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현실 삶이 너무 드라마 같아서일까. 왜 드라마가 그렇게 비현실적이냐는 비판이 일때마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고, 드라마일 뿐'이라던 방송사와 드라마작가들의 입버릇이 달라 지고 있다. 각 방송사 인기드라마들이 앞다퉈 극중인물의 대사를 통해 아이엠에프를 들먹이고 있어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는 현실'이라는 새삼스러운 착각까지 부르게 하고 있다.

한국방송공사 1텔레비젼 일일극<정때문에>는 경제 한파를 단순히 대사 몇마디로 처리하는게 아니라 극중 상황과 잘 버무려놓고 있다. 2월말 막내릴 예정인 이 드라마에서 요즘 직장(단추공장)을 잃은 가장 우표(서인석분)가 가족들과 재기하는 과정이 감동깊게 그려지면서 문화방송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에 잠시 내주었던 시청 률 1윌 자리를 되찾았다.

문화방송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건달인 둘째아들 영규(차인표분)가 지난주 거시경제 운운하며 동생 상옥(서유정분)에게 훈계하는 대목은 거의 압권이다.

"네가 사 입어야지…. 이 집 주인이 생선도 사먹고, 그래야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우리 아버지도 돈벌고 하실거야. 과소비가 아닌 한 서민들이 서로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줘야 하는거야. 그래야 임마, 위기를 극복하지. 그게 거시경제란 거야."

아버지(최불암분)는 한술 더떠 큰아들(박상원분)과 임신한 며느리(최진실분)에게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도 넌지시 일러준다. "아이 엠에프 파곤지 뭔지가 요새 아주 높다며…. 아무리 드세고 거친 파도를 만나도 선원들이 일심단결해서 바짝 엎드려 배를 몰아가면 피해간다… 석달열흘 계속 부는 바람은 없다".

극중인물의 이런 현실투영 대사에 대해 작가 김정수씨는 "드라마가 살아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가공의 화석인물만 창조해내면 시청자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세상사 관심은 연애와 결혼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끌어왔던 서울방송 <사랑하니까> (극본 김수현)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엠에프 조미료를 너무 쳐대는 바람에 느끼하기까지 하다.
주인공 어수선(장용분)이 딸에게 "아이엠에프가 뭔지는 아냐?"고 묻고 딸이 "국제구제금융"이라고 대답하며 시청자에게 '친절히' 낱말풀이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장소로서도 어울리지 않는 골프연습장에서 "경제망친 친구들, 두들겨패는 심정으 로 두들기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드라마가 아무리 상투적으로 아이엠에프를 외쳐도 여전히 드라마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 1998년 1월 23일 한겨레신문 권정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