두 좋아하세요?

남     네? 아..네...

여     이게 컬럼비아에서 직접 가져온 거에요.

        우리 지점장님이 여행 가셨다가요. 드셔 보세요.

남     잘먹을께요.

(E) 마시는데


여     근데... 진짜 닮았어요.

남     네?

여     아니.. 그런 얘기 못들으세요? 옛날 가수... 김기덕 닮았다구요.

남     아..뭐...

여     네? 모르세요 김기덕?

        아니 왜.. 90년대 초반에 얼굴 뺀지르르 잘생겨서

        노래 디럽게 못했던 가수 있잖아요. 한곡인가 힛트 치고 쏙 들어간..

남     ..........

여     모르세요? 

남     제가.. 그 김기덕입니다.

(M)   Disco Duck / RICK DEES AND HIS CAST OF IDIOTS


여     (괜한 애교 떠는) 어머나~~ 뭐 어떻게 커피 한잔 더 드실래요?

남     (짜증나고) 됐습니다.

여     아유..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혹시 아까 제 말 심정 상하셨어요? 제 말 뜻은..

        김기덕님은 노래보다는 얼굴로 승부를 걸었던..

        그러니까 비디오형 가수였다. 그런 얘기였는데.

남     네.

여     어머.. 화나셨구나. 남자들도 이런 거로 쫀쫀하게 삐지고 그러는구나..

남     쫀쫀요?

여     아니에요 아니에요. (작게 중얼거리는) 승질 드럽다더니

        진짜 드럽네.

남     네?

여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데요. 여긴 어떻게 오신 거에요?

        저희 지점장님하고 뭐.. 친분관계 같은 게 있으신가봐요?

남     ....나중에 말씀드리죠. 아직 뭐.. 결정된 것도 아니고.

여     어머. 우리 대리님 한분 그만두셨는데.

        혹시 면접 보러 오신 거에요? 안 그래도 오전에도 서너명 다녀갔거든        요.

남     네에? 아니 그럼 저 말고도 여러 사람한테 연락하셨던 겁니까?

여     그럼요. 내일도 몇 명 오기로 했는데요? 요새 취업난이잖아요.

        서로 하려고 난리에요.


남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아서도 안됐다.

        나는 벌떡 일어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것만이, 한때 신인상까지 받았던

        뮤지션으로서의 내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여     뭐... 연봉이 보통 쎄야죠. 예전 대리님이 능력도 좋으셨지만

        거의 1억을 받았거든요. 그런 자리니, 서로 하려고 난리겠죠.

        근데... 어디 가시게요?

남     화장실이....어디...? 

(M)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김완선


남     지점장과 면담을 성실하게 마치고.

        며칠 후.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진 내가

        영업에 나서면, 고객 반응도 좋을 것 같다며.

        채용이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십수년의 백수 아닌 백수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E) 문 열고 들어가고


남     (힘차게) 안녕하십니까.

여     어머.. 오셨네요. 봉덕씨.

남     (화들짝) 그..그거 어떻게... 어디서....


(E) 종이 팔랑이는


여     이력서 놓고 가셨더라구요?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김봉~ 덕씨더라구요. 가명 쓰고 계신줄은 정말 몰랐네.

남     그..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호적에만 올리신 건데...

        우리집 식구들은 어려서부터 그 이름 아무도 안불렀어요.

        그냥 다들 김기..덕이라고.....        

        그거 아는 사람들 없는데....

여     아우 걱정말아요. 인터넷에 안 올려요.

남     감사합니다.

여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야 인터넷에도 올리죠.

남     !!!

여     어머. 표정 또 굳어지신다. 농담이에요 농담.

남     참.. 농담을 재미도 없고. 기분만 나쁘게 하시네요.

여     제가요? 

남     네. 본인 캐릭터 잘 모르시나봐요.

여     (까르르 웃고) 제가 좀 솔직한 편이긴 해요.

        기분 나쁘셨다면 잊으세요. 저 보실 날도 얼마 안남았어요.

남     네?

