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S #1 보스 사무실

 

진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재빨리 사무실 안을 휙 둘러본다.

만호, 혼자 보스의 책상에 앉아 있다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진상을 돌아본다.

 

만호 니가 여긴 웬일이냐? 연락도 없이?

진상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러봤어.

 

만호, 순간 책상 앞에 놓인 보스의 명패를 안 치운 것을 깨닫고 당황한다.

진상, 사무실 안을 구석구석 둘러 보는 동안

만호, 얼른 손을 뻗어 명패를 책상 밑으로 던져버린다.

 

만호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진상 생각보다 크네, 사무실이.

만호 니네 사무실에 비하면 사무실이라고 할 수도 없지.

진상 앉으란 소리도 안 하냐?

만호 앉던지, 서 있던지 니 맘대로 해.

진상 (피식 웃으며 소파에 앉는다) 들어오다 보니까 생명공학 벤처 연구소라고?

(비웃으며) 연구소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옆에 붙은 작은 문을 보고) 저 안에서 연구하냐?

만호 아니, 거긴 창고야. 쓰레기들 모아두는 창고.

 

S #2 창고 안

 

좁은 공간에 급하게 몰아넣은 바가지와 박스들 틈에서 보스와 성기, 대협, 총련이

얼굴이 맞닿을 만큼 바짝 붙어 서서 땀을 비질비질 흘리고 있다가

만호의 쓰레기란 말을 듣고 일제히 문 밖을 째려본다.

 

S #3 다시 사무실

 

진상 이 정도 사무실 차릴라 그래도 돈이 꽤 들어갔을 텐데 너, 보기보다 능력 있다?

만호 이제 알았어?

진상 기왕이면 사무실 집기 좀 제대로 갖다 놓지, 이게 뭐냐?

가구는 중고냐? 색깔도 하나도 안 맞네?

니가 안목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촌스러운지는 몰랐다.

 

S #4 다시 창고

 

보스, 열 받아 뛰쳐나가려는 것을 일동, 가까스로 말린다.

 

S #5 다시 사무실

 

진상, 창고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날카롭게 돌아본다.

만호, 긴장한다.

 

진상 창고에 쥐 있나 보다?

만호 용건이 뭐야?

진상 아이템이 뭐냐? 생명공학도 여러 질이잖아?

만호 (빤히 보다가) 궁금해서 미치겠나 보지?

니 머리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분야니까 신경 쓰지 마.

진상 바이오 벤처라면 사무실도 좀 그럴듯해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구멍가게 같은 데서 주먹구구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닐텐데?

만호 너한테 투자하는 사람들은 사무실 보고 돈 대냐?

진상 정회장은 한 번 왔었냐?

만호 뭐?

진상 (만호가 놀라는 것을 여유있게 즐기며) 정회장 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사기를 쳤는지 몰라도 이런 사무실에 한 번 와보면 투자할 맘이 나겠냐?

만호 니가 정회장을 어떻게 알아?

진상 아무리 잘난 척 해봐야 넌, 내 손바닥 안에 있어.

 

만호, 갑자기 진상의 멱살을 콱 움켜쥔다.

 

만호 너, 똑똑히 들어. 이 사업은 니가 하고 있는 거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괜히 정회장한테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지 말고

니 일이나 똑바로 해.

진상 불쌍해 보여서 도와줄라 그런 거 뿐이야.

 

진상, 만호의 손을 풀어내려는데 안 풀어진다.

 

만호 (비웃으며) 지금 니 눈엔 내가 불쌍해 보이겠지만 내 눈에 니가 더 불쌍해 보여.

외제차 타고 비싼 술집에서 온갖 폼 다 잡으면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부하겠지만 그런다고 니 욕심이 채워질 거 같애?

결국 한 푼 더 벌어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 아냐?

진상 (계속 멱살을 풀려 애쓰며) 너, 말 다했어?

만호 명심해둬. 언젠가는 니 욕심이 니 발목을 잡을 거야.

 

만호, 진상의 멱살을 확 풀어버린다.

진상, 홱 밀려 자빠질 뻔하지만 가까스로 선다.

 

진상 아, 재수 없어. 끝까지 잘난 척이네. 잘 해 봐라.

 

진상, 픽 웃으며 문을 꽝 닫고 나간다.

만호, 진상이 나간 문을 노려보고 있는데 창고 문이 벌컥 열리고 안에 있던 사람들,

우르르 쏟아져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성기 야, 그 자식이 무슨 눈치챈 거 아냐?

보스 안목이 촌스럽다구? 감히 내 사무실을 모독해? 내, 이 자식을 기냥!

 

S #6 진상의 사무실

 

진상, 문을 꽝 닫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진상 (콧방귀를 풍풍 끼며) 주제에 충고를 해? 건방진 자식

 

진상, 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데 전화벨 울린다.

 

진상 네, 최진상입니다. ...

 

진상, 얼굴 굳는다.

 

S #7 술집 (밤)

 

진상, 안으로 들어오면 스타카드 직원, 진상을 향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스타 오랜만입니다. 최사장님.

 

진상,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악수를 받으며 주위를 재빨리 살피고 자리에 앉는다.

 

진상 이렇게 전화해도 되는 겁니까?

스타 다 끝난 일 아닙니까? 언제적 일 갖고 아직도 그러세요?

진상 무슨 일이죠?

스타 요즘 아주 잘 나가시더군요.

진상 ...

스타 우리 스타카드에서도 최진상씨가 단연 화젭니다.

진상 그런데요?

스타 절 경계하시는 겁니까? 섭섭한데요? 우리가 그럴 사입니까?

전 술이라도 한 번쯤 사실 줄 알았는데, 하하하... (괜히 웃는다)

진상 ...

스타 아, 농담이구요,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 있었으면 저희하고 먼저 상의를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진상 ...

