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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30화 - 옥탑방과 반지하
(M) 주제음
- 그대 내게 다시 / 럼블피시
(E) 비 오는 소리 쏴아 -
(E) 문 탕탕탕 두드리는 소리
여 아저씨! 아저씨! 어우.. 아무도 없나? 아저씨!!
(E) 계단 올라오는 소리
남 주인 아저씨 없어요?
여 네? ...네.. 안 계신가봐요.
남 죽겠네. 비 다 새는데...
여 어머. 그쪽두요? 몇호신데요?
남 B101호요.
여 아... 지하세요?
남 반지하에요. 창문이 반 정도는 밖으로 나 있어요.
여 아.. 네.
남 그쪽은요?
여 저는 501호에요.
남 우리 건물 4층까지밖에 없잖아요.
여 ....옥탑방 있잖아요.
남 (그냥 무심히) 아.... 거기 사람이 살았어요?
여 뭐라구요?
남 (그제야 깨닫고) 아니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인 줄
몰랐다구요. (더 수습이 안되고) 창고 같은 덴 줄 알았거든요.
여 뭐에요?
남 아니 그러니까... 그게... 원래 불법 건축물 아닌가? 그렇잖아요.
옥상에 그렇게 그런 거 지어놓고 사람 살면 안되는 거 아닌가?
여 이거 보세요. 하.. 나 참 기가 막혀서...
사람이 거기 빤히 살고 있다는데... 창고가 왜 나오고
불법 건축물이 왜 나와요? 그쪽이 뭐 구청에서 나왔어요?
자기도 지하방 사는 주제에?
남 (발끈하고).... 주제에? 주제에? 방금 주제에라고 했어요?
여 나보곤 창고에서 산다면서요?!
남 나야... 모르고... 악의 없이 한 말이지만
그쪽은 지금 나한테 욕한 거잖아요!
여 욕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그래요? 안 그래도 비 새서 열받아
죽겠구만, 왜 사람을 건드려요 건드리긴!
(M) 권진원 - Happy birthday to you
(E) 빗물 똑똑 떨어지는
여 어우... 이 곰팡이 핀 거 봐. 못살아. 벌써부터 이러면
장마철엔 어떻게 살라는거야. 월 이십오만원짜리라고
수리도 안해주고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E) 문 쾅쾅 두드리는
여 누구세요.
(E) 슬리퍼 끌고 나가고. 문 열면
여 누구... (멈칫) 뭐에요?
남 안녕하세요.
여 (냉랭) 웬일이세요?
남 이거 별 건 아니지만... 부침개 좀 했거든요. 좀 드시라구...
여 진짜 별 거 아니네요. 아니 무슨 부침개에..
오징어 몇 조각도 없이... 파 몇 개 넣고 그냥 대충...
남 (빈정은 상하지만 꾹참고) 냉장고에 뭐가 없더라구요.
여 주신 거니까 받긴 할께요.
(E) 접시 아무데나 두는 듯
남 저... 그런데...
여 왜요?
남 뭐 부탁 드릴 게 있는데...
여 (그럼 그렇지 하고) 안면 튼 지 얼마나 됐다구.. 무슨 부탁요?
남 보니까... 여기 빨래줄이 굉장히 많네요. 길기도 길구...
여 네?
남 아니 지금 당장 뭐 널어놓으실 거 아니면. 저 이불 좀 갖다 널려구요.
여 이불요?
남 반지하에는 베란다가 없잖아요...
여 뭐... 그렇죠.
남 그런데 비 한번 오고 나니까 벽에 물이 새더니..
장롱 안까지 축축해졌더라구요. 당장 밤에 깔고 잘 이불이 젖어서...
여 ....... 나두 이불 널어야 하는데.
남 가운데에다 널으세요. 저는 조....기.... 저쪽에 구석에 있잖아요?
거기 널께요. 지금 해가 났으니까 몇시간만 널어놔도
바짝 잘 마를 것 같은데.
여 (선심 쓰듯) 뭐 그럼... 그러세요.
남 어우... 고마워요.
여 대신요.
남 네?
여 저 이불 너는 것 좀 도와줘요.
(M) 산책
/ 쿨
(E) 이불 펄럭 하는 소리
남 거기.. 잘 잡아요. 쫙 펴구요.
(E) 이불 쫙 펼쳐지는 소리
여 아우.. 너무 세게 잡아당기지 말아요.
