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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4일 화요일 대본 및 수록곡
 

 이현승 

 


 어느덧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18년 세월이 흘렀네요. 하지만 어린 손주인  저를 사랑하고  품에 앉아주시고, 귀여워해주시던 할머니의 체온은  아직도 남아  저를 훈훈하게 감싸주곤 합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초등학교시절  할머니와의 포근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곤 합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병에 약했던 저는 식구들의 애간장을 끓이곤 했었지요.    그즈음  학교에 등교할 때는  구름만 끼고  비가 안 왔는데 하교 할쯤에는 장대비가 주륵주륵  쏟아졌고, 저는 우산이 없어 그만 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슬픔 속에 있는데  어디선가 제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며, 제 손을 덮석 만지던 할머니의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따끈하게 쪄 오신   감자를 먹으며, 우산을 하나씩 사이좋게 받쳐 들고 귀가를 했었지요.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됐지만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그분의

체온이 느껴지곤 합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겠지요. ^^

비오는 날이면 묘한 추억이 생각합니다.


신청곡 : Morning Aura / Angelic Breeze

1999년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안젤릭 브리즈'의 2002년 작품. 이 곡이 금호 아시아나 광고 음악으로 쓰였고, 지금은 종영된 MBC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에 쓰이기도 했음.

'Angelic Breeze'는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 지구상에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1999년 결성된 프로젝트팀. 북미,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의 실력 있는 뉴에이지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어 있음.





 



 서미희 

 


  전 언제나 7월이면 청포도 알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내 고향 시골집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모든 건 그 곳에서 유년을 함께 했던 내 조부모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언제까지나 가슴 절절이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늘상 새벽보다 일찍 일어나 논물 살피러 나가시던 할아버지와,

돌절구에서 뽀얗게 갈아낸 보리쌀 수북이 깔고, 그 위에 흰쌀 한 줌 덮어

감자도 함께 쪄내시던 할머니의 가마솥 밥은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추억속의 만찬이라 생각해 봅니다

큰 논배미에서 꼴 한 짐해서 짊어지고 들어 오셔서야 어린 장손인 남동생과 함께 겸상으로 아침밥상을 받으시던 할아버지의 흐ANT한 미소가 그리워지는 세월입니다

잎담배를 곰방대 안에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담아 태우시던 당신께선

식후 연초시간을 즐기신 후엔 꼭 지푸라기로 곰방대 통을 소제하시고

나머지 담뱃재를 놋재떨이에 탕탕 털어 내시던 그 음향은 여름 뻐꾸기가 울던 산골의 아침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검붉은 오디는 뒷산 감자밭에 다녀오시는 할머니의 대소쿠리 안에서 쏟아져,

우리들의 입맛을 달보드레하게 길들인 훌륭한 간식이었고, 거칠 것 없는 여름 한 철 물방앗간 물수레 밑에서 첨벙첩벙 멱을 감다가 그 일도 이내 시들해지고 말면 뙤약볕에 익은 조약돌 하나씩 양 귀에 대고 드러누워 이내 설핏해지는 저녁기운에 고무신 벗어 들고 다슬기 줍던 벌거숭이 내동무들!

 대나무 평상에 두리두리 모여 앉아 논둑에서 훑어온 콩깍지를 삶아 먹고

낮에 잡아 온 다슬기를 바늘 침으로 꺼내 먹으며 올려다보는 하늘에선 별이 쏟아지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달없는 그믐밤에 남폿불 하나 들고 명주실 같은 샛길 따라 냇물 건너 큰 마을에 유랑극 구경하다가 할머니의 치마폭에  잠이 들면 부채바람 일으켜 다독거려 주시던 할머니의 까칠한 손길도 영영 옛이야기가 되어 이렇듯 내 소중한 추억의 한 시절로 일기장 안에서만 어슴푸레 무늬질 뿐이랍니다.

신청곡 : Rhythm Of The Rain / Cascades

미국 출신의 록 그룹 '캐스캐이즈'의 1963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강향자 

 


제 딸아이가 울상입니다. 왜 이렇게 우울한가 물어보았지요.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는데.. 2박3일간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학교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는데..

2박3일 동안 봉사활동만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뚱~~ 한 모습으로 집을 출발한 아이...

2박3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절 보자마자 "엄마엄마" 하면서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그곳의 인사법은 '사랑합니다.' 라네요...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던 간에.. 안녕하세요.. 대신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나에게 주신 음식도 너무너무 감사하게 먹고,

아픈 사람,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너무 배운게 많다며

그동안 자신이 너무 못된 사람 이였다며 반성을 합니다.

그곳에는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도 있는데

어린 아이들은 한번 안아주면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좀 큰 아이들은 곁을 쉽게 내 주지 않으려 한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렇게 키워준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틀사이에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이 한층 성숙해진 우리아이.. 

