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말라."

국제통화기금(IMF) 시대 덕인가. '고목나무급 스타'들이 뒤늦게 뜨고 있다.
중년연기자들은 과거 신세대가 '지배'해 온 연예가의 풍토에서는 스타라는 명칭과 거리가 먼 신세였다. 그런데 신세대스타 위주의 가벼운 트렌디드라마가 IMF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의 포화를 받은 뒤 묵직한 연기력의 중년배우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

뒤늦게 또는 다시 꽃을 피우고 있는 '중년 파워'의 선두주자는 탤런트 최불암 박원숙 양택조로 이어지는 MBC <그대 그리고 나>의 3인조다. 이들은 원숙한 연기력에 웃음을 실어 드라마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 극 중 최불암과 양택조는 박원숙을 사이에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아이들 같은 중년의 사랑법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윤미라 현석도 일일극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중인 KBS1 <정 때문에>에서 '약방의 감초' 구실을 해내고 있다. 유동근(KBS1 <용의 눈물>), 장미희 백일섭 최종원(MBC <육남매>) 등 중년 연기자들도 최근 안방극장의 인기판도를 좌우하고 있다.

2월말 방영되는 SBS의 정치드라마 <3김(金)시대>는 연기력을 요구하는 작품 의 특성상 중년 바람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유인촌 정동환 길용우 등 3김씨로 등장하는 연기자는 물론 주요 배역 대부분이 40대 이상으로 채워졌다.

또 탤런트 박근형이 MBC <대왕의 길>의 영조역을 맡았고 오지명도 3월 방영되는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이처럼 '고목나무급' 스타들의 탄생은 무엇보다 경제한파의 영향이 크다. 과거 힘들었던 삶의 궤적을 돌이키면서 시청자의 요즘 정서에 호소하는 <육남매>류의 복고풍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정 때문에> 등 홈드라마 일일극의 지속적 인기도 중년 바람에 힘을 보태고 있다. 3월에 선을 보이는 SBS <서울 탱고>, MBC <보고 또 보고>도 같은 성격의 드라마들이다.
손쉽게 '찍어내는’일일극의 특성상 연기력이 탄탄한 중년연기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용의 눈물>의 엄청난 인기와 화제에 자극을 받은 사극붐과 정치드라마 등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들이 속속 제작되고 있어 '고목나무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1998년 2월 24일 동아일보 김갑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