남 이래야 쫙쫙 펴져서 잘 마르죠.
(E) 탁탁 털고
남 됐어요.
여 뭐.. 고마워요.
남 아까 창고 어쩌고 한 거 미안해요.
여 .........
남 밖에서 볼 땐 꼭 창고 같더니.
여 뭐라구요?
남 아니.. 말을 끝까지 들어요. 밖에서 볼 땐 그렇더니
여기 올라와서 보니까 참 예쁘다구요.
여 제가 잘 꾸며놔서 그렇죠 뭐. 원랜 그쪽 말대로 진짜 창고떼기
같았다구요. 그런데 제가 주인 아저씨 허락 받아서 벽에
페인트 칠도 하구요. 또 이 앞에 꽃화분이랑 야채랑
이렇게 많이 심어놨잖아요.
남 아... 왜 아기자기해 보이나 했더니... 이런 게 있었구나.
여 아직은 뭐가 많이 안자라서 그렇지만요. 이 안에 뿌리는 다
살아 있거든요. 봄비 몇 번 오고 나면 잎도 나고 꽃도 피고
지들이 때 되면 할 거 다 한다구요.
남 .....때 되면 할 거 다 한다...
여 네?
남 아뇨. 식물이 인간보다 나은 것 같아서요.
(M)
세상풍경 / 김건모
(E) 비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
남 어? 그친 줄 알았는데 또 쏟아지려나보네?
여 어머 어떡해! 이불!!!
남 맞다! 이불!! 빨리 걷어요.
(E) 기다렸다는 듯이 쏴아.... 쏟아지고. 여기저기로 뛰는 소리들
여 아우 자기네 껏만 걷지 말고 내 껏도 좀 도와줘요.
남 (좀 멀리서) 이거부터 먼저 하구요.
(E)막 뛰어와서
남 잘 잡아요. 바닥에 안 떨어지게.
여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E) 두 사람 뛰어가고. 문 여닫고.
(E) 실내인 듯. 빗소리 조금 멀리서 들리고.
여 뭐야... 완전히 다 젖어버렸잖아요.
남 그러게요. 축축한 거 말려보려다... 오늘밤에는 이불도 못깔고
자게 생겼네.
여 (풋.. 웃고)
남 뭐가 웃겨요 (하면서 자기도 웃고)
여 (흥흥..거리며 웃으며 분위기 가볍게 풀리는데서)
(M) 비오는 거리 - 이승훈
(E) 밖에서 비오는 소리 계속 들리고
(E) 커피물 따르는 소리
여 드세요. 머리 다 젖어서 춥겠네요.
남 괜찮아요, 뭐 이 정도루..
여 회사 다니는 분은.. 아니신가봐요?
남 네?
여 아니... 왠지.. 느낌이요.
남 재수생이에요.
여 네에??
남 취업재수생요. (하하 웃고) 벌써 3수째네요.
여 취업하는 거.. 힘들죠.
남 그쪽은요? 그쪽두 취업 준비해요?
여 나도 준비는 하는데.. 직장은 다니고 있어요.
남 난 이런 사람이 제일 얄밉더라.
여 네?
남 직장이 있는데 왜 취업 준비를 또 해요?
여 마음에 안드니까 그렇죠.
남 그러니까요. 왜 마음에 안들까..
그거라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목을 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 직장이라고 다 같은 직장인가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남 글쎄요. 난 그런 거 배부른 푸념 같아요.
여 배부른 푸념요? (후후 웃고) 방문 학습이라고 들어봤어요?
남 아... 아이들 가르치는 거요?
여 직장은 직장인데 비정규직이에요. 고용보장은 물론 안되구요.
의료보험도 안되고. 그래서 비자 받기도 힘들고..
남 ......
(E)커피잔 달그락 소리
여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서 조회하고. 교재 받고 그러고 나면요.
밤 8시나 9시까지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녀야 해요.
버스나 지하철이 있는 동네면 괜찮은데
여러번 갈아타야 할 때도 있고. 그마저 없어서 걸어갈
때도 태반이에요. 그렇게 힘들게 갔는데 가끔은 빈집일 때가
있어요. 전화해 보면, 아이엄마가 학습지 시간인 걸 깜박 잊고
백화점에 갔대요. 다음에 또 와서 보충해달래요.
남 야...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매너가 없네.
여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아이가 재미없어해서 관두면 그게 다
제 탓이 돼요. 그럼 또 수당 깎이구..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요?
