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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게이트 정국과 대통령의 아들들 |
| 게이트
정국와 대통령의 아들들
극본
: 이석영
연출
: 오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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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일성으로 부정부패 근절을 공언해왔다. 그러나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고, 부정부패의 중심에는 늘 권력의 핵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그의 세 아들에게 국정에 간여하지 말도록 엄명을 내린 바 있었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차남 현철씨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었다. 동교동계로 불리는 김대통령의 측근들은 임명직을 거부한다는 결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기는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 각종 이권 개입 의혹으로 얼룩졌으며, 홍업씨와 홍걸씨 두 아들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그것은 김대중이라는 한 정치인의 불행이기에 앞서 깨끗한 정부를 바라던 국민의 불행이었다. 처음으로 정권의 주체를 바꿔 선택한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어떻게 게이트의 나락으로 떨어져갔는지, 그 궤적을 반추해봄으로써 여전히 지연과 학연과 인맥으로 얼룩진 우리의 정치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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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2001년
가을 정국은 각종 비리 의혹들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대통령 선거를 일 년 여 앞둔
시점이라 야당의 공세는 어느 때보다 거셌고, 정부 여당은 대통령의 레임덕을 염려하며 야당의
공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바람대로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야당이 대통령 아들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거론하며 비리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검찰 총장을 내세워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 제한론까지
폈으나, 결국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이용호 게이트만이 아니었다. 2000년
4월 신광옥 법무부 차관이 진승현 게이트의 당사자인 진승현으로부터 1억을 전달받은
사실과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진승현의 구명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승현
게이트의 몸통이 대통령 아들이라는 주장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한편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에 들어간 특검팀은 신승남 검찰 총장의 동생 신승환이 이용호를 위해
로비를 했던 사실을 밝혀냈고, 이 사실이 발표되면서 신 검찰총장은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김대통령은 2002년 1월 14일 연두기자 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부패 척결을 약속하며 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특검팀의 수사는 점점 더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대통령의 처남 이형택이 보물섬 사업과 관련해 이용호와
연관됐음이 밝혀지고, 동교동의 집사로 불리는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가 이용호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과,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의 수상한 자금 거래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등장한 것이 미래 도시 환경 대표 최규선이었다.
운전기사와의 불화에서 비롯된 최규선의 의혹은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에게 거액의
용돈을 주었다는 것으로 시작해 스포츠 토토, 타이거 풀스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김홍걸은 미국에서의 호화 생활 폭로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이신범 전 의원에게 10만달러를 지급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고 말았다.
결국 김홍걸은 미국에서 귀국, 검찰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한편 김홍업도 역시 각종 청탁의 대가로 22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인정돼 알선수재 혐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2년 6월 21일, 김대통령은
자식들 문제에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준비된 대통령을
자임했던 노정치인의 참담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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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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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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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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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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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
김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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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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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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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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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민주당 최고위원)
-
이상수(민주당 원내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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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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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한나라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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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한나라당 원내총무)
-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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