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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1살때부터 아버지, 오빠에게 밥해주고 빨래해줬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어리광부릴 때 말이야. 나만 이 촌구석에서 썩어야 한다는 법 있어? 서울 가서 꼭 성공할거야.』
절대로 서울에 못 보낸다는 아버지에게 죽기살기로 대들던 MBC TV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의 촌아가씨 상옥이. 급기야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개를 동네 약국 아저씨에게 팔아 마련한 30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온 상옥이의 모습은 97년 판 「무작정 상경기」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꿈인 패션모델이 되기 위해 서울땅을 밟은 촌아가씨는 그 돈으로 머리를 다듬고 옷을 새로 사 입었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오빠의 신혼집에 얹혀서 은근히 시누이 노릇을 하려고 한다.
시청자들은 상옥이의 연기에 배꼽을 쥐기도 하고, 또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도대체 이 신인이 누굴까 궁금해했다. 이름은 서유정(19). 지난해 MBC 탤런트로 입사한 새내기다. 하지만 그녀는 탤런트 데뷔 전부터 TV에 익숙하다. 가수 김부용이「풍요속의 빈곤」 을 부를 때 뒤에 서서 맘보춤을 추던 귀여운 아가씨. "그 이야기는 하기 싫어요. 그때는 TV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철모르는 때였고 지금은 연기자로서만 평가받고 싶거든요."
판소리를 잘했다는 외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했던 서유정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 안양예고 무용과에 입학했다. 2학년 때 광고모델로 데뷔, 이름도 이유정에서 서유정으로 바꿨다. 당시 동명이인 연예인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실은 모델이 되고 싶었는데 키가 170cm까지만 잘고 멈춰버렸어요. 또 CF를 하다보니 연기자가 되고 싶은 욕심도 생겼구요." 지난해 숭의여전 무용과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탤런트 시험을 쳐보라며 부추켰다. 별 준비 없이 시험을 치렀지만 덜컥 합격했다.
여러 드라마의 단역을 전전하다 지난해말 MBC TV 창사특집극 <황금깃털>에서 조역을 맡을 수 있었다.나름대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는 그녀는 이번 <그대 그리고 나>로 갑자기 부상한 신인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반짝스타처럼 보일지 몰라도 제가 4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신다면 그런 말씀은 못하실 걸요." 함께 광고모델 일을 시작한 친구들이 갑자기 유명해지는 걸 보면서 속도 끓였고, 사근사근하지 못한 성격 탓에 건방지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는 것. 겉보기에는 화려한 세계 같지만 연예계만큼 힘들고 말많은 곳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드라마가 제게 큰 행운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학교에 출석을 제대로 못해서 속상하지만요."
모델의 꿈을 키우는 상옥이가 자신의 지난날과 비슷한 것 같아 공감을 느낀다는 서유정은 벌써 4번째 감기에 걸렸을 정도로 몸은 힘들다. 그러나 연기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치르는 유명세에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행복한 새내기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한다.
- 1997년 12월 27일 경향신문 / 이무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