스타 우리 회사에서도 같은 기획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최사장님이 선수치는 바람에

완전히 닭 쫓던 개 신세 됐습니다.

진상 ...그래서요?

스타 최사장님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드렸으니까 이번엔 우리 좀 도와주시죠.

진상 이거 보세요. 어떻게 그 쪽에서 날 도와준 겁니까?

내가 그 쪽을 도와준 거 아닙니까?

스타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최진상씨가 있을 수 있었겠어요?

진상 (어이가 없다) 더 이상 할 얘기 없습니다.

 

진상,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타 이러시면 곤란한데... 우리가 진실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진상 밝히면? 너희들이라고 무사할 거 같애? 맘대로 해봐.

스타 우리는 조직이고 당신은 개인이예요. 누가 당할 거 같습니까?

진상 ...

스타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앉으시죠.

 

진상, 스타를 잠시 노려보다가 다시 앉는다.

 

진상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스타 ... 제이스 크레딧.

 

진상, 스타를 무섭게 노려본다.

 

S #8 제이스 사무실 (밤)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

연옥, 자기 자리에만 불을 켜 놓고 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문이 꽝꽝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연옥, 놀라 귀를 기울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살그머니 열고 복도를 내다본다.

 

S #9 복도 (밤)

 

연옥, 비상등만 켜 있어 어두컴컴한 복도 좌우를 돌아보는데

진상의 방 쪽에서 요란하게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연옥, 무섭지만 호기심에 진상의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S #10 진상의 사무실 (밤)

 

불이 꺼져 있지만 창으로 도시의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다.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과 서류함이 바닥에 뒹굴고 사무실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다.

술에 취한 진상, 팔등으로 눈을 가리고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있다.

문이 살그머니 열리고 연옥,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본다.

연옥, 사무실이 엉망이 되어 있자 깜짝 놀라며 문을 닫으려는데

 

진상 누구야.

 

연옥, 그제야 소파에 누워있는 진상을 본다.

 

연옥 괜찮으세요?

진상 나 괜찮으니까 나가봐.

연옥 (나가려는데)

진상 나, 물 한잔만 갖다 줄래?

연옥 ..네.

진상 아냐, 됐어. (겨우 몸을 일으키며) 내가 가지.

연옥 제가 갖다 드릴께요.

진상 (비틀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됐다니까!

 

진상, 연옥을 밀치며 밖으로 나간다.

연옥, 이상한 눈으로 나가는 진상과 사무실을 잠시 보다가 안되겠는지 불을 켜고

사무실을 치우는데 진상이 돌아오다가 그런 모습을 보고 인상을 확 찌푸리며

다시 소파로 가 벌렁 누우며 팔로 눈을 가린다.

 

진상 놔둬. 놔두고 불 끄고 나가.

 

연옥, 너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밖으로 확 나가버린다.

진상, 잠시 누워 있다가 괜한 사람에게 화를 냈다 싶은지 다시 소파에서 일어나

앉아 찝찝해한다.

 

S #11 다시 사무실 (밤)

 

연옥, 눈물을 꾹 참고 가방을 챙기고 의자를 확 밀어 넣고 홱 돌아서는데

문이 탁 열리면서 진상이 문에 기대선다.

연옥, 진상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밖으로 나가려다가

진상이 문을 팔로 막고 서 있자 당황하여 그 자리에 선다.

 

연옥 (눈물이 보일까봐 계속 눈길을 피하며) 비켜주세요.

 

연옥, 진상을 피해 밖으로 나가는데 진상, 연옥의 팔을 잡아 자기 앞에 세운다.

연옥, 놀란 얼굴로 그제서야 진상을 보는데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진상 ... 이연옥씨한테 화낸 거 아냐.

연옥 ...

진상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진상, 눈물이 맺힌 채 자기를 빤히 보고 있는 연옥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연옥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는다.

연옥, 숨이 막힌다.

진상,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연옥의 팔을 놓고

당황함과 민망함을 감추며 돌아서서 자기 사무실로 간다.

연옥, 가는 진상의 뒷모습이 왠지 안쓰럽고 측은하다.

 

S #12 미래 방 (밤)

 

미래, 멍하니 TV를 보고 있다가 문득 창 쪽을 돌아보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내다본다.

만호가 서 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다.

미래, 다시 창을 닫고 돌아서는데 샤넬정이 들어와 있자 깜짝 놀란다.

 

샤넬 뭘 그렇게 놀래?

미래 노크도 할 줄 모르세요?

샤넬 식구끼리 무슨 노크야?

미래 식구끼리라도 기본적인 예절은 지켜 주세요.

샤넬 알았어, 알았어. 나, 미래랑 싸우러 온 거 아니야.

(미래의 손을 잡아끌며) 앉아봐.

 

샤넬, 미래를 끌고 가 함께 소파에 앉는다.

 

샤넬 애인 있지?

미래 무슨 상관이에요?

샤넬 (참으며 상냥하게) 무슨 상관이냐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뭐하는 사람이야?

미래 ...

샤넬 집안은 어때? 뭐하는 집안이야?

미래 저, 애인 없으니까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샤넬 (끝까지 참는다. 더 상냥하게) 어머, 그럼 더 잘 됐다.

미래도 결혼할 나이가 됐잖아? 그래서 사실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 그날 보니까 너무 괜찮더라, 최사장.

미래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샤넬 시골 출신인 게 약간 걸리긴 했는데 그것도 알아보니까 시골 유지래.

미래 (어처구니가 없다)

샤넬 남자가 집안이 너무 좋아도 여자가 피곤해.

그만하면 능력 있지, 얼굴 잘 생겼지, 몸도 좋더라.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우리 집안도 사실 내세울 거 없잖아? 돈밖에?

내 생각엔 괜찮을 거 같은데 미래 생각은 어때?

미래 정말 왜 이러세요?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날 이 집에서 쫓아내고 싶으세요?

샤넬 어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미래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방에서 나가주세요.

