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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0일 목요일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21화 - 그 여자의 행복한 나날


(M) 주제음 - 약속 / 장윤정 (이산 OST 중)


남     나는 살면서,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거나..

        아내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거나...

        나는 아내가 없으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다만 우리는 인연이 되었기에 만났을 것이며

        이왕 만난 인연이니까

        잘 사는 게 좋을 것이다..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E) 주판알 튕기는


여     대출금 20년 상환이라고 했을 땐

        20년이 언제 가나 했는데... 가긴 가네?

남     끝나?

여     다음달이면 끝나.

        참..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네. 20년을 어떻게 한번도 안빼고 넣었냐?

남     그래. 장하다.

여     장하지? 이거 봐. 가계부 너덜너덜해진 거...

        이런 게 스무권이야.

남     (웃고) 

여     나 칭찬해주는 의미에서 삼겹살 파티해주는 거 어때?

남     삼겹살 파티는 무슨...

        남의집 삼겹살을 왜 팔아줘? 내 닭도 다 팔기 힘든데.

여     어으.. 또 시작이지.

남     이따가 가게 끝나면 닭 남은 거나 튀겨먹지 뭐.

여     또 닭? 지겨워라. 난 진짜 이제 닭튀김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애. 요즘은 가끔 닭튀기다 진짜... 구역질한 적도 있다니까?

남     닭튀김 냄새가 어때서.

        그거 아니었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어?

여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남     그럼 닭한테 고마워해야지. 왜 애먼 삼겹살을 먹겠대?

여     하여튼간 저놈의 똥고집. 알았어요 알았어.

(M) 괜히 나만 미워해 - 베니


(E) 닭 튀기는 소리

(E) 가게 문 열고 들어오는


남     아니 주문을 어떻게 받은거야?

여     주문을 왜?

남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라며.

여     그랬어 아까.

남     후라이드 한 마리래잖아.

여     아니야. 아까 분명히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랬어.

        

(E) 메모지 집어들며


여     이거 봐. 내가 메모해놓은 것도 있잖아.

남     됐어.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그쪽에선 확실하다는데.

여     아우 답답해. 몇 번이야? 내가 다시 전화할께.

남     아 됐어. 그래봐야 손님이랑 싸우기밖에 더 해?

        세탁소는 단골인데 맘 상해봐야 좋을 게 뭐 있다구.

        다시 튀겨. 콜라나 한병 더 넣고. 

여     세탁소 이노무 여편네. 그 여편네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괜히 콜라 한병 더 얻어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남     아 거 참... 설마 그랬겠어? 일단 빨리 튀기기나 해.

        다른 배달도 밀렸는데.

여     (불만 가득해서) 아니.. 당신은 왜 내 말은 안 믿어?

남     이 여자가 진짜.. 비켜. 내가 할테니까.

(M) 애수 - 이문세


남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는 그 소리다.


(E) 설거지 툴툴대며 하는


여     아니... 왜 자기 마누라 얘긴 못 믿냐구....

        상식적으로다가.. 와이프 말을 믿어줘야 되는 거 아냐?

남     참... 종알거리네. 밥 한 그릇 더 줘.

(E) 밥통 뚜껑 열고 밥 푸는


여     나는 만약에 반대 상황이면 당신 말을 믿었을거야.

남     그만 좀 해라.

여     있잖아. 이참에 알고 싶은 게 있는데.


남     난 이런식으로 나오는 아내가 제일 무섭다.


여     당신은 나랑 왜 살아?


남     저런 질문이 제일 싫다.


여     왜 사냐구?

남     결혼했으니까 살지.

여     그게 끝이야?

남     애들 엄마니까 사는거고.

여     그게 끝이야?

남     그럼 뭘 더 바래.

여     그냥 결혼했고, 애들 엄마니까 같이 사는거야?

        그건 당신이 꼭 나 아니고 딴 여자랑 살아도 상관없단 얘기잖아.

남     밥 그만 먹을란다.

(E) 숟가락 놓고 일어나며

남     사람이 밥 한번 편히 먹는 꼴을 못봐요.

(E)걸어가면. 따라가며.

여     아니.. 내 질문이 그렇게 밥맛떨어지는 질문이었어? 기분이 더 나쁠라         그러네?

남     그럼 답을 뭐라고 했어야 했는데?

여     그것까지 가르쳐 줘야 해?

남     그래. 그럼 내가 물어보자. 당신은 나랑 왜 살아?