여     저 곧 결혼하거든요. 결혼하면 일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구..

        우리 그이가 하두 그래서요. 관두려구요.

(M)  Way Back into Love / Hugh Grant & Drew Barrymore 


(E) 커피 따르고


여     모닝커피에요. 드세요.

남     지점장님은 늦게 나오시나봐요?

여     네. 그분은 워낙..비밀이 많은 분이거든요.

남     비밀요?

여     뭐...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집 말고도 들를 데가 많은 분이세요. 친한 여동생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이혼 안하고 살아주는 사모님이 용하시죠.

남     진짜에요?

여     아유 그렇다니까요. 암튼, 저는 이 지점에서만 5년 일했거든요?

        뭐 궁금한거나 그런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다 가르쳐 드릴테니까.

남     아.. 감사합니다.

여     대신요...

남     네?

여     부탁이...하나... 있는데...

남     무슨 부탁요?

여     저기.... 아후우... 이런 말 해도 되나?

남     ... 저기.. 부담스러울 부탁인 것 같으면 하지 마시구요.

        제가 서로 부담주는 걸 아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여     아니아니. 잠깐만요. 성질이 급하셔.

남     ....

여     제가 곧 결혼할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남     네....?

여     축가 좀 불러주시면 안돼요?

남     네에?

여     힛트곡중에 그거 있잖아요. 아름다운 그녀에게.

        그거 결혼식장에서 불러주면. 진짜 멋있을 것 같아요.

        또.. 제 이미지랑 그 노래 분위기도 잘 맞고.

남     저 축가 같은 거 안 부르거든요.

여     어머.. 왜요? 라이브라서요?

남     뭐라구요?

여     아니... 솔직히 라이브 못하시잖아요.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 뭐더라..? 엠비씨에서 했던 거 있잖아요.

        맞다. 토토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이덕화씨가 사회 봤던.

        거기 나와서....

남     (말 막으려) 알았어요, 그만해요.

여     아니 거기 나와서.. 라이브하다가 삑사리 장난 아니었잖아요.

        나중엔 당황해가지구 박자도 막 놓치구...

        가사 다 까먹구... 그때 저 생방송으로 봤거든요. 얼마나 웃겼는지.

남     ....

여     그나마 다행이에요. 요즘처럼 인터넷 있던 때였으면

        진짜 굴욕도 그런 굴욕이 없었을텐데.

남     아 그만해요. 남 아픈 데 찌르는 게 재밌어요?

여     네?

남     나 공중파 방송 그게 마지막이었거든요?

여     어머.... 그럼 그것 때매 짤리신 거에요?

남     아 진짜...내가 말을 말아야지.


(E)타탁 가면


여     어머어머.. 죄송해요. 난 짤리신 줄도 모르고.

        (쫓아가며 멀어지는)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자기 노래를 못할까

        그랬거든요. 어머.. 사과드릴께요. 그런 아픈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

(M)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


(E) 맥주잔 부딪치는


남     며칠 후. 회식자리.


여     안 드세요? 이거 김봉덕씨 환영횐데.

남     김기덕이라니까요. 왜 자꾸 남의 이름을 바꿔 부르구 그래요?

여     아니 그래두.. 이게 정식 이름이잖아요.

남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쓰는 이름이 진짜 이름이지.

여     어우.. 까칠하셔. 알았어요.


(E) 고기 지지직 굽고


여     이거 좀 드세요.

남     제가 집어 먹을께요.

여     그런데요. 제가 그때 말씀드린 거.. 좀 생각해 보셨어요?

남     뭐요.

여     아니... 그거.... (조심스레) 축가.

남     에이 진짜. 저 그런 거 안한다니까요.

여     아니...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구요. 어차피 제 결혼식 오실 거잖아        요. 그래도 같이 일했던 사인데. 제 결혼식 안 오실 거에요?

남     ....갈께요. 가긴 가는데.

여     그러니까요. 이왕 오시는 김에 노래 한곡 부르고 가는건데요 뭐.

남     아니 그래두..