샤넬 (끝까지 웃으려 하지만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미래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

미래 제발 날 위하는 척 좀 하지 마세요. 역겨워요.

샤넬 어머,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말을!

 

샤넬, 막 울며 악을 쓰기 시작한다.

 

샤넬 회장님! 난 정말 억울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한테.

 

미래, 당황한다.

 

미래 (낮은 소리로) 왜 이러세요. 제가 뭘 어떡했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샤넬 내가 정말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이 집에서 살아야 되는 거야?

 

현회장, 급히 들어온다.

 

현회장 웬 소란들이야, 이 밤에!

샤넬 (더 서럽게) 회장님! 난 이 집에서 더 이상 못 살아.

현회장 (미래에게) 무슨 일이야?

샤넬 글세 미래가 나보고 역겹대요.

현회장 정말이야?

미래 ...

현회장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당장 사과해!

미래 ...

현회장 (버럭) 당장 사과하지 못해!

미래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으며) ... 죄송해요.

현회장 한번만 더 엄마한테 그런 말버릇 했단 봐. 당장 쫓아내 버릴 테니까.

샤넬 (갑자기 눈물을 거두고) 여보, 사과했잖아요. 그만 하세요.

 

미래,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밖으로 확 뛰쳐나간다.

 

현회장 어디 가!

 

S #13 미래네 집 앞 (밤)

 

차고 문이 열리고 미래의 차가 급하게 달려나온다.

 

S #14 거리 (밤)

 

미래의 차 안.

미래,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눈물을 막 훔치며 어디론가 간다.

 

S #15 만호네 집 앞 (밤)

 

만호, 성기와 함께 집으로 올라오는데 저만치 앞에 미래의 차가 서 있자 멈칫 선다.

 

성기 왜?

만호 먼저 들어가.

성기 왜? ... 현미래냐?

 

만호, 대꾸 않고 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으면

성기, 들고 있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먼저 집쪽으로 막 올라가다가 모퉁이에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본다.

만호,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미래의 차로 다가간다.

미래, 핸들에 얼굴을 묻고 있다.

만호, 미래를 잠시 내려다보고 서 있는데 미래, 차밖에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다가 만호와 눈이 마주친다.

만호, 눈물로 마스카라가 시커멓게 번져 엉망이 된 미래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미래, 다시 눈물이 나려 하자 만호를 외면하는데

만호, 문을 벌컥 열고 미래의 손목을 잡아 차에서 끌어내린 다음 차에 기대 세운다.

미래, 겁에 질린 얼굴로 만호를 본다.

 

만호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너 자꾸 이러면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너, 바보야?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미래 왜 이래요, 만호씨.

만호 얘기해 봐. 뭘 원해?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

미래 ...바라는 거 없다 그랬잖아요...

만호 어흐!

 

만호, 미래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미래를 외면하며

옆의 담을 짚고 선다.

 

미래 (엉엉 우느라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린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어요.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어요.

만호 ...

미래 .... 미안해요. 더 이상 만호씨 앞에 안 나타날께요.

 

미래, 만호를 잠시 보다가 만호가 미동도 않고 서있자 다시 차에 타고 떠난다.

만호, 미래가 나간 뒤에도 한참동안 담만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너무 속이 상해 담을 주먹으로 쾅 내지른다.

 

S #16 만호네 집 (밤)

 

만호, 집으로 들어와 옷을 벗는데 성기, 뒤따라 들어온다.

 

성기 너, 어떻게 여자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냐?

만호 ...

성기 너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본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됐냐?

만호 (양말을 거칠게 벗어 팽개치며) 시끄러.

성기 (자기도 옷을 갈아 입으며) 마, 헤어지더라도 다 기술이 있어야 되는 거야.

미안하게 됐다. 니 마음은 알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너한테 다 주고 싶은데 (양말을 벗어 휘두르며)

지금은 이 손수건밖에 없구나. 이거라도 기념으로 가져라.

그러면서 눈물도 닦아주고 그래야 여자가 감동 받아서 순순히 물러나는 거지,

너처럼 덱덱거리면 여자들이 한을 품어, 임마.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거 몰라?

만호 (버럭) 조용히 안 해!

성기 (찔끔) 짜식이, 어디서 신경질이야?

 

만호, 확 나가버린다.

성기, 두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철호를 보고 다가가 들여다본다.

 

성기 너, 서울대 가겠다?

 

S #17 거리 (밤)

 

한적한 거리.

미래의 차, 미친 듯이 달려오다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선다.

 

S #18 미래의 차 안 (밤)

 

미래,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입술을 피가 나게 깨문다.

 

S #19 미래 방 (밤)

 

미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현회장이 소파에 앉아 있자 깜짝 놀란다.

현회장, 기다렸는지 테이블에 있는 재떨이엔 꽁초가 수북하다.

 

현회장 어디 갔다 오는 거냐?

미래 ...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어요.

현회장 ... 아무리 내가 소리 좀 질렀다고 그렇게 나가면 이 아빠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미래 ... 죄송해요.

현회장 ... 앉아라.

 

미래, 현회장 앞에 앉는다.

 

현회장 ... 너, 사귀는 남자 있냐?

미래 ...

현회장 왜 대답을 못해?

미래 ... 없어요.

현회장 분명하지?

미래 네.

현회장 (보다가) 넌, 지금 남자보다 훨씬 중요한 걸 배워야 할 시기야.

적당히 놀다가 적당히 시집이나 보낼 거면

내가 널 굳이 엘앤씨에 취직을 시키고 제이스에서까지 일을 배우게 했겠냐?

미래 ... 없다는데 왜 그러세요?

현회장 (잠시 더 보다가) 그래, 쉬어라.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현회장, 나가면

미래, 피곤이 엄습해 오는지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쏘아본다.

 

S #20 제이스 크레딧 사무실

 

진상, 소파에서 아침햇살에 눈을 부시시 뜬다.

