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연주되고 있는 한 카페 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남녀, 그리고 그
위에 비춰지는 희뿌연한 조명….
<그대 그리고 나>를 열심히 지켜본 애청자라면 극중 시연과 영규가 춤을
추던 이 재즈 카페를 기억할 것이다. 물론 화려하면서도 삶의 그늘을 안고 사는
시연과 어울리는 그런 우울한 분위기는 모두 철저하게 연출된 것.
그 가운데서도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카페 전체를 가득 메우던 조명은
드라마 연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같은 드라마의 빛을
창조해내는 사람이 바로 조명감독이다.
올해로 9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최성문(32세).
그가 바로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 의 조명감독이다.
그는 이번 드라마 말고도 지난 여름 큰 인기를 얻었던 주말드라마
<신데렐라>의 조명도 맡았었다.
대본을 받아보고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나 시간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장면을 연기하는 인물의 캐릭터에 걸맞게끔 조명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 최성문의 경우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바로 이 재
즈 카페에서 시연의 춤추는 장면을 꼽는다. 시연의 분위기를 빛으로
표출해내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부터 무작정 영화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화
제작팀의 카메라 보조였어요. 그때 막내로 따라다니며 했던 작품이 <장군의 아
들> 같은 영화였는데, 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TV 드
라마 조명기사로 일하게 된 거지요."
그는 처음 조명을 시작했던 1989년에 비해 조명 장비가 훨씬 좋아지긴
했어도, 선진 외국에 견주면 아직까지도 시간적 여유없이 쫓기듯 촬영해야 하는
제작 여건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말한다. 특히 주말극의 경우 늘
촉박하게 나오기 십상인 대본 탓에 많은 장면들을 짧은 시간 안에 모조리 찍어야
하는 어려움이 다른 드라마에 비해 더욱 심한 편이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하는 그이지만 촬영된 작품을 모니터하다가 자신이
생각했던대로 빛의 색깔이 나오면 촬영 내내 힘들었던 피로가
한순간에 풀어지게 마련. 지난 14회 때 선보였던 영덕 대진항에서의 민규와 동식
친구의 패싸움 장면은 그가 이번 드라마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새벽 부둣가에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때문에 싸워야만 했던 민규의 심
리를 제대로 그러내기 위해 그가 의도했던 조명의 색깔이 화면을 통해 썩 잘 보
여졌던 까닭에서다.
촬영 현장에서 그는 조명감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른 조명
스텝들과 함께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직접 조명을 달고 일일이 조명 위치를 지시
하느라 가장 바쁘다. 또 다음 장면에서는 어떤 색의 필터로 바꿔 끼워야 하는지,
조명장비의 헤드를 올려야 할지 내려야 할지 등 작은 것까지도 촬영감독과 함께
상의하는 진중한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또하나의 연출가.
자신만의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최성문, 그에게선 이제 조명 빛만큼이나 아름
다운 프로페셔널의 모습이 퍼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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