여     그거야... (머뭇대다가) 당신이랑 있으면 언젠간...

        행복...해질 것 같으니까.

(M)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남     그리고 얼마 후.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여보... 큰일났어.

남     왜 수선이야.

여     저번 복덕방 자리에 닭집 들어온대. 그것두 무슨.. 큰 체인점껀데..

        웰빙 뭣이래나 어쩐대나...

남     뭐?

여     몰라. 올리브윤가 뭐시긴가로 튀겨내서 몸에도 좋고 어쩌고 하면서

        벌써부터 홍보하고 난리래.

남     아니... 우리 닭은... 몸에 안좋아 뭐?

여     어떡해. 넓지도 않은 동네.. 당장 수입에 차질있을텐데.

남     웃기지 마. 우리가 한 자리에서 20년을 했어.

        단골이 어디 가겠어.

여     그럴까...?


남     불행히도 아내의 말이 맞았다.

        새로 들어선 가게는 큰 인기를 끌었고.

        우리 가게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M) 살다 보면 / 권진원


(E) 신문 뒤적이는

여     여보.. 

남     (다시 신문 들추며) 왜..

여     신문 본 걸 뭐하러 또 보고 또 보고 그래..

남     아 볼 게 있으니까 그렇지.

여     요새는 배달도 거의 뜸한데.. 나까지 붙어 있을 이유가 없지 않아?

남     뭐?

여     민수 엄마가 그러는데.. 읍내 버스터미널 옆에 무슨 인형공장이

        생겼대. 애들 갖고 노는 인형 같은 거 만드는 데라는데.

        하루 일당이 글쎄.. 3만원씩이나 된대.

남     그래서?

여     그래서는... 하루 30이면 한달이면 몇 번 논다고 해도 80은 될 거

        아냐. 그거면 우리 가게 적자는 메꿀 수 있을 것 같애서.

남     관둬 그냥..

여     왜 관둬..

남     좀 있으면 다시 잘 될거야. 사람들이 지금이야 궁금하니까

        그쪽 닭 먹는건데. 다시 우리 꺼 찾게 될 거라구.

        예전엔 뭐 이런 일 없었어?

여     그렇게 되면 얼른 일 관두고 다시 가게 일 하면 되구.

남     번거롭게 뭐하러 그러냐구 그러니까..

여     뭘... 이렇게 집에서 넋놓고 손님 기다리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닭 튀기는 건 당신이 나보다 잘하잖아.


남     오십 다 돼서 남의 공장 가서 일하는 꼴이 보기 싫다고..

        고생하는 것도 싫다고.. 말은 못했다.

        그냥 속이 상해, 끊으려고 서랍 속 깊이 집어넣어두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들었을 뿐.

(M) 미안해요. 고마워요 - 타이푼


(E) 현관문 열고 들어오는


여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와 있어?

남     주문도 없고 해서..

여     저녁은?

남     대강 차려 먹었어.

여     국도 없었을텐데. 나 먹을 건데 같이 먹을래?

남     그 공장은 저녁도 안줘?

여     일찍 오려구 저녁 안먹고 잔업했어.


(E) 담뱃불 붙이는


여     아우, 왜 또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그래..

남     밖에 춥잖아.

여     담배 끊는다며!

남     에이 진짜... 그거라도 안 태우면 속이 타는데 어쩌라구.

여     나도 힘들어. 하루 종일 인형 눈만 달다 보면.

        꿈에서도 인형 눈만 둥둥 떠다닌다니까?

남     누가 하랬어? 왜 그런 말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놔?

여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남     됐어. 그만 하자.

(E) 일어나서 나가고.


남     아내에게 화를 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집을 나와서 가게로 갔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가

        잠이 안와 뒤척이는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이.. 아내 생일이었다.

        그걸.. 아내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것이다.

(M) 새까맣게 - 엠투엠


(E)  새 소리, 딸랑딸랑 두부 장수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등등..


남     새벽까지 추워서 덜덜 떨었던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몸 위에 담요가 덮여있다.

        아내가 다녀간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며 시장에서 미역을 샀다.


(E) 도마질 소리


여     (아무렇지 않게) 왔어?

남     무슨 국 끓여?

여     된장국..

(E) 턱 내려놓으며

남     이거나 끓여.

여     뭐야 이게?

남     보면 몰라? 미역이잖아. 소고기 넣고 맛있게 끓여봐.

여     그래도 미역국엔 닭고기 넣으란 소리 안하네.

남     소영이랑 경준이는?

