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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4일 목요일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07화 - 미운정


(M) 주제음 (고마워요 - 최재훈)


남     아침이면 늘 반복되는 소리들.

(E) 탁탁 경쾌한 도마질 소리

(E) 방문 똑똑 노크하는 소리


여     (방문 밖에서.. 나는 소리 쯤) 여보.


(E) 방문 열고 들어오는


여     (좀 더 크게) 여보...

남     (끙하는..)

여     일곱시 반이에요.

남     ...

여     또 출근버스 놓치지 말고 일어나요.

(E) 나가며 방문 닫히는


남     저 여자가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려고 하다가도...

        다시 눕게 된다

(M)  Exit Music / Radiohead


(E) 밥먹는 소리

여     여보 이거.

(E) 반찬그릇 옮기는

남     냅둬. 그냥 먹게.

여     저번 추석 때 보니까, 당신 어머님댁에서 이 나물 잘 먹길래...

        그래서 일부러 시장가서 사왔는데...

남     그러니까 거기 두라고. 먹을테니까.

여     (일부러 밝게) 오늘 일찍 들어올거죠?

남     ....

여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E) 젓가락 탁 놓는

여     ... 밤에 같이 외식이라도 하면서...

남     (자르듯) 갈 데가 있어.

여     어디?

(E) 의자 빼는 소리

여     (약간 흥분한 듯) 어디 가는데?

남     늦었어. 출근할께.

여     어디 가는데요!

(E) 나가는

여     (못 참고) 그 여자한테?

(E) 가던 걸음 멈칫하고

여     그 여자한테 가는거야?

남     ....

여     오늘같은 날도 그 여자한테 가는거냐구!

남     오늘이 우리를 위한 날이었나?

여     ....

남     나한테 오늘은.. 그여자를 위한 날이야.

(M)  좋은사람 / 박효신


(E) 강물 흘러가는 소리


남     퇴근 후.

        난 강가로 갔다.

        노을이 지는 강은

        붉고. 슬펐다.

        그때처럼.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를 삼켜버린 강물은

        슬픔이 무엇이냐는 듯.

        추억이 무엇이냐는 듯.

        오히려 내게 되묻고 있었다.

(M)   가끔씩 눈물이 나죠 / 팀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남     자정이 다 된 시간.

        집안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석고상처럼 굳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E)걸어가는 


여     어디 갔다 와?

남     ...

여     기어코 거길 간거야?

        아직도 그대로야?

남     그만해.

여     아니? 그만 못하겠어.

        작년에도 그전에도 그전에도... 5년을 참아왔어.

        나도 참을만큼 참은 거 아냐?

남     그래서 달라진 게 뭔데?

여     뭐?

남     당신이 참아서.. 윤희가 살아돌아왔어?

여     (떨리는) 뭐?

남     윤희는 죽었어.

        죽은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해야 돼?

여     내가.. 그 여자한테 뭘 어떻게 했는데?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남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여     그래!

남     아니지.

여     ...

남     당신은 나랑 결혼을 했잖아.

여     ...!

남     그래서.. 윤희를 죽게 했잖아!

 

(M)   Nattergalen Fra Kosova- Savage Rose


(E) 컵에 물을 따르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듯한


남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차가운 물을 컵에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찬물을 컵에 가득 따라놓고도

        아내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여     역시.. 5년 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던거야?

남     ...

여     내가 당신이랑 결혼해서.. 그 여자가 죽었다고?

남     ...

여     그래서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

남     솔직히 말할까?

여     .... 아니? 말하지 마.

남     당신도 알고 있잖아.

        나는 한번도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던 적이 없어.

여     .... 

남     그건 사실이잖아.

        당신도 알고 있었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그랬잖아.

여     ....그래. 

남     ....

여     그랬었어. 그렇지만, 그래도.....

        같이 살다 보면 달라질 줄 알았어.

        서로 살맞대고 살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을 줄 알았어.

        어머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그런 여자... 다 잊고...

        내 남편으로 살아줄 줄 알았어.

        내가 열심히 하면 다 될 줄 알았어.

        그래서 죽어라고 열심히 했어.

        혼자 말하고. 혼자 웃고. 뭐든 혼자 다 하면서도..

        좋아지겠지. 좋아질거야. 그랬어.

남     내가 어떻게 잊어.

여     ....

남     윤희는 당신이랑 내가 결혼하던 날...

        스스로 목숨을 던졌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잊어.

여     ....

남     우리..분명히 약속했었잖아.

        어머니가 살아계실때까지만 같이 살자고.

        당신도 그러자고 했었잖아.

여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살면서 한번도 그런 얘기 안했잖아.

남     그런 불편한 얘긴.. 한번으로 충분하니까.

(M)   The Mention of Your Name / Chris Rea


남     나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아내.

        홀로 되신 어머니가 무척 마음에 들어하셨던 아내.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내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해왔던 여자가 있었고.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도

        나는 그녀와 헤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난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싶어할 때마다..

