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193화 - 안개꽃을 든 여인
(M) 주제음 (안개꽃을 든 여인 - 조덕배)
남안개비가 내린다
구름 바다 같은 그 속을 뚫고
오랜만에 집으로 간다
갈 때 마다 불편하고
나설 때 마다 미안한 그곳
잊은 채 살고 싶지만
불쑥불쑥 죄스러움으로
내 속을 들쑤시는 그곳
아내가 지키고 있는 내 집이다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E) 마당으로 신발 신고 나오는
여오셨어요?
남(무뚝뚝) 제사 준비 다 됐어?
여네
남동현이랑 이따 자정께야 도착할거야.
여네
남뭘 보고 섰어. 들어가.
여....네
(M) 회전목마 - 신효범
남남의 집에 온것처럼
머쓱하게 앉았다
(E) 들어오는
여과일 좀 드세요
(E)쟁반 내려놓고 과일 깎는
남...이혼 좀... 해줘
(E) 과일 깎는 소리 멈추다가 다시 깎고, 잘라서 주는
여참외 좀 드셔보세요. 달아요.
남좀.. 해줘
여왜 그래요 또...
남남들은 다 나보고 나쁜놈이래
그런데 내 생각엔, 당신이 더 나뻐.
여알아요
남그만 하고. 이제 나 좀 놔줘
여나는..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그냥 지금처럼... 아버님 어머님 제사 때만 들러요.
남그러기 싫어. 갈수록 말라가는 당신 얼굴 보기가 싫어.
나보고... 이게 다 니탓이야! 이러는 것 같아서. 싫어.
(M) Duo / Svetlana
남아내와 내가 만난 건
20년 전
5일 장이 서는 곳에 있는
작은 다방에서였다
(E)다방 분위기
남윤정이씨라고 하셨죠.
여....네
남부모님들끼리 정해서 만든 자리라 거역은 못했는데...
제가 따로 마음에 둔 여자가 있습니다
여.... 네
남죄송합니다
여저.. 부모님들끼린 혼인을 정하신 것 같던데...
남저희 둘 다 싫다고 하면 마음을 바꾸지 않으시겠습니까?
여.... 글쎄요
남부탁드립니다
(M) 부탁할께요 / 유리상자
(E) 흙길 걷는, 새소리
여좋아하신다는 여자분, 부모님은 왜 싫어하세요?
남아주 예전에 그 여자 할아버지가 저희집 종이었대요
그래서 싫으시대요
여... 네... 그 여자분, 많이 좋아하세요?
남그러니까 부모님이랑 싸우죠
여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세요?
남.... 그런 게 어딨어요. 좋으면 좋은거지.
(M) 사랑 그대로의 사랑 / 푸른하늘
남좋은 여자 같았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좋은 여자라고
좋아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리고 며칠 후
(E) 장터 소음
남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시장 근처에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꽃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E) 걸어가 멈추는
남안녕하세요?
여어머, 네. 안녕하세요.
남뭐하세요?
여지나가다가 꽃이 하두 예뻐서요
남무슨 꽃이요?
여... 안개꽃요
(M) 안개꽃
(E) 길 걷는
여고맙습니다. 안개꽃을 한다발씩이나...
남뭘요. 제가 죄 진 것도 있고.
여안개꽃 꽃말이 뭔지 아세요?
남뭔데요?
여기쁨 또는 슬픔
남기쁨이랑 슬픔은 정 반대잖아요
여정 반대이면서, 또 닮았죠
남얘기 듣고 봐서 그런지, 둘 다 안개꽃이랑 잘 어울리네요
기쁨이라는 꽃말. 슬픔이라는 꽃말.
(M) 안개꽃 꽃말은 슬픔 - 마로니에
남아주 예전에는 미술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여그림 좋아하세요?
남네. 고등학교 때 혼자 숨어서 그리고 했어요
여왜 숨어서 그려요?
남아버지가 싫어하셨거든요
결국 다 들켜서 내가 그렸던 그림들 다 불태워지고 말았지만...
여... 마음 아팠겠어요
남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그림 한점을 숨겨두셨는데...
여지금 가지고 있어요?
남아뇨... 어머니가 누굴 줬다는데...
누굴 줬는지 어디에 있는지 저도 몰라요
꼭 다시 찾고 싶은데...
여뭘 그렸는데요?
남안개꽃이요
(M) 비애 - 조정현 (그대에게 꽃을 안겨주고서...)
(E) 비 보슬보슬 내리는
남그녀를 데려다 주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은 자욱한 안개로 희뿌옇게 흐려졌다
여잠깐.. 나무 밑에 서 있다 가실래요?
남.... 그래요
(E) 뛰어가는
남얼굴 닦을래요?
남손수건을 내밀었다
여... 고맙습니다
남...........
여결혼 하실거에요?
남네?
여그 여자분요
남아... 글쎄요.
아마 지금 당장은 힘들 거에요. 아버지가 워낙 싫어하셔서...