남 ....뭔데요?
여 밥 먹는 거요.
남 왜요?
여 시간도 애매하구.. 또 그렇잖아요. 혼자 어디 들어가서
먹기두.. 그렇구. 또 사먹는 값이 만만치 않은데..
회사에서 대주는 것도 아니구..
남 그럼 어떻게 해결해요?
여 슈퍼에서 빵이랑 우유 같은 거 사서 먹는데요.
사람 없는 공원이 있으면 그런 데서도 먹구..
저번엔... 왠지 너무 창피해서...
화장실에 가서 먹었어요.
남 .........!
여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얼만지 알아요?
한달에 88만원.
남 .....
여 그런데두 내가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게 욕심이에요?
(M) 달팽이
/
장나라
(E) 커피잔 놓는. 빗소리는 계속 나고.
남 내가 괜히 이상한 소리 해서.. 기분 안좋아진 거 아닌가..?
여 기분은 아까.. 그쪽이 창고 소리 했을 때부터 이미.. 안좋았네요.
그리구.. 암튼.. 고마워요.
남 뭐가요?
여 몰라요. 일요일인데 비도 오구.. 기분이 심숭생숭..
누구라도 걸리면 화풀이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주인 아저씨
찾아간 거였는데. 그쪽이 딱 걸려줬잖아요.
남 그랬나...?
여 나 이런 소리, 부모님한테도 안해봤는데.
오늘 별 소릴 다 했어요. 그냥 옆집 개가 짖었나부다 그러세요.
남 옆집 개는 아니고.. 윗집 개..라고 치죠 뭐.
여 그러시든가요.
남 갈께요. 우산 좀 빌려주세요. 비 그치면 돌려드릴께요.
여 네.. 아참. 접시 가져가세요. 비워드릴께요.
(E) 접시 비우는 소리
남 (뒤에서) 그거 먹지 말아요. 간도 하나도 안 맞아요.
여 정말요? 근데 왜 갖다 줬어요?
남 그냥.. 아깐 이불 널려구...
여 (웃고) 기다려봐요. 전자렌지 있어요?
남 네.
(E) 냉장고 열고 뭔가 꺼내며
여 이거.. 오전에 심심해서 내가 부쳐본 거에요. 가서 뎁혀 먹어요.
남 우와..
여 그쪽 꺼랑 질이 다르죠? 온갖 해물 다 넣고 만든 해물파전이에요.
맛있게 먹어요.
남 누군가가 그랬다. 인생은 무대라고.
단 몇시간만에... 다른 사람의 무대 위에
내가 올라서 버린 느낌이다.
(M) 연극이 끝나고 난 뒤
--------------------------1부 끝 -----------------------
*잠시 후 2부가 계속됩니다.
(M)
(E)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남 아침부터 집앞에 나와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말리고 있다.
반지하에 사는 내가 옥탑방 아가씨를 만나게 됐고.
두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것 뿐인데.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아직 모르고 있는데.
며칠 동안 현관에 세워진 우산을 볼 때마다
그 여자가 생각이 났다.
아니 어쩌면, 우산을 보지 않고 있을 때에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우산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날 결심을 하고 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거울을 보며 열심히 연습해 본다.
(M) 희망사항 -변진섭
(E)계단 올라가는데, 현관문 잠그고 나서는 발걸음
남 어? 벌써 나가세요?
여 네.
남 출근 전에 뵙는다고 일찍 올라온건데.
여 구파발까지 가야 해서요. 지하철 타고도 1시간 넘게 걸리거든요.
남 아.... 이거 돌려드리려구요.
여 우산...
남 오늘 오후에 비온대요. 아까 예보 봤어요.
여 자꾸 틀리잖아요 기상예보.
남 오늘은 맞는 것 같아요. 저 반지하 생활 3년에
뼈에 물이 찼는지.. 날씨 기막히게 잘 맞히거든요.
여 찌뿌두두해요?
남 (웃으며) 네. 찌뿌드드..
여 고마워요. 아 맞다. 저기 보세요.
남 어?
여 오늘 보니까 새순이 돋았더라구요. 볼때마다 신기해...
남 저.... 오늘은 점심 어디서 먹을 거에요?
여 네?
남 점심 때 쯤 어디에 계실 건지...
여 왜요?
남 아니.. 제가 그쪽 점심 먹는 곳 주변에 우연히 들를 것 같아서....
어디로 가실 거에요?