여     소영이는 학원 갔고. 경준이는 아직 자.

남     이노무 자식들은.. 뭐 하는 녀석들이길래 지 엄마 생일도 몰라?

여     어?

남     (괜히 버럭버럭 하며 방쪽으로 멀어지며) 경준아! 너 빨리 안 일어

        나? 너 어제 니 엄마 생일이었던 거 알았어 몰랐어?

(E) 방문 열고 들어가는

여     (크지는 않게) 여보. 그래서 미역 사온 거야? 세상에...

        고마워.. 여보.

(M) 사랑 하나면 돼 - 백지영


(E) 뭔가 내놓는

남     이거.

여     뭐야 이게?

남     생일선물이야.

여     아유.. 뭐 이런 걸 다... 백화점 상품권이야? 응?

(E) 열어보고

여     응?... 종합건강검진 상품권이야?

남     그래. 뭐 우리가 직장엘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공짜로 해주는

        데도 없는데. 알아서 챙겨먹어야지.

여     세상에.... 오십만원이야??

남     예약 날짜 잡고. 하란대로 착실히 해 그러니까.

여     아니.. 지금 우리 살림에 오십만원이 웬말이래? 아유, 난 못하겠다.

        멀쩡한데 돈 버려가면서. 미안한데... 그냥 돈으로 물러오면 안돼?

남     또 그런다 또. 내가 그런 말 제일 싫어하는 거 알면서.

여     아유.. 그래도 아까우니깐 그렇지. 우리 경준이 학원비도 못챙겨줬구        만.

남     지 엄마 생일도 까먹는놈. 학원비 뭐하러 챙겨줘? 대학생이나 된 놈

        지 앞길은 지가 알아서 챙기라 그러고. 당신은 당신 몸이나 챙겨.

여     치... 당신이 이러니까... 나 많이 생각해주는 것 같네. 알았어요.

        시키는대로 할께.

(M) 나의 피아노 - 엄정화 장재형


(BG)로 이어지고

(E) 닭 튀기는 소리

(E) 전화벨


남     (힘차게) 네! 닭집입니다. 네. 맞는데요. 아...네..... 네.....

        그래요.... 네..... (한참 있다가) 알겠습니다.


(E) 전화 끊고


남     난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E) 문 열리고 들어오는


여     (놀라며) 어머나. 당신 뭐해? 세상에... 이거 뭐야. 닭 다 탔네.

        아니.. 뭐하느라 정신을 다 빼고 있어.


남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왜.

        식구들이 남기는 밥도 몇그릇씩 뚝딱 하는 사람이 왜.

        하루에 열시간씩 공장에서 잘도 일하는 사람이 왜.

        그동안 한번도 아프다는 소리 안했던 사람이 왜.

        행복하고 싶다면서, 고생만 해왔던 사람이 왜.

        왜... 말기암이라는 건가.


여     여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M) 그대 보세요 - 최혜진

        

-----------------------1부 끝 ---------------------


* 곧이어 2부가 계속됩니다 *


(M)그대 보세요 - 최혜진


여     여보... 왜 그러냐구. 응? 정신 차려.

남     어... 

여     닭 다 탔어. 생전 안 이러던 사람이 왜 이런대?

남     아... 그래....

여     어어? 진짜 이상하네??

남     아니야. 당신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여     나... (한숨 쉬고) 공장에서 짤린 거 있지. 아유.. 하긴 젊은 애들 손을

        어떻게 당해. 요샌 눈도 자꾸 침침하고. 속도 안좋아서 자주 화장실         가고. 그러니까. 작업반장한테 찍혔지 뭐.

남     ........잘됐어.

여     잘되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해 죽겠는데.

남     이젠 좀.... 쉬어.

여     쉬긴. 한참 일할 나이에. 우리 가게라도 좀 잘돼야 내가 여기서라도

        일손을 도울텐데.

남     여보....

여     응?

남     저녁에 삼겹살 먹을까?

여     왜 그래?

남     그냥.....

(M) 사랑하고 있네요 - 엠씨 더 맥스


(E) 북적대는 소리

여     여보.. 웬일이래? 오늘은 손님이 이렇게 많네.

남     그러게. 삼겹살 먹으러 가려고 했더니.

여     아유 됐어. 삼겹살 안먹어도 배불러... 2번에.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남     .....그래. 


(E) 닭 튀기는 소리에 사람들 소리들...

남     그리고 잠시 후.


