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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2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28화 - 봄비가 내리는 길


(M) 주제음 애비 / 최백호


남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난 딸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E) 통화음

여     여보세요

남     어, 아버지다.

여     (조금 냉랭) 왜요?

남     오늘 언제 들어오니?

여     친구들이랑 약속 있어서 좀 늦을 거에요.

남     비 오는데, 우산은 챙겨 갔니?

여     편의점에서 사면 돼요.

        언제부터 저 비 맞는 거 걱정하셨어요?

남     뭐 이 녀석아?

여     어쨌든 저 늦을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E) 딸깍 끊고


남     언제부터 딸아이와의 사이가

        이렇게 서먹해졌을까.

        어릴 땐 곧잘 내 품에 안기고

        애교 섞인 투정도 부렸던 아이였는데.

        이제 나와 딸 사이에는

        형식적인 대화밖에 오가지 않는다.

(M) Somethin' Stupid / Frank Sinatra + Nancy Sinatra


(E) 문 열고 들어오는

남     이제 오냐?

여     안 주무셨어요?

남     잠깐 얘기 좀 하자.

여     무슨 얘기요? 저 좀 피곤한데 내일 하시면 안돼요?

남     잠깐이면 된다

(E) 커피 따르고

남     너랑 차 마셔보는 거, 처음 아닌가 싶다

여     .... 할 얘기 있으시다면서요.

남     어. 아버지 퇴직한 지도 3년이 넘었고...

        이제 너도 결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여     .... 결혼요?

남     그래서 내가 괜찮은 사람을 하나 봐놨다.

여     저 남자친구 있어요

남     사귀는 사람이 있어?

여     네. 5년도 넘었어요.


남     딸아이가 5년이 넘게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난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M) 역마 / 박상규


(E)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 들고

남     그래.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

여     음악하는 사람이에요

남     뭐?

여     작곡도 하고 노래도 해요.

        아직 데뷔를 한 건 아니지만요.

남     헤어져라

여     뭐라구요?

남     그런 녀석이랑 결혼을 할 순 없잖니!

여     왜 못해요. 제 성격에 한 사람을 5년씩 만나왔다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시겠어요?

남     그럼, 평생 일정한 직장도 없을지도 모르는 녀석

        먹여살려 가면서 살래?

여     그러지도 않을거지만,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상관 없어요.

남     시끄럽다. 이번 주말에 자리 마련할 테니까

        내가 봐 둔 사람 만나봐. 5급 공무원이야.

        쉽지 않은 자리니까, 말 나오지 않게 잘해.

(M) To My Daughter / Charles Aznavour


남     그리고 주말.

        딸 아이는 차려입고 나갔는데

        선 자리를 주선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아이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늦도록 딸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E) 집앞 서성이는데, 걸어오는 소리

남     (엄하게) 은서 너!

여     ..... 

남     너,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주선한 분이 아버지한테 얼마나

        어려운 분인데.. 너 이 자식..!

여     안 나간다 그랬었잖아요.

남     일단 만나 보기라도 하라 그랬잖아!

여     아버지는요? 아버진 내가 만나는 사람, 본다고 하셨어요?

        얼굴 한번도 안 보고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세요?

        아버지 딸이 어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M) Papa can You Hear Me / Barbra Streisand


남     딸아이와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건

        아내와 이혼을 하던 때부터였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은서는

        말수가 없어졌고

        웃음도 없어졌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생각하면

        나 역시 미안하다.

        그런데, 말은 미안하고 아픈 마음을 담아주지 않는다.


남     내가 널 그따위 녀석한테 주려고

        이제껏 키운 줄 알아?

여     그 사람, 아버지가 그따위 녀석이라고 불러도 될 사람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따뜻한 사람이에요! 아버지보다 훨씬...!

(E) 뺨 때리는

여     ..... 아버지...!


남     한번도... 딸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는데.

        딸 아이의 눈에 고여오는 눈물을 보다가

        난 도망치듯 돌아섰다.

(M) Yamshick / Djelem


(E) 달려오듯 방으로 들어와 서랍 뒤지는, 약병 열고 약 먹는

남     아내와 헤어질 때

        난 큰소리 쳤었다.

        은서는 내가 잘 키울 거라고.

        그러니 괜히 나타나서 마음 흔들어 놓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지금 난

        그 순간을 후회한다.

        나는 은서를 잘 키워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내겐

        시간 마저 얼마 없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남은 삶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지만

        은서가... 내 딸 은서가...

        편안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M) My Daughter / Ten Tenors


(E) 밥 먹는

남     (어렵게) 은서야. 어젠... 아버지가... 미안했다.

