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 40%대라니 와락 겁이 났다. 천만 명이 동시에 드라마를 본다는 뜻이 아닌가. 방송의 무게를 지금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MBC 주말 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연출 최종수)를 쓰는 김정수씨(49)는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했다. 방송 작가 경력만 20년. 시청률 1위가 낯선 경험이 아닌데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대 그리고 나>는 <전원일기> <엄마의 바다> <자반고등어> 등 그의 전작과 달 리 시끌벅적하다. 성장 환경이 다른 두 남녀가 결혼 생활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 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주변 인물들 또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 각각 흉 각각'인 사람살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어 <전원일기> 작가의 작품답다. 그는 시청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렸다.
새삼 방송의 위력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몰랐으면 하는 얘기를 써야 할 때면 고민이 두 배로 는다.

첩이 낳은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최불암), 생모를 잊지 못하는 막내(송승헌), 욕 망을 이루기 위해 여자를 버린 둘째 아들 영규(차인표) 등 어두운 사연이 많아서이 다. 작가가 애착을 갖는 인물은 주인공 수경과 그의 시동생 영규. 작가에게 수경은 이쁜 자식이고 영규는 말썽쟁이 자식이다. 영규는 출세를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는 점에서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 을 그릴 때에도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김정수씨는 자칭 '드라마 작가 전도사'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을 만나기 위해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갔다는 그는 68년 소설 <우계>로 등단한 뒤 79년 단막극 <구석 진 자리>로 방송에 입문했다. 드라마 예찬론을 펴는 그이지만, 요즘 방송 풍토에 대 한 평가는 매섭다. 테크닉은 뛰어난데 작가 의식을 가진 이는 드물다는 것이다. 분 풀이식 글쓰기도 경계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내가 겪은 사연을 쓰면 소 설책 몇 권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덤빌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을 만나면 '6개월만 써보면 스스로 안다. 아니다 싶으면 행복한 시청자로 남으라'고 말하곤 한다. 재능 있는 작가 지망생의 원고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고쳐준다. 그래서 그에게는 팩스로 원고를 보내오는 얼굴 모르는 제자 도 몇 명 있다.

김정수씨는 드라마가 드라마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텔레비전의 위력이 큰 만큼 방송 작가는 더욱 자기가 왜 글을 스는 지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은퇴한 노부부와 자식의 삶을 그린, 변두리 도 시를 배경으로 한 고향 같은 드라마를 구상하고 있다.


- '98년 1/29∼2/5 시사저널 노순동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