(M) 박정현 -달아요
(E) 공원 소음
(E) 나무 젓가락 ? 떼는
남 드세요. 이 근처에선 제일 맛있다는 김밥집 가서 사왔어요.
여 하아..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농담이신 줄 알았어요. 진짜 여기까지 오실 줄은...
남 저 농담 잘 못하는 사람이에요.
여 공부할 시간 다 뺏기는 거 아니에요?
남 뭐... 공부야... 날마다 하는 건데요 뭐.
솔직히요, 하두 여러번 봐서 공무원 고시 과목 책은
다 외운 것 같아요. 꿈에서도 줄줄 외우는데요 뭐.
여 이번 시험은 언젠데요?
남 4월에 있어요.
여 그럼 합격하시겠네요.
남 글쎄요... 나만 다 외운 게 아니니까..
내 주변 사람들도 나만큼은 다 외우니까...
여 .... 일 이점 차이로 떨어진다면서요.
남 그게 진짜 미치는 거에요. 아예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겠는데. 될 듯 될 듯.. 안되는 거요.
그게 사람을 돌게 만들어요.
여 네..
남 대학 졸업하고 3년이지만. 대학 1학년때부터 준비는 했으니까
도합 7년째인 셈이에요. 한심하죠. 7년 동안 한 우물만 팠는데.
여기서 물이 솟을지 안솟을지 조차.. 모르겠으니.
여 때가.. 있지 않을까요?
남 때요...
아침에 옥상 화분 보면서 진짜 부러웠어요.
식물은 자기가 움틀 때도 알고 꽃 피울 때도 아는데.
나는 그때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M) 서른 즈음에
남 가보셔야죠. 늦었겠다.
여 덕분에 점심 정말 잘 먹었어요.
남 뭐 이 정도루요.
여 그런데요. 제가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남 ...네?
여 반지하방은 얼마에요? 저는 보증금 100에 월 이십오만원씩 주고 있 거든요.
남 저는 보증금 100에 이십만원 주고 있어요.
여 어머.. 반지하가 오만원 더 싸네요?
남 그러네요. 저도 몰랐는데.
여 그래도 제가 좀 사정이 나은가봐요.
남 그런가요?
여 사정도 나은데 제가 얻어먹었으니까, 담번에 비오는 날엔
제가 집에 초대해서 부침개 부쳐드릴께요.
(M) 키친 - 이소은
(E)창밖으로 비오는 소리
(E) 부침개 부치는 소리
남 비가 이렇게 금방 와 줄 줄은 몰랐어요.
(E) 접시에 부침개 탁 놓는
여 봄이잖아요. 날씨가 왔다갔다.. 그러네요.
남 그런데 난 이상하게.. 마냥 화창한 날보단
이렇게 촉촉하게 봄비 와 주는 날이 좋던데요.
여 음.. 이런 날 어울리는 음악 있는데.
(E) 탁탁탁 걸어가고
(E) LP판 거는
-
Susan / Judy Collins
(LP판 음질의 음악이 지직거리면서 흘러 나온다)
남 어떻게 아직도 LP판이...
요샌 이런 거 귀하잖아요.
여 그러게요. 전 이상하게 이걸로 음악을 들어야
진짜 음악을 듣는 것 같다니까요. 씨디 플레이어가 상용화 될 때
... 왜 오래된 LP들 싸게 막 팔았잖아요.
그때 저는 시내 나가면 한달 용돈 다 써가면서 그 음반들
다 사오곤 했어요.
남 네에.. 왠지 그런 게 은서씨랑 어울리는 취미 같기도 해요.
여 그런가요? (하다가)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
남 네? 아... 우편함에서...
전기세 밀리셨던데요? (웃고)
여 봉덕씨는요 뭐. 여기저기서 돈 갚으라는 우편물만 잔뜩 오던데.
남 ........내꺼 봤어요?
여 네.
남 왜요?
여 봉덕씬 왜 봤어요?
남 나는 뭐... 그냥....
(두 사람 거리낌 없이 편안히 웃는데)
(E) 밖에서 문 쾅쾅 두드리는 소리
여 .....(약간 불안한) 누구지?
남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열 때.
그리고 그 문밖에서 낯선 남자를 발견했을 때.