여     축의금 당연히 안내셔도 되고. 축가비는 한 백만원 생각하고 있는        데...


(E) 고기 지지직 구워지고


남     ..... 뭐 생각해 보니까 은서씨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네요.

        어차피 결혼식이야 갈 거고... 가서 멀뚱멀뚱 앉아 있느니

        노래라도 한 곡 부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도 같고...

여     그죠? 그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세요.

남     그러죠 그럼...

(M)  신부에게 /  박학기 & 유리상자  



--------------------------1부 끝 ------------------------


(E) 계란 톡톡 깨는


남     아침마다 계란을 깨먹으며

        성대를 가다듬었다.

        실로 몇 년만에 하게 되는 노래인지 모른다.

        겨우 백만원 때문에 십년 넘게 쉬었던 노래를 한다는 게

        좀 우습긴 했지만.

        그래도 밀려있는 월세값을 생각하면

        안할 처지가 안됐다.

        가사도 까먹고 있던 노래. 아름다운 그녀에게를

        여러 날 열심히 연습한 끝에.

        전성기 때의 느낌이 난다 싶었는데.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왠지 약간 힘이 없는) 오셨어요.

남     네. 그런데 은서씨. 결혼식이 다담주죠?

여     ...네.

남     토요일이에요 일요일이에요?

여     토요일요.

남     아... 그리구요. 예식장 측에서 엠알 같은 거 준비해 줄 수 있나요?

        이게.. 제가 피아노 반주에는 좀 약하거든요?

여     저... 이따 점심 때 저랑 같이 드실래요?

남     아직 축가도 안했는데.. 벌써 밥 사시게요?

여     이따가 뵈요.

(M)   눈물샘 / 별


(E) 밥 먹는 소리들


남     뭐 할 말 있어요?

여     저.. 소주 한잔만 마셔도 돼요?

남     예에?? 이따 오후에 일해야 되잖아요. 지점장 알면 뒤집어져요.

여     알았어요. 그냥 물만 마실께요.

남     무슨 일 있어요?

(E) 물 마시는 소리

남     남자랑 깨졌어요?

여     눈치 귀신이시네.

남     그럼요. 내가 방송국 밥이 몇 년인데 그 정도 눈치가 없을까.

        왜요. 남자한테 딴 여자 생겼어요?

여     아예 돗자리를 펴시죠.

남     그거야... 돗자리 펼 일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거 아닙니까.

        너무나 흔한 일.

여     이게.. 흔한 일이라구요..?

남     그럼요. 결혼 전에 남자들 딴 생각 한번씩 다 하는거고.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여     글쎄요. 난 그럴 시간 없던데?

        웨딩드레스 고르러 다니고. 혼수 알아보고. 예단 준비하고.

        적금 깨고. 대출 받고. 축가 준비하고. 신혼 여행 알아보고.

남     그런 걸 왜 은서씨가 다 알아서 해요?

        그러니 남자가 시간이 남아 돌아서 바람 났나보네.

여     그랬나봐요.. 진짜 그랬나봐...

        하지 말걸 그랬어요. 그냥 다 하지 말고, 날 잡아잡수

        그럴걸. 그랬으면.. 너무 바빠서 바람 안났을까?

(M)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지연


(E) 걷는 소리


여     빨리 들어가요. 지점장 완전 열받았겠다.

남     내가 살아보니까 그래요.

        한땐 나도 내가 세상에서 최곤줄 알았거든요?

여     최고였잖아요.

남     한때였죠. 그거 지나가니까 아무 것도 아니더라구요.

여     지나가면 그렇죠.

남     그 남자도 아마 지금 그걸 모르고 있을 거에요.

        자기가 최곤 줄 알고. 자기만 보는 은서씬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여     그럼 기다리면 돌아온다는 얘기에요..?

남     돌아오면 받아줄 자신 있어요?

여     지금처럼 힘든 것보단 낫겠죠.

남     지금도 지나가요.

여     ....

남     말했잖아요. 다 지나가는 거라니까?

