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바닷빛에 눈이 시리다. 살랑살랑 기분좋은 가을바람을 맞으며 멀리서 남녀 한 쌍이 걸어 온다. "여기가 내 자리야, 어릴 때 혼자 여기서 놀구 그랬어."
"근데, 계순이는 누구야?"
다정스런 연인의 대화에 난데없이 굵직한 목소리가 끼여든다.
"NG. 동규, 앉으면서 대사를 하라고. 그래, 진실이는 이쪽으로 오고."
화를 잘내 별명이 '열종수'로 불리는 MBC 드라마제작위원 최종수 PD가 뜻밖에 나긋나긋한 소리로 연기를 지도한다. MBC-TV가 주말극 <예스터데이> 후속으로 10월 11일부터 방송할 <그대 그리고 나> 제작현장이다.

서울에서 7시간 넘게 걸리는 경북 울진군 평해면 월송정 앞바다 , 동규(박상원)의 고향집을 찾은 수경(최진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센 파도소리가 대사를 끊고, 동네 꼬마들 고함도 훼방을 놓는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조명이 켜지면서 금방 환한 대낮이다.

백암에 진을 친 제작팀 40여 명은 차량 10여 대를 앞세우고 영덕, 울진, 후포, 평해 영해, 대진항을 1주일째 누비고 있다. 동규와 결혼할 것인지 고민하던 부잣집 딸 수경이 동규네가 어떤 집안인지 알아보려고 시골에 내려오면서 빚어지는 여러 해프닝을 찍는다. 드라마 촬영을 처음 구경하는 지역주민들에겐 큰 볼거리이다.

"인근 중고등학생들은 수업까지 빼먹고 쫓아다녀요.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스태프들 목이 완전히 쉬어버렸습니다." 최종수PD 푸념이다. 최불암,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송승헌, 서유정을 구경하려고 새벽까지 숙소 앞을 지킨다. 어느 식당 아주머니는 계단을 1백개나 올라가야 하는 촬영장을 오르내리다 몸살이 나버렸다. 식당까지 따라온 열성팬들때문에 차인표는 밥을 먹다 체하기도 했다. 하루에 2백장 넘는 사인을 해주느라 팔이 얼얼하다. 대신 주민들 열성덕분에 엑스트라 조달은 뜻밖에 쉽게 해결났다. <그대 그리고 나>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의 결혼과 그 이후 이야기를 다룬 홈멜로드라마. <엄마의 바다>를 썼던 김정수가 대본을 맡았다.

최종수PD는 "여러 연령층 인물들을 등장시켜 주말에 가족들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제4공화국> 이후 2년 만에 연출에 나선 그는 시청률과 작품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출연자들의 개성파괴가 기대된다. 늘 인자한 최불암은 성적매력을 풍기는 50대 허풍쟁이다. 최진실은 CF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처럼 깍쟁이 주부역을 맡는다. 차인표는 <영웅반란>에 이어 코믹 분위기, 송승헌은 우울한 터프가이다. 박상원도 평범한 회사원 연기는 처음이다. 주로 고운 역을 했던 이경진은 일자무식에 천대받는 여자로 변장한다. 이날 촬영분은 18일 3회 때 방송된다.

- 1997년 9월 29일 조선일보 신보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