여     됐어요

남     그 녀석... 집은 좀 잘 사는 편이냐?

여     그런 것만 궁금하세요 아버진?

남     ....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시냐?

여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셨고, 어머닌 주부셨어요.

        우리집보단 낫죠! 흠 잡으려면 그집에서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부모가 이혼한 집 딸이잖아요!

남     (한숨) 은서야. 나는 너한테 별로 물려줄 것도 없다.

여     알아요! 엄마한테 위자료 주셨잖아요.

        명절 때마다 고모, 할머니 얘기하시는 거 귀에 딱지 앉게 들었어요.

        니 엄마한테 다 떼주고 니 아버지 알거지 됐다. 니 엄마 독한여자다!

        내가 그 소리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아버지가 알기나 하세요?

(E) 일어나서 문 쾅 닫고 나가는


남     몰랐다. 

        나 때문에...

        못난 부모 때문에...

        딸 아이가 당해야 했을

        또다른 고통들.

        딸 아이가 나간 그 자리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난 한참 동안 눈물을 삼켜야 했다.

(M) All My Trials / Mickey Newbury


(E) 거리 소음

남     난 처음으로

        딸아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갔다.

        내 딸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구나

        내 딸이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을 하고

        또 매일 저녁 이곳을 지나 집으로 오는구나....

        한참을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딸 아이가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밖에서 보는 딸을 보니

        정말 어른스럽다. 참 대견하다.


여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남     그냥... 지나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여     아침에 하시던 말씀이면

        안하셔도 돼요. 전 마음 정해졌어요.

남     .....

여     무슨 말이냐면요, 아버지 허락 같은 거 없어도

        전 제가 원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남     은서야!! 너, 지금 그 말버릇이....

여     왜요? 아버지는 엄마랑 이혼할 때 제 동의 구하셨어요?

        저한테 엄마 뺏어가면서, 제 마음 돌아보셨어요?

        안 그러셨잖아요.

남     ...... 그래도 난... 니가 뭐라 한다고 해도 난....

        니가 조금 더 넉넉하고 능력 있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

여     그만 좀 하세요!

남     은서야! 아까도 말했듯이 난.... 너한테 별로 줄 것이 없다.

여     ...... 그래서요?

남     그러니까, 니가 결혼할 사람이라도 경제적으로 조금 풍요로워서

        니가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으면 했다.

여     ...... 

남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M) Solitude's My Home / Rod Mckuen


남     바쁠텐데 들어가 봐라. 아버지 간다.

여     잠깐만요.... 비 오잖아요.


남     잔뜩 흐려져 있던 하늘에서

        어느새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여     제 우산 드릴께요, 가져가세요

남     아니다. 가면서 사서 쓰면 되니까.

여     그럼, 여기 계세요.

(E) 뛰어가는

남     딸아이가 우산을 파는 가게로 뛰어간다.

        그 뒷모습은 아이 때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내게 동전 몇 개를 받아 들고서

        좋아라 과자를 사러 뛰어가던 그 뒷모습.

        그때 딸아이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게 그립다.

        한번만 더, 그 아이를 만나볼 수 있다면.

        모든 게 미치도록 그립다.

(M) Clementine / 어린이 독창


여     이거 쓰세요. 

남     그래. 고맙다.

여     아버지 말씀은 뭔지 알겠어요.

        그런데요. 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요.

남     .....

여     아버지도 그랬잖아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했다가, 불행했잖아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었잖아요.

남     은서 너... 니가 그걸 어떻게... 너... 그걸 알고 있었던거냐?

여     그럼요. 엄마 아버지 싸울 때마다

        그 얘기 나왔잖아요. 나 하나도 안 자고 그 얘기 다 들었어요.

남     ..... 그랬구나

여     그렇게 못 잊으셨으면서... 그래서 엄마 속 그렇게 아프게 하셨으면서

        왜 이혼하고 나서 그 분 안 만나셨어요?

남     .....

여     난 아버지가 엄마랑 이혼할 때, 그 분이랑 재혼하실 줄 알았어요.

        그 분, 독신이셨잖아요.

남     (헛헛한 웃음) 녀석... 니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니....

여     속으로 별 생각 다 했어요

        아버지가 그 분을 데려와서 새엄마라고 소개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항을 해야 하나,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

남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 사람, 니 엄마 노릇까지 잘해낼 사람은 아니었다

여     ..... 그럼... 저 때문에 안 만나신 거에요?

남     그건 그냥... (조금 웃고) 그냥... 그렇게 됐다.