진상,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고 일어나 앉는다.

어제 그 상태 그대로 사무실은 난장판이다.

진상, 그런 사무실을 보며 지난 밤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해내려 애쓰다가

간밤의 찝찝했던 일들을 털어내듯 머리를 흔들며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S #21 복도

 

진상, 방에서 나와 직원들 방문을 열어보고 아무도 없자 연옥의 자리를 한 번 슥 보고

돌아서 나간다.

 

S #22 엘리베이터

 

진상, 초췌한 모습으로 내려가는데 로비층에서 문이 열리면

연옥이 기다리고 서 있다가 깜짝 놀란다.

 

연옥 아, 안녕하세요?

진상 (내리며) 일찍 나오네?

연옥 (타며) 벌써 출근하신 거예요?

진상 아니, 나, 여기서 잤어. 나 싸우나 좀 갔다 올께.

연옥 네, 다녀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진상 (문을 다시 열며) 아, 간밤에 내가 무슨 실수 안 했나?

연옥 ... 아뇨.

진상 그래? 이따 저녁 같이 할까?

연옥 예?

 

진상, 씩 웃으며 단추를 누르던 손을 뗀다.

연옥, 놀란 얼굴로 보고 있는데 문이 닫힌다.

 

S #23 제이스 크레딧

 

연옥, 안으로 들어와 핸드백을 내려놓고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문득 지난 밤 일이 생각나

진상의 방 쪽을 돌아본다.

 

S #24 진상의 사무실

 

연옥,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어제밤과 똑같은 상황이다.

연옥, 잠시 보다가 쓰러진 집기들을 바로 세우고 흩어진 서류들을 모아 책상에 올려놓다가

봉투에서 삐죽이 나온 보스와 만호의 사진들을 발견한다.

연옥, 이상한 생각에 사진을 꺼내 보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진상이 헐레벌떡 들어온다.

 

진상 뭐해?

 

연옥, 깜짝 놀라 얼른 사진을 책상에 있던 다른 서류들과 섞으며 정리하는 척 한다.

 

연옥 정리 좀 하느라구요.

 

진상, 다가와 연옥의 손에서 서류들을 빼앗아 책상서랍에 넣는다.

 

진상 (책상에 있던 지갑을 집어들며) 지갑을 안 갖고 가서 말이야.

청소는 아줌마 시키면 되니까 가서 일 봐.

연옥 네. (돌아선다)

진상 어쨌든 고마워.

연옥 (나가려는데)

진상 저녁 약속 잊지 마.

 

연옥, 씩 웃으며 나가면

진상, 나가는 연옥의 뒷모습을 보다가 사진을 넣은 서랍을 보고 열쇠를 꺼내 잠근다.

 

S #25 연구소

 

만호, 부뚜막에 걸터앉아 노트에 필기를 해가며 열심히 허박사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허박사는 비이커, 플라스크, 가마솥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젓고 재고 들여다보면서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

 

허박사 인류의 꿈이 뭐야? 달나라에 가는 거? 우주를 정복하는 거? 아니야.

인간의 오랜 꿈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거야, 무병장수, 불로장생.

도를 닦는 도인도 그렇고 생로병사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불교의 수행자들도 그런 면에서 보면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지.

(갑자기 예리하게 만호를 본다) 자넨 박사장하고 다른 데가 있군.

박사장은 필기를 하는 법이 없었거든. 맘에 들어.

자, 어쨌든 인간은 유사이래 끊임없이 불로초를 찾아 헤매고

늙지 않는 신비의 영약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고심해 왔네.

최근 들어 과학의 발달과 함께 노화의 비밀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지.

자네 게놈프로제트가 뭔지 아나?

만호 예.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허박사 오, 정말 맘에 들어. 그럼, 기초 상식이 있으니까 길게 얘기 안하고

간단하게 얘기하지.

프리래디칼이라는 게 있어. (만호가 적는 것을 보며 또박또박 불러준다)

프,리,래,디,칼.

이게 뭐냐하면 만병의 근원이고 노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야.

담배연기, 스트레스, 과도한 운동, 등등.

이 프리래디컬이 신체의 전자적 안정을 깨뜨리고 세포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세포의 노화를 촉진하는 주원인이고 그 과정을 바로 산화라고 부르는 거야.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막느냐. 여기서 항산화제가 필요한 거지.

예전에는 합성비타민 제를 많이 썼지만 최근 들어 자연에서 추출한

베타카로틴이 각광을 받아왔어. 왜, 녹황색 채소를 먹으라는 말 들어봤지?

베타카로틴이 거기 많이 들었거든.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베타카로틴보다 포도의 씨와 꽃가루가 훨씬 더 항산화 효과가 있는 걸로

나타났어.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우리가 미처 모르는 곳에 훨씬 더 좋은 항산화제, 즉 노화방지약이 있고

그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양놈들이 먼저 연구해서 지들나라에서

물질특허까지 받아놨다는 거야.

내가 그게 열받아서 이렇게 시골구석에 처박혀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만호 네...

허박사 그런데 자네도 보다시피 연구환경이 너무 열악해.

그러니까 나도 연구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건강식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박사장, 이 자식이 물건을 가져가도 맨날 꿩 구워먹은 소식이야.

그러니까 이번엔 선금 좀 미리 주면 안될까?

만호 스톡옵션을 드리죠. 십프로!

허박사 그런거 말고. 당장 쌀이라도 사 먹어야 될 거 아냐.

만호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생명공학 벤처회사의 연구개발자를 설마 굶겨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십프로면 얼만줄 아십니까?

허박사 얼만데?

만호 이번 프로젝트가 칠백억짜리니까 최소 칠십억입니다.

 

허박사, 눈이 똥그래진다.

 

S #26 보스 사무실

 

만호, 성기, 보스, 대협, 총련, 회의를 하고 있다.