여     (약간 멀리서) 아니.. 아까 분명히 후라이드 반에 양념 반이라고

        하셨잖아요... 


남     아내가 손님과 실랑이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많아봐야 20대 중반일 남자 세명이

        아내에게 반말을 써가며 윽박지르고 있었고.

        그 앞에서 변명도 못하고 있던 아내.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더니, 얼른 내 눈치를 본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난 항상 아내를 나무라고

        손님 편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여     (약간 멀리서) 저기... 죄송해요. 제가.... 잘못 들었나봐요.

        얼른 다시 해다드릴께요. 콜라.. 서비스 드릴께요. 죄송합니다.

남     (못 참고 가는) 야. 니들 몇 살이야?

        뭐? ‘아줌마 귀가 먹었어?’ 니들은 엄마도 없냐 이 자식들아?

        니들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나이 먹은 사람한테 그래도 돼?

여     (놀라서 말리고) 여보.. 아유 여보 왜 이래.

남     (절규하듯)내 마누라가 뭘 잘못했는데!

        내 마누라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뭘 그렇게 잘못했냐구!!!

        뭘 그렇게......  왜..... 왜...........

여     여보......

남     왜 이런 일이 있어. 왜.......


남     아내가 놀라서 날 뜯으말리고. 시비를 붙으려던 남자들 마저

        황당한 표정으로 가게를 떠날 때까지..

        나는 울며 절규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M)  고마워요 / 최재훈


(E) 걷는 소리

여     왜 그랬어 여보.

남     .......

여     근데 고마웠어. 당신이 내 편도 들어주고.

남     ......

여     그동안 손님들이랑 시비 붙을 때마다. 당신이 손님 편만 들어서

        섭섭하고 속상할 때 많았는데.

남     ......

여     뭐. 당신 입장에서야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였지만.

남     미안해. 

여     아니야. 뭐... 암튼 당신 오늘 미친 사람 같았어.

남     그랬어?

여     그래도 멋지더라. 요새 애들 좋아하는 그 누구냐.... 권상우 같더라.

남     뭐?

여     저번에 미역 사다준 것도 고맙고. 오늘도 고맙고.

남     뭐가 고맙냐. 뭐가 고마워. 뭐가.....(울컥해서 말 못 잇고)

여     여보.... 왜 그래....

남     아니야. 가자....

 

(M)  그대 보세요 (연주곡)


남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난 서랍 속에 있던 담배를 모두 끄집어 내서

        마당에 내놓고 발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E)슬리퍼 끌고 나오는


여     여보.. 뭐해?

남     ......

여     끊으랄 땐 들은 척도 않더니 웬일이야?

남     여보... 

여     어머나. 왜 이래 이이가? 아니 애들 보면 어쩔라구.. 무릎을 꿇구 이        래. 일어나. 이 양반이 오늘 이상하네? 술 마셨어 당신?

남     다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당신이....

        내 옆에서 평생 담배 연기 들이마셨으니... 그럴만도 하지.

        아니야. 그럴만도 하기는!! 왜 핀 놈은 난데. 당신이 아퍼. 왜 당신이.

여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무슨 소리야 그게 다?

남     (숨 고르고) 당신이.... 아퍼.

여     어? 내가 어디가?

남     폐....

여     아니야. 아... 당신 병원에서 무슨 연락 받았나봐? 그거 아니야.

        다 거짓말이야. 그 병원이 웃기더라구.

남     ....당신 알고 있었어?

여     알고 있으나마나.. 아니라니까? 그거 다 거짓말이라니까?

남     알고 있는데 안 간 거였어? 당신이랑 연락이 안된다고...

        빨리 치료 받아야 된다고 하던데?

여     그거 봐. 앞뒤가 안맞잖아. 언제는 폐암말기라서 손도 못쓸거라고

        그러더니. 이제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고.

        그게 다.. 돈 벌려고 수작 부리는거야.

남     여보..

여     이거 봐. 나 아무렇지도 않잖아. 얼굴 봐. 멀쩡하잖아.

        내가 그 검사 안받았어봐. 누가 날 말기암 환자라 그러겠어.

남     여보오...

여     (점점 울먹이고) 아니... 우리 소영이가 겨우 열일곱에... 경준이 이제         대학 1학년인데. 얘네들.... 졸업시키고 취직시키고. 결혼시키고 하려면

        앞으로 10년.. 아니 십년이 뭐야. 이십년은 살아야하잖어?

        그런데 한달이 뭐야. 하이고 참... 뻥을 칠라면 제대로 좀 쳐야지.