(M) Nancy / Leonard Cohen


(E) 국 끓는 소리

남     며칠 후 아침

        

여     (약간 어색) 일어나셨어요?

남     너 지금 거기서 뭐하는거냐?

여     국.. 끓여요. 미역국...

남     미역국은 왜...

여     아버진, 아버지 생신도 모르세요?

남     ...아... 오늘이구나...

여     앉으세요. 그냥 국만 끓였어요.

        이것도 짤지 달지, 몰라요 저도.

(E) 국그릇 놓고

여     맛 보세요

(E) 한 숟가락 먹는

여     어떠세요?

남     .......

여     왜요. 그렇게 별로세요?

(E) 먹어보고

여     으.. 좀 짜다.. 간장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


남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M) Brille Mon Etoile / Djelem


남     오늘 출근 안 하는거야?

여     월차 냈어요

남     내 생일 때문에?

여     아니 뭐, 그냥 피곤하기도 하구요.

남     ... 고맙다.

여     아버지. 제가 좀 무뚝뚝하고 애교도 없잖아요.

        그거 아버지 닮아서 그래요.

남     그래?

여     제가 서운하게 말씀 많이 드리고 그랬던 거, 이해하세요.

        마음은 안 그런데, 말이 그렇게 나올 때 많았어요.

남     그래... 그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여     요즘 안색도 별로 안좋으시구...

        제가 앞으론 출근하기 전에 아침은 챙겨드리려고 노력할께요.

남     아니다. 너 바쁜데 뭐.

여     얼마나 더 하겠어요. 저 시집가기 전에나 해 드려야죠.

남     은서야.

여     네.

남     그 녀석이... 그렇게 좋으냐?

여     ....네

남     그래... 그래. 한번 보자.

(M) I Love How You Love Me / Bobby Vinton


남     은서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은서의 말대로 착하고 따뜻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은서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은서가 그 남자의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편안해 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E) 걷는

여     아버지 괜찮아요? 술 좀 드셨잖아요

남     뭐 얼마나 먹었다고...

여     (조심스럽게) 어때요... 그 사람?

남     그래. 좋은 사람 같더라.

여     (좋은) 걱정 마세요. 그 사람 그래도 유망주에요.

        이번에 쓴 곡도 유명한 가수 앨범에 실릴지 모르구요.

남     그래. 아버지랑은 다른 사람 같아서.. 그게 좋았다.

여     ... 무슨 말씀이세요

남     난 니 엄마 많이 못 아껴줬잖냐. 그 녀석은 너 아껴줄 것 같더라.

여     ... 아버진 보고도 모르세요?

남     ....?

여     그 사람, 아버지 닮았어요. 처음에 그래서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좋아지더라구요. 내가 아버지 딸이라.. 어쩔 수가 없나봐요.

(M) 아버지 / 서영은


남     은서야... 너... 혹시 니 엄마 보고 싶지 않냐?

여     .....!

남     혹시... 보고 싶지 않어?

여     .... 보고... 싶죠.

남     니 엄마 보러 갈래?

여     엄마가... 어디 계시는데요?

남     미국에...

여     미국요?

남     만나 볼래?

여     ..... 아버지 괜찮아요? 예전엔 내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해도

        안된다 그러셨잖아요.

남     .... 그땐 만나고 나면.... 니가 니 엄마 따라 미국 가겠다 그럴까봐...

        그랬지. 같은 나라도 아니고.. 미국까지 가 버리면... 영영 못 볼까봐

여     ......

남     내 욕심이었지

여     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남     아니.. 일은...

        내가 니 엄마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회사에 얘기해서 시간 내 봐. 

여     .... 고마워요 아버지

(M) 파파 / 이수미


남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수술을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상태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은서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은서가 미국에 있는 동안

        주변 정리를 끝낼 예정이라고,

        예전엔 많이 미안했다고... 말했다.

        내 얘기를 들은 아내는 흐느껴 울었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병원 벤취에서

        나도 울었다.

(M) Sunrise Sunset / Fiddler On The Roof OST


여     (들뜬) 그쪽은 날씨가 여기보단 따뜻하겠죠?

남     아마 그럴 거다.

여     그럼 여름옷을 가져가야 하나?

남     니 엄마랑 통화했니?

여     네. 공항으로 나오시기로 했어요.

남     은서야

여     네?

남     이거.. 가져가라.

여     이게 뭐에요?

남     어, 니 이름으로 만든 통장인데... 통장 여러개에 있던 거

        이번에 이쪽으로 다 옮겼거든.