 

성기 순서대로 하면 말이죠, 우선 이 안에 어떤 신물질이 들어 있는지 밝혀내고

만약에 신물질이 들어 있다면 그게 어떤 메카니즘으로 인체에 작용하는지를

다시 연구해서 밝혀낸 다음에 물질특허 및 제조공법에 대한 기술특허를 내고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을 몇 단계씩 거쳐야 됩니다.

보스 그 단계가 얼마나 걸리는데?

성기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2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보스 뭐야?

 

전화벨.

 

총련 네, 생명공학 벤처 사업붑니다. ... 네, 잠시만요. (보스에게 건넨다)

보스 누구야?

총련 캬바레 림이라는데요?

보스 (받는다) 어, 나야 ....그래, 오랜만이야. ... 사업은 잘 되고? ... 뭐? ...

아, 그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른대. ... 아, 글세 나중에 통화하자고.

(전화를 총련에게 다시 주며) 이제부터 나, 없다 그래.

하이에나,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소문을 어떻게 낸 거야?

성기 왜요?

보스 지금 서로 투자하겠다고 난리났어.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 예닐곱명이 우르르 들어온다.

일동, 놀라 보는데

아가씨들, 왁자자껄 인사를 하고는 책상에도 걸터앉고,

소파에도 앉아서 야쿠르트와 바나나등 판촉물을 권하며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아가씨들, 한꺼번에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린다.

 

여1 벤처회사 차리셨다면서요? 너무하세요, 회장님.

여2 왜 저희들한텐 아무런 정보도 안 주시는 거예요?

여3 투자정보 좀 주세요.

여4 하이에나 오빠가 많이 섭섭해 하시더라구요.

여5 생명공학이라면서요?

여6 나도 옛날부터 투자하고 싶었는데 기왕이면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야죠.

여1 회장님이야 이 바닥에서 워낙 성실하고 의리있기로 소문이 나서 언젠간

큰 일 내실 줄 알았다니까.

여2 제발 좀 가르쳐줘요. 내가 언제 일수 떼먹은 적 있어?

여3 오빠하고 나하고 그런 사이야? 한 주에 얼마야?

여4 뭘 하는진 모르지만 무조건 투자할게.

여5 요새 인터넷 오빠들은 거의 안 와. 다 바이오 오빠들인 거 있지?

여6 코스닥이 바닥을 치니까 우리경기도 바닥인데 그래도 바이오는 건재하더라니까.

여1 얘, 얘, 건재가 뭐냐? 제약회사 있다가 벤처해서 떼돈 번 바이오 오빠 있잖아.

그 오빠가 나한테 투자하라 그랬는데 내가 별로 안 내켜서 안했거든?

그때만 해도 바이오가 뭔지 몰랐잖아?

여2 어머, 언니 너무 무식하다.

여1 야, 인터넷은 들어 봤어도 바이오는 못 들어봤잖니?

무슨 자석요 팔고 그러는 건 줄 알았지.

여3 안타깝다.

여1 근데 어쨌든 그 주식이 오백원짜리가 십팔만원이 됐어. 그럼 몇 배니?

여2 삼백육십배.

일동 삼백육십배?

여1 그럼, 내가 천만원만 투자했으면 지금 얼마니?

여2 삼십육억.

일동 (뒤집어진다) 삼십육억!

(다시 보스, 대협, 총련에게 매달린다) 오빠, 회장님! 부장님! 과장님!

우리도 액면가에 투자하게 해주세요.

 

대협, 도저히 못 참고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대협 조용히들 안해? 다들 나가! 니네 오빠들한테 전화한다!

 

아가씨들, 치사하다는 듯이 삐죽삐죽 거리며 나간다.

보스, 아가씨들이 나가자 안타깝다.

 

보스 거, 왜 아가씨들한테 화를 내고 그래?

대협 죄송합니다, 회장님.

보스 바이오벤처가 대박은 대박인가 보지?

 

보스, 성기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본다.

 

보스 대박은 대박이고 최진상인가 그 나쁜 놈은 어떻게 할 거야?

만호 우리한테 투자하게 해야죠.

보스 그럼, 우리가 손해 아닌가?

만호 두고 보시면 압니다.

 

보스일행, 만호의 꿍꿍이가 궁금하다.

 

S #27 제이스 크레딧

 

진상, 옷도 갈아입고 깔끔해진 모습으로 급하게 안으로 들어선다.

 

안내 오셨습니까, 사장님.

 

연옥, 탕비실에서 커피를 준비하다가 진상이가 들어오는 것을 힐끗 본다.

두 사람, 눈이 잠시 마주치지만 곧 시선을 거둔다.

 

진상 어, 전화 온데 없었나?

안내 엘앤씨, 장차장님한테 전화 왔었는데요. 연결해 드릴까요?

진상 됐어. 정회장 쪽에서는 아직 연락 없었나?

안내 없었는데요.

진상 혹시 그 쪽에서 연락오면 아무 때라도 바로 나한테 연결해.

안내 네.

 

전화벨.

 

안내 네, 제이스 크레딧입니다.

 

진상,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안내 사장님. 박성기사장님 전환데요.

진상 어, 연결해.

 

진상, 급하게 사무실로 뛰어들어간다.

연옥, 박성기라는 말에 갸우뚱하며 진상을 본다.

 

S #28 식당

 

성기, 앉아서 영자신문을 보고 있는데 진상이 급하게 다가온다.

 

진상 안녕하십니까?

성기 (신문을 접으며) 앉으시죠.

진상 예. (앉는다)

성기 (혼잣말처럼) 큰 일 났네...

진상 뭐가 말입니까?

성기 나스닥이 영 회복 기미가 없네요.

진상 아, 예.

성기 (종업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진상에게) 무슨 차 드시겠습니까?

진상 (종업원에게) 생과일쥬스.

 

종업원, 돌아간다.