자신의 용돈에서 매달 5천 원씩을 그곳에 기부하기로 했다네요.

어찌나 기특하던지, 제 손이 부끄러워.. 작은 액수 지만 저도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작은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예전엔 왜

몰랐었는지요. 사랑의 실천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실천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신청곡 ; Hey Jude / The Beatles

비틀즈의 1968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연 9주간 정상을 기록했던 노래.  이 노래는 John Lennon의 아들 Julian Lennon을 위해 폴 매카트니가 만들어 큰 인기.

 

 


 우창진 

 


매년 6월이면 장맛비가 옵니다.

그 장맛비를 보며 늘 가슴아퍼 비처럼 울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처제입니다. 몇 해 전 장맛비가 시작할 무렵 사랑하는 사람을 저 멀리 하늘로 보냈습니다. 둘은 너무나도 끔찍하게 사랑하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늘이 시샘했는지 그 둘을 그렇게 갈라놓더군요.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던 처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이 비가 그 사람 눈물일꺼라며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처제 얼굴이 떠오릅니다.

처제는 처음엔 그 사람을 보낸 아픔으로

그리곤 그 사람이 없이 어떻게 사냐며 절망으로

그리곤 자길 놓고 혼자 갔다며 원망으로

그리곤 마지막엔 잘해준것이 없다며 몇 년을 후회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서야 많은 아픔과 절망, 원망, 후회를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이별이든 죽음이든 말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었기에 아프기도 절망도 원망도 후회도 있는것 같습니다.

이제 힘들었던 처제에게도 장맛비가 그치고 따사로운 햇빛이 비출 것 같습니다. 모든 아픔을 같이 하겠다는 근사한 사람이 생겨 곧 결혼을 합니다.

저희들만 행복한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제 우리 처제도 아팠던 마음 다 잊고 행복할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이젠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보고 싶을 땐 볼 수 있는 눈이 있음을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땐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음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제가 가족 곁에 있음이 감사하고

제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하루하루가 감사하시죠??

신청곡 : Ter Outra Vez 20 Anos(떼르 오우뜨라 베즈 빈뜨 아누스; 다시 20살이 된다면) / Bevinda

포르투갈 파도 여가수 '베빈다'의 1994년 작품. 파도 특유의 슬픈 멜로디와 현대적인 분위기의 악기 편성, 여기에 베빈다의 떨리는 음색의 창법이 멋진 조화를 이룬 노래. 그녀의 명반 'Fatum(운명)'에 수록.

 

 

박나림의 차한잔 하세요~!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

미국 출시의 팝가수 '바비 빈튼'의 1972년 리메이크 곡으로 싱글차트 19위 기록.

오리지널은 브라이언 하일랜드의 1962년 곡임.

 

 

 

 이현미 

 


요즘 급식문제로 말들이 많죠.. 이런 일들이 없어야 될 텐데 말이죠.

시골에서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던 그때...

중.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했다.

전교생이 150명 정도였던 초등학교 시절...

영양사 선생님 한분과 조리를 하시는 분들은 학생들의 엄마였다.

그래서 엄마들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학교에 나오셔서

학생들의 점심을 해주셨다.

 그런데 엄마들이 급식당번을 하실 때 가지고 올 재료가 있었다.

누구엄마는 된장, 누구엄마는 고추장, 누구엄마는 간장

이렇게 가지고 온 양념들로 학생들의 점심을 해주셨던 거다.

이런 양념들은 집에서 직접 담근 것들이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죠.

시골에서는 농사로 바쁘기 때문에 급식당번 하시는 것도 정말 큰일이었다.

그때는 품앗이로 일을 서로 해주시면서 할 때가 많아서

남의 일 해주러 가는 날이랑 급식당번이 겹치는 날이면 엄마는

다른 아주머니께 급식당번일을 부탁했다가

그 아주머니 당번때 대신해 주시는 일도 있었다.

4교시 끝을 알리던 종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예쁜포크와 예쁜 숟가락을 집으려고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식판에 가득담은 밥과 국과,맛있는 반찬들을 신나게

먹으면서 싸운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밥 더 먹으려고 열심히 먹었던 그런 기억이 벌써 26년전의 추억이라니...

세월이 정말 이렇게 많이 흘렀네요.

그때 먹던 식판의 밥과 국과 맛있는 반찬들을

그때 그 반친구들과 한번 먹고 싶어지네요.

기덕 오라버니 이런 기억 있으신가요?


신청곡 : Midnight Blue / E.L.O

영국 출신의 6인조 록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1979년 작품.

인기 차트엔 오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서  히트했던 이들의 대표적인 노래.

 

 

 

 





2006-07-04(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