여그 여자분도 봉덕씨 많이 좋아해요?
남나만큼은 아닌데.. 괜찮아요.
원래 정은 한쪽에서 흐르는 거니까....
(M) 애심 - 전영록
남그리고 얼마 후
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부모님들끼리 정한 날에
그녀와 결혼을 하라고 했다
(E) 다방 소음
여오랜만..이에요
남얘기 들었죠
여...네
남어떡할 거에요?
여.... 할 수 없잖아요
남네?
여부모님이 정해서 하라시는데...
남이거봐요. 우리 지금 하려는 거, 장난 아니에요. 결혼이에요
여알아요
남알아요? 아는데.. 부모님이 하란다고 덜컥 해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여..... 싫어하진 않잖아요
남.... 뭐라구요?
여정은... 살면서 쌓아가도 되잖아요
(M) 백만송이 장미 - 심수봉
(E) 다방 문 열고 나가는, 뒤쫓아가는
남이거 봐요
여왜... 그래요
남못하겠다고 해줘요.
여......
남결혼하면 그쪽도 불행해지고. 나도 그래요.
여안 그럴 수도... 있잖아요
남아뇨. 그래요. 최소한 나는 그래요.
여그쪽이 그랬죠. 정은 한쪽에서 흐르는 거라고.
남그래서요...
여내가... 정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괜찮아요.
(M)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 이소라
남그렇게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내 마음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E) 마당으로 들어오는
(E) 밤 벌레 소리 등...
여어디 갔다가.. 와요...
(E) 신발 벗어 던지는
여어머니 아버지 화 많이 나셨어요
며칠 동안 연락도 없이... 안 들어오구...
남피곤해. 나 찾으시면 잔다고 그래
(E)문열고 들어가는
(E)따라 들어가는
여저녁 안 먹었죠? 차려올까요?
남아니...
여이불 깔아줄께요
남됐어. 내가 해.
(E) 이불 펼치는
여씻을 물이라도 좀 받아둘까요?
남그냥 잘거야
여....... 내가 해줄 게 없네요
남............
여당신한테 내가..해줄 게 없네요
(M)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남아내와 내가 꾸민 가정은
빈 들녘처럼 허허로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난 집을 나가 살게 됐다
(E) 대문 두드리는, 나오는
남누구세요. (멈칫) 당신 여기 웬일이야
여여기서 사는 거에요?
남.... 응
여그 여자랑요?
남.... 그래
여내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에요?
남무슨 말이야?
여법적으론 내가 아내에요
남.... 아이를 가졌어
여....네?
남그 사람이 내 아이를 가졌어
(M) 그 사람의 결혼식 - 서영은 (많이 울어도 봤고...)
(E) 바람 부는
남내 말을 들은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그러니까... 그만하자. 우리 헤어지자.
여미안한데. 나 그렇게는 못해요
남뭐?
여어떻게 해달라고 안할께요
이대로 그냥 있어요
남내가 당신한테 잘못 많이 한건 아는데
이렇게까지 나 괴롭힐 건 없잖아.
여괴롭히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남그럼
여나도 견뎌보려고 이래요
기다리는 것까지 안하면 내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M) 안개 걷히는 날 - 신계행
남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아니, 자기 인생을 허비하기 싫어서라도
나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맞는데
왜 고집을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버렸다
아내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E)밤새 우는 소리
여동현이 곧 군대 간다 그랬죠?
남그래
여군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남당신이 왜.
여네?
남당신이... 뭔데...
여난..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니까요.. 그냥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M)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남그리고 얼마 후
마을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으니
한번 가보라는 얘기였다
(E) 노크하고 들어가는
남아무도 없는 병실에 혼자 누워 있는 아내
머리맡에 놓인 꽃병엔
꽃한송이 꽂혀 있지 않았다
여여보...
남언제 입원한거야..
여보름쯤 됐어요
남연락이나 하지
여뭐하러요. 바쁜 사람한테...
남(미안한 마음에 울컥하는) 나 아니면 연락할 사람이나 있어?
여....
남누가 있어 당신한테.... 아무도 없잖아
(M) 바람이 분다 - 이소라 (세상은 어제와 같고...)
남어디가 어떻게 아픈거야
여별 거 아니에요. 제사 준비하느라 좀 무리했나봐요
남얼굴이 많이 안좋은데..?
여나 걱정해 주는 거에요?
남아내가 웃는다
입가로 잔잔하게 주름이 퍼진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 있다
남지금 웃음이 나?
여아프니까 좋으네요. 당신이 내 걱정도 해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아플걸, 괜히 씩씩하게 살았네요
남하... 참... 바보 같은 사람...
당신 정말 바보 같은 사람이야
(M)미안해요 고마워요 - 변진섭 (끝도 모를 기다림 속에...)
남정말 가도 되겠어? 밤에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여언젠 뭐 혼자 아니었나요?
남.......