 

진상 회장님은 안녕하시죠?

성기 그 분이야, 뭐.

진상 자료는 검토해 보셨습니까?

성기 예.

진상 어떻게 투자 결정은 하셨습니까?

성기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제이스크레딧에는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진상 (굳는다) 아, 아니, 왜요?

성기 요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벤처들이 워낙 인식이 좋지 않아서요.

인터넷만 하면 떼돈 버는 줄 알고 인터넷 방송이다, 쇼핑몰이다,

변변한 콘텐츠도 없이 다 달려드니까.

진상 그거하고 저희하곤 질적으로 다릅니다. 자료 보셨잖습니까?

성기 아, 물론 저야 최사장님께도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만 회장님께서 결정을 내리신

일이라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상 ... (기분 나쁘지만 꾹 참으며) 그럼, 다른 쪽에 투자하시는 겁니까?

성기 예. 아무래도 그 쪽이 성장가능성이 커 보여서요.

그동안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일어나는데)

진상 ...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하나만 묻죠.

성기 뭡니까?

진상 ... 투자하시는 사업이 혹시 강만호라는 친구의 사업입니까?

성기 (놀라는 척 하다가 자리에 다시 슥 앉는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상 저도 정보라인이 있습니다.

성기 맞습니다. 강만호씹니다.

진상 아이템은 뭐죠?

성기 생명공학 쪽입니다.

진상 혹시 사무실에는 가 보셨나요?

성기 ... 아뇨

진상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 친구는 생명공학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친굽니다.

성기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진상 ... 같은 직장에 근무했었거든요.

성기 아, 그렇습니까? 이런 인연이...

진상 강만호씨가 전과가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모르시겠군요.

성기 아, 그래요? 전과가 있어요?

진상 (득의 양양하게) 그 정도 조사는 기본적으로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기 ... 우리는 그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진상 (뜻밖이다)

성기 본의 아니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잖습니까?

의로운 일을 했으면서도 현행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기도 하고

가끔은 아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만을 조사합니다.

강만호씨의 아이템은 이미 미국과 일본의 전문기관에 용역을 줘서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고 그것과는 별도로 두 건의 특허신청이 진행 중입니다.

진상 네? ...

 

전화벨

 

성기 아, 실례하겠습니다. (받는다) 여보세요. ... 아, 회장님. ... 네... 네...

일단 오억불을 투자받기로 했습니다... 예. 다음 주 중에 들어와서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하겠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끊고) 아, 이거 죄송합니다.

진상 괜찮습니다.

성기 제가 워낙 바빠서 이만 일어나야 될 것 같습니다.

 

성기, 일어나면 진상도 같이 일어난다.

 

성기 (악수를 청하며) 강만호씨에 대한 정보 고맙습니다.

진상 별말씀을요.

성기 아무래도 제가 다시 연락 드릴 일이 있을 것 같군요.

진상 명함 한 장만 주시겠습니까?

성기 (약간 주저하다가) 제가 명함을 잘 안 쓰는 편인데 최사장님한테야 드려야죠.

 

성기, 품에서 금박을 입힌 고급스러운 명함을 꺼내 진상에게 준다.

'정투자 컨설팅 벤처사업부 사장 박성기' 밑에 휴대전화번호만 달랑 적혀 있다.

 

진상 감사합니다.

 

성기, 가면 진상, 명함을 들여다본다.

 

S #29 진상의 사무실

 

진상, 자리에 털썩 앉아 명함을 다시 꺼내본다.

 

진상 강만호, 강만호, 강만호!

 

진상, 책상을 쾅 내리치는데 미래가 들어온다.

 

진상 (얼른 표정을 관리하며) 아, 미래씨. 무슨 일이에요?

미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진상 왜요?

미래 없으면 저하고 술 한 잔 할래요?

진상 술이요?

미래 오늘 클럽 모임이예요. 사람들하고 인사 좀 하시구요.

봐서 가입하시던가요.

진상 가입자격이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미래 우리 아버지가 클럽 패트런이시거든요.

진상 아, 그래요?

미래 안 가실래요?

진상 가야죠.

미래 그럼, 준비하고 나올께요.

 

미래, 나간다.

 

S #30 화장실

 

연옥, 거울 앞에 서서 꽃단장을 하고 있다.

미래,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고 나와 연옥 앞에 선다.

미래도 백을 열어 꽃단장을 시작한다.

연옥, 재수 없어 하며 조금 옆으로 비켜서서 립스틱을 열심히 바른다.

 

미래 (힐끗 보며) 데이트 있나 보죠?

연옥 (속으로 남이야) 네.

미래 남자친구가 싫어하겠네?

연옥 왜요?

미래 벤처회사 다니니까.

연옥 벤처회사가 왜요?

미래 늦게 퇴근하는데 좋아할 남자 있어요?

연옥 그 남자도 벤처회사 다녀요.

미래 아하, 그럼 그 전에 다녔다는 건강 과학 어쩌구에서 만난 사람인가 보죠?

연옥 이사님, 참 이상하시네요.

미래 뭐가요?

연옥 왜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세요?

 

연옥, 홱 나가버리고

미래, 기가 막히다.

 

S #31 복도

 

연옥, 화장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진상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자 놀란다.

 

연옥 지금 가시게요?

진상 (아차싶다) 아, 저.

 

이때 뒤에서 미래가 나타난다.

 

미래 가시죠.

진상 아, 예.

 

진상, 연옥의 눈을 피하며 미래와 함께 나가려는데 허부장이 급하게 다가온다.

 

허부장 사장님. 문제가 뭔지를 알아냈답니다.

진상 그래요? 뭐가 문제예요?

허부장 아무래도 스타 쪽 데이터가 불량인 것 같다는데요.

진상 (긴장한다) 스타카드요?

허부장 네. 다른 카드사는 문제가 없는데요, 스타 쪽 데이터하고 링크만하면

시스템이 다운되거든요.