그 남자가 나를 보는 적의에 찬 시선을 마주했을 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올라선 이 무대에
나는 주연이 아니고, 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M) 나에게 넌 너에게 난 - 나무 자전거
(E) 비가 오는 소리
남 그녀를 찾아온 어떤 남자를 그 집에 남겨두고 돌아와
그날 밤 내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와 그녀는 어떤 관계일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일까.
뭐하는 사람일까. 옷은 근사하던데.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E) 뒤척이는 소리
남 책을 펴기만 하면 비오듯 쏟아지던 잠이
이불 위에서 뒤척이고 있는데도 오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관계였다고 내가 이러나...
그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다고 원망할 권리 조차 없다.
(E) 띵똥
(E) 벌떡 일어나 번개처럼 뛰어나가 문 여는
남 누구세요.
여 다 열어놓고 뭘 물어봐요.
남 네... 그러네요.
여 그냥... 아까 괜히 죄인처럼 돌려보낸 것 같아 걸려서 왔어요.
남 그분은 가셨어요?
여 네.
남 잠깐 들어올래요?
여 아니에요. 그냥 여기 서서 얘기할께요.
남 네...
여 사실은요. 아까 그 남자.. 제 약혼자에요.
남 ...! 아... 그러셨구나. 약혼을 하셨었구나...
여 두달 전까진 그랬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쪽에서 생각 좀 해보자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었죠.
남 왜요?
여 아무래도 제가 자리를 못잡고 계속 허둥지둥 이러고 살고 있으니까 요. 그 사람은 안정적인 맞벌이를 원했거든요. 임용고시 준비도
그래서 시작한거고.
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 처음엔 화가 났는데, 나중엔 이해가 됐어요. 좀 더 솔직하게 생각하 면. 나도 처음엔 그 사람의 안정적인 직장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남 ........
여 나 혼자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
친해진 것 같은데. 맞죠.
남 ....네
여 그 사람이랑 헤어지고 좀 힘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쪽이랑 내가
비슷한 처지여서 그랬는지. 참 편했어요. 그리고 좋았어요.
남 .... 그 사람은 왜 온 거에요?
여 다시 시작하재요.
남 어떻게 할 건데요?
여 다시 시작해야죠.
남 화도 안나요? 또 그 사람이 변하면, 그땐 어쩔건데요?
여 안 변하게 해야죠.
남 은서씨... 참 약한사람이네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 난.. 지금 내 삶도 버겁거든요.
나보다 월세 5만원 덜 내는 사람이랑...
그 버거운 삶을 짊어지고 허덕대면서 같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남 은서씨 너무 멀리 나가셨네요.
나도 아직 그럴 생각까진 없었어요. 안녕히가세요.
(M) I'm
Sorry / 심태윤
(E)계단 올라가는 소리 멀어지고
남 월세 얘기는 왜 꺼낸걸까. 사람 비참해지게.
그녀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아주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소릴, 왜 일부러 나한테 와서 하는건지.
어쩌면... 잡아달라고. 붙들어달라고. 괜찮다고 얘기해달라고.
그럼 뭐 어떠냐고... 위로해달라고. 온 건 아닐까.
(E)계단 마구 뛰어 올라가는 소리
(E)비 쏟아지고, 문 쾅쾅 두드리는
남 은서씨! 은서씨!
여 (안에서) 늦었어요. 나중에 얘기해요.
남 나중에 언제요? 은서씨 그 남자랑 결혼한 다음에?
여 돌아가라구요.
남 거짓말했어요 아까. 은서씨가 멀리 나간 거 아니에요.
나도 요 며칠 계속 그런 꿈 꿨으니까.
은서씨랑 같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마트에 가서 맥주랑 반찬 거리도 사고. 집에 와서 밥 해 먹고.
비 오는 날엔, 비도 안새는 따뜻한 방에 배깔고 누워서
부침개도 먹는... 그런 꿈.
여 ...........
남 그 남자한테 화가 많이 나 있는데, 화도 못내고 돌아가야 하는
거라면요. 그 남자를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현실 때문에
할 수 없이 용서해야 하는 거라면요!
그러지 마세요.
(E) 문 열리고
여 그럼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남 화내고 용서하지 말고 다 발로 차 버리고. 홀가분하게 던져버리고.
손에서 놔버리구요. 나한테 오면 안돼요?
여 월세 이십만원한테?
남 ........네.
여 하....
남 그녀가 기막히다는 듯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우리 두 사람의 방은 또.. 빗물에 젖어가고 있을 것이 다.
(M) 주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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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 다시 / 럼블피시
2008-03-1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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