        안 그래 여보?

남     (울고 있으면)

여     (울면서) 안그러냐구 여보. 한달 동안 나보고 뭘하라구.

        뭘하라구... 나는 할 게 너무 많은데. 그건 좀 너무하잖어 여보.

        한달은 너무 짧잖어 여보.

(M) 함게 있으면 좋을 사람 - 최재훈


(E)걸어가고. 쫓아가고

남     가자구 좀... 왜 말을 안 들어.

여     안 가.

남     그럼 어쩌라구.

여     그냥 이대로 있을래. 당신이 내 생일선물로

        건강검진 상품권인지 머시긴지 안줬다고 하면 되잖아.

        그런 걸로 치면 난 아무렇지 않은데 뭘.

남     ......

여     이것 봐. 여보... 나 괜찮지?

남     우리 그럼 다른 병원 가보자. 당신 말대로

        오진한 걸 수도 있잖아.

여     ......

남     어? 서울에 있는 다른 큰 병원 가보자구.

여     ..... 가봤어.

남     뭐?

여     열군데도 넘게 가봤어. 다 똑같은 대답들 뿐이더라.

남     그런데 왜 말 안했어. 너 혼자 그렇게 끙끙 앓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리면. 남은 식구들 어쩌라구!

여     교통사고 나서도 하루아침에 죽잖아. 멀쩡하게 손 흔들고 나갔다가

        그냥 쓰러져서 죽기도 하잖아. 넘어져서 죽기도 하잖아.

        비행기 사고로 죽기도 하잖아. 불나서 죽기도 하잖아.

        그냥... 그런 걸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

        죽기까지.... 내가 느낄 그 고통을 함게 나누고 싶진 않았어.


남     난 주저앉아서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이렇게 답답할 때가 없었다.

        이렇게 내가 무능해보일 때가 없었다.

        이 사람을 잡고 싶은데. 다른 데로 못가게 하고 싶은데.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우는 것밖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M)하늘 꽃 - 예민


(E) 멀리서 밤 새 우는 소리만 가끔 들리고


남     참 어처구니 없게도

        아내는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났다.

        별 다른 유언 한마디 없이.

        자고 일어났을 때 다시는 깨어나질 못했다.

        이제 난 아내 없이 혼자 잠들어야 하고

        아내 없이 혼자서 가게문을 열고 닫는다.

        아내가 앉아 있던 의자.

        아내가 쓸고 닦던 마루.

        아내가 끼고 있던 고무장갑 같은 것들을 볼때면

        나도 몰래 목이 메어와

        뒷방에 가서 혼자 끅끅대며 운다.

(M) 미안해요 사랑해요 - 변진섭


남     아내의 물건들 때문에 살 수가 없어

        차라리 치워버리기로 했다.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아내가 쓰던 가계부들을 보았다.

        아내 말대로 정확히 스무권.

        이 스무권의 가계부를 쓰면서

        아내는 20년 상환으로 대출받아 샀던 우리집을....

        나에게 선물해주고 떠났다.


(E)넘겨본다

(BG)   Dorogi / Djelem


여     콩나물 1200원. 남편 담배 2000원.

        이 사람 담배 좀 끊으라는 말을 죽어도 안듣는다.

        누가 돈 아까워 그러나. 자기 건강 생각해서 그러지.


(BG)


여     마을버스비 300원. 경준이 학원비 5만원 

        우리 경준이가 어느새 고등학생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남들처럼 좋은 학원도 못 보내주는데. 그래도 공부도

        곧잘 하고.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가게가 조금만 더 잘되면 좋겠다.


(E)넘기는 

(BG)


여     공장 일당 3만원 받음. 얼마전부터 자꾸 기침이 나고. 속이 안좋다.

        남편이 준 건강검진 상품권으로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난 정말 호강하면서 산다.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 넘기는


남     그리고 가계부의 마지막 장을 보았을 때.

        난 눈물이 나서 그저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     소영이 실내화 2000원. 경준이 티셔츠. 2만원.

        오늘 그 사람이 내가 아픈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손님들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줬나보다.

        한번도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내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는 그 사람을 보니까.

        가슴이 아프다기보단... 기분이 좋았다.

        참 나도 못됐다. 이제 앞으로 이 가계부를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진

        몰라도. 나는 기억하고 떠날 것 같다.

        내가.... 그 사람과.... 내 아이들과 이 가계부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셨으며..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는지.

(M) 약속





2008-01-09(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