여빨리 가요. 나 잘래요.
남돌아눕는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다
난 손수건을 꺼내 아내에게 내밀었다
남자...
여.... 그때도 그랬는데...
남뭐가..
여우리 두 번째 만난날요. 비올 때 당신이 손수건 줬잖아요.
남얼마나 받은 게 없었으면...
아내는 오래전 빗물을 닦아주던
내 낡은 손수건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M) 비처럼 음악처럼 - 이승철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 발걸음
남조심해.
여네
(E) 앉고
남협심증 그게 무서운거야. 또 괜찮다고 무리하고 그러면
저번처럼 쓰러질 수 있어. 혼자 있다 그러면 어쩔거야.
여알았어요
남약 꼬박꼬박 챙겨먹고
여그래요
남그럼 나 가볼게
여네
(E) 몇걸음 가는데
여(어렵게) 동현 아버지
남.... 왜
여나 부탁이 있는데... 안 들어줘도 되구요
남무슨 부탁이 그래. 말해봐
여집에서 한 사흘만 지내다 가면 안될까요?
(M) Scarborough Fair / Sarah Brightman
(E) 못 박는 소리
남여긴 다 됐어. 또 어디 있어?
여이쪽이요. 이쪽 벽에도 하나만 더요.
거기다 걸고 싶은 액자가 하나 있어요
남무슨 못을 이렇게 많이 박아.
(E)못 박는
여그동안 하나도 못 박았어요.
난 다른 건 몰라도 못질은 잘 못하겠더라구요
남등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안함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또... 어디... 어디 없어?
(M) long long time / Rod Mckeun
(E)도마질 소리, 찌개 끓는 소리
남뭘 그렇게 많이 차려. 아침엔 간단히 하지
여잠깐만요. 다 됐어요.
남새벽 일찍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E) 상놓는
여드세요
남뭐야 이게 다...
여당신이 좋아하는 거 이거저거 생각이 나서...
남그렇다고 이걸 다 차려?
여..... 언제 또 같이 밥먹을지도 모르고... 해서요.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많이... 드세요...
(M) 이별이 오지 못하게 - 페이지
(E) 걸어가는, 거리 소음
남회사에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에 앉아 꽃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봤다
떨이를 사달라는 애원에
안개꽃 한다발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여오셨어요?
(E) 꽃 내려놓는
여이거.. 당신이 산 거에요?
남어. 오다가 샀어.
여.... 이쁘다
남어디 꽂아둬.
여정말 이쁘다...
남아내는 꽃병을 가지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M)물안개꽃 / 조덕베
(E) 여름 벌레 소리
(E) 누워서 뒤척이는
여동현 아버지
남왜
여나 미웠죠
남무슨 소리야?
여사랑하는 여자 있다는데, 기어이 결혼하자 그러고.
이혼하자고 하는데도 또 기어코 버티고...
남미운 건 아니고... 이해가 안됐어.
왜 그러는지...
여당신이 한 말이지만 그 말 참 명언이에요
정은 한쪽으로 흐른다는 말
남.......
여그리고 당신을 오랫동안 혼자 사랑하면서 느낀건데...
정은... 흐르는 물처럼... 멈출 수가 없는 거더라구요
당신한테 미안해서...
멈추게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M) 안녕 - 서영은
(E) 밤.. 시골 풍경 떠올리게 할 소리들
여내일 나 염색 좀 해줄래요?
남염색?
여네. 앞머리는 거울 보고 어떻게 하겠는데..
뒤는 잘 안 보이니까 못했어요 늘..
남해줄께...
여고마워요.
남그런 게 다 고마워? 이 모자란 사람아.
내가 평생 당신한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런 게 뭐가 고마워.
여당신도 사랑해 봐서 알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살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거에요
(M) 소원 - 지영선
(E)아침 새소리
남눈을 떴다
맑은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내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행복한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남이 사람.. 피곤했나보네...
남아내를 깨우려다가
그냥 일어선다
그러다 문득 다시 돌아선다
남여보... (불길한)
(조용한)
남여보... 아침에... 당신 염색해주고 출근하려면...
빨리 밥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조용한)
남이 사람이... 아침 차려준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게으름이야...
여보...
(조용한)
남여보...
(M) Blower's Daughter / Damien Rice
남꿈을 꾸는듯, 미소를 짓는 듯
그렇게 영원히 잠들어 버린 아내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의 옷을 정리하다가
장롱 속에서 그림 한점을 발견했다
안개꽃...
내가 그린 안개꽃이었다
(BG) 흐르며
(*회상 에코로*)
남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그림 한점을 숨겨두셨는데...
여지금 가지고 있어요?
남아뇨... 어머니가 누굴 줬다는데...
누굴 줬는지 어디에 있는지 저도 몰라요
꼭 다시 찾고 싶은데...
여뭘 그렸는데요?
남안개꽃이요
(M) 주제음 - 안개꽃을 든 여인
2005-07-0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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