(M)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여     몇일이 지났다.

        그녀는 괜찮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괜찮은 척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여     (전화 통화하는) 어.. 그렇게 됐어. 그냥 별 일 있었던 건 아니구..

        좀 미뤄졌어 갑자기. 집안에 일이 좀... 응...

        글쎄 뭐.. 가을이나.. 내년 봄이나...

        언제 하면 어떠니. 빨리 유부녀 돼서 좋은 게 뭐 있다구...

        어 그래. 조만간 밥이나 먹자. 끊을게.

        

(E) 끊고 어디론가 다시 전화하는


여     여보세요. 어, 미진아. 나. 은서.

        저기... 나 결혼식이 취소.. 아니 좀 미뤄졌어.

        어... (멀어지는) 그렇게 됐어. 미안한데 니가 영은이랑 수진이한테두

        좀 얘기해줄래?


남     왜 하필, 이 시간에. 내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그런 모습을 모두 지켜봐야 하는건지 알수는 없었지만.

        괜찮은 척 안간힘을 쓰는 그 여자를 볼 때.

        왠지 뒤로 가서.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순간이

        분명 있었다.

(M) 기억을 걷는 시간 - 넬


(E) 또각또각 걸어가는데

(E) 뒤쫓아가는

남     은서씨.

여     네..

남     어디 가요?

여     어디 가겠어요. 집에 가지. 집에 가서 또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지..

남     왜요?

여     치..이렇게 사정을 몰라.. 엄마요~ 울엄마 드러누웠거든요.

        친척들 보기 창피스럽다구.. 얼마나 구박하는지 몰라요.

남     힘들겠어요. 

여     그래서 덜 힘든 것 같기도 해요. 엄마가 너무 난리를 치니까.

        그거 위로하고. 괜찮다고 얘기하고. 욕하면 욕먹고.

        뭐 이러다 보면.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어요.

남     어디로 가요? 주차장?

여     차 없어요. 버스 타고 가요.

남     외제차 파는 사람이 차도 없어요?

여     김대리님은요?

남     내가 차가 어딨어요. 원룸 월세 내기도 힘들어 죽겠구만.

        연봉 일억 얘긴 왜 한거에요?

여     (피식 웃고) 그거야.. 성과금이죠. 차를 많이 팔아야

        그 정도 받는다.. 그런 얘기.

남     속았어 암튼.

여     (후후 웃는)

남     왜요. 

여     신기해서요. 김대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노래 부를 때가

        나... 중학교 땐가? 그랬는데. 밥상 머리에 앉아서

        그 노래 들으면서 멍해지고 그랬거든요. 혼자 흥얼거리기도 하고.

남     그래요?

여     그럼요. 우리반 애들 중엔 김대리님 사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쓰는 애들도 있었고. 별밤 같은 데서 콘서트 하면

        그거 쫓아가느라구 학교 땡땡이 치는 애들도 있었다구요.

남     후후... 다 옛날 얘기죠 뭐.

여     그래두요. 김대리님한텐 그런 추억이 있잖아요.

        추억이 얼마나 힘이 센지 몰라요?

남     그런가요...?

여     지금은 남들과 비슷해졌다고 해도.

        한때의 멋진 추억이 있다는 건. 인생을 사는 데 큰 힘이 돼주는

        것 같아요.

남     얘기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위로가 되네요. 정말.

여     나한텐 참 행운이에요 그러고 보면.

        텔레비전 속의 동경했던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고.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남     그런가요..? 나도 은서씨 만나서 참 다행이고 좋아요.

        근 십년 동안... 거의 매일.. 내가 왜 사는지...

        차라리 내가 최고일 때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서

        세상에서 사라졌다면... 차라리 전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별 쓸데없는 생각들을 다 하면서 살았거든요.

여     정말 쓸데 없는 생각이다...

남     그런데... 은서씨한테 이런저런 얘기 들으니까요.

        내가 많은 사람들의 추억속에 살 수 있다는 거.