        나는 그녀가 몸을 던지고....

        재가 되어 사라졌던....

        그 강가를 찾아간다.

        그렇게라도...

        희미해져가는 그녀를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한달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M)   The Dead Are Dancing / Toni Child


(E) 자동차 문 열고 닫는 소리


(잠시 정적)


남     장례 치르느라... 수고했어.

여     ......

남     일단 집에 가서.. 쉬자.

(E) 시동 걸고


여     그리고 나서?

남     ....

여     그리고 나서.... 이혼하자구?

남     ....

여     아직도... 그러고 싶은거야?

남     일단은... 쉬자.

(M)   하기 힘든 말 / 이승기


남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똑같은 하루들이 반복됐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E) 탁탁 경쾌한 도마질 소리

(E) 방문 똑똑 노크하는 소리


여     (방문 밖에서.. 나는 소리 쯤) 여보.


(E) 방문 열고 들어오는


여     (좀 더 크게) 여보...

남     (끙하는..)

여     일곱시 반이에요.

남     ...

여     또 출근버스 놓치지 말고 일어나요.


(E) 나가며 방문 닫히는


남     그녀는 잘 돌아가는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여내고

        같은 웃음을 지었다.

        도통 그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E) 밥 먹는 소리


여     오늘 늦어요?

남     응. 약속 있어.

여     그래? 그럼 지금 줘야겠네.

남     뭘.

(E) 봉투 내미는


남     이게 뭐야.

여     열어봐요.


(E) 열어보고


남     이혼서류였다.

(M)    예정된 이별 / 조관우


====================================================1부 끝


* 잠시 후 2부가 계속됩니다.



* 1부 마지막 장면 반복 *

남     이게 뭐야.

여     열어봐요.


(E) 열어보고


남     이혼서류였다.


여     내 도장은 찍었어요. 당신 꺼 찍어서 법원에 갖다 내요.

        나.. 그런 절차는 잘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남     ...

여     집은 당신명의로 됐으니까 당신이 갖고.

        재산분할은 알아서.. 해줘요.

        내가 돈을 벌진 않았지만, 집에서 일한 가사노동도 일이니까..

        알아서 챙겨주고.

        당신.. 그런 걸로 치사하게 굴진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남     이건...

여     .....

남     좀 천천히 해도 돼.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여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데요?

        어차피 결론은 같을 거잖아.

남     그렇지만....

여     사형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이젤까 저젤까...

        떨면서 기다리는 거. 싫어요.

        그동안 5년이나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남     정말.. 괜찮겠어?

여     지금... 내 걱정 해주는 거에요?

남     ....

여     재밌네. 당신이 내 걱정이라니.

남     ....

여     당신은 아마... 앞으로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우리 결혼기념일이면 그 강가에 가겠죠.

        가서 죽은 그 여자 떠올리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겠죠.

남     ...

여     생각해 봤어요. 그런 당신 곁에서... 살아가는 게 옳은가.

        답은.... 아니다.....

        정말 사랑해도..... 그건 아니다.....

남     그래. 

여     그래?

남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여     고마워요?

남     그래.

여     처음이네. 당신한테 고맙다는 소리 들어보는 거.

남     당신한테 고마운 적..있었어.

여     ......

남     아니. 많았어.

        그냥.... 다른 문제들 때문에.... 고마워도 고맙다는 소리 못하고.

        그렇게 살았던 것 뿐이야.

여     다른 문제들은.. 결국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문제였겠죠.

남     ......

여     사랑을.... 시간이 만들어줄거라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어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랑이 만들어지는 건 아닌데.

(M)   아프죠 / 헤이

        

남     아내는 이혼이 마무리될 때까지

        친구 집에 머물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라...

        사실은 나도 좀 얼떨떨했다.

        그래도 난 잘해나갔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혼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밖에서 일하다가 퇴근을 해서...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잔 정도 마신 후에

        잠이 들었다.

        좀 쓸쓸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아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게 문득문득 궁금하긴 했다.

        또.... 문득문득 미안하기도 했다.

(M)   용서 / 안젤로


(E)사무실 소음

(E)전화거는


남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현경씨죠?

        저 은서 남편입니다. 은서한테는 제가 전화했더란 얘기

        하지 마시구요. 은서... 잘 지내죠. 네?

        ..............


(E) 전화기 내려놓는


남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멍해져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아내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나도 몰랐던, 아내에 대한 기억들.


여     내가 잘할께요. 지금은 고집 피우는 것 같겠지만

        살아보면 알거에요. 내가 얼마나 잘해내는지.


남     이건 결혼 전에 내게 했던 약속.

        아내는 잘해내주었다.


여     우리... 산책할래? 가을이라서... 저녁에 선선하고 좋아.

        자전거 타러 나온 사람들도 많구.


남     이건 신혼 초에... 내게 조심스레 했던 제안.

        나는 이 제안을 거절했었다.


여     아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놀이터에 나가보면.. 고만고만한 아이들

        많이 놀러나오는데. 너무 이쁘구. 나두 이제... 아이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어.