여     이걸 뭐하러 가져가요.

남     그냥.. 혹시 무슨 일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여     싫어요. 그냥 아버지가 갖고 계세요.

남     그러면 여기 싱크대 마지막 서랍 속 맨 아래에 넣어둘께.

여     (대수롭지 않게) 그러세요

남     (조금은 간절한) 그리고 이번에 이 집 명의도 니 이름으로       

        바꿨으니까 그렇게 알고.

여     왜요?

남     ... 그냥... 혹시 모르니까. 짐은 다 쌌어?

(M) Never Roam / Iosif Kobzon


(E) 맥주캔 따는

남     은서야. 너 만약에 시집가면 말이다

여     네

남     시어른들한텐 아버지한테 하듯이 하면 안된다

여     그럼요!!(해놓고 미안한지) 아니 그게 아니라.... (웃고)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그런 거죠

남     예의 바르게 잘 모시는 건 좋지만, 또 그렇다고

        너무 너를 낮출 필요도 없어. 언제 어디서나 누굴 대하든...

        당당하게 해.

여     네. 

남     살다 보면 자꾸 옛날 일이 떠오르고...

        그때 그러지 말걸... 이런 후회들도 많이 하게 되거든.

        그런데 너무 그럴 필요 없어. 그때 잘못한 건 잘못한거고.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니까.

여     네 아버지.


남     혹시라도, 내가 떠난 뒤

        은서가 나와의 일들 때문에 후회를 할까봐

        그런 일들이 마음에 남아 가슴 아파 할까봐

        난 그게 걱정됐다

(M) Ne Me Quitte Pas / Jacque Brel


(E) 공항 소음

남     잘 다녀와라.

여     네 아버지. 한달이나 갔다 올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남     괜찮지 그럼!

여     전화 드릴께요.

남     이 녀석아. 너만 놀러가냐? 아버지도 가까운 데 여행이라도 갈거야.

        그러니까 괜히 전화하고 그러지 마.

여     (웃고) 알았어요.

남     얼른 들어가라. 비행기 시간 늦겠다.

여     네

(E)몇걸음 걸어가다가

여     (밝게) 아버지....

남     왜

여     (목메는) 지금 보니까,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

        속상하잖아요. 저 다녀올 때까지 다시 젊어져 있으세요!

남     ..... 그래

여     약속하신 거에요!

남     은서야...

여     왜요

남     사랑한다

(M) If You Go Away / Rod Mckuen


(E) 걸어 나오는, 그 뒤로 비행기 뜨는 소리 

남     딸 아이가 탔을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은

        참 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길이었다

        이제 난... 다시는 사랑하는 내 딸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처음으로,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얘기해 줬으니까.

(E) 비 조금씩 내리는

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난 은서가 사주었던 그 우산을 펴 들었다.

(E) 멀리서부터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

여     (울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 (소리 가까워지고)

남     은서야. 너 어떻게...

여     아버지! 정말 왜 그래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남     은서야

여     엄마한테 다 들었어요. 엄마가 비행기 타지 말라고 전화하셨어요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라구요. 아버지 혼자 두지 말라구요.

남     니 엄마가... 그랬어?

여     아버지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저 나쁜 딸 만드세요

남     니가 왜 나쁜 딸이야.

        나한테 너는 언제나 제일 착하고... 좋은 딸이었는데...

여     (울며) 아버지 어디가 아프세요. 어디가 그렇게 아프신데 그래요.

        아버지 내 팔 잡고 결혼식장 들어가 주셔야 되잖아요.

        아버지 없으면 나 혼자 어떡해요.

남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딸...

여     미안해요 아버지. 같이 살면서, 아버지 아픈 것도 모르고.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M) 아버지 / 권진원


(E) 우산 위로 빗물 떨어지고

남     딸 아이와 함께

        봄비 내리는 거리를 산책한다.


여     아버지, 우리 그거 연습해 볼까요?

남     뭐?

여     나 신부 입장 하는 거...

남     그럴까?

여     아버지랑 이렇게 팔짱 끼고...

        (흥얼이며 노래 부르는) 딴딴딴딴따...딴딴따따...


(E)음악 소리에 맞춰 빗물 고인 땅을 걸어가는 두 사람


남     내가 만약

        딸아이가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그 길을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도

        오늘의 추억이 그곳에 함께 해 주길 바란다.

        내가 주고 싶었던 그 사랑이

        내 목숨을 다해 주고 싶었던 그 축복이....

        내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해 주길 기도한다.

(M)주제음 애비 / 최백호





2006-03-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