        잊혀지기도 했을거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최고였던 그 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     (후후..) 벚꽃이 참 좋네요.

남     그러네요. 한참 예쁠 때네요.


(M) 나는 행복한 사람 -이문세


(E) 사무실 소음

남     은서씨. 나 이거 자동차 등록증 복사 좀 해줘요.

여     네... 


(E) 핸드폰

여     여보세요? ..어.. 미안한데. 내가 지금 일하는 중이거든?

        나중에 통화해. ....... 지금 안돼. ....... 알았어. 기다려.

(E) 끊고

여     김대리님 저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누가 찾아와서 좀...

        한 30분이면 될 것 같은데.. 이따 지점장님 오시면...

남     누군데요?

여     그냥.. 친구가..

남     누굴 바보로 아나. 그 남자 아니에요?

여     .... 금방 갔다 올께요.

남     은서씨 지금 나가면. 진짜 멍충이에요. 알아요?

여     ....

남     사람이 그러니까 그 남자가 왔다갔다.. 들었다놨다..

        은서씨 바보 취급하는 거라구요. 지금 나가면...

        은서씨는 그런 취급 받아도 싼 사람이에요.

여     말 그렇게 함부로 할거에요?

남     내 말이 틀려요?

여     맞든 틀리든.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

남     자격요?

여     그래요. 무슨 자격?

남     내가... 축가 불러줄 뻔 했잖아요. 두 사람 영원히 행복하라고.

        내가... 십년 넘게 안불렀던 노래 불러줄 결심하고...

        아침마다 계란까지 깨먹었다구요. 그런데....

        두 사람이 날 배신했잖아요.

여     그래서요?

남     나도 이 사랑 때문에 상처 받았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이 사랑에

        왈가왈부할 자격 충분하다구요!

(M) 보이지 않는 사랑 - 신승훈


남     30분만 나갔다 오겠다던 그녀는

        퇴근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지점장은 불같이 화를 냈고. 나는 그녀의 몸이 안좋아보였다는

        핑계를 대며. 감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 역시 화가 났다.

        그렇게 물러터지고 약해빠진 그 여자에게.

        간만에 말이 통하고. 간만에 맘이 통하고.

        간만에...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여잔데.

        그 여자는 왜 이렇게 바보 같단 말인가.


(E) 걸어가는


남     일을 마치고.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갔을 때였다.

        거기 벤치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남     윤은서씨.

여     어? 퇴근하세요?

남     전화 왜 안받아요?

여     지점장님 난리나셨죠.

남     말이라고 해요? 아프다고 대강 둘러댔어요.

여     그럴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남     어떻게... 된 거에요.

여     나 아까 점심때 나와서.. 여태 여기 앉아 있었어요.

남     뭐에요? 그럼..

여     그 사람 안만났어요.

남     그런데 여기서 뭐했어요?

여     전화 받고.. 뛰어가는데.. 얼마전에 우리 둘이 같이봤던

        벚꽃나무가 눈에 띄잖아요. 그런데... 꽃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얼마 전에 우리 둘이 봤을 땐.. 그렇게 예뻤던 게...

남     그래서요...

여     몰라요. 그냥.. 그 순간에... 김대리님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이렇게 다 지나가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남     .....

여     지나갈 건 지나가게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겠구나. 지나간 게

        돌아오겠다고 한다고.. 그걸 되돌리려해도 안되겠구나...

남     이제 철 좀 드나보네..

여     (후후...) 그래두... 축가는 불러줄거죠?

남     네?

여     다음번에 결혼할 때. 그땐 꼭 축가 불러주세요.

남     그래요. 


남     바닥에 떨어진 분홍빛 꽃잎들이 바람에 쓸려 하늘로 올라간다.

        난 혹시나...하고 생각해 본다.

        혹시.... 그녀와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래도 축가를 내가 불러야 할까.

        그 생각에 내가 놀래.. 화들짝 현실로 돌아와 보지만.

        여전히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정말로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나.... 말이다.

(M)주제음  (느낌 / 버튼)






2008-04-16(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