남     이건.... 지난해 가을.

        나에게 했던 부탁. 난 이 부탁도 묵살해 버렸다.

        왠지...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먼저 가 버린 그녀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아내는 늘 노력을 했고.

        나는 늘 외면을 했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아프다고 한다.

(M)   I'm Sorry / 팀


(E) 병실 문 열고 들어오는


남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얼굴을 보면서

        아내는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여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남     현경씨한테 들었어.

여     .....

남     알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잖아.

        당신 친구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서 그러더군. 안그래도 먼저     

        전화할까 하던 참이었다구.

여     내가... 일부러 알리려고 했다는 거에요?

남     일부러 알리지 않을거면.... 정말 모르는 곳으로 꽁꽁 숨어버리든가.

        마음만 먹으면 찾아올 수 있는 곳에서.... 뭐하는거야 지금.

여     뭐하는거냐고?

남     .........

여     ...........기다렸어. 

        너 기다렸어.

(M)    Right Here Waiting / Brenda Cochlane


남     아내도 나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남     어디가.. 아픈데 수술까지 받는다는거야.

여     .....

남     아픈 거 알고 이혼하겠다고 그랬어?

여     ....

남     영화 찍어?

여     ....

남     나중에 이런 거 알면... 내가 더 많이 미안해할까봐 그랬어?

여     ....

남     내가 당신이 싫은 이유가 바로 이거야.

        항상 미안하게 만드는 거. 나만 나쁜놈 만드는거.

        당신 앞에 있으면 나는.... 언제나 상처주고 나쁜 짓 하는 놈밖에 안돼

여     내 몸 아파서 이혼하겠다 그런 거 아니야.

남     ....

여     언젠가부터 피임약 안먹고 있었던 거 몰랐지.

        나 당신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남     ....

여     그게 나에겐 유일한 희망이었거든.

        나 하나로는 안되니까.. 안되겠으니까... 아기를 가지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런데 나 수술로 자궁을 드러냈어.

남     .....! 

여     당신한테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유일한 길이 끊겼어.

(M) 눈꽃 / 서영은


남     병원앞을 나서는데

        겉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왜 아내는 나를 이토록 미련하게 사랑하고.

        나는 왜 아내를 이토록 모질게 밀어낼까.

        우리 두 사람의 인연에

        너무도 화가 났다.


(E) 뛰어가고

(E) 문 여는


남     갑자기 열린 문에

        아내는 벌개진 눈을 들어 나를 본다.


남     김치찌개에 뭐 넣었던거야.

여     ...... 뭐?

남     그동안 김치찌개에 뭐 넣었던거냐고.

        무슨... 약같은 거 넣었어?

여     헛소리 할 거면 가. 피곤해.

남     아침마다 당신이 한 것처럼 끓여보는데. 그 맛이 안나.

여     ......

남     밥솥에 물도 똑같이 넣고 밥을 하는데. 그 맛이 아닌 것 같고.

여     다행이네.

        5년 동안.... 찌개 한그릇에 밥 한솥에 목숨이나 걸린 것처럼

        온갖정성으로 만들어댔는데. 그 맛이 좋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네.

남     일단.... 회복 끝나면 집으로 가.

여     싫어.

남     아무도 없잖아. 일단 집에 가.

여     밥이나 하고 찌개나 끓이라고?

남     아니. 그냥... 옆에 있어.

(M)    용서하세요 / 김형중


여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야?

남     니가 이겼어.

여     뭐?

남     당신이 피임약 안먹는 거... 알고 있었어.

        그리고.... 아이가 생기길... 나도 바라고 있었어.

여     그만해. 

남     아이가 생기면.... 못이기는 척. 웃어보려고 했어.

        못이기는 척. 당신을 다정하게도 안아보고.

        이제 할 수 없지..... 하면서 당신이랑.....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어.

여     ........

남     사실은... 진작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어.

        질긴 당신이 밉고. 싫고. 미련한 당신이 지겨운데.

        그게..... 어떻게 정이 돼 버렸는지.

        아니면 길이 들어버렸는지.

여     ..........

남     당신 없으면.... 허전하다.

 

(M)   미안해 용서해 사랑해 /  빛과 소금


남     내가 정말 미안했던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녀였던 것 같다.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의 그녀에게 미안해서.

        아내에게 모질게 굴고. 심술을 피웠던 것 같다.

        아내와의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내가....

        못나 보여서.

        괜히 아내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여     미운정이네.


남     아내가 말한다.


여     미운정이야.


남     울먹이며 말한다.


여     미운정이라도.... 좋아.


남     아내가 웃는다.


여     자존심도 없지. 미운정이라도.... 난 좋으니.


남     아내가....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녀의 마음을. 내 상처를. 우리의 인연을.

        가만히 다독인다.

 

(M) 주제음 (고마워요 - 최재훈)

 

 

 

 

 

 

 

 





2007-10-02(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