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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노송(老松)이 선산을 지키듯 최불암―박원숙―양택조 등 관록파연기자 3총사 가 IMF라는 괴물에 가슴이 멍든 시청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매주 2천만명을 즐겁게하는 MBC TV 주말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화려한 조연으로 자리잡은 중년 3총사다. 이들이 펼치는 감칠 맛 넘치는 연기에 안방에는 잔잔한 웃음이 쏟아진다. 이들은 중년의 로맨스도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섹시함이 풍기는 중년의 터프가이(?) 최불암과 주책맞지만 의리가 넘치는 친구 양택 조. 내숭과 애교가 철철 넘치는 박원숙 3명이 만드는 하모니가 절묘하다. 연기는 장맛처럼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열연이다. 시청자들도 "역 시 관록이 최고"라고 외친다.
최불암―. 그동안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하며 다소 점잔빼던 모습이었지만 이번에는 확 달라졌다.
배운 것도 없고 허풍이 세지만 그래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록새록 나오는 '박재천'의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토록 기대하고 믿었던 큰 아들 '동규'가 조건 좋은 집안의 여자에게 차였다는 소식에 소주를 마시고 웃음과 울음이 범벅된 얼굴로 웃으며 노래부르는 연기는 시 청자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부모의 마음을 그토록 잘 표현한 연기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드라마 촬영 전 연출자인 최종수PD로부터 "섹시한 중년남성의 모습을 보여주 길 기대한다"는 말을 듣고 특유의 웃음으로 넘겼지만 이후 체육관을 다니며 몸을 단련하느라 몸살이 날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다. 촬영중에도 박상원, 차인표, 송승헌 등 아들3형제의 연기를 자세히 지도해주는 연 기선생님이다. 환갑을 눈 앞에 둔 나이지만 20여년만에 자신의 나이보다 어린 역을 맡아 더욱 신나는 표정이다.며느리까지 둔 박원숙의 연기는 이름처럼 '원숙' 그 자체다. 지난해 <별은 내가슴 에>에서 허영기 많은 디자이너의 모습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다. 겉으로는 교양을 내세우지만 속에는 속물근성이 가득한 중년여인의 허위에 찬 모 습을 보여주는 연기가 박원숙의 특기다.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묘한 콧소리까지 내며 최불암에게 연정을 품는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다.
최종수PD는 박원숙에 대해 "연기를 즐기는 배우"라고 평가한다. "나는 시청자에 게 기쁨주고 사랑받는 역이라 연기하기가 신이 난다"는 그녀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을 잃지 않아 '한국의 소피아 로렌'이란 별명도 얻었다. 올해까지는 극중의 성격을 유지할 생각이다.
<그대 그리고 나>에서 가장 빛을 본 조역은 바로 양택조다. 영화 <대부>서 말론 브란도가 그랬던 것처럼 턱을 앞으로 내민 특이한 설정과 혀짧은 발음은 그를 상징 하는 캐릭터가 됐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벗고 나서는 착한 아저씨. 그가 박원숙에게 달려들면서 "교수 님~"하고 외치는 대목은 시청자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다. 최불암의 고향으 로 설정된 경북 영덕에서는 그가 극중에서 먹던 술안주의 이름이 '양택조 안주'로 이름 붙여질 정도로 떴다. "연기생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취재진들이 찾아준다"며 신명을 내는 표정이다. 역시 어른들이 잘돼야 집안이 편안하다. <그대 그리고 나>가 요즘 그렇다.
- 1998년 1월 30일 스포츠서울 김종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