 

진상, 자기를 찾아왔던 스타직원도 맘에 걸려 영 찜찜하다.

 

진상 확실한 겁니까?

허부장 예, 거의... 어떡할까요? 제가 당장 그 쪽 담당자를 한 번 만나볼까요?

진상 아, 아니에요. 내가 해결하죠. 기술팀한테 수고했다고 좀 전해주세요.

미래 무슨 일이에요?

진상 아닙니다. 가시죠.

 

진상, 미래를 에스코트하여 나간다.

연옥, 너무 기가 막혀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허부장 아니, 급하니까 빨리 해결하라고 닥달할 때는 언제고,

(연옥에게) 어디 가는 거래?

연옥 몰라요.

허부장 근데 입술이 왜 그래?

연옥 몰라요.

 

연옥, 다시 사무실로 확 들어가버린다.

 

허부장 (안내에게) 이연옥씨, 왜 저래?

안내 몰라요.

 

S #32 보스 사무실

 

만호, 자장면 그릇을 옆에 놓고 한 입씩 먹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투자설명회 기획안을

쓰고 있다.

보스와 성기, 대협, 총련도 소파에 앉아 자장면을 먹고 있다.

 

성기 (만호에게) 정회장이 너한테 투자한대니까 얼굴이 노래지더라.

짜식, 간은 콩알만해 가지고. 근데 하라는 대로 하기는 했다만

정말 걔가 투자를 할까?

만호 회장님. 사무실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보스 사무실은 왜?

만호 최진상 그 놈이 그런 식으로 사무실을 모독했는데, 기분 나쁘지 않으십니까?

보스 돈 드는 거보다 기분 나쁜 게 나.

만호 어쨌든 옮겨야 됩니다.

보스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만호 700억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보스 (고민한다)... 음... 뭐가 이렇게 복잡해?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머리를 많이 써보기는 처음이야.

음... 사무실 옮기면 미스리도 나오나?

성기 예, 아마... 나오지 않을까요?

보스 ... 그래?...

 

S #33 연옥이네 집

 

연옥부, 퇴근을 하여 집으로 들어오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자 헛기침을 한다.

 

연옥부 어험.

 

연옥모와 지옥, TV를 보고 있다가 돌아본다.

 

지옥 다녀오셨어요?

연옥모 이제 와요? 배고프지?

연옥부 (마루로 올라오며) 두말하면 잔소리지.

연옥모 조금만 기다려. 요것만 보고 내가 저녁 금방 해줄게.

부 이제부터 밥을 해야 되는 거야?

모 밥이야 금방 하지, 뭐. 쌀 씻어서 앉혀 놓기만 하면 되는데.

부 으.... 반찬은 뭔데?

모 뭐, 그냥, 된장찌개지, 뭐.

부 그리고?

모 그리고? 김치에다 밥이지, 뭐.

부 (옷을 벗으며 짜증난다) 으....너. 넌 고3이 맨날 집에 와 있냐?

지옥 대학교 안 가는 애들은 보충수업 안 해요.

부 으... 저 돌대가리. 누가 그 엄마에 그 딸 아니랄까봐.

연옥 (힘없이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연옥, 신발을 팍팍 팽개치고 마루로 올라오는데

 

부 너, 입술이 그게 뭐냐? 쥐잡아 먹었냐?

연옥 지우면 되잖아요.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지옥 언니, 연애한대요.

모 뭐?

부 연애?

 

연옥, 지옥을 짝 째려본다.

 

연옥 내가 언제 연애한다 그랬어?

지옥 꼭 말을 해야 아냐? 탁 보면 알지.

연옥 너, 죽을래?

부 시끄러!

 

연옥, 방으로 홱 들어간다.

 

모 쟤, 남자 있냐?

지옥 (연옥을 흉내내며) 나, 이쁘니? 우! 거울 앞에서 별짓을 다 하더라구.

 

문이 벌컥 열리고 연옥이 뛰쳐나와 지옥의 머리끄덩이를 확 잡는다.

 

연옥 이게!

지옥 아!

연옥 너, 일루 들어와.

 

연옥, 지옥을 끌고 들어가려는데

 

지옥 엄마! 아빠! 나 좀 살려줘.

 

연옥모, 다급하게 연옥을 뜯어말린다.

 

모 연옥아! 왜이래! 미쳤나봐, 이 기집애가!

부 조용히 안해!

 

전화벨.

연옥부, 소란한 와중에 전화를 받는다.

 

부 여보세요, ... 아, 그 젊은 사장님? ... 미스리가 있긴 있는데 말이죠. ...잠시만요...

 

S #34 클럽

 

진상, 전화를 하고 있다.

전화기 속에서 연옥이네 집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이거놔! 왜 이래! 아아악! 미스리! 사장님이래!

(갑자기 조용해지고 연옥이 받는다) 여보세요.

진상 아, 연옥씨? 난데, 오늘 미안해서 어떡하지?

연옥 (소리) 괜찮아요.

진상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연옥 됐어요.

진상 이해하지?

연옥 네

진상 미안. 내일 봐.

 

진상, 전화를 끊고 돌아보는데 미래, 남자들 틈에서 막 웃고 있다가 진상을 손짓해 부른다.

진상, 자리에서 일어나 미래가 있는 자리로 간다.

 

미래 제이스 크레딧 최진상씨.

진상 처음 뵙겠습니다. 최진상입니다.

남자 우리 멤버가 되셨다구요? 축하드립니다.

진상 감사합니다.

미래 종수씨 친구분이셔.

남자 그래? 아까 보니까 종수도 왔던데?

진상 (두리번거린다)

미래 잘 친해 두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투자자들이니까.

진상 잘 부탁합니다.

남자 미래씨는 거기서 뭐해?

미래 그냥 이거저거.

남자 그런데서 골치 아프게 그러고 있지 말고 나한테 시집이나 오지?

미래 그럴까?

남자 농담 아냐.

미래 나도 농담 아냐.

 

사람들, 같이 낄낄거리고 웃지만 진상은 억지로 따라 웃는데

종수가 지나간다.

 

진상 (반갑게) 종수야.

 

종수, 돌아보고 의아해하며 다가온다.

 

종수 너, 여기 웬일이냐?

진상 (의기양양) 나도 오늘 자이안트에 가입했다.

종수 (피식) 니가? 그래, 놀다 가라.

진상 (기분 나쁘지만) 앉아라. 같이 한 잔 하자.

종수 저 쪽에 가봐야 돼.

 

종수, 홱 돌아서서 다른 자리로 간다.

진상, 미래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안하다.

진상, 기분 더럽지만 꾹 참는데 진상과 같이 있던 남자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친다.

 

남자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우리클럽의 새 멤버 최진상씨를 소개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일동, 심심하던 차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진상,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한다.

 

종수 (진상을 보고 박수치며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대체 가입기준이 뭐야?

되지도 않은 벤처 하나 만들었다고 아무나 들여놔도 되는 거야?

친구 (비웃으며) 쟤?

 

진상, 여전히 웃으며 인사한다.

 

S #35 진상이네 집 (밤)

 

문이 벌컥 열리고 술이 많이 취한 미래가 진상의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온다.

 

미래 (소파에 풀썩 앉으며) 딱 한잔만 하고 갈께요.

진상 회장님께서 찾으실 텐데 제가 댁으로 전화 드릴까요?

미래 웃기지 말고 술이나 갖고 와요.

 

진상, 보다가 부엌으로 가서 술을 따르며 씩 웃다가 응답기의 리드램프가 깜빡거리자

병을 내려놓고 무심코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스타 (소리) 안녕하세요, 최진상씨. 스타카드 김유신입니다.

 

진상, 기겁을 해 다급하게 끈다.

 

미래 누구예요? 스타카드라는 거 같은데?

진상 아, 아니에요.

미래 한 번 들어봐요. 스타카드래잖아요.

 

미래, 일어나 응답기 쪽으로 와 버튼을 누르려 한다.

진상, 얼른 응답기 전원을 꺼버리고 미래의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려세운다.

 

진상 미래씨.

미래 (본다)

진상 미래씬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미래 ... 네? ...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진상 난 말이죠, 미래씨를...

미래 ...

 

진상, 차마 말을 못 잇는 척하며 술잔을 들어 건넨다.

 

진상 드시죠.

 

미래, 궁금한 얼굴로 받는데 진상, 리모콘으로 음악을 켠다.

섹시한 음악이 나온다.

 

미래 어머,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진상 그래요?

마래 우리 춤춰요.

 

미래, 술잔을 든 채 진상의 목을 감는다.

진상, 미래의 허리를 잡고 미래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간다.

 

미래 ... (우울한 얼굴로) 우리 사귀어 볼래요?

 

진상, 동작을 멈추고 미래를 보는데

미래, 진상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데를 보고 있다.

 

S #36 보스 사무실

 

만호, 성기, 보스, 대협, 총련, 자장면을 먹고 있다.

총련, 먹으며 전화를 한다.

 

총련 넓은 데로 갈 거야. ... 전망도 좋아야지... 그럼, 폼도 나야지, 벤처사업분데...

... 싼 건 기본이지. 우리 회장님 짠돌인 거 몰라? 앗!

보스 (째려본다)

총련 그러니까 좋은 데 나오면 연락해 줘.

 

총련, 전화를 살그머니 끊고 자장면 그릇에 얼굴을 박는데

문이 슬며시 열리고 흥신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흥신 (좌중을 둘러보며) 안녕들 하셨습니까? 여러분.

대협 뭐야? 노크도 할 줄 몰라?

흥신 죄송합니다.

만호 뭐, 좀 나왔어요?

흥신 별 건 없는데요, 최사장님이 워낙 바쁜 데다가 고급으로만 다니셔서

저도 돈 좀 썼거든요?

대협 그래서?

흥신 좀 참작해 주셨으면 하구요.

총련 우리 정보 대주고 그 놈한테 받은 돈 있을 거 아냐?

흥신 그래도 저는 사실 이 사무실을 위해서 일하는 건데...쪼금만이라도

 

흥신, 좌중을 둘러보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만호 어디 좀 봅시다.

 

흥신, 가방을 열어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꺼내 놓는다.

일동, 사진을 돌려본다.

 

보스 (연옥이 진상의 집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이거 미스리 아냐? 여기가 어디야?

흥신 최사장 집입니다. 잠복근무하다 찍었습니다.

보스 미스리가 거긴 왜!

흥신 모르겠습니다. 한참만에 나왔습니다.

 

보스, 부들부들 떠는 사이 흥신, 미래와 진상이 집으로 같이 들어가는 사진을 꺼낸다.

만호, 사진을 보고 얼굴 굳는데 성기, 사진을 탁 빼앗아 보고 놀라 만호의 눈치를 슥 본다.

 

흥신 여기도 최사장 집 앞입니다. 이 아가씨도 한참만에 나왔습니다.

대협 그럼, 양다리?

 

만호, 사진들 속에서 스타의 사진을 집어들고 어디서 봤더라 생각한다.

 

만호 이 사람은 누구죠?

흥신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워낙 은밀하게 만나서 그거 찍느라고 개고생했습니다.

술값도 엄청 깨졌구요. 전, 정말 이제 이 일 그만하면 안될까요?

 

대협과 총련, 흥신의 뒤통수를 한 대씩 날리면 흥신, 운다.

 

대협 시끄러.

 

흥신, 그친다.

만호, 사진의 인물이 아무래도 낯이 익은지 뚫어져라 들여다보다가

문득 호텔로 진상을 데리고 와 휴